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산이 몇 개야? - ulinalaui san-i myeoch gaeya?

1. 갈말읍(葛末邑)

군 중앙부에 위치한 읍. 면적 173.17㎢, 5,001세대, 인구 1만 3,406명으로 남자 6,980명, 여자 6,426명이다(2015년 현재). 읍사무소는 신철원리이다.

본래 철원군 지역으로 갈말면이 되어 상사·동막 등 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7개 리로 개편, 광복 후 공산치하에 있다가 1950년 수복되었다.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민간인이 살기 시작했으며, 1959년지포리가 분리되어 강포리·신철원리로 나뉘었고 토성리가 분리됨과 동시에 지경리가 신설되면서 3개 이가 신설된 셈이다. 1972년 옛 평강군 남면 정연리를 편입, 1979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읍의 동쪽과 서쪽에 넓게 산지가 뻗어 있다. 북동쪽 근북면과 김화읍 경계에는 한탄강이 경계가 되어 흐르다가 하토동·신점동 부근에서는 읍을 남·북으로 나누면서 동송읍의 동쪽 경계와 갈말읍의 서쪽 경계선이 되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른다.

서쪽에는 읍의 경계가 되는 한탄강 연안과 소규모의 지류 연안에 좁은 평야가 발달해 있다. 총면적 중 9.2%가 밭이고, 8.1%가 논, 67.6%가 임야이다. 가구당 경지면적은 2,05㏊로서 도의 1.51㏊보다 높고, 전국의 1.32㏊보다 넓다. 민통선 북방지역의 262㏊ 농경지는 출입영농을 통해 경작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지포리와 군탄리를 중심으로 생산되는 쌀이다. 이 밖에 옥수수·사과·복숭아 등의 생산과 한육우·젖소·돼지의 사육과 양봉도 활발하다. 읍내에는 40개의 제조업체가 있다. 군탄리에 있는 갈말농공단지에는 화공·식품·전자 등의 13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도로는 43번국도가 4차선으로 되어 포천과 김화읍으로 연결되고 이 외에도 지방도와 시·군도가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문혜리에 유명악신도비·유척기행적비, 정연리에 창랑정, 군탄리에 순담, 신철원리에 삼부연폭포, 마그루드장군송덕탑, 군탄리에 육군대장박정희전역비, 강원 감사 이호민(李好敏)의 공을 기리기 위한 익영대(益詠臺), 토성리 고인돌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5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신철원(新鐵原)·지포(芝浦)·강포(江浦)·군탄(軍炭)·문혜(文惠)·내대(內垈)·상사(上絲)·지경(地境)·토성(土城)·정연(亭淵)·동막(東幕) 등 11개 리가 있다.

2. 김화읍(金化邑)

군의 중앙에 위치한 읍. 면적 87.74㎢, 1,282세대, 인구 3,395명으로 남자 1,741명, 여자 1,654명이다(2015년 현재) 읍사무소는 학사리이다.

본래 김화현 지역으로 김화읍내가 되므로 현내면이 되었다가 1895년에 군내면이 되어 상리·중리 등 18개 리를 관할하였다.

고구려시대에는 미여, 신라시대에는 부평군이라 칭하였으며 고려 태조 23년(940) 김화현으로 개칭되고 그 후 동주에 속현되었다가 1908년김화군이 금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금성군을 김화군 내에 합병하여 김화군 김화면으로 개칭되었다.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초북면의 2개 리와 초동면의 3개 리가 통합되었다. 광복 후 공산치하에 있다가 1950년 수복되었다. 1954년 「수복지구 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민간인이 살기 시작했으며, 1963년철원군에 편입되었고, 1973년서면의 청양리와 도창리가 편입되었다.

산지가 많아 평야지역이 넓지 못하고 읍의 중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남대천유역에 농경지가 분포하고 있다. 총면적의 약 70%가 민통선 북방에 위치한 군사작전지역이기 때문에 입주영농과 출입영농을 하고 있다. 출입영농을 통해 287㏊의 논·밭이 경작되고 있다.

총면적의 66.5%가 임야이고, 논이 11.9%, 밭이 13.0%이며, 그 외에는 과수원·목장용지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옥수수·콩 등이며 채소류의 생산이 많다. 또한 한육우·젖소·돼지·개 등의 축산업이 발달하였다. 6개의 제조업체가 있으며 청양리에는 김화농공단지가 있는데 화공·식품·잡화 등의 8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생창리에 유림장군 대건비와 홍명구 충렬비, 저격능선전투전적비, 도창리에 정막금(鄭莫今)열녀문, 운장리에 삼신사지(三申寺址) 석불입상 등이 있다.

