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힐튼호텔 철거 - seoul hilteunhotel cheolgeo

[시사이슈 찬반토론] 현대 한국 건축의 걸작, 서울 힐튼호텔이 철거된다는데…

허원순 기자 입력 2022.04.18 10:00
수정 2022.04.18 10:00 생글생글 750호

서울 힐튼호텔 철거 - seoul hilteunhotel cheolgeo

서울 남산 기슭에 밀레니엄힐튼이라는 멋진 고층 건물이 있다. 서울역 주변에 속속 들어선 고층 건물로 가려지긴 했지만 한때 이 일대 랜드마크 구실도 했다. 세계적 힐튼 체인의 5성급 고급 호텔이다. 멋진 행사장과 다양한 고급 식당이 있어 내부도 멋지다. 39년 된 이 현대식 건물은 미국에서 활동해온 저명한 건축가인 김종성 씨가 설계한 것이어서 더 유명해졌다. 이 건물이 철거 상황에 놓이면서 보존을 주장·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물론 재산권을 행사하는 소유주는 분명히 있다. 처음 대우그룹 소유에서 지금은 특정 자산운용사 것이 됐다. ‘보존 호소 그룹’도 문화적·건축사적 가치에 주목할 뿐, 당장 소유권을 침해하려는 것은 아니다. 효율성을 높이도록 재개발하느냐, 최대한 존치하느냐로 건설업계 논쟁이 뜨겁다. 철거 외 대안은 없을까. [찬성] 더 멋진 건물 세우면 새 명소 가능 1조원 투자자 의지 중요김우중 전 대우그룹 창업자의 제안으로 건설된 힐튼호텔의 건축사적 가치는 분명 있다. ‘근대 건축의 거장’ 미스 반데어로에에게 건축을 배웠고, 그의 사무실에서 근무한 유일한 한국인 제자인 김종성 건축가(87)가 설계한 멋진 현대식 건물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건축물의 수명이 다했다. 낡은 측면이 있는 데다 기능 자체가 뒤떨어졌다. 콘크리트 철골 건물은 100년 이상 가지만, 기능과 용도는 바뀔 수밖에 없다.

여러 손을 거쳐 지금은 국내 부동산펀드 운용회사인 이지스자산운용 소유다. 1999년 싱가포르 부동산 투자회사가 사들였다가 2004년 밀레니엄힐튼호텔로 재출발했지만 경영난도 겪었다. 이 건물을 사들인 자산운용사는 무려 1조원을 투자했다. 투자자 수익 기대에 맞춰야 한다. 재개발도 못하는 건물에 1조원을 투자해 발이 묶이면 투자자 손해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당초 계획한 대로 재건축·재개발을 할 수 없게 되면 부동산펀드 등 자산운용업계는 침체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재개발을 통한 진화’라는 도시의 발달 모델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재건축이라고 무조건 경계할 필요는 없다. 더 높이, 더 멋지게, 현대감각이 한층 우러나는 건물을 세우면 된다. 소유주도 그럴 계획에서 1조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한 것이다. 투자에 따른 개발 이익을 누리고, 현대식 설계와 빼어난 첨단 공법으로 더 멋진 21세기형 랜드마크 빌딩을 서울 강북 도심 인근에 올리면 새로운 관광명소를 창출하는 일이 된다. ‘보존 논리’에 따라 남겨온 청계천의 오래된 세운상가와 그 주변이 지금 어떤 모습인가. ‘한국 근대사의 발전 현장’이라지만 너무 누추하고 지저분해 사람들의 통행이 끊겨버린 도심의 공동화 지역으로 전락한 것 아닌가. 가장 중요한 것은 소유권자의 개발 의지다. 사적 소유에 대해 주변에서 이러쿵저러쿵 설익은 자기 이상을 내세우며 재활용 계획에 과도하게 참견해선 안 된다. [반대] 한국의 대표적 현대 문화유산 가능하면 보존해 '스토리' 만들어가야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헐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건물이다. 서울의 대표적 현대 건축물이라는 점, 설계자의 명성, 대우그룹의 흥망사가 담긴 기업 애환의 현장 등 의미와 스토리가 많이 있는 하나의 ‘작품’이다. 더구나 호텔은 건축사적 측면으로 볼 때 수많은 국가에서 근대화 현대의 상징물이었다. 이런 건물을 최대한 남겨야 수도 서울에도 문화와 스토리가 축적된다. 그렇게 외국인을 유치하고 한국인도 현대 문화의 자긍심을 키워갈 수 있다.

