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신고 기준 - jibhoe singo gijun

“최근 법원이 잇달아 전향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습니다.”

지난 2일 서울행정법원이 주말 촛불집회에서 청와대 앞 100m 지점까지 집회와 행진을 허용하는 결정을 내린 뒤 한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청와대는커녕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지난해 11월 열린 민중총궐기에서 정부의 쌀시장 개방 정책에 항의하겠다며 청와대 가려 했던 백남기 농민은 광화문광장에도 가지 못하고 종로구청 사거리에서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그런데 최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촛불집회에서 법원은 잇달아 경찰의 집회·행진 금지 통고에 제동을 걸며 광화문에서 율곡로로, 내자동 로터리로, 청운동주민센터로, 그리고 현행법상 마지노선인 청와대 앞 100m 부근까지 점차적으로 집회를 허용했다. 그런데 이 변호사는 대체 무엇이 우려스럽다는 것일까?

집회는 누구의 허가를 받아야 할까? 1987년 개정 헌법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헌법 21조 1항)고 밝히고 있다. 동시에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21조 2항)고 못박고 있다. 헌법을 통틀어 ‘허가’라는 단어는 오직 21조 2항에만 등장한다. 그만큼 헌법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이를 법률로 제한하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다. 현행법이 집회·시위를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운영하는 이유다.

하지만 현실은 사실상 ‘사전에 허용된 집회’만이 가능한 구조다. 이번 촛불집회 가처분소송을 대리해온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의 김선휴 변호사는 “원칙대로 해석하자면 법원은 집회를 허용한 것이 아니다. 부적절하게 집회를 금지통고한 경찰 처분의 집행을 ‘정지’시킨 것이다. 이것이 실질적으로 법원의 허가를 구하는 절차로 오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집회와 시위에 대한 대부분의 오해와 왜곡은 ‘허가제인 듯, 허가제가 아닌, 허가제 같은’ 현실에서 시작된다.

미신고 집회는 불법집회일까?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란 어떤 의미일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서선영 변호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고제도인 결혼제도를 생각하면 쉽다”고 설명한다. 서 변호사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불법 결혼’이 아닌 것처럼, 신고되지 않은 집회가 불법 집회인 것은 아니다. 다만 신고라는 행정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최자는 법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신고의무를 준수하지 않은 집회 주최자에게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고 미신고 집회 자체가 불법인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2012년 “신고는 행정관청에 집회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공공질서의 유지에 협력하도록 하는 데에 의의가 있는 것이지 집회의 허가를 구하는 신청으로 변질되어서는 아니된다. 신고를 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헌법의 보호 범위를 벗어나 개최가 허용되지 않는 집회 내지 시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놨다. 미신고 집회라는 이유로 내려진 경찰의 해산명령에 불응했다고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대법원은 2001년 “신고사항에 미비점이 있었다거나 신고의 범위를 일탈하였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당해 옥외집회 또는 시위 자체를 해산하거나 저지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라고 판결했다.