도로는 43·47번 국도가 포천시, 56번 국도가 화천군과 연결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3개 교가 있다.

학사(鶴沙)·청양(淸陽)·도창(道昌)·생창(生昌) 등과 주민미거주지역인 읍내(邑內)·암정(巖井)·운장(雲長)·용양(龍楊)·감봉(甘鳳) 등 9개 리가 있다.

3. 동송읍(東松邑)

군의 서중부에 위치한 읍. 면적 128.82㎢, 5,964세대, 인구 1만 5,659명으로 남자 7,958명, 여자 7,701명이다(2015년 현재). 읍사무소는 이평리이다.

본래 철원읍내의 동쪽이 되므로 동변면이라 불리면서 감소·대위 등 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송내면과 통합되어 동변과 송내의 이름을 따서 동송면으로 개명되었다. 광복 후 공산치하에 있다가 1950년 수복되었다.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민간인이 살기 시작했으며, 이 때 어운면의 양지리가 편입되었고, 1980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읍의 남서부에는 금학산(947m)을 비롯한 높은 산지가 있고, 북동부에도 산지가 있다. 읍 동쪽 경계를 따라 한탄강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면서 유역에 넓은 철원평야를 이루고 있다. 이 지역은 경지정리가 잘되어 도내 제1의 기계화 영농지를 이루고 있다. 청정환경에서 재배되는 벼는 ‘철원청결미’로서 상품화되어 소비자들에게 인기 있는 주식품이 되었다.

이 외에 원예농업·축산업도 성하여 채소 생산과 한우·젖소·돼지·닭 등의 사육이 활발하다. 총면적의 37.4%가 논으로 이용되고 밭면적은 12.4%, 임야가 29.1%, 기타는 목장용지·과수원 용지 등으로 이용되어 타 읍·면에 비해 논의 비율이 높음을 알 수 있다. 가구당 경지면적도 가장 넓은 2.92㏊이며, 기계화전업농이 51가구나 되어 군에서 가장 많다. 제조업체는 16개가 있다.

도로는 463번·464번 지방도로가 연천군의 3번 국도와 포천시의 43번 국도와 연결되어 수도권과의 연결 교통이 비교적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장흥리에 고석정·직탕, 승일교, 관우리에 도피안사, 양지리에 칠만암(민통선 북방) 등이 있는데, 이 곳들은 이름 난 관광지로서 관광객이 많다. 이밖에도 오덕리에 황신신도비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이평(二坪)·오덕(五德)·대위(大位)·장흥(長興)·오지(梧池)·상노(上路)·양지(陽地)·이길(二吉) 등과 주민미거주지역인 관우(觀雨)·하갈(下葛)·강산(江山)·중강(中江) 등 12개 리가 있다.

4. 철원읍(鐵原邑)

군의 서부에 위치한 읍. 면적 99.21㎢, 2,225세대, 인구 6,242명으로 남자 3,188명, 여자 3,054명이다(2015년 현재). 읍사무소는 화지리이다.

본래 철원읍내의 서쪽가에 있으므로 서변면이라 하여 관동·궁전 등 16개 리를 관할하였다.

고구려시대부터 철원 또는 모을동비라 칭하였으며 신라말 후삼국이 난립할 때 궁예가 도읍지로 정하고 국호를 태봉이라 정한 곳으로 태종 초에는 서변면이라 칭하였다. 1778년(정조 2) 당시 관동, 빙고, 상동, 중리, 하리, 월음, 환요산, 선창, 율지의 9개 동리였다. 그 후 다시 추령 제98호(1895. 5. 26)에 의거 부제 개편 당시 군, 면 폐합에 따라 관동, 궁전, 중내선, 상포, 화외선, 간촌, 상미요, 사방지, 율지, 리현, 당동, 중리, 하리, 월음, 화전, 천황지의 16개 리동을 관할하다가 1914년 (군, 면 폐합)에 따라 관전(관동+궁전, 내포), 내포 (중내선+상포), 외촌(하외선+간촌), 사요(사방지+상미요), 율리(율지+리현), 중리(가운데 동으로 그대로 둠), 월하(월음+하리), 화지(화전+천황지)의 8개 리로 개편하였으며 부령 제 103호 1931년 4월 1일부로 철원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50년 수복되었으며, 1945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민간인이 살기 시작하였다. 1954년민장면이 편입되었고, 1972년북면의 유정리·홍원리, 내문면의 독검리가 편입되어 읍이 되었다.

