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책임 비판 - gieob-ui sahoejeog chaeg-im bipan

기업이 국가 사회의 생산 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수행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학술적으로는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이 있는 건지,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 경영진의 배임 행위가 아닌지,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면 기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사회 전체적으로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 수행을 요구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등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오늘 글에서는 이런 논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광의의 사회적 책임 vs. 협의의 사회적 책임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논쟁할 때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적 책임을 의미하는지를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좁은 의미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말할 때는 기업의 법적 책임, 윤리적 책임, 경제적 책임을 제외하고, 기업이 사회의 발전과 정의 구현을 위해 추가적으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부를 한다거나 봉사를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캐럴이 말한 기업의 사회적 기대 중에서 기업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지만 이해관계자들이 기업이 하면 좋다고 기대하는 재량적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말하는 CSR 활동은 주로 협의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기 위한 활동을 의미합니다. 넓은 의미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말할 때는 협의의 사회적 책임뿐만 아니라 법적 책임, 윤리적 책임, 경제적 책임까지 포함시킵니다.

광의의 사회적 책임을 논의한다면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수행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법을 지킴으로써 법적 책임을 져야 하고, 사회의 윤리적 기준을 충족시켜 윤리적 책임도 져야 합니다. 경제적 책임은 기업이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본연의 책임이고 이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생존과 성장이 불가능하니 당연히 경제적 책임도 집니다. 따라서 광의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반면에 협의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협의의 사회적 책임에 국한하여 논쟁점을 정리하겠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용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기업을 계약 집합체(Nexus of Contracts)로 보는 대리인 이론가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용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Jensen과 Meckling(1976)이 대표적인 논문입니다. 기업은 실체가 없는 법적 허상(Legal Fiction)이기 때문에 기업은 계약 상대방에게 계약을 이행할 책임을 지지만 사회와는 계약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을 질 것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들은 기업의 목적 함수라는 용어 자체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기업과 계약을 한 주체들이 각자 자기 이익을 추구할 뿐 이윤 극대화 혹은 기업가치 극대화 같은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밀턴 프리드먼(1970)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합니다. 책임은 궁극적으로 자연인만이 질 수 있고, 경영진은 기업의 주인이 주주들에게만 책임이 있지, 일반 사회에 대한 책임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이 주인으로 자신의 시간, 돈을 사회를 위해 쓰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이런 것은 개인이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대다수의 학자들은 기업은 실체가 있고, 단일의 목적도 있고, 행동 주체이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기업은 근로자가 바뀌고 주주가 바뀌고 소비자가 바뀌어도 계속 존속할 수 있기 때문에 조직 참가자들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라고 봅니다. 기업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비록 서로 다른 개인적인 목적으로 기업에 참여하지만, 그들의 서로 다른 목적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기업의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기업의 경쟁력을 키워 생존을 지속하고 성장을 하면 모든 참여자들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기업은 법인으로 인격을 부여받은 주체이고, 따라서 국가 사회에서 기업에게 법적 책임을 묻고, 사회 구성원들도 기업으로 하여금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기 때문에 기업은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에 대한 거액 기부 등은 경영진의 배임 행위이다?

