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작 영화 흥행 - soseol wonjag yeonghwa heunghaeng

크리스티 ‘나일강의 죽음’-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
영화 ‘나일강…’-‘드라이브…’ 개봉후 판매량 5~10배 껑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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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국내에 출간된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나일강의 죽음’(황금가지·왼쪽 사진)과 동명의 영화. 배우 케네스 브래나가 연출 및 주연을 맡았다. 황금가지·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국내에 번역 출간된 지 오래된 외국 원작들이 영화 흥행에 힘입어 뒤늦게 빛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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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나일강의 죽음’(1937년)은 ‘오리엔트 특급 살인’(1934년)이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1939년)에 비해 그동안 국내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소설은 신혼부부가 탄 나일강의 호화 여객선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그렸다. 이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9일 개봉 후 엿새 동안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서 소설도 주목받고 있다. 21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2013년 ‘애거사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황금가지)에 묶여 출간된 소설은 월간 기준으로 판매량이 약 500권 수준에서 영화 개봉을 전후해 5000권가량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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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문학동네·왼쪽 사진)과 이를 원작으로 제작된 일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문학동네·트리플픽쳐스 제공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원작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문학동네·2014년)도 영화 덕을 봤다. 소설은 갑작스레 아내와 사별한 남자가 여성 운전사를 만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는 지난해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 이어 올해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이에 힘입어 지난달 22일 기준 원작 소설의 한 달 판매량은 직전에 비해 약 5배로 늘었다. 중국 소설가 옌롄커의 대표작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웅진지식하우스·2005년)도 23일 동명의 영화 개봉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달 셋째 주 알라딘 소설·시·희곡 부문 14위에 올랐다. 소설은 중국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사단장 아내와 젊은 사병의 불륜을 통해 마오쩌둥 이념을 풍자했다.

이 밖에 다른 소설 원작 영화들도 개봉을 앞두고 있어 출판계가 마케팅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주연의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은 2018년 국내에 출간된 데이비드 그랜의 ‘플라워 문’(프시케의숲)이 원작이다. 1920년대 미국 중남부에서 벌어진 인디언 살인사건을 다룬 논픽션이다. 봉준호 감독의 ‘미키7’(가제)도 에드워드 애슈턴의 공상과학(SF) 소설 ‘미키7(Mickey 7)’을 원작으로 제작됐다. 국내에 아직 출간되지 않은 이 책은 복제인간이 다른 복제인간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김재희 기자

입력2022.01.31 08:00 수정2022.01.31 08:00

SF 고전부터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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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고전부터 유명 추리 소설 작가의 베스트셀러까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잇달아 관객을 만난다.

다음 달 9일 아이맥스(IMAX) 재개봉을 앞둔 SF 영화 '듄'은 1965년 처음 나온 프랭크 허버트의 대하소설이 원작이다.

'듄'은 SF 문학계 최고 권위를 가진 네뷸러상과 휴고상을 동시에 받은 첫 번째 작품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SF 단행본'으로 기록된 이 책은 국내에서도 지난해 2월 20년 만에 양장본으로 새로 출간됐다.

6권 시리즈의 분량은 4천300여 쪽에 달한다.

순위권 밖에 머물던 책은 지난해 11월 영화 개봉 이후 흥행에 힘입어 영화 내용에 해당하는 1권이 베스트셀러 순위 3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10대 때 원작 소설을 처음 읽었고 "오랜 시간 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동반자이자 경전"이라며 "영화는 원작에 보내는 연서"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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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개봉하는 '나일강의 죽음'은 추리 소설의 전설로 꼽히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동명 소설(1937)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행복한 신혼부부를 태운 초호화 여객선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탑승객 모두가 용의자로 의심받는 가운데 탐정 포와로의 탐문으로 용의자들의 비밀과 반전이 드러난다.