읍의 대부분이 철원·평강용암대지의 일부분으로서 철원평야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서쪽으로 흐르는 역곡천을 따라 논·밭의 농경지가 넓게 분포하고 있다. 논이 총면적의 21%, 밭이 26.5%, 과수원이 4.3%, 임야가 35.3%를 차지하고 있다. 1,803㏊의 논과 72㏊의 밭이 있으며, 벼농사가 압도적이다.

한육우·젖소·소의 위탁영농회사가 있다. 한육우·젖소·돼지·사슴·개·닭의 사육도 많고, 양봉에 의한 꿀 생산도 군에서 제일 많다. 광공업의 발달이 미약하다. 총면적의 97.3%가 민통선 북방의 군용지로 이용되기 때문에 입주영농과 출입영농을 병행하고 있다. 관내에는 7개의 제조업체가 있어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전에는 도로교통과 금강산 전철이 경원선에서 분기되는 철도교통의 요지였으나 6·25전쟁 후 대부분 지역이 휴전선에 포함되면서 폐허가 되었다. 그러나 지방도와 시군도가 인접해 있다. 문화유적은 화지리에 충무공 김응하장군 조정비, 철원향교, 포충사(褒忠祠), 애국선열추모비, 관전리에 동주금융조합 건물, 철원감리교회 건물, 철원제2금융조합 건물, 월정리에 철의삼각전망대, 주민 미거주지역인 외촌리에 얼음창고, 독검리에 샘통과 철새도래지 등이 있다. 그리고 홍원리에는 풍천원·어수정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화지(花地)·월하(月下)·대마(大馬)·관전(官田) 등과 주민미거주지역인 사요(四要)·외촌(外村)·율리(栗梨)·내포(內浦)·중(中)·중세(中細)·산명(山明)·가단(加丹)·유정(楡井)·홍원(洪元)·독검(篤檢) 등 15개 리가 있다.

5. 근남면(近南面)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29.22㎢, 981세대, 인구 2,313명으로 남자 1,206명, 여자 1,107명이다(2015년 현재). 면사무소는 육단리이다. 본래 김화군 지역으로 김화읍의 남쪽이 되므로 남면이라 하여 풍동·양지 등 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김화군과 금성군이 통합되자 금성군 남면과 상치되어 금성군의 남면은 원남면으로, 김화군의 남면은 근남면으로 고쳐져 6개 리로 개편되었다. 광복 후 공산치하에 있다가 1950년 수복되었으며,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민간인이 살기 시작하였고, 1963년에 철원군에 편입되었다.

면의 남쪽에 있는 회목현 고개와 복주산 서쪽 기슭에서 시작하는 하천이 북쪽으로 트인 골짜기를 따라 흐른다. 하천양안의 300m 이하의 낮은 평지에 농경지와 취락이 집중해 있다. 면의 북쪽 끝에는 서쪽방향으로 흐르는 남대천이 있는데 사곡리 일대에서 지류들과 합류하면서 넓은 농경지를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는 주로 밭농사가 이루어지며,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이나, 양봉도 활발하다. 총면적 중 밭이 6.6%를 차지하고, 논은 6.4%, 임야가 82.2%를 차지한다. 한육우·젖소·개·닭의 가축사육이 성하고 양봉도 한다. 3개의 제조업체가 있다.

춘천과 김화를 연결하는 56번 국도와 지방도로가 남북으로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으로 잠곡리에 매월대, 사곡리에 충렬사, 김화지구 합동 순의비, 구은사(九隱祠)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육단(六丹)·잠곡(蠶谷)·사곡(沙谷)·마현(馬峴) 등과 주민미거주지역인 풍암(豊巖)·양지(陽地) 등 6개 리가 있다.

6. 근북면(近北面)

군의 북부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24.09㎢, 58세대, 인구 139명으로 남자 72명, 여자 69명이다(2015년 현재). 본래 김화군 지역으로 김화읍 북쪽 첫머리가 되므로 초북면이라 하여 금곡·신촌 등 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북면의 지갑·사등 등 20개 리가 합쳐져 금곡·백덕·유곡·율목·두촌·성암·건천·산현 등 8개 리로 개편하였다. 광복 후 공산치하에 있다가 1950년 수복되었으며,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민간인이 살기 시작하였고, 1963년철원군에 편입되었다. 인근 김화읍사무소가 근북면 주민의 행정을 관리하고 있다.