기업의 주인을 주주로 보는 주주 중심주의(Stockholderism)에서는 기업의 자금으로 외부에 기부하는 활동은 그것이 기업 가치 증진으로 연결되지 않는 한 경영진의 배임 행위라고 봅니다.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라는 임무를 받은 경영진이 그 임무를 배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하지 않은 경영진이 자신이 졸업한 학교,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 단체 등에 거액을 기부하는 것은 다른 주주들의 돈을 훔쳐 외부에 가져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입니다. 물론 기업에게 기부한 금액 이상의 혜택이 있다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업에 참가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기업의 주인으로 보는 이해관계자 중심주의(Stakeholderism)에서는 경영자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해관계를 균형적으로 반영하여 경영하는 청지기(Steward)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서도 기업의 가치 증진으로 연결되지 않는 사회 일반에 대한 기부 활동을 배임행위라고 봅니다. 이해관계자들에게 나누어주거나 이해관계자들의 미래 효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외부에 가져다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밀턴 프리드먼은 기업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가격을 올리는 것이 최선인데 물가가 오르는 것을 걱정해서 가격을 올리지 않는 것, 사회에서 요구하지 않는데도 필요 이상으로 환경오염물질 배출을 줄이기 위해 비용을 쓰는 것,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해 자격이 있는 근로자 대신 일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처럼 사회 일반의 이익을 위해 비용을 쓰는 것은 경영진이 남의 돈을 쓰는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남의 돈으로 인심을 쓴다는 것이지요. 그럴 돈이 있으면 주주, 소비자, 근로자들에게 그 돈을 나누어주고 그들이 사회공헌활동에 쓸지 말지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런 행동은 이해관계자들에게 세금을 거둬서 자기가 원하는 곳에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핵심은 해당 사회공헌활동이 기업 가치 증진에 도움이 되는가, 아닌가입니다. 그래서 미국 기업들은 자신들이 하는 사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기업의 이름으로 기부하지만, 사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들은 개인의 이름으로 하지요. 미국의 야구 경기장이나 미식축구 경기장 중에는 기업의 이름이 붙은 곳이 많습니다. 광고 효과가 크기 때문에 기업의 돈을 내도 무방하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단과 대학 이름 혹은 건물 이름으로 기부자의 이름을 붙인 곳은 많지만 기업의 이름이 붙은 곳을 필자는 보지 못했습니다. 기업 돈이 아닌 자기 개인 돈을 기부한 것입니다. 기업 명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와는 상당히 다르지요.

CSR 활동이 기업의 가치를 높인다?

CSR 활동이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지, 낮추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습니다. 밀턴 프리드먼이나 마이클 젠슨 같은 경제학자들은 CSR 활동에 대한 재량적 지출은 기업의 비용을 불필요하게 높이기 때문에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경영전략의 구루라고 하는 마이클 포터 등은 CSR 활동이 기업의 평판을 높여 잠재적인 근로자, 소비자, 협력업체 등과 좋은 조건에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우위의 원천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조건이 동일하면 좋은 평판을 쌓은 기업의 근로자가 되고 싶어 하고, 협력업체가 되고 싶어 하고, 소비자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CSR 활동에 대한 기대가 높은데 그것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면 나쁜 평판이 쌓이는 것은 확실합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다국적 기업들이 우리나라에서 많은 돈을 벌어가는데 우리나라에 기부하는 금액이 쥐꼬리만하다는 비난을 받습니다. 그로 인해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사용하던 사람들이 사용을 그만두는 경우는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안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국내에서 소송이 걸리거나 정부가 규제를 만들 때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대한 국민들의 원성이 높으면 그런 회사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2008년에 중국 쓰촨 성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해서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복구와 피해자 보상을 위해 성금을 냈습니다. 어떤 기업이 얼마의 성금을 냈는지가 인터넷에 공개되었습니다. 중국에서 사업을 크게 하는데 성금을 내지 않은 다국적 기업들의 이름이 공개되면서 불매운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모 재벌기업도 그 명단에 포함된 적이 있었지요. 이런 기업들이 다급하게 성금을 내긴 했지만 평판에 큰 흠집이 난 것을 모두 복구할 수는 없었습니다.

문제는 CSR 활동에 쓸 돈을 경쟁력 강화를 위한 활동에 투자했을 때보다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하는가입니다. 만약에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해준다면 CSR 활동을 많이 하는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경제적 성과가 좋을 것입니다. 실증분석 논문들은 일관된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 기업을 대상으로 해서 실증 분석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개별 기업의 CSR 활동에 대한 투자를 연구자가 무작위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통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이 CSR 활동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인과관계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다른 방법은 사회책임투자(Socially Responsible Investing, SRI)를 하는 펀드들의 수익률을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지 않는 펀드들의 수익률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책임을 열심히 수행하는 기업들만을 골라서 투자하는 펀드들이 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면서 1980년대부터 이런 펀드들이 만들어졌고, 그 숫자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SRI 펀드와 일반 펀드의 수익률을 비교하는 실증연구들도 일관된 결과를 보여주고 있지는 못합니다. 수익률에 별 차이가 없다는 논문도 있고, SRI 펀드들의 수익률이 더 높다는 연구도 있고, 더 낮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Barnett & Salomon(2006)은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기업을 고를 때 아주 관대하게 고르거나 아주 까다롭게 고르는 SRI 펀드는 높은 수익률을 내고 어중간한 기준을 적용하는 SRI 펀드들의 수익률이 낮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용 평등이나 환경보호를 강조하는 펀드들의 수익률은 낮고, 지역사회관계를 강조하는 펀드들의 수익률이 높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업이 CSR 활동을 위해 자금을 쓰는 것은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나쁜 것이다?