많은 국민의 기억과 추억에 남아 있는 이 건물은 구조적으로나 용도로도 빼어난 수작이다. 화려한 중앙 홀과 여러 부대시설의 공간은 완성도 차원에서 다시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게 많은 건축 전문가의 지적이다. 실제로 설계자가 지을 때도 수익을 더 내려 하기보다 멋과 철학을 담은 것으로 유명하다. 미래로 나아가도 이런 건물은 문화유산이라는 인식에서 보전할 가치가 있다. 그나마도 근래에 중수한 몇몇 고궁을 빼면 서울에 문화적 가치와 역사성을 가진 구조물이 얼마나 있나. 잘 지키고 가꾸며 미래 세대에 유산으로 남길 만한 건물이다.

물론 주인이 분명히 있는 사적 소유물이라는 점을 부인할 순 없다. 손해를 보면서까지 적자가 계속되는 고급 호텔로 무조건 유지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그렇다 해도 ‘전면 철거, 전면 재시공’으로 가기에는 너무 아까운 건물이다. 단순히 건축물 하나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한 단면이, 서울의 소중한 문화 공간 하나가 사라진다는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일반인은 건축 전문가와 달리 밀레니엄힐튼호텔의 진짜 가치를 모를 수 있다. 더 높고 더 편리한 새 건물이라고 반드시 좋다는 보장도 없다.

건물 내부의 리노베이션 같은 것도 적극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조금 더 보존하면서 사고의 유연성을 발휘해 호텔 외 수익을 더 낼 수 있는 상업적 건물로 용도 변경을 생각해보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 생각하기 - 도시 진화 과정서 '보존 vs 개발' 충돌…'자발적 존치' 유도 어려울까‘보존 논리’와 ‘개발 논리’는 도시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대의 갈등 테마다. 역사·문화적 관점에서 이전 시대의 유산을 최대한 보존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서울 힐튼호텔 철거 - seoul hilteunhotel cheolgeo

반면 효율·편리를 따지는 관점에서 새롭게 개발하자는 목소리도 커진다. 세계적으로 오랜 도시들이 대개 구도심(old city)을 보호하면서 신도심 개발을 병행하는 식으로 발전해왔다. 서울도 그렇다. 한국건축가협회 등이 토론회까지 연 것을 보면 힐튼호텔의 가치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1조원을 투자한 자산운용사가 더 멋진 공간을 창출하겠다는 의지도 중요하다. 서울시가 용도변경 같은 부분서 우대해주면서 건물의 자발적 존치를 유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어떤 경우든 사적 소유권의 존중이라는 큰 틀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 그래야 어떻게든 도시가 진화할 수 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입력2022.04.12 17:29 수정2022.04.13 00:19 지면A31

서울 힐튼호텔 철거 - seoul hilteunhotel cheolgeo

서울 남산의 힐튼호텔 철거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힐튼호텔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건축가 김종성 씨에게 설계를 맡겨 1983년 말 개장했다. 외환위기로 1999년 싱가포르 회사에 넘어간 뒤 밀레니엄힐튼호텔로 재출범했지만, 수익성 악화로 지난해 이지스자산운용에 팔렸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이 건물을 헐고 2027년까지 오피스·호텔 등 복합시설을 건립할 계획이다.

논란의 핵심은 “현대 건축자산을 허물지 말자”와 “민간 시설 보존을 강요하는 건 옳지 않다”로 요약된다. 한쪽에서는 “힐튼호텔이 한국 현대건축의 아이콘이자 수준 높은 디테일과 완성도를 지닌 건물이므로 보존하자”고 주장한다.