동쪽에 오성산·성재산(471m) 등이 솟아 있고, 서쪽에는 서방산(717m)·왕재봉(608m)이 있다. 북쪽 방향에서 한탄강이 면 서쪽 경계를 따라 남류하며 관류한다. 한탄강과 그 골짜기에 발달한 넓은 용암대지와 평야는 벼농사지대로 이용된다. 총면적의 32.3%가 밭이며, 14.0%가 논면적, 22.6%가 임야면적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옥수수·콩 등이다.

교통은 춘천·김화읍과 연결되는 5번 국도가 금곡리·백덕리를 지나면서 464번 지방 도로와 만나 김화읍·갈말읍과 연결된다. 또한, 금강산철도가 파괴된 채로 있으며, 유곡리 부근에는 잘 알려진 통일촌이 있다. 특히 동쪽의 오성산은 6·25사변 때의 격전지였으며, 중부전선의 요쇄지이다.

문화유적으로는 유곡리에 성재산성이 있다. 이 산성은 길이 447m, 높이 12m의 석성으로 고려시대에 외침을 막기 위해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곡(楡谷) 등과 주민 미거주지역인 백덕(栢德)·금곡(金谷)·율목(栗木) 등 4개 리가 있다.

7. 서면(西面)

군의 중앙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74.28㎢, 2,586세대, 인구 6,565명으로 남자 3,366명, 여자 3,199명이다(2015년 현재). 면사무소는 자등리이다.

본래 김화군 지역으로 김화읍내의 서쪽이 되므로 서면이라 하여 수유·밀계 등 1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초북면의 험석 등 3개 리가 편입되면서 와수 등 4개 리로 개편되어 면을 이루었다. 광복 후 공산치하에 있다가 1950년 수복되었으며,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민간인이 살기 시작하였고, 1962년철원군에 편입되었으며, 1973년청양리와 도창리가 김화읍에 이관되었다.

한탄강의 지류인 작은 하천이 면의 남쪽 광덕산(1,046m) 북서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면의 한 중앙의 북쪽으로 흐르다가 김화읍 학포리에서 남대천과 합류하여 한탄강으로 흐른다. 작은 하천연안 및 남대천과, 북류하는 면의 지류가 합류되는 면의 북쪽 와수리 일대에 평지의 농경지가 분포할 뿐 대부분 지역이 높은 산지지형이다.

총면적 중 논이 6.9%, 밭이 5.9%, 임야가 79.8%이고, 기타는 과수원과 목장용지로 이용되 있다. 가구당 경지면적은 0.72㏊로서 전국과 강원도의 평균치 보다 작은 규모이다. 그러나 다른 읍·면과 마찬가지로 경운기·트랙터·이앙기·콤바인·바인더 등 농기계로 농사를 짓고, 기계화 전업농이 9가구나 된다. 그 외 한육우·젖소·돼지·개·닭 등의 가축사육이 활발하다. 제조업체수는 4개이다.

도로는 면의 중앙을 남북방향으로 포천과 김화를 연결하는 47번 포장국도가 통과하고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며, 자등리와 와수리에는 지방도로가 47번 국도와 연결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2개 교가 있다.

자등(自等)·와수(瓦水) 등 2개 리가 있다.

8. 근동면(近東面)

면적 20.38㎢, 주민미거주지역이다. 1945년 해방과 함께 38선을 기점으로 남북으로 나뉘면서 금성이 이북지역에 속하게 돼 공산치하에 들어갔으나 1950년 수복시 국군의 북진에 따라 김화군 일부지역에 수복되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조인되면서 금화군 13개 읍면 중 근남, 서면 등 2개면 전역이 수복된 채 근동면 일부 지역은 수복되고, 일부지역은 완충지대로 일부지역은 이북지역에 위치해 있다. 법정리로 광삼리와 방통리가 있다.

9. 원남면(遠南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81.26㎢. 주민 미거주지역이다. 본래 금성군 지역으로 금성읍내의 남쪽이 되므로 남면이라 하여 하고개·봉화동 등 3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김화군에 편입되었고, 1950년 수복되었으며, 1962년철원군에 편입되었다.

