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이 독립운동을 한 이유 - yugwansun-i doglib-undong-eul han iyu

3.1운동 100주년: '여성독립운동가, 유관순 외에 아는 분 있나요?'

  • 김효정
  • BBC 코리아

2019년 3월 1일

유관순이 독립운동을 한 이유 - yugwansun-i doglib-undong-eul han iyu

사진 출처, 이윤옥

사진 설명,

이육사 시인의 친척으로 의열단 활동을 하며 항일운동을 한 이병희 지사(왼쪽) 그리고 이윤옥 소장

"강단에 서면 학생들에게 남녀 독립 운동가들을 써보라고 합니다. 유관순을 빼고 쓰라고 하면 여성 독립 운동가들은 단 한 줄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10년이 넘게 상황은 그대롭니다."

지난 21일 만난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은 우리에게 잊혀진 수많은 '유관순'들이 있다며 운을 뗐다.

이 소장은 20여 년 넘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삶을 알려왔다.

이 소장은 지난 10년 동안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발굴해 매해 '서간도에 들꽃 피다(전 10권)'라는 전기적 시집도 펴냈다.

특히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올해엔 10번째 책을 펴내며 총 200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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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던 그가 여성 독립운동자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시기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소장은 일본어 전공자로 일본에 연구원으로 있던 당시 2.8 독립선언에 참여한 여성들의 이름을 우연히 보게 됐다.

그 이후 관심이 생겨 자료를 더 찾아보려고 했지만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삶이 담긴 자료를 찾기는 어려웠다.

이 소장은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 들어 대중을 위해 묻혀 있는 분들의 삶을 소개하는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 설명,

20년 넘게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발굴해 온 이윤옥 소장

같은 운동해도 성별에 따라 서훈 시기 달라

올해 2월 기준,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1만5180명 중 여성은 357명, 즉 4% 정도에 불과하다.

이유를 묻자 그는 과거 남성 중심의 보훈 정책을 지적하며 "같은 활동을 했어도 남성은 빨리 서훈을 받았지만 여성은 그렇지 못했다"고 했다.

온 식구가 독립군 운동의 뛰어든 오희옥 지사 가족이 대표적인 예다.

"똑같은 업적을 남겼지만 아버지 오광선 지사는 1962년에 서훈을 받고 어머니 정현숙 지사는 33년 뒤인 1995년이 되어서야 인정을 받았어요. 따님 오희옥 지사도 90년대 넘어와서 독립유공자로 선정됐고요."

이 소장은 여성은 남성들의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해주는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오늘날과 다르게 '남녀 구분 없이' 뛰어들고 독려했던 것이 독립운동이었다.

여학교를 포함해 학교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펼쳐졌고, 여공들은 인권 유린 현장과 일제의 탄압에 맞섰다.

해녀들은 일제 착취에 맞서 조합을 결성하고 노동운동을 독립운동과 연결시켰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모은 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내놓은 여성 노동자들도 모두 독립투사들이었다.

임신한 몸으로 평남도청에 폭탄을 던진 안경신, 의병대장으로 활동한 윤희순, 장개석이 '한 명의 한국 여인이 1000명의 중국장병보다 우수하다'고 칭찬한 여성 광복군 1호 신정숙 등 손에 무기를 든 여성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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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장은 한 사람 한 사람 독립 운동가들의 삶을 추적할 때마다 현장을 찾는다. 국내를 비롯해 간도, 만주, 하와이 등 해외 지역도 가리지 않았다.

직접 기록을 찾고, 어렵사리 수소문해 후손들을 만나 증언을 듣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여정이 녹록하지는 않았다. 홀로 공들여 집필했지만 인기 없는 주제라는 이유로 출판사들은 등을 돌렸다. 결국 자비로 출간해야 했다.

이 소장은 "재정적인 문제가 가장 힘들었다. 계속 이 작업을 하고 있다 보니 주변 사람 중에는 '아직도 그러고 있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럴 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생존해있는 독립운동가들의 눈빛.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맙다'며 감격해 하는 이들을 보며 이 소장은 이 작업을 끝낼 수 없었다고 했다.

북한의 유관순, 동풍신 열사

그렇다면 3.1절 100주년을 맞은 올해, 이 소장이 사람들에게 가장 알리고 싶은 여성 독립운동가는 누구일까.

그는 한 명만 말하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북한의 유관순'으로 불리는 동풍신을 꼽았다.

동풍신은 17살이던 1919년 함경북도 명천 화대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이끌었다가 1921년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한 인물이다.

이 소장은 동풍신 열사에 대한 기록은 거의 전무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를 외친 유관순 열사 논문은 150여 편이고 각종 책도 많습니다. 하지만 동풍신을 다룬 논문은 한 편도 없고 남아있는 내용을 정리해봤자 A4 반장밖에 되지 않아요."

사진 출처, 항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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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 8번방에는 유관순 외에도 노순경 등 여러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 영화 '항거'의 한 장면

이 소장은 서대문 형무소 8번 방에는 유관순 외에도 노순경 등 여러 여성독립운동가가 있었던 사실도 기억하자고 했다.

이 말을 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먼 후대 사람들이 자신과 함께했던 형무소 동지를 기억하지 않고 있다면...유관순 열사 역시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있을 거예요."

여성독립운동가 공부하는 일본인

그는 일부 양심 있는 일본인들이 여성 독립운동가들에게 오히려 더 큰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한때 일본 고려 박물관에서 강의 요청을 받고 현장에 갔던 이 소장은 눈을 의심할 정도로 놀란 적이 있다고 했다.

50여 명도 채 모이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170여 명이 자리에 앉아 있던 것.

이 소장이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을 보여주니 바로 이름을 말했던 일본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1년 넘게 조선 여성독립운동가들 관련해서 공부해온 이들이었다.