다른 쪽에선 “현대 건축을 지키려는 시도는 의미 있는 일이지만 층고가 낮아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어려운 데다 민간기업에 적자 운영과 건물 보존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상업용 건물의 가치와 활용도를 높이면서 재산권도 보호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설계자인 김종성 건축가는 최근 토론회에서 “건물 수명은 오래 갈 수 있지만 기능과 용도는 바뀌게 마련”이라며 “기존 아트리움(건물 내 중앙 공간)은 살리고 640실을 200실로 바꾸는 등 이윤도 창출하고 건축 정신도 살리는 윈윈전략을 찾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곳의 허용 용적률은 600%여서 현재(350%)보다 활용할 여지가 많다.

돌이켜보면 건축가 김수근의 유작인 서울 강남 르네상스호텔은 29년 만에 철거된 뒤 초대형 복합건물 센터필드로 재탄생했다. 조선팰리스호텔이 들어서면서 더 유명해졌다. 김수근의 다른 작품인 한국일보 옛 사옥도 재개발됐다. 남산 타워호텔 또한 40년 만에 ‘반얀트리 서울’로 리모델링됐다.

도심 건물은 건축적 가치뿐만 아니라 도시개발계획, 미래 위상 등과 연계돼 있다. 그런 점에서 힐튼호텔 자리는 인근 서울역과 남산을 아우르는 입지, 도시정비지구 활용, 랜드마크 역할, 외국 관광객 유치 등 활용 가능성이 매우 크다.

반면 옛 서울역 건물은 활용도를 살리지 못해 박제된 기념관으로 전락했다. 도쿄역 건물이 호텔, 주변 상권과 함께 재생돼 활기를 띠는 것과 대조적이다. 공공문화재조차 이런데 민간 건축물은 더 그렇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이런 청사진을 갖고 김종성 건축가와 머리를 맞대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스럽다.

고두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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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완공 직후의 힐튼호텔. 북동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건물 몸체가 남산의 전면을 가리고 있다. 서울건축 제공

시민들은 잘 모른다. 서울역에 내리면, ‘거대한 짐승 같은 대우빌딩’(신경숙 작가의 <외딴방>)과 그 바로 뒤에서 남산을 성채나 장벽처럼 가로막고 육박해오는 검은빛 호텔의 역사를. 지은 지 39년밖에 안 된 미니멀한 이미지의 이 23층 호텔이 왜 길이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라고 요즘 일부 건축인이 목소리를 높이는지를. 600년 역사의 한양도성 바로 앞을 깎아내며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군사작전처럼 진행한 도시 미화 사업의 랜드마크가 된 건물이란 사실도.

한국 현대건축계 큰 어른인 김종성(87) 원로건축가가 1979년부터 설계해 1983년 완공한 서울 남산 앞 ‘밀레니엄 힐튼 서울 호텔’(힐튼호텔)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최근 상황은 복잡하고 착잡하다. 원래 옛 대우그룹 계열사 호텔이었다가 1999년 외환위기 사태로 싱가포르 부동산 투자사로 운영권이 넘어갔다. 지난해 말 한 자산운용사에 매각된 뒤 용적률을 높여 새 오피스 빌딩을 짓기 위해 철거·재건축 방안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일부 건축인들이 호텔을 지키자며 보존 논의를 펼치고 있다. 김 건축가의 출신 학교이자 그의 제자들이 포진한 서울대 건축학과 출신 인사들이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힐튼호텔이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모더니즘 건축 거장의 가장 뛰어난 역작이자 세계 현대건축 수준에 걸맞은 국내 선구적 고층 건축물이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지난해 말부터 일부 언론과 건축지 <공간> 등에 관련 기획기사와 김 건축가의 인터뷰가 나왔고, 지난 4월엔 건축계 인사들이 힐튼호텔의 미래를 놓고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

