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역사 유적지 - jejudo yeogsa yujeogji

안보면 후회되는 제주도 역사 유적지(1)

삼서석

안보면 후회하는 제주도 역사 유적지를 살펴보기 하겠습니다.

제주도에는 역사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제주도 역사 유적지로 꼭 가봐야 할 곳 몇 곳을 추천 합니다.

삼서석-두모악

지방기념물 제 34호로 지정되어 있는 '삼사석'은

제주시 화북동 1380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삼사석은 탐라의 시조인

, , 3신인 벽랑국의 3공주를 맞이하여 배필로 정하고 활을 쏘아 거처할 터전을 정할 때

그 화살이 꽂혔던 돌이며 지금도 화살 맞은 흔적인 남아있다고 합니다.

삼서석-두모악

이를 시사석 이라고도 하며 화북동 주민들은 이곳을 살쏜디왓이라 합니다.

삼사석은 직경55cm내외의 현무암 2개로 되어있고 이를 보호하는 석실은 높이가 149cm 앞너비가 101cm

옆너비가 67cm의 규모인데, 이곳에는 김정 목사가 세운 삼사석비가 있으며

지금의 석실은 1870(고종7)에 중건된 것입니다.

삼서석-두모악

혼인지

지방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는 혼인지는

 남제주군 성산읍 온평리 1693번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혼인지-두모악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삼성혈에서 솟아난 고,, 3신인이 벽랑국의 3공주를 맞이하여

 혼례를 치르기 위해 목욕재계를 했다는 연못입니다.

혼인지-두모악

중심 너비 50m 면적인 5백여 평이 되는 혼인지는

 그 남쪽에 혼이지라 음각되어 있는 자연석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당시 세공주가 나무 상자에 모셔진 채 발견된 곳이 속칭쾌성개이며

도착한 해안을 황루알이라고 합니다.

혼인지-두모악

향파두리 항몽유적지

지방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되어 있는

 항몽 유적지는 북제주군 애월읍 고성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시대에 삼별초가 웅거하여 최후까지 몽고에 항전하던 곳입니다.

항몽유적지비-두모악

삼별초는 1270(고려 원종11)몽고의 침입으로 고려가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맺은 후,

강화도를 포기하고 개경으로 환도를 강행하자 삼별초의 주동 세력이

이에 불복하여 왕족인 승화 후 온을 임금으로

추대하고 항몽전을 결의 했습니다.

항몽유적지산성둘레-두모악

 이리하여 천여 척의 선박에 병사와 군량미

가족들을 싣고 그 해 8월 전라도 진도로 옮기어 용장성을 구축하고 무력으로

 여, 몽군에 항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듬해 고려.몽고 연합군의 총공격을 받은 삼별초는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진도가 함락되면서 삼별초의 장수 배중손 등

중요 인물들이 전사하고 승화 후 온도 피살되고 말았습니다.

항몽유적지산성둘레-두모악

진도에서 대패한 삼별초는 김통정 장군이

 총수가 되어 잔여병력을 인솔하고 제주도로 들어옵니다.

 이에 앞서 1270 9월 고려 조정에서는 영암부사 김수와 장군 고여림을

제주도로 파견하여 삼별초의 입도에 대비하도록 하였습니다.

삼별초의 여몽투쟁-두모악

 그러나 같은 해 11월 제주도를

 그들의 세력권으로 확보하기 위해 들어온 삼별초의 별장

이문경과의 싸움에서 그들은 전사하였습니다.

삼별초의 여몽투쟁유적 항파두리-두모악 

이리하여 제주도는 삼별초의 수중에 들어갔으며 진도에서 패한 김통정이

상륙하여 항파두리에 15리에 달하는 토성과 내성을 쌓고

궁궐, 관야 및 기타 방어시설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삼별초의 여몽투쟁경로-두모악

그리고 제주도를 근거로 하여 약 2년여 동안 한반도의

연해고을을 기습 공격하여 많은 피해와 타격을 주는 작전을 전개해나갔습니다.

이 때문에 당황한 고려 조정에서는 1273년 김방경 장군가 몽고의 원수 흔도를 총수로 하여

13천여 명의 고려.몽고 연합군을 편성하여 함덕포와 명월포로 상륙하여

삼별초를 좌우로 공격하였습니다.

삼별초의 여몽투쟁유적-두모악

이때 삼별초는 성이 함락되고 김통정은

70여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성을 탈출하여 한라산 중턱 붉은오름으로 피신했다가

자결함으로써 삼별초의 항쟁은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삼별초의 여몽투쟁유적-두모악

지금도 항파두리 토성일대에는 삼별초와

관련된 유물. 유적들이 남아있습니다. 15리에 해당하는 토성과

삼별초 용사들이 궁술연마 대 과녁으로 사용했다는

살 맞은 돌’, 여몽 연합군과의 격전장이었던

 파군봉성안 건물의 초석이었던 돌쩌귀’,

삼별초의 여몽투쟁유적 파군봉-두모악

 ’장수물’, ’옹성물’, ’구시물등이 그것입니다.

삼별초의 여몽투쟁유적-두모악

이외에도 모개남밭, 옥터, 창고, 와굴 등의 터가 이제는

지명이 되어 전해 오고 있습니다.

삼별초의 피신로-두모악

지금의 항파두성은 1977년에 복원한 것으로

면적이 9천여 평에 달하며 경내에는

'항몽순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삼별초 캐릭터 퍼즐-두모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