크리스티의 또 다른 대표작 '오리엔트 특급 살인'(1934)을 동명 영화(2017)로 만들었던 케네스 브래너 감독이 다시 한번 연출과 주연인 탐정 에르큘 프와로를 맡았다.

'원더우먼' 갈 가도트가 상속녀 리넷을,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로 얼굴을 알린 에마 매키가 친구인 리넷에게 약혼자를 빼앗긴 재클린을 연기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나일강의 죽음'은 모두 크리스티가 중동 지역을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썼고, 1970년대에 당대 최고의 배우들로 영화화된 바 있다
브래너 감독은 "몇몇 캐릭터를 좀 더 강화해 작은 변화를 주고, 영화적인 표현을 위해 요소들을 합치기도 했다"며 "크리스티가 추구하는 정신은 유지하면서도 원작보다는 더 현대적이고 세련된 스타일로 영화화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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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23일 개봉하는 장철수 감독의 신작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중국 반체제 작가 옌롄커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에로티시즘으로 문화대혁명을 풍자하고 마오쩌둥 정치 이념과 사회주의 오류를 비판한 소설은 마오이즘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마오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2005년 출간 즉시 금서로 지정됐다.

국내에서는 2019년 개정판이 새로 나왔다.

장 감독은 "원작은 단순히 야한 작품이 아니라 남녀 간의 모든 감정이 나오는 소설"이라며 "인간의 다양한 욕망과 심리만 가지고 두 시간 이상의 영화를 끌고 가고 싶었다"고 밝혔다.

현재 상영 중인 일본 영화 '인어가 잠든 집'은 유명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아카데미 수상이 예상되는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다.

조진웅과 최우식이 주연한 범죄 드라마 '경관의 피'도 일본 작가인 사사키 조의 소설이 바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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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그 원작을 다시 찾는 독자들이 증가합니다. 이미 출간된 소설이 영화화되어 개봉된 후 다시 주목받게 될 때, 영화(screen)와 베스트셀러(best seller)의 합성어인 스크린셀러(screen seller)라고 일컫죠. 출판계와 영화계 모두 스크린셀러 도서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얻고 있어, 소설을 토대로 한 영화가 꾸준히 제작되고 있습니다. 특히 올 하반기에는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 등 소설 원작의 영화들이 줄지어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작된 영화는 원작의 매력을 스크린에 얼마나 충실하게 옮겼는가 혹은 소설을 어떻게 재해석했는가 하는 것이 흥행의 관건이 될 텐데요. 오늘은 독서의 계절을 맞이하여 스크린셀러 도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한국소설의 힘

공지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사진: 예스24 / 다음영화

공지영 작가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강동원, 이나영 주연의 영화로 인해 더욱 많은 사랑을 받게 된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소설의 높은 인기로 인해 영화제작을 하게 되었고, 역으로 영화가 흥행하면서 소설이 다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등 소설과 영화는 서로가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는데요. 

영화는 사형 제도에 반대하는 원작소설의 모티브를 그대로 따오긴 했지만, 사형수 정윤수(강동원)와 교화원 문유정(이나영)의 변화 과정에 더욱 초점을 맞춰 연출되었습니다. 당시 영화가 흥행하면서 원작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무려 120쇄를 찍게 되었고, 개봉 전보다 두 배 이상의 판매 속도를 보이며 10주 이상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고전의 재해석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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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예스24 / 다음영화

개츠비의 꿈과 사랑 그리고 욕망을 그린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이미 여러 차례 영화화된 바 있습니다. 그만큼 전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고전인데요. 지난 2013년 다시 한번 화려하게 스크린에서 부활했습니다. <물랑루즈>의 바즈 루어만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만나 이전 작품들을 뛰어넘는 매혹적인 영화를 탄생시켜 많은 호평을 얻었죠. 다다를 수 없는 꿈을 원했던 개츠비의 쓸쓸한 초상을 아찔하면서도 화려하게 그려 원작만큼이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영화 흥행과 더불어 많은 번역본이 출간되면서 <위대한 개츠비>는 다시금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사진: 예스24 / 다음영화

