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품/교환 방법
맞춰야할 숫자를 알게 되어 저조했던 사기가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역시 2대 길드의 협동력, 통솔력은 대단하다. 치료 중인 멤버들이 빠져있는데도 그것을 보충하는 포메이션으로 재빨리 보스를 둘러싸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ーー. 색깔이 아닌 숫자를 맞추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울 것이다. 6개 면을 전부 맞출 필요가 없고 촉수가 나오지 않은 발광하는 면의 9개 숫자만 맞추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 번 때릴 때마다 3개의 숫자가 한꺼번에 움직인다. 어느 면에 어떤 숫자가 있는지를 파악하고 몇 수 앞을 내다봄 때려야만 한다. 전투 시작으로부터 3분이 지났지만, 내가 염려했던 것처럼 숫자 배열을 거의 바뀌지 않았다. 첫 4개까지는 순조롭게 맞추었는데, 이제부터는 하나를 움직이면 한 쪽이 안 맞는 전개가 계속돼 키바오나 린드의 목소리에도 초조함이 섞이기 시작했다. 아무렇게나 감으로 때리다보면 언젠가 맞춰지겠지만, 긴 팔이 자라난 보스의 공격도 만만치 않다. 아까까지 있었던 레이저에다가 팔을 가로세로로 내리치는 물리공격이 멤버들의 HP를 착실하게 깎아간다. 다시 한 번 전선으로 뛰어들까, 근데 이래서 여섯 파티의 연계를 무너뜨리면 어쩌지……하고 내가 주저하고 있자. “……좋아, 외웠어” 옆에서 중얼거린 아스나가 재빨리 나를 보았다. “키리토 군, 나는 지시에 집중할 테니까 보스는 맡겨도 돼?” “어……응, 당연하지” 서로 끄덕이며 동시에 바닥을 찼다. 보스의 앞면으로 뛰어든 아스나가 오른손의 레이피어를 위로 들며 외쳤다. “아래쪽 블록을 오른쪽으로 쳐!” “오……오케이!” 곧바로 대답한 것은 DKB의 하프너다. 양손검을 높게 들어올리고 보스 오른쪽으로 돌아들어가 가로로 베었다. 여전히 데미지는 들어가지 않지만, 아스나의 지시대로 아래쪽 블록이 구궁! 하고 오른쪽으로 회전했다. “다음은 왼쪽 블록을 아래로!” “오케이!” ALS의 오코탄이 반응하며 핼버드를 한 번 번쩍였다. 왼쪽 블록이 아래로 회전한다. 여기서 이레이셔널 큐브가 무언가를 느낀 것처럼 금속질의 불협화음을 내었다. 작은 큐브가 이어진 촉수를 두 개 동시에 들어올려, 아스나를 향해 내리쳤다. 나는 곧바로 뛰어들어 소드스킬 《버티컬 아크》를 발동. 내리찍기와 들어올리기 2연격으로 촉수를 튕겨냈다. 등뒤의 아스나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숫자에만 집중한 아스나의 지시는 무서울 정도로 정확했다. 블록이 회전할 때마다 목표 배열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보스도 그것을 알아챈 것인지, 전혀 공격에 참여하지 않은 아스나를 집중적으로 노리기 시작했다. 촉수는 소드스킬로 튕겨냈지만 레이저는 그러기 힘들다. 조준선이 내려올 때마다 아스나를 안고 점프하지만 시간차 공격이나 물리공격과 콤보를 이루면 힘들어진다. 레이드 멤버들도 안절부절 못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어그로를 끌기 위해 보스를 때리면 기껏 맞춰놓은 배열이 망가지고, 아스나를 여러 명이서 보호하면 보스가 보이지 않게 된다. 몇 번이고 레이저를 백점프로 피한 내 등이 딱딱한 평면에 부딪혔다. 어느새 벽까지 다다른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을 겨눈 2개의 촉수가 좌우에서 들어왔다. 한 쪽은 요격할 수 있지만 다른 한 쪽은 어렵다ーー. “키리토 씨, 이쪽은 제가!” 그 목소리가 들린 순간, 나는 “부탁해!”라고 외쳤고 왼쪽에서 다가오는 촉수에 의식을 집중시켰다. 《호리존탈》로 튕겨낸 뒤 오른쪽을 보자, 돌진기 한 방으로 촉수를 튕겨내는 세아노의 등이 보였다. ーー일당백! 