서울 힐튼호텔 철거 - seoul hilteunhotel cheolgeo

1979년 서울 힐튼호텔(현 밀레니엄 힐튼 서울)의 건축 현장. 건물의 기본 뼈대를 막 올린 모습이다. 그 옆에 서울 남대문교회가 보인다. 서울역사아카이브

그렇다면 힐튼호텔이 정말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문화유산급 건물인가? 4월 심포지엄에서 여러 건축인이 역설했듯 모더니즘 건축 미학이나 건축 사조 측면에서 당대 국내 어느 건축물보다도 서구 사조에 가깝게 진일보한 성취를 보였다는 데 별다른 이론이 없다. 70~80년대 한국 건축계의 실질적인 지상목표가 서구 현대건축 수준에 근접하는 것이었음을 고려하면, 김 건축가 말대로 90% 이상 원래 구상을 실현한 이 호텔은 명작 반열에 오를 만하다. 층고가 높고 널찍한 아트리움을 갖춘 저층 로비는 기능성과 물이 흘러내리는 듯한 공간 구성이 돋보이는 명품 공간으로 꼽힌다. 그가 20세기 모더니즘 마천루 건축의 대가 중 하나인 미스 반데어로에의 직제자란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도 호텔 보존 논의가 시민들에게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는 단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건물 터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부러 외면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터의 역사성을 무시하고 들어선 건물이라는 치명적 사실을 안고 있다는 뜻이다. 바로 옆이 한양 도성 성곽이고 도성 관련 유적들이 흩어져 있던 곳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이런 도성 유적의 안위를 무시하고 박 대통령의 대구사범학교 스승이던 김용하의 아들 김우중 대우그룹 총수에게 특혜로 불하해준 땅의 일부다. 도성의 경관이나 남산 조망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서울을 대표하는 국제 수준 호텔을 지어 외화벌이를 해야 한다는 목표 아래 남산 중턱 가까운 곳에 거대한 전망 빌딩으로 지었다는 것이 역사적 진실에 가깝다. 터에 살던 빈민들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뒤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소탕에 가까운 재개발 정비 사업으로 상처와 한을 품고 사라져갔다. 이런 비극적 공간 역사가 있는데도 이를 쏙 빼놓고 건축물의 디자인적 가치와 건축 미학 예찬에만 쏠린 것이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요인이다.

한양 도성과 남산의 역사 경관은 적어도 80년대까지 도시계획가나 위정자는 물론 학계에서도 별반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그러다 90년대 중반 조선총독부 철거 논란이 본격화하면서 남산을 비롯한 도시 경관과 터의 장소성 문제가 부각됐다. 건축계에선 80~90년대 관제건축물이나 기념비적 건축 사업을 하청받듯이 하는 관행이 만연했던 시기였기에 무한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하지만 관점과 시대가 바뀐 지금 과거 역사 경관을 파괴하고 지어진 건축물의 과거사와 장소성에 대한 논의 없이 건축의 명품성만 논의하려는 자세는 사려 깊지 못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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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심야에 촬영한 서울 남산 밀레니엄 힐튼 서울 호텔의 정면 풍경. 노형석 기자

사실 김 건축가는 90년대 경희궁 앞 들머리에 편법을 동원해 궁을 가로막은 차폐물처럼 지은 서울역사박물관을 설계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년 전 목천김정식문화재단 구술자료집이나 언론에 남긴 여러 증언을 보더라도 힐튼호텔은 물론 서울역사박물관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땅과 유적에 남긴 허물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은 찾기 힘들다.

힐튼호텔을 인수한 투자사가 철거 뒤 용적률을 높여 수익성 위주의 새 건물을 짓는다면 남산 경관 보존과 관련해 더욱 큰 논란과 갈등을 빚을 소지가 크다. 철거 뒤 더 큰 괴물로 들어설 가능성이 높은 새 건물과 문화유산 경관의 상충 문제도 함께 고민하는 혜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마냥 선배 대가의 건축물 보존만 부르짖는다면, 건축인들이 그렇게도 강조한 대중과의 소통이나 교감의 길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노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