케플러 법칙 실생활 - kepeulleo beobchig silsaenghwal

케플러 법칙 실생활 - kepeulleo beobchig silsaenghwal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탁구공 무게도 가늠하기 어려운데
과학계, 우주 물체 질량 측정 가능

뉴턴 등이 고안한 방정식 동원 땐
지구의 사과처럼 무게 쉽게 구해
가성비 최고의 계산 아이템 아닌가

고대 그리스와 헬레니즘 시대 선현들은 지구에 가만히 앉아서도 지구와 달, 태양의 크기, 그리고 달 및 태양까지의 거리를 알아낼 수 있었다. 사물의 크기만큼이나 궁금한 대목이 얼마나 무거울까 하는 점이다. 지구와 달, 태양은 얼마나 무거울까? 그 질량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천체의 질량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면 당연하게도 그 질량과 관련된 현상을 이용해야 한다. 사실 질량이라는 물성은 크기나 거리만큼 직관적이지는 않다. 크기나 거리는 본질적으로 길이와 관련된 양으로서 공간 속에서 해당 물체가 점유하고 있는 정도를 나타낸다. 넓이나 부피는 길이의 2차원 또는 3차원적 확장에 불과하다. 질량은 이와 같지 않다. 두 사람의 키는 시각적으로 곧바로 비교할 수 있지만 누가 더 무거운가는 그냥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가늠하기 어렵다. 물론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탁구공보다 야구공이 더 무겁다는 식으로, 이를테면 물체를 들었을 때 우리의 팔 근육이 느끼는 고통의 정도로 어떤 물체의 무거운 정도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조금 머리를 쓰면 물체의 무거운 정도를 시각적으로도 보여줄 수 있다. 양팔저울을 이용해 우리가 질량을 측정하고자 하는 물체와 균형을 맞출 때까지 이미 질량을 알고 있는 규격화된 추를 올려놓으면 된다. 이때 임의의 물체와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추의 개수의 많고 적음이 곧 대상 물체의 가볍고 무거움을 표현하게 된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원시적으로’ 보이는 이 방법은 놀랍게도 불과 몇 년 전까지 국제도량형국에서 질량을 측정하는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깔려 있다. 지구가 모든 물체를 그 질량에 비례하는 크기의 힘으로 당기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지구가 물체를 당기는 정도에 그 물체의 질량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이런 방법으로 질량을 측정할 수 없을 것이다. 보통의 저울이나 체중계는 기본적으로 이런 성질을 이용한 기계이다. 물체를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아예 아무것도 없는 우주공간에서는 체중계가 무용지물이다.

지구가 물체의 질량에 비례하는 힘으로 물체를 당긴다는 ‘믿음’은 일상 경험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꽤 쓸 만한 믿음이다. 수박 하나보다는 비슷한 크기의 수박 두 개를 들기가 대략 두 배는 더 힘들다. 그러나 지구 밖에 있는 달이나 태양에 대해서도 비슷한 얘기를 할 수 있을지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심지어 태양의 지름은 지구보다 109배 정도 더 크다.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지구보다 훨씬 더 큰 물체를 저울에 매달아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지구 자체의 질량은 또 어떻게 잰단 말인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질량을 가진 물체에 대한 뭔가 보편적인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를 우리는 자연의 법칙이라 부른다. 질량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법칙은 역시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이다. 이 법칙에 따르면 질량이 있는 두 물체 사이에는 각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두 물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끄는 힘이 작용한다. 법칙의 미덕은 ‘예외 없음’이다. 지구 위의 사과든 천상의 달이나 태양이든 똑같은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뉴턴 이전까지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세계관에서는 지구 위에서의 운동과 천상에서의 운동을 지배하는 법칙이 전혀 달랐다. 천상은 신성한 공간이고 지상은 불완전한 인간이 사는 곳이니 두 곳의 작동원리가 당연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무자비하고도 불경스러운 뉴턴은 자연법칙에서의 계급주의를 타파하고 보편법칙이라는 민주주의를 확립한 셈이다.

한편 뉴턴은 세 가지 운동법칙을 제시해 자신만의 역학체계를 확립했다. 그중에서 제2법칙은 힘과 질량의 관계를 명확하게 정립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질량이 클수록 같은 힘을 주었을 때 속도를 변화시키기가 어렵다. 이는 우리의 일상 경험과 잘 맞는다. 시속 100㎞로 달려오는 승용차를 멈추는 것보다 같은 속력으로 달려오는 기차를 멈추기가 훨씬 더 힘들다. 달리 말하면 질량이 클수록 속도를 일정하게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큰 힘이 가해져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힘의 법칙, 또는 가속도(단위시간당 속도의 변화)의 법칙으로 알려진 F=ma이다.