경찰이 금지 통고한 집회는 금지된 집회다? 촛불집회가 열릴 때마다 경찰은 ‘금지’ 또는 ‘제한’ 통고를 하고 있다. 이에 주최 쪽은 법원의 가처분 결정을 구한 뒤 집회와 행진을 벌이고 있다. 만약 법원 판단을 구하는 과정 없이 집회와 행진을 강행하면 어떻게 될까? 법원의 ‘허용’을 받은 집회는 ‘합법 집회’이고, 그렇지 않은 집회는 ‘불법 집회’일까? 대법원 판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2012년 대법원은 금지통고된 집회를 강행하고 해산명령에 응하지 않아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사전 금지 또는 제한된 집회라고 하더라도 타인의 법익 침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해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은 경우, 사전 금지 또는 제한을 위반해 집회를 한 점을 들어 처벌하는 것 이외에 해산명령에 불응했다고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금지통고라는 경찰의 행정처분을 무시하고 집회를 강행한 주최 쪽을 처벌할 수는 있지만, 경찰이 그 집회 자체를 해산시키거나, 해산명령에 불응한다고 처벌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신고된 집회 시간이 끝나면 해산해야 하나? 어김없이 지난 3일 6차 촛불집회에 대해서도 경찰이 금지·제한 통고를 하면서 꺼내든 이유 중 하나는 “11월26일 집회에서 일부 시위대가 법원이 허용한 오후 5시30분 이후에도 청와대 인근에서 자정 넘어까지 집회를 계속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고되거나 법원이 ‘허용’한 시간을 넘겨 집회를 계속했다고 곧장 불법인 것은 아니며 해산명령의 대상도 아니라는 게 대법원 판례다. 집시법이 정한 해산명령 대상에는 신고된 집회 시간을 넘긴 집회는 포함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이미 1990년 판례에서, 신고된 집회 시간이 지났으니 해산하라는 경찰의 명령에 불응해 기소된 대학생에 대해 “경찰은 법에 정해진 해산 사유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 해산명령을 할 법적 권한이 없고, 주최자의 경우 신고 시간을 어길 경우 처벌조항이 마련돼 있지만 참가자에 대해서는 이를 이유로 처벌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경찰이 내린 해산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집회 신고 기준 - jibhoe singo gijun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주최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3일 오후 종로구 청운동 청와대 앞 100m 경찰 차벽 앞에서 박근혜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유엔은 왜 ‘폭력시위’를 ‘평화적 시위’라고 했을까? ‘평화적 집회’에 대한 해석도 논란거리다. 지난 9월 세월호 1주기 추모집회에 참가했다가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기소된 20대 참가자의 재판이 열렸다. 변호인은 지난 6월 유엔(UN) 인권이사회가 발표한 ‘평화로운 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 대한민국 보고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는 집회·결사의 자유가 광범위하게 침해되는 한국의 현실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검찰 쪽은 “이 보고서는 명백한 폭력집회였던 세월호 1주기 추모집회를 ‘평화집회’라고 전제하고 있다”며 보고서의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

왜 유엔인권이사회는 밧줄로 차벽을 잡아당기고 훼손하는 과격·폭력 시위를 ‘평화로운 집회’라고 규정했을까? 이 보고서가 발표된 제32차 정기 유엔인권이사회를 참관했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평화시위를 판단하는 국제적 기준은 그 집회에 어떤 폭력행위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애초 평화적 목적을 표방하고, 공권력의 과잉진압이 없었다면 평화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집회였다면 평화시위로 봐야 한다”며 “유엔인권이사회 보고서가 세월호 추모집회를 평화시위로 표현한 것은 편향적이어서가 아니라 국제적 기준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황 변호사는 “평화시위를 유도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 만약 차벽이 없었다면 밧줄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폭력집회라 금지되는 것이 아니라 금지되기 때문에 폭력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경찰이 교통 불편이란 터무니없는 이유로 차벽을 치고 행진을 막았을 때 밧줄로 차벽을 당기는 것 이상으로 평화적인 방법이 뭐가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집회·시위는 일정 정도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속성이 있다, 현행법과 판례 역시 이런 집회·시위의 본질적 속성을 인정하고 있다. 현행 집시법은 ‘시위’를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도로, 광장, 공원 등 일반인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威力) 또는 기세(氣勢)를 보여,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制壓)을 가하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이렇게 하는 게 ‘합법 집회’이자 ‘평화 집회’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집회·시위는 일정 정도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으며, 집회·시위의 민주적 기능을 위해 이런 침해를 어느 정도 참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은 2009년 “집회나 시위는 어느 정도의 소음이나 통행의 불편 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부득이한 것이므로 집회나 시위에 참가하지 아니한 일반 국민도 이를 수인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헌법재판소는 2003년 “개인이 집회의 자유를 집단적으로 행사함으로써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일반대중에 대한 불편함이나 법익에 대한 위험은 보호법익과 조화를 이루는 범위 내에서 국가와 제3자에 의하여 수인되어야 한다”고 했다.

경찰의 자의적인 집회 금지에 제동 걸어야 김선휴 변호사는 “지난 한달간 법원이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교통소통을 이유로 집회·시위의 자유가 제한되어서는 안 되고, 집회의 시간, 장소, 방법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쌓인 판례를 나중에 쉽게 뒤집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경찰은 촛불집회에 대한 법원의 일관된 결정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금지통고를 남발했다. 이럴 때마다 법원의 판단을 구해야 한다면, 사실상 법원에 의한 허가제가 되는 셈이다. 김 변호사는 “경찰의 금지통고가 잘못됐다고 법원이 수차례 확인했는데 계속해서 부당한 처분을 할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집시법 11조와 12조에 대한 위헌소송과 법 개정 운동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