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할때만 연락하는 사람 - pil-yohalttaeman yeonlaghaneun salam

가설이 하나 있다. 나 혼자 덩그러니 남은 단톡방을 발견하고, 소원해진 관계에 소심하게 혼자 속상해하다가 직접 만든 가설이다.

원래는 뛰어다니며 사냥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앉아서 컴퓨터만 하고 있으니 건강이 나빠진다는 어디 의료기관의 연구 논문처럼, 원래 부족 하나 만큼의 인원만 알고 지내면 되는 사람들이 현대에 들어서 너무 많은 커뮤니케이션 요구에 직면하고, 그 부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게 그 내용이다. 제목은 ‘과도한 인간관계 속 현대인’ 정도로 정했다. 가설을 증명하는 과정은 거치지 못했지만, 뭐 어떤가? 스스로 만족스러워서 나는 믿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이‘과도한 인간관계 속 현대인’의 주장을 이용해서‘지가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친구’를 변호해보려 한다. ‘인생에서 멀리해야 할 친구 유형 10가지’ 같은 글에는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친구가 빠지는 일이 없다. 물론 얄미운 친구는 맞지만, 당신을 무시하는 언행을 일삼는 친구나 폭력을 휘두르는 친구 등과 동일한 취급을 당하는 건 너무나도 가혹하다.

필요할 때만 연락한다는 건, 평소에는 물론이고 명절이나 생일, 크리스마스에 연락 한 통 없고, 당신의 도움이 필요할 때만 먼저 연락한다는 뜻이다. 일단 내가 그렇다. 일이 없으면 굳이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코 ‘얘는 평소에 아무 필요도 없는데 지금 딱 도움이 되겠군!’ 하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평소에 연락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나는 그저 당장 가깝게 지내는 사람 다섯 명의 생일을 챙기는 데도 내 모든 정신머리를 할애해야 할 뿐이다. 그리고 위 가설의 주장에 따라, 나는 아주 자연스러운 사람이고 많은 사람이 이와 비슷하다.

(아마도) 너무나 많은 관계에 파묻혀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소중한 사람이더라도 평소에 또 특별한 날마다 연락하는 건 정말 귀찮고 힘든 일일 게 뻔하다. 이런 고통을 감수하고 나의 안부를 물어주는 이들 모두에게 감사하고, 참 대단하다고 칭찬하고 싶다. 먼저 연락하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대단한 거지, 귀찮은 일을 하지 않은 내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좁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게 편하도록 설계되었지만, 일부 노력으로 태생적 한계를 극복한 사람들이 있고, 그냥 태어난 그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만약에 대뜸 찾아온 나를 당신이 환대로 맞아준다면, 오랜만인 당신과 나 사이엔 오히려 ‘평소에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지만 이 정도 부탁쯤은 가볍게 할 수 있는 친한 사이’라는 암묵적인 친밀감이 형성될지도 모른다.
  시선을 조금만 바꿔, ‘지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친구’와 비밀스럽고 독특한 우정을 쌓아보면 어떨까? 아, 물론 돈 빌려달라는 인간은 예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