뉴턴의 법칙을 잘 조합해 적용하면 지상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이나 우리가 밤하늘에서 관측하는 천체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고 심지어 예측까지 할 수 있다. 이제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을 보고 지구가 얼마나 무거운지 계산해보자. 나무에 매달려 있던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속도가 일정하게 증가한다. 시간에 따른 속도의 변화를 우리는 가속도라 한다. 따라서 사과가 자유낙하하는 운동은 가속도가 상수인 운동이다. 이를 등가속운동이라 한다. 등가속운동에서는 물체의 속도가 시간에 정비례하며 그 이동거리는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 이 사실은 이미 뉴턴에 앞서 갈릴레이가 밝혀냈다. 등가속운동은 뉴턴역학에서 간단한 산수로 쉽게 기술할 수 있다. 예컨대 나무에 매달려 있던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현상을 관찰해 낙하에 걸린 시간과 낙하거리를 측정하면 사과가 떨어질 때의 가속도를 아주 쉽게 구할 수 있다. 보통 이 값은 9.8m/sec²으로 알려져 있다. 학창 시절 물리학의 기본을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이라면 이 값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렇게 복잡한 기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이 값은 9.8m/sec²=(9.8m/sec)/sec 이렇게 쓰면 훨씬 더 이해하기 쉽다. 물체의 속도가 매초 초속 9.8m만큼 더 커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무에 매달려 있던 사과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정지 상태에서 속도가 커지기 시작해 1초 뒤에는 초속 9.8m, 2초 뒤에는 초속 19.6m가 된다.

뉴턴의 운동 제2법칙에 따르면 가속도가 있다는 것은 힘이 작용한다는 뜻이다. 그 힘은 지구와 사과 사이에 작용하는 만유인력, 즉 보편중력이다. 그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정량적으로 기술한 것이 만유인력의 법칙이고 그렇게 생긴 가속도를 중력가속도라 한다.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르면 중력은 두 물체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데 지표면에서 중력에 의한 가속도가 상수로 일정하다고 보는 이유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거리의 척도가 지구 반지름(약 6370㎞)보다 훨씬 더 작아서 그 정도의 차이는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지표면에서 만유인력이라는 힘 때문에 생기는 가속도의 크기가 9.8m/sec²과 같다고 놓으면 하나의 방정식이 생긴다. 이 방정식에 지구의 질량과 지구의 크기, 그리고 만유인력의 법칙에 들어가는 보편상수인 중력상수가 들어간다. 따라서 지구의 질량은 지구의 크기와 중력상수와 지표면에서의 중력가속도로 구할 수 있다. 중력상수는 모든 물체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작동하는 상수이므로 실험실에서 실험으로 구할 수 있다. 지구의 크기는 그 옛날 에라토스테네스가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 모든 결과를 종합하면 우리는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서 지구의 크기를 계산할 수 있다!

여기서 자연의 보편상수로서 중력상수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이 상수는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보편적인 자연의 법칙과 결부된 상수이다. 보편법칙의 위력은 여기서도 엿볼 수 있다. 지구와 상관없이 얻은 상수값으로 지구의 질량을 잴 수 있다니, 이야말로 하나를 알면 열을 알 수 있는 ‘가성비’ 최고의 아이템이 아닌가.

이 원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태양의 질량도 구할 수 있다. 지구-태양의 관계를 아주 단순화시키면 태양이 지구보다 훨씬 더 무겁기 때문에(정확한 질량은 곧 계산해봐야 알겠지만) 태양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지구가 그 주변을 거의 원형으로 돌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지구의 궤도는 원에 아주 가까운 타원이다. 원운동(또는 타원운동)은 속도의 방향이 계속 바뀌는 운동이므로 일종의 가속운동이다. 따라서 이 가속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이 바로 지구와 태양 사이에 작용하는 만유인력이다. 이는 원리적으로는 정확히 나무에서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현상과 똑같다. 뉴턴이 한때 지적했듯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달은 지구를 향해 영원히 자유낙하하고 있는 것과도 같다. 마찬가지로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는 태양을 향해 끝없이 낙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지구가 사과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 태양과 지구 사이에 중력이 작용, 지구가 일정한 가속도를 갖는다고 보는 것이다.

이 진술을 수식으로 그대로 옮기면 하나의 간단한 방정식을 세울 수 있는데, 조금만 정리하면 태양의 질량이 지구의 공전궤도 반지름과 공전속도의 제곱을 곱한 값에 비례하는 결과로 주어진다. 그 비례상수는 만유인력의 법칙에 들어가는 중력상수의 역수이다. 지구의 공전궤도 반지름은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이고 공전속도는 지구가 태양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거리, 즉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를 반지름으로 하는 원의 원주를 1년(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나눈 값이다. 그러니까, 태양의 질량은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와 공전주기와 중력상수의 간단한 조합으로 주어지는데 그 모든 값을 우리가 손에 쥐고 있다. 세 가지 숫자를 곱하고 나누는 것만으로 우리는 역시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서 태양이 얼마나 무거운지 계산할 수 있다!

이 계산에서 지구의 공전속도를 공전궤도 반지름과 공전주기로 표현하면 태양의 질량이 공전궤도의 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하고 주기의 제곱에 반비례함을 알 수 있다. 달리 표현하자면 공전반지름의 세제곱이 공전주기의 제곱에 비례한다. 실제 타원궤도를 도는 다른 모든 행성에도 이와 비슷한 관계가 보편적으로 성립한다. 이 법칙이 바로 행성운동에 관한 케플러의 제3법칙(일명 조화의 법칙)이다. 케플러는 뉴턴보다 한 세대 앞선 천문학자였다. 케플러의 행성운동법칙은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종필 교수

케플러 법칙 실생활 - kepeulleo beobchig silsaenghwal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