사진 출처, 이윤옥

사진 설명,

여성독립운동가 강연을 듣고 조선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글을 남긴 일본인들

이윤옥 소장은 앞으로 펼쳐질 100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에게도 눈을 돌리자고 독려했다.

"제가 책 제목에 '들꽃'이란 표현을 쓴 이유를 아시나요? 들꽃처럼 드러나진 않았지만 끈질기게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을 기리기 위해섭니다. 부디 이름만이라도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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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특집기사 [그날의 함성을 기억합니다] 연재 시리즈

  1. 우리가 잘 몰랐던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2015.2.25)
  2. 3.1절, 한용운 말고 백초월 스님도 있습니다 (2015.2.26)
  3. 3월에는 ’3.1절 역사나들이’ 어떠세요? (2015.2.27)
[그날의 함성을 기억합니다] (4) 3.1절, 우리가 다시 유관순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2015년은 광복 7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광복의 기쁨을 맞기 위해 우리 민족은 수많은 고난에도 끊임없이 독립을 위한 운동을 해 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1919년 3월 1일에 있었던 독립 만세 운동, 즉 3.1절은 대표적 사례입니다.광복 70주년인 올해 3월 1일은 제96주년 3.1절이기도 합니다.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일제의 총부리 앞에서도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었던 그 날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한자리에 모여 함께 만세를 외칠 수 있었을까요?

이메일도 문자도 보낼 수 없었고, 심지어 전화조차도 귀한 상황에서 3.1운동은 날짜, 장소, 시간 그리고 구체적인 퍼포먼스까지 은밀히 공유되어 수개월간 전국적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일제의 위협과 해산명령을 피하면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또 대규모로 벌어졌던 3.1운동은 우리 민족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한민국 최초의 ‘플래시몹’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전국방방곡곡 울려 퍼지던 그 날의 함성 안에는 꽃다운 10대 소녀도 서 있었습니다. 3.1 운동하면 우리가 제일 먼저 떠올리는 그 분, 유관순 열사입니다. 일제의 고문에 한 송이의 짓밟힌 꽃처럼 아스러져 간, 유관순 열사의 넋이 올해 3.1절을 맞아 시청을 찾아왔습니다.

서울시는 3.1절을 맞아 서울도서관 외벽에 유관순 열사의 사진과 유언을 담은 대형 통천을 설치합니다. 통천에 담긴 유관순 열사의 모습은 3.1운동 이후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어 찍은 사진입니다. 수감번호 371번이 선명히 찍힌 수의를 입고 계십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얼굴이 부어 있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는데요, 당시 심한 구타와 고문으로 얼굴이 퉁퉁 부어 있어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원래는 가냘픈 얼굴이었지만, 구타로 인해 얼굴이 부은 것입니다.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극심한 고문과 구타를 겪은 유관순 열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입니다. 유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메시지 속에는 일제의 악랄한 고문보다, 나라 잃은 고통이 더 크다는 한 소녀의 절절한 슬픔이 묻어 있습니다. 이처럼 유관순 열사가 순국한 서대문 형무소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조국의 광복을 부르짖다 심한 구타와 고문으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 우리가 형무소를 가봐야 하는 이유)

마지막 순간까지 독립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놓지 않았던 유관순 열사의 유언과 사진은 3월 한 달 동안 시민들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서울 광장을 지나는 많은 시민들이 3.1절의 역사적 의미를 되돌아보고 나라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청 곳곳에서 펼쳐지는 3.1절 행사 및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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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청사 외벽에는 ‘시민의 가슴 속에 그날의 함성이 있습니다’라는 문안과 함께 젊은 세대들이 태극기를 들고 뛰쳐나오는 모습의 트릭아트 랩핑과 포토존이 3월 한 달 간 설치돼 시민과 관광객을 맞이할 예정입니다.
과거 독립운동 당시 유관순 열사가 가진 독립만세 정신을 현 세대가 이어 받아 계승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서울신청사를 뚫고 나오는 이 시대 서울 시민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3.1절을 전후로 시민청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당시 상황을 되새겨 볼 수 있는 태극기 만들기, 뮤지컬 갈라퍼포먼스, 구연동화 ,음악 공연 등이 지난 26일부터 시작돼 3월 7일 토요일까지 펼쳐집니다.

3.1절 기념, 시민청 주요 행사 일정
구분 손도장 태극기 전시 태극기 바르게 그리기 체험 대형 태극기 미디어 월 구연동화
기간 3. 1(일)~7(토) 3.1(일)12~18시 3. 1(일)~7(토) 3.1(일), 1시/3시
장소 시민플라자 시민플라자 담벼락 미디어 서울책방

3.1절 당일에는 ‘어린이 대상 태극기 바르게 그리기 체험 교육’이 12시부터 18시까지 시민플라자에서, 유관순 열사의 독립운동기를 주제로 한 ‘구연동화’가 서울책방에서 1시, 3시에 두 번 진행됩니다. 또, 4시부터 활짝라운지에서 펼쳐지는 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뮤지컬 갈라 퍼포먼스’도 3.1절의 열기를 뜨겁게 지피게 됩니다.

시민들이 직접 손도장을 찍어 만든 ‘손도장 대형태극기’는 3월 1일부터 7일까지 일주일 간 시민청 시민플라자에서 전시됩니다. 시민청 담벼락 미디어에서 운영하는 ‘대형 태극기 미디어 월’도 같은 기간인 3월 첫 주 동안 시민들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가족, 친구와 함께 시청에 들르면, 먼 곳에 가지 않아도 3.1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는 의미 있는 해입니다. 3.1 독립운동의 숭고한 희생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서울시가 준비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일 년에 한 번 찾아오는 3.1절의 역사적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고, 유관순 열사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계기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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