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어떻게 살것인가 - geudae eotteohge salgeos-inga

「세카이(世界)」 초대 편집장이 쓴 ‘청소년 인생론의 고전’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1937년에 출판되었다. 벌써 80여 년 전 일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청소년 인생론의 고전으로 사랑받고 있다. 일본의 애니메이터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책을 읽는 순간 “기억 속에 묻혀 있던 배선에 앗, 하고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라고 말했고, 안광복 중동고 철학 교사는“가치 있는 삶을 고민하게 하는 흔치 않은 책”이라고 평가했다.

책을 쓴 이는 요시노 겐자부로이다. 한국인에게는 낯설겠지만, 일본에서는 꽤 유명한 20세기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편집인이다. 1945년부터 1965년까지 「세카이(世界)」의 초대 편집장을 지내며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 담론을 이끌었다. 「세카이」는 이와나미(岩波)서점에서 발행하는 비판적 성격의 잡지로 1950~1960년대에 20만부의 발행 부수를 자랑했다. 요시노 겐자부로는 당시 일본 편집인들로부터 최고의 편집인으로 존경받았다.《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그의 대표작이다.

이 책이 출판된 1937년은 중일전쟁이 발발한 해다. 유럽에서는 파시즘이 여러 나라를 위협하고 제2차 세계대전의 검은 구름이 온 세계를 뒤덮던 때였다. 일본에서는 군국주의가 확산되면서 언론과 출판의 자유는 크게 제약을 받았고,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은 격심한 탄압에 시달렸다.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청소년 책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요시노 겐자부로를 비롯한 지식인들은 인본주의 정신을 지켜 내고자 했고, 청소년들만이라도 나쁜 시대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어려운 시절을 이겨 낸 청소년이야말로 다음 시대를 짊어지고 나갈 소중한 자원이며, 청소년에게는 아직 희망이 남아 있으므로 그들에게 편협한 국수주의와 반동사상을 뛰어넘는 자유롭고도 풍요로운 문화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알려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은 이러한 간절한 희망의 산물이다.

태평양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금서가 되기도 했지만 100년 가까운 세월에도 이 책이 여전히 ‘청소년 인생론의 고전’으로 사랑받는 까닭은, 자본이 인간성을 제압한 이 시대에 더욱 절실한 삶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청소년 시기는 버겁고 외롭다. 힘든 아이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던지는 책들은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이 책처럼 가치 있는 삶을 고민하게 하는 책은 흔치 않다.”는 안광복 선생의 평가는 개인주의가 절정에 달한 지금, 이 책이 사랑받는 까닭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열다섯 살 코페르의 방황 그리고 성장
주인공 코페르는 열다섯 살, 중학교 2학년생이다. 본명은 혼다 준이치이고 코페르는 외삼촌이 코페르니쿠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준 별명이다. 외삼촌과 함께 백화점 옥상에서 긴자 거리를 내려다보던 어느 날 코페르는 삶과 세상에 대해 진지하게 사색하기 시작한다. 십대의 인생에 말 걸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 때 코페르는 사람들이 ‘분자’ 같다고 생각한다. 외삼촌은 코페르의 생각을 듣고 코페르니쿠스의 인식론적 전환에 대해 이야기한다. 곧 코페르가 자기중심에서 관계 중심으로 세계를 보기 시작했음을 지적하고 그것을 소중하게 지켜가기를 당부한다. 그 뒤부터 코페르에게 생기는 사건과 관계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가난한 유부 가게 아들 우라가와를 놀리는 야마구치 패거리들에 맞서는 기타미, 미즈타니와 친구가 되고, 공부도 못하고 수업 시간에 만날 잠만 자는 우라가와가 유부 만들기의 달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진정한 발견의 의미와 생산 관계 그리고 가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야마구치 패거리가 기타미와 친구들에게 린치를 가하고 코페르는 옆에서 지켜볼 뿐 함께 싸우지 못한다. 비겁한 놈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코페르에게 엄마가 학창시절 돌층계의 추억을 이야기해준다. 코페르는 친구들에게 사죄의 편지를 쓰고 친구들은 앓고 있는 코페르에게 찾아온다. 코페르는 이 과정에서 인간의 고뇌와 잘못의 위대함, 그리고 진정한 용기에 대해 깨닫는다. 다시 봄이 오고 코페르는 정원에 핀 수선화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엄마가 사준 만년필로 외삼촌처럼 노트에 무언가를 열심히 쓰기 시작한다. 코페르의 방황이 성장통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처럼 코페르는 꿈과 현실, 이웃과 사회를 향한 애정과 관심, 가난한 친구에게 보여주는 꾸밈없는 우정, 영웅에 대한 뜨거운 숭배,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는 비겁함, 왕따와 학교폭력 따위의 문제와 씨름한다. 이것은 십대들이라면 누구나 겪고 고민하는 문제들이다. 따라서 이런 고민과 방황은 사소할지 몰라도 그 자체로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과 방황은 올곧은 방향으로 유도될 때 가치로운 삶으로 나아간다. 휴머니즘적 세계관, 진보적 역사관을 바탕으로 하는 외삼촌의 조언이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다.

