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그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컴퓨터로 - manhwageulineun salamdeul-eun eotteohge keompyuteolo

만화가 강도영

2001년 1월 15일부터 참여연대와 함께 했던 온라인 만화가 강풀(본명 강도영, 학교 다닐 때 하도 쑥색 옷만 입어서 그런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이 “꼭 다시 돌아올게요”란 한 마디를 남기고 참여연대 시사카툰 <툴툴툰>에서 사라졌다. ‘오늘은 뭘 그릴까?’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면서도 4년 넘는 시간을 함께 한 그가 우리 곁을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꼭 강풀의 팬이 아니어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그의 만화공작소 ‘선따라’로 그를 찾아 나섰다. 예상보다 천호동이 먼거리였나 보다. 그의 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 가야 했다. 그런데 이 화장실이란 곳이 열심히 집중(?)하는 가운데서도 한눈파는 재미가 쏠쏠한 장소였다. <누들누드>의 양영순, <비빔툰>의 홍승우 등의 만화가들과 가수 박진영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의 낙서로 화장실 타일이 그득했다. 인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화장실로 직행을 했던 상황이 적잖이 민망한 일이었지만, 인터뷰를 하기도 전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눈치채는 경험이기도 했다. 또한 어떻게 앉아도 구겨진 포즈만 가능한 ‘마법의 소파’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해주는 또 다른 소품이었다.

막말하며 그리고 싶다

실은 그를 만나러 나서기 전까지 난 몰라도 한참 몰랐다. 그가 온라인에 만화를 올리자마자 한꺼번에 5만 명이 넘는 네티즌들이 접속해 서버가 다운되거나, 하루 평균 200만 명이 클릭을 할 정도로 그의 인기가 폭발적인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한국형 순정만화의 새로운 전범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순정만화>의 경우는 총페이지뷰가 6천만 건이라고 하고, 요즈음 같은 도서 불황시대에서도 책으로 묶인 단행본들은 10만부 이상이 나간다고 하며, 그 책의 출판권은 만화 단행본 국외계약 사상 최고액에 팔리기도 했단다. 그가 온라인 포털에 장편만화를 연재한다는 소식을 간간히 듣긴 했지만, 어린 시절 만화방에서 너덜너덜해진 책장을 침을 묻혀가며 한 장 한 장 넘겼던 추억을 가진 나로서는 ‘인터넷 만화를 마우스로 쭉 훑어 내릴 때 느끼는 손맛’의 재미를 모르는 터라, 강풀 신드롬에 대해 너무 ‘용감하게’ 무지했던 것이다.

그런 그가 그만뒀다. 서운한 감정을 내비치지 않을 수 없다.

“완전히 그만 둔 거 아니거든요. 작업 들어가는 게 너무 쎄가지고요, 원래 연재를 올해 여덟 개 정도 했는데 너무 바쁘니까 대충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어느 정도 정리한 후에 정신차리고 다시 들어가고 싶어요. 또 제 계획이 홈페이지로 돌아가는 거거든요. 제 홈페이지에다가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어요.”

완전히 그만 둔 게 아니다? 그럼 다시 언제? 각설하고, 그는 참여연대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자기 식으로 못했다고 했다.

“막말을 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참여연대는 사회적인 이야기를 할 때 ‘한국사회의 병폐’ 어쩌고 하며 멋지게 말하잖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 개새끼’ 어쩌고 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그는 참여연대에서 만화를 그리면서 자기 검열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참여연대에 걸려 있는 만화니까, 신문 만평 그리듯이 규격화된 만화를 그리게 되요. 단체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개인, 하나의 사람으로서, ‘씨발, 뭐야~’ 이런 식으로 자유롭게 만화를 그리고 싶더라고요. 제 홈페이지에서는 제 멋대로 말하는 게 문제가 안되잖아요. “

만화가로서 그의 태생이 자유로움이 생명인 온라인이었다는 것을 잠깐 잊었다.

사람들은 그를 ‘최초의 온라인 만화가’로 부른다. 하지만 그가 자발적으로 온라인 만화가가 된 것은 아니다. 여기엔 약간의 서글픈 사연이 있다. 그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 400여 군데 원서를 냈다고 한다. 그것도 교보문고에 일주일 동안 죽치고 앉아 잡지 종류를 불문하고 잡지사 주소와 연락처를 알아내 6개월 동안 편집장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직접 자기소개를 하고 만화를 그리게 해달라 졸랐다. 하지만 그를 받아주는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결국 자구책으로 그는 강풀닷컴(www.kangfull.com)을 만들어 스스로 독자들의 평을 받아보기로 마음먹고 온라인에 만화를 올렸다. 그 다음의 상황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대박’. 처음에는 주로 똥과 토사물을 소재로 한 엽기만화로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더니, 그 다음엔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일상’과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을 잔잔한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의 그 다음을 궁금해 하는 팬들의 기호에 요즘 그는 ‘호러미스테리심리코믹멜로썰렁유머잡탕물’로 맞서고 있다.

그의 만화를 클릭하는 독자들은 단지 탄탄하고 짜임새 있는 구성과 호소력 있는 등장인물들의 에피소드에만 열광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등장 후 이제는 웹툰의 전형적인 스타일로 정착한, 글이 많고 컷을 나누지 않는 에세이툰은 만화에 등을 돌렸던 많은 이들을 다시 만화로 컴백하게 만들었다.