면의 중앙을 동서방향으로 지나는 휴전선을 경계로 남부지역은 높은 산지를 이루며 적근산·삼천봉(815m) 등의 높은 산이 있다. 다른 지역과 이 면을 연결하는 주파령(注坡嶺)·중치령(中峙嶺)·주라치·수동령(水東嶺)·승암고개 등이 있다. 특히 적근산은 휴전선 남방한계선에서 남쪽으로 2㎞ 떨어진 곳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금성천 본류가 원동면과의 경계를 따라 남동류하며 금성천의 지류로서 북서부에서 북동류하는 하천, 남부에서 북류하는 하천, 중앙을 지나는 하천 등이 있다. 이들 금성천의 본류와 지류의 양안에만 좁고 긴 농경지가 발달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산간지역에서는 기장·조·옥수수 등의 생산과 임산물의 생산이 많다.

교통은 산간 오지로서 불편한 편이며, 화천군 상서면 산양리에서 이 면의 주파리를 지나 원동면 세현리를 연결하는 도로가 있다.

주민 미거주지역인 개야(開野)·경상(慶祥)·죽대(竹垈)·백양(白楊)·남둔(南屯)·월봉(月峰)·풍동(楓洞)·주파(注坡)·구룡(九龍)·노동(盧洞)·진현(榛峴) 등 11개 리가 있다.

10. 원동면(遠東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7.53㎢. 주민 미거주지역이다. 본래 금성군 지역으로 금성읍내의 동쪽이 되므로 동면이라 하여 상방평·중방평 등 2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김화군에 편입되면서 원동면이 되었다. 1945년 광복 후 38선 북쪽이어서 북한지역이 되었다가 1950년 수복되었고, 1953년 면의 중앙에 휴전선이 지나게 되어 민간인이 살지 않게 되었다. 1962년철원군에 편입되었다.

면의 동북부와 남부는 높은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백암산·교암산·흑운토령(黑雲吐嶺, 851m) 등의 높은 산이 있다. 북한강의 지류인 금성천(金城川)이 면의 서부 북쪽에서 남류하다가 중서부지역의 세현리 부근에서 원남면에서 흘러오는 금성천의 지류들과 합쳐 큰 하천을 이루어 동류하여 북한강 본류에 합류한다.

금성천의 지류를 따라 그 주변지역이 주요한 논농사지역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옥수수·조 등이며, 그 밖에도 각종 임산물이 풍부하다.

교통은 내륙 오지에 위치하고 있어 대단히 불편한데, 원남면 주파리 후동(後洞)마을에서 이 면의 송실리의 용호동마을에 이르는 도로가 유일한 교통로이다. 주민 미거주지역인 등대(登大)·송실(松實)·용연(龍淵)·세현(細峴) 등 4개 리가 있다.

11. 임남면(任南面)

군의 동단에 위치한 면. 면적 22.61㎢. 주민 미거주지역이다. 면의 대부분이 미수복지역이며 면의 남부 일부지역만 수복되었으나 휴전선 남방한계선이 통과해 민간인이 거주할 수 없다.

면의 북서부와 남동부 지역은 높은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면의 경계를 따라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 남북방향으로 길게 뻗은 면의 북동부와 남서부의 경계지역에는 북한강이 흐르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조·콩·옥수수 등이며, 삼림에서 임산물과 산나물이 많이 산출된다.

교통은 산악지대인 관계로 불편한 편이다. 주민미거주지역인 달전(達田)·과호(科湖)·좌패(佐佩) 등 3개 리가 있다.

서울 산 몇개?

위 기준에 부합되고, 가지 못한 을 합쳐 서울의 산은 116개로 결론을 내려본다. (단, '지역 경계'라는 의 역할로 어떤 산은 다른 지역의 산이 될 수 있기도 한다) 보통 보는 서울 개수(140~150개)에 비해 그 수가 대폭 줄어들었다.

일본 산 몇개?

일본은 섬나라이지만 나라이기도 하다. 남북으로 긴 일본열도에는 각지방마다 특색 있는 산들이 있다. 일본의 상징이자 최고봉인 후지산(富士山․ 3776m)을 비롯해2700m이상의 산은 90개에 달한다.

우리나라산은 몇개?

지형학계, 산악단체 전문가의 검토를 거쳐 우리나라 산이 모두 4440개로 조사됐다고 13일 밝혔다. 지역별(도)로는 경북이 680개로 가장 많았고, 경남 635개, 전남 568개, 강원도 517개, 경기도 463개, 충남 440개 등의 순이었으며, 제주도는 55개로 가장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