기업이 성장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을 CSR 활동을 위해 쓰는 것이 사회 전체에 해가 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기업이 CSR 활동을 위해 쓸 자금을 성장을 위해 재투자하는 것이 사회 전체를 위해 좋다는 것입니다. 성장을 위해 재투자하면 일자리가 창출되고, 부가가치가 창출됩니다. 이익이 더 많이 나면 세금도 더 많이 냅니다. 그 세금으로 정부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쓸 수 있습니다. 간접적으로 사회를 위해 공헌하는 것입니다.

기업은 사회적 문제 해결 전문가가 아닙니다. 경제적 가치 창출에 전문화된 기관입니다. 사회적 분업의 논리에 맞게 기업은 경제적 가치 창출에 집중하고, 사회적 문제의 해결은 전문성이 높은 정부 기관에게 맡기는 것이 사회 전체의 발전과 정의 구현을 위해 더 좋다는 주장입니다.

기업이 직접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금을 쓰면 정의롭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거대 기업과 연줄을 가진 기관이나 개인만 이익을 본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삼권 분립이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기업이 CSR 활동을 할 때는 기업이 입법부, 행정부, 사업부의 역할을 동시에 합니다.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해관계자 중에서 누구에게 덜 주고, 누구에게 더 많이 줄지를 자의적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공정성이나 정의 구현에서 정부보다 더 잘하기가 어렵습니다.

결론: 권력 기관에서 기업에게 CSR 활동을 강압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경영진이 자신의 사적 목적으로 기부활동을 하지 않고 기업 가치 증진을 위해 CSR 활동을 할 경우에는 기업 가치를 높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양한 CSR 활동 중에서 기업 가치를 높이는 CSR 활동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CSR 활동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높은 상황에서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으면 기업의 평판이 나빠지기 때문에 기업 가치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앙정부나 지자체들이 기업에 대한 권력을 바탕으로 기부를 강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가적인 행사를 할 때 돈을 대라거나 해당 지역 개발 사업을 위해 돈을 대라는 요구가 많습니다. 기업을 유치할 때는 환영하지만 준공 허가를 내줄 때는 온갖 이유를 들어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한 기부금을 내라고 요구합니다. 해당 기업에 스테이크를 걸고 있는 이해관계자들의 돈을 훔쳐다가 사회를 위해 내라고 요구하는, 배임을 하라고 강압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기업의 재투자 여력을 줄여 사회 전체의 발전과 정의 구현을 저해합니다. 중앙정부나 지자체들이 해야 할 일은 세금을 거두어 하는 것이 사회 전체를 위해 좋습니다.

정부에서 기업들을 가만히 놔둬도 기업들은 본연의 활동을 하면서 발전과 정의 구현에 기여합니다. 본연의 활동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두는 것이 더 좋습니다. 가만히 두어도 해당 사회 구성원들이 절실하게 요구하는 사회공헌활동을 수행합니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면 해당 기업의 사회적 정당성이 크게 훼손되기 때문입니다. 개별 기업이 잘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영역에서 사회공헌활동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좋습니다.

<참고 문헌>

Barnett, Michael L., and Robert M. Salomon. "Beyond dichotomy: The curvilinear relationship between social responsibility and financial performance." Strategic management journal 27.11 (2006): 1101-1122.

Jensen, Michael C., and William H. Meckling. "Theory of the firm: Managerial behavior, agency costs and ownership structure." 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 3.4 (1976): 305-360.

Friedman, Milton. "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increase its profits." Corporate ethics and corporate governance. Springer, Berlin, Heidelberg, 2007. 173-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