“제 만화가 형식파괴라는 평가를 받는데요. 그게 제가 학교 다닐 때 그리던 대자보 만화 형식이에요. 형식을 알아서 일부러 파괴를 한 것이 아니구요, 제가 뭘 알아야 파괴를 하지요.(웃음)”

대박작가, 참여작가?

일반 사람들이 그를 온라인 만화가로 알고 있는 것과 달리, 나는 그를 사회참여 만화가로 부르고 있다. 그렇게 규정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학생운동을 매우 열심히 하던 문화선전일꾼이었다는 ‘과거’ 때문이다.

“지금도 만화책 별로 안 보고요.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아요. 꿈도 만화가가 아니었어요. 그림도 잘 그리는 편도 아니었고요”

그림에 두각을 나타내던 소년도 아니었고, 학창 시절 만화방을 제집 드나들던 이도 아니었고, 내노라 하는 유명 만화가의 문하생 경력도 전무한 그가 어떤 계기로 만화가가 된 것일까? 게다가 그가 많은 만화가 중의 하나일 뿐이라 하기에는 그의 작품에 대한 각계의 러브콜이 좀 지나치지 않은가? 현재 그의 장편만화 전편이 영화 판권 계약을 마쳤고 제작에 들어갔다. 영화 뿐 아니라 그는 드라마 극본 집필까지 요청받고 있다. 또 올 하반기에는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예정이다. 그뿐인가. 모든 만화가들이 소망한다는 일본 소학관에 스카우트되어 일본 독자들을 위해 만화를 그려야 한다. 조금도 쉴 틈이 없이 앞으로 2년 계획이 빡빡하다. 요즘말로 ‘울트라 캡숑 초절정’ 인기다.

“대학 1학년 때 무심코 본 한겨레 만평이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한 뼘도 안 되는 공간 속에서 세상의 모든 것이 까발려진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지요. 그러면서 아, 세상을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했어요. 그러다가 비리재단 퇴진투쟁으로 데모가 한창인 학교에서 하루에도 수백 장씩 대자보가 붙는데도 모두들 외면하는 현실을 보며 대자보 만화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거죠. 제 만화를 본 학생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집회 참여율도 높아가고, 무지 재미있더라고요. 그러면서 만화엔 어떤 힘이 있다는 걸 알았지요.”

그후 1학년 때부터 그린 만화 대자보는 4학년 때까지 이어졌고, 학교 본관에는 그의 대자보 만화를 붙일 수 있는 패널까지 제작됐다. 학내만이 아니었다. 그의 만화는 원주시내까지 진출했다. 그렇게 학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4년 내내 대자보 만화와 걸개그림을 그리다 보니 “이거 말고는 정말 할 게 없겠구나”하는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아마 이러한 만화의 힘에 대한 때이른 자각이 작년 탄핵 시기 200여 명의 만화가를 규합, 탄핵반대 릴레이만화를 연재하게 만든 동인이 됐을 것이다.

“탄핵 이후 무지 열 받았거든요. 국회 앞으로 막 달려갔는데, 그 사이 탄핵안이 가결되었더라고요. 데모하다 집에 돌아와 보니 제가 할 수 있는 게 만화밖에 없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친한 형님들에게 탄핵 철회될 때까지 연재하자고 했지요. 참가하고 싶은 만화가들에게 연락을 하라고 했더니 프로 만화가들까지 해서 200명이 참여 의사를 밝히더라고요. 저도 깜짝 놀랐지요.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만화가들은 많지만, 그동안 그럴 만한 공간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부모님 말씀 잘 듣겠다

비록 그가 사회참여 만화가라는 수식어를 전혀 부담스러워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지만 그를 그 틀에 가두는 것은 적절치 않다. 강풀 자신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하지 않은 소재를 엽기적으로 그린 단편 옴니버스 만화’ <일쌍다반사>나 ‘사랑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감정’이란 생각으로 ‘누구에게나 흔한 얘기이지만 자기한테는 특별한’ 얘기를 제대로 그린 <순정만화> <바보> 등은 모두 일상의 특별한 감동과 맑은 웃음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전혀 수려하지 않은 밋밋한 얼굴의 주인공들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보았을 잔잔한 ‘일상의 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하루 16시간씩 작업한다. 작업실 코 앞에 편안한 집을 두고도 컴퓨터 앞에서 떠나지 못한 채, 하루 종일 햇볕도 못 보고 흑고양이 백고양이 한 마리씩을 위안삼아 작업에 매진하는 그에게, 휴식은 절실해 보였다. 지금 앉아 있는 의자만 세 번째 바꾼 거라니 더할 말이 없다. 그래서 말이다. 연재 중단에 따른 아쉽고, 서운한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그저 어려운 조건에서도 참여연대와의 인연을 소중히 하려 애쓴 그의 마음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런 내게 강풀, “제가 참여연대에서 만화를 안 그리고 살면 그저 돈만 많이 벌고 편히 사는 기성세대가 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참여연대 연재는 그래서 정신차리기란 의미가 있었죠”란다. 그는 예의를 아는 청년이었다.

강도영, 그 자신이야말로 이 시대에도 순정(純情)이 있을까 의심하는 이들에게 순정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순정만화>의 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후기. 그에게 꼭 쓰겠다고 약속한 게 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사신 가난한 목사 아버지와 빈한한 살림살이 때문에 언제나 마음이 시렸을 어머니, 그 부모님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찡하다는 그의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살고 싶어요” 란 한 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