머릿속으로 그렇게 외치고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그 순간에도 아스나는 지시를 계속했고, 공략조의 용자가 과감하게 큐브를 돌려갔다. 가끔씩 틀리기도 했지만 그럴 때는 바로 전 단계로 돌아가면 된다. 데미지 없는 맹공격이 20번 째에 다다랐을 때. “다음이 마지막이야! 중앙 블록을 아래로!” 아스나의 늠름한 목소리에, “맡겨줘!” “맡겨라!” 린드와 키바오가 동시에 대답했다. 둘 다 상대방에게 양보할 마음 따위는 조금도 없다는 듯이 좌우에서 돌진해 가운데 블록을 곡도와 직검으로 동시에 쳤다. ーー엉뚱한 짓 하지마, 린키바! 라고 외치려 했지만, 두 사람의 칼솜씨는 완벽했다. 가운데 열이 구궁……하고 회전해 3, 5, 7 배열을 보여주었다. 그 순간, 앞면에 배열된 9개의 숫자가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밝게 빛났다. “맞췄다아아ーー!!” 라는 누군가의 외침, 그마저도 집어삼킬 정도로 큰 소리가 울려퍼졌고ーー이레이셔널 큐브의 무적 갑옷을 이루던 26개의 정육면체와 3개의 촉수가 산산이 부서졌다. 엄청난 양의 파편이 공기에 녹아 사라지자, 안쪽에서 나타난 것은 한 변 60cm의 검은 정육면체였다. 이쪽을 향한 면에 훨씬 작은 정육면체……세아노가 가져온 황금 큐브가 쏙 들어가 잇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다음 순간, 검은 큐브에서 똑같이 검은 6개의 촉수가 길게 자라났다. 깅깅, 하는 거슬리는 고주파를 내며 긴 촉수를 꿈틀거렸다. “여기부터가 진짜데이! 성급하지 말고, 우선 패턴 확인부터다!” 키바오의 목소리에 ALS뿐만 아니라 DKB 멤버까지 “오케이!”라고 대답하다. 확실히 격전ーー이긴 했지만 무적 갑옷을 잃은 이레이셔널 큐브는 정예 공략조, 그리고 무엇보다도 레벨 32의 어머니 검사 세아노의 맹공에 버틸 수 있을 정도의 방어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고작 한 단밖에 없는 HP바는 착실히 줄어갔고, 5할, 3할……그리고 1할 남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7분. 이제 한 방이면 끝난다, 라고 모든 사람이 확신하고 있던 그때였다. 이레이셔널 큐브가 임종과도 같은 불협화음을 내뿜으며, 6개의 촉수를 마구 휘두르고 8개의 꼭짓점에서 8개의 조준선을 겨냥했다. “광란 공격이다! 버텨!” 린드의 지시에 모두 준비 자세를 취했다. 그 뒤, 촉수를 모두 튕겨내고 레이저를 모두 피해ーー그리고 6층 플로어 보스는 마치 배터리가 나간 것처럼 바닥으로 쿵 떨어지더니 움직이지 않았다. 끝난 건가……생각했지만 HP바가 끈질기게도 아직 1도트 남아있다. “뭐……뭐여!? 자폭이라도 하는 거냐!?” 큰 소리로 외친 키바오와 정확히 같은 생각을 나도 하고 있었다. 낙하지점 근처에 있던 레이드 멤버들이 재빨리 물러났고, 폭발에 대비했다.. 하지만ーー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칠흑의 정육면체는 황금 큐브를 우리들 쪽으로 향한 채,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아르고가 무언가 말했었지. 갑자기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큐브가 들어간 구멍 안쪽에도 무언가가……. 그때였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와 정육면체를 향해 달렸다. 분명 폭발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라스트 어택 보너스를 따러 간 것이다. 장비는 은색과 푸른색……DKB 멤버다. 나중에 린드에게 혼나겠지만 어찌됐든 길었던 전투도 끝ーーー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