장발장 역을 맡았던 휴 잭맨을 비롯해 앤 해서웨이, 아만다 사이프리드, 러셀 크로우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쟁쟁한 헐리웃 스타들이 캐스팅되어 화제를 모았던 영화 ‘레미제라블’은 2012년 개봉 당시 6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영화의 인기는 원작 소설의 관심으로 이어졌는데요.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의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 이야기로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방대한 분량 때문에 원작을 모두 읽은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원작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이 늘면서 판매 부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고 하는데요. 원작 소설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죠.

 상상 속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재현

앤디 위어 <마션>

사진: 예스24 / 다음영화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 ‘마션’은 화성에서 조난한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앤디 위어의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요. 영화의 흥행은 원작의 인기로 이어졌습니다. 영화 개봉 전후를 비교한 결과, 개봉 이후 동명 원작 소설의 판매가 개봉 전보다 237.9%나 증가했다고 하는데요. ‘아무래도 X 됐다’라는 유쾌한 첫 문장으로 화제가 되기도 한 소설 <마션>은 영화보다 10배는 재미있다는 평을 얻으며 개봉 후 더욱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습니다. 

 2017년 스크린셀러 기대작

김영하 <살인자의기억법>

사진: 예스24 / 다음영화

요즘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는 곧 개봉을 앞둔 ‘살인자의 기억법’입니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지는 이 영화는 ‘용의자’, ‘세븐데이즈’, ‘구타유발자들’을 연출한 원신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고 하는데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체와 속도감 있는 전개로 유명한 원작을 어떻게 재해석했을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기대로 인해 원작 소설의 판매 부수가 급증했는데요. 이미 지난 2013년 출간 첫 주 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한 <살인자의 기억법>이 또다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이죠. 출간 당시부터 영화계의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은 화제의 소설이 어떻게 스크린으로 옮겨졌을지 기대됩니다. 

김훈 <남한산성>

사진: 예스24 / 다음영화

영화 ‘남한산성’도 곧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남한산성’은 인조 14년 병자호란 당시, 청의 공격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임금과 조정 신하들이 남한산성으로 숨어든 뒤 벌어지는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70만 부의 판매량를 올린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죠. 2007년 발행 후,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소설 <남한산성>은 올해 출판된 지 10년을 맞은 동시에 100쇄를 찍은 스테디셀러이기도 한데요. 

‘도가니’, ‘수상한 그녀’를 연출한 황동혁 감독의 첫 사극 도전 작으로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고수, 박희순 등 연기파 배우들이 만나 더욱더 기대되는 가운데, ‘왕의 남자’, ‘광해, 왕이 된 남자’, ‘명량’의 뒤를 이어 또 한 번 천만 관객을 이끄는 사극 영화가 탄생할지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정유정 <7년의밤>

사진: 예스24 / 다음영화

정유정 작가를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어준 작품 <7년의 밤>도 영화로 개봉됩니다. 한국문단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스케일과 디테일한 묘사가 매력적인 이 소설은 우발적으로 한 소녀를 차로 치어 죽인 뒤 죄책감으로 미쳐가는 사내와 그 사내에게 사적 복수를 감행하려는 소녀의 아버지 이야기입니다. 

소설의 인기만큼이나 영화에 대한 관심 또한 높습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천만 관객 돌풍을 일으켰던 추창민 감독이 연출을 맡고, 장동건과 류승룡이 캐스팅되면서 제작 전부터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소설만큼 영화 또한 그럴 수 있을까요? 

소설을 각색하여 만들어지는 영화는 원작의 감동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 작품의 본래 의도를 훼손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낳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비롯하여 웹툰, 만화 등 기존 콘텐츠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에 대한 관심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는데요. 마침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니 재미있게 본 영화의 원작을 찾아 독서 삼매경에 빠져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