스토리텔링이 있는 멘토링
바야흐로 21세기는 스토리텔링과 멘토링의 시대다.《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에는 바로 이 스토리텔링과 멘토링이 있다. 10개 꼭지마다 앞에는 코페르의 일상이 있다. 이 일상은 곧 코페르의 성장과 방황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 뒤에 외삼촌의 노토가 이어진다. 외삼촌은 노트에서 코페르의 고민에 철학·종교·과학·경제학을 아우르는 지식을 바탕으로 친절하게 답한다. 요즘 말로 멘토링이다. 여기서 코페르는 방황하는 십대들이며 외삼촌은 광란의 파시즘에 맞서는 지식인 곧 지은이 자신이다.

“외삼촌, 사람은 정말 분자인 것 같아. 오늘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어.” (중략)
“···오늘 네가 스스로를 넓은 세상의 분자로 여겼다는 건 정말 큰 사건이란다. 나는 오늘 네가 겪은 일이 네 마음속에 깊은 흔적을 남기기를 바란다. 오늘 네가 느꼈던 감정, 네가 떠올렸던 생각은 아주 중요한 뜻을 담고 있단다. 네 인생의 관점이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뀐 것이니까.”

스토리텔링이나 멘토링이라는 말이 제대로 개념화도 되어 있지 않던 80여 년 전에 이런 방식으로 글을 썼다는 것이 놀랍다. 아마도 청소년들에게 군국주의의 진실을 밝히고 희망을 선물하고자 했던 지식인의 절실한 마음이 이렇게 시대를 앞선 이야기 방식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 제목을 만났을 때, 서점에 흔히 있는 자기개발서나 sns에서 유행하는 위로를 주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어보니 완전히 다른 소설이었다. 중학교 2학년인 코페르는 자신의 고민들을 삼촌에게 털어놓고 삼촌과 고민에 대해 대화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춘기 소년의 가장 큰 고민으로 등장한 것은 바로 친구 문제이다. 일종의 오해로 상급생들과의 갈등 상황을 겪게 되었는데 코페르는 친구인 기타미가 얻어맞고 있는데도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도와주지도 못하고 그냥 구경만 했다. 심지어 다른 미즈타니와 우라가와는 상급생들이 때리면 같이 맞자고 약속했던 것을 지키기 위해 기타미와 함께 맞았다. 코페르는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비겁한 사람이라 생각하며 마음의 병이 깊어지다 못해 실제로 몸이 아파 학교도 못나가게 된다. 결국 외삼촌과의 대화 끝에 친구들에게 먼저 사과의 편지를 건네고 친구들이 받아주면서 코페르는 몸과 마음의 병이 모두 낫게 된다. 내가 중학생 때도 친구들이 소중했기에 친구에 대한 고민들이 공감이 되기도 하였지만 사실 어른이 된 지금 더 존경스러운 것은 코페르의 마음에 항상 귀 기울여주는 삼촌의 존재이다. 나는 조카가 있더라도 코페르의 삼촌처럼 귀 기울여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조카 뿐만이 아니라 요즘은 가까운 친구들 혹은 가족들의 고민들마저도 제대로 들어주지 못하는 것 같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어른이라면 좋을텐데, 변명이겠지만 지금은 나의 여러가지 고민들에 휩싸여 다른 사람들의 고민들을 들어주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심할 때는 나까지 피곤해지는 느낌을 받곤 한다. 조카의 수많은 고민들을 들어주고 대화해줄 수 있는 삼촌이라는 존재가 부럽기도 하고 그렇게 되고 싶다는 동경심이 들었다. 

삼촌과 같은 존재가 되는 법은 삶의 여유로운 것도 있겠지만 제일 큰 것은 공감 능력이다. 나도 당시에는 치열하게 고민했었지만 지금은 지나가서 큰 의미가 없는 그런 고민들을 다시 내 일처럼 공감해야 진솔된 자세로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그러한지 그냥 쉽게 넘어가곤 하는 것 같다. 나는 이미 해결한 상태이므로. 올챙이 적을 생각하며 다시 나의 고민인 것처럼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고민해주고 들어주는 자세가 삼촌과 같은 멋진 어른이 되는 첫 걸음일 것이다.

이 책은 한 동안 일본에서 금서였다고 한다. 인터넷에 따르면 마지막 페이지의 말 때문이다. 코페르는 노트에 글을 쓰는데 "나는 온 세계 사람들이 서로 친한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내는 그런 세상이 오면 좋겠어요. 인류는 지금껏 발전해 왔으므로 머지않아 틀림없이 그런 세상이 올 거라고 믿어요. 내가 그런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라는 말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이 쓰여진 30년대 말은 세계 전쟁에 일본도 뛰어들어 싸우고 있었고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민족 말살 정책을 펼치던 때였다. 코페르와 같은 나이의 조선 아이들은 강제 징용을 당하기도 하고 부모를 잃기도 하고 위안부로 끌려 가기도 하며 혹은 그런 이들을 형제 자매로 둔 채 하루 하루 악몽같은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코페르의 고민은 정말 별거 아닐 정도로 큰 삶의 무게를 지고 살고 있었을 것이다. 삼촌은 불상이 처음 만들어진 곳 등 문화 예술 역사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해주며 코페르의 생각을 넓혀준다. 하지만 거기에 조선은 없다. 이 책이 지브리에서 영화화 된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는 동시대의 코페르만한 조선의 청소년들이 생각나서이다. 청소년의 고민을 담은 성장 소설로는 참 좋은 책이지만 어린 나이에 기댈 어른 없이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스러져간 나의 뿌리를 생각하면 조금 안타까워지는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