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머리라도 부딪힌 - eodi meolilado budijhin

20대 초반 대학생 청년입니다.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 아침에 오랜만에 휴학한 대학교에 놀러갔습니다. 학교에서 교수님도 만나고..학교도 구경하다가 11시쯤에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점심은 학교 근처에 여고가 있는데 거기 분식집이 양이 참 많아서 거기서 먹고 다시 학교도서관에서 좀 놀려고 학교로 왔습니다.

근데 먹고 들어올떄 저희 학교는 캠퍼스가 정문,후문이 딱 있고 중간에 학생들 다니라고 만든 조그만한 쇠창살로 만든 문짝들이 몇개 있는데 그쪽으로 주로 돌아다니거든요?

근데 문이 저보다 낮아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와야하는데 고개를 숙여서 들어오면서 바로 고개를 들었는데...그 순간..

쾅.......머리를 박았습니다. 그것도 무슨 철봉에 박는것처럼 엄청 강하게 박았거든요....쇠문짝이라서 박는순간 무슨 종치는 소리가 났습니다. 종소리.... 순간 박으면서 엄청 아팠고 주위 사람들이 큰소리가 나니까 전부 쳐다봤습니다...

쪽팔려서 그냥 그자리에서 빨리 달려서 벗어났는데 진짜 정말 강하게 박아서 그런가 꽤 아프더라구요....나무도 아니고 세상에 쇳덩이에 머리를..그것도 강하게 박은꼴이니....

음....딱 쇠철봉...쇠철봉에 박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쇠철봉 아래에서 있다가 위로 일어나면서 쾅 박았다고 생각하시면....

어차피 쇠문짝도 쇠철봉도 결국 쇠니까요.....생김새도 쇠철봉이랑 제가 박은 문짝 윗 쇠기둥이랑 비슷하거든요

보통 주택의 쇠창살로 된 문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사진이나 그림을 올리고싶은데 여기에는 그런 기능이 없어서....

문짝을 넘어왔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들어올리는데 그순간 위쪽 쇳기둥에 쾅 박은거죠......위치는 이마보다는 위쪽이고 정수리보다는 아랫쪽이니까 음 설명하기가 힘든데 전두엽쪽이라고 생각됩니다.

박고나서 10분정도 지나니까 박은부분에 혹이 크게 났는데...걱정이 많이 되거든요.

친구들은 어디서 머리한번 안박아보는 사람이 어딧냐고 너무 걱정말라고 웃으면서 말하는데....제가 웃으면서 지나칠수가 없는게 쇳덩이에 강하게 박은이유도 있지만 그후로 어지럽습니다.

어지럽고..현기증나고..기운빠지고...머리도 아픕니다. 박은부분은 당연하고 머리 전체가 아픕니다. 달려다니면 머리 전체가 흔들거리는것 같습니다. 가만있어도 그렇고요...어지러움은 기본...

좀 가만있으면 괜찮은데 걸어다니거나...달려다니거나...계단을 막 뛰면 심해집니다...

근데 제가 궁금한점이 지금 만약에 뇌진탕이거나 뇌진탕까지는 아니래도 제가 이렇게 충격을 준게 제 뇌세포나 지능에 영향이 있을까요??

이런면에서 너무 예민하다고 하실수도 있지만 정말 이런 어이없고 황당한일로 뇌세포가 단 1마리라도 죽거나 지능이 0.0000000000000000000001%라도 줄어든다면 그게 너무 싫고 또 정말 그럴까봐 지금 겁나거든요.

지금 이 생각이 머리속에서 계속 생각나고 귓가에서 계속 맴돕니다. 오늘 오후에도 계속 과연 머리를 박은게 어떤 영향을 줄까 생각하면서 보내고 있습니다...그러면서 덤으로 스트레스도 받고... 

미국에서도 10대 학생들 체벌기준에 손,발은 떄려도되도 머리는 절대로 때리면 안된다고 나와있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머리 떄리면 뇌세포 죽는다고 머리 떄리면 안된다고 말하잖아요.

팔,다리 다치고 어디 상처나는거라면 좀 쉬고 약바르면...약먹으면 낫겠지만....피부랑 뼈는 세포가 다시 재생하니까..

근데 뇌는 다르잖아요..

안그래도 2년정도 전부터 기괴하고 이상한 증상이 생겼거든요 딱 2년전쯤에 처음으로 어느날 느꼈는데 제가 기억력이 점점 떨어지고,단어가 자꾸 말도안되게 헛나오고,말을 해야하고 먼말을 해야하는지도 아는데 말문이 딱 막히는경우가 생기더니 점점 진행되듯 심해지거든요

기억력이야 2~3년전이랑은 비교도 안되는것같고...다른 기능들도 그렇습니다. 어휘력이나 언어구사력,판단력,계산력도 갈수록 떨어지니까 저 나름대로 도서관에서 뇌관련 의학책도 찾아뒤지고 그러거든요. 하지만 책을봐도 2년전보다 훨씬 이해가 안됩니다. 이해력까지 떨어진거죠. 제가 잘 알고 관심같는것조차도...

안그래도 이것때문에 엄청나게 스트레스 받는데 쇳덩이에 머리까지 박으니까 미치겠습니다.

하여튼 저는 머리속이 복잡할정도로 신경이 많이 쓰이는데 의사선생님들 생각은 어떠신가요?? 제 생각 처럼 이렇게 쇠에다가 강하게 박었으니 아주 미세하게라도 뇌세포,기능,지능에 영향을 주는건지.....아니면 다른애들 말처럼 제가 예민한거고 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는건지....

대충 인터넷에서 논문이나 의사선생님들의 다른 사람들에대한 답변도 찾아봤는데 오히려 너무 무섭고 공포스럽습니다.

물론 어차피 오늘 머리를 안박았어도 2년전부터 점점 심하게 진행되가는 제가 앞에서 말한 증상때문에 어차피 언제라도 신경과를 가야한다고 생각은 하고있습니다만...... 지금도 2년쨰 안가는게 돈나가는게 걱정되고 겁나서 못가겠습니다.

그리고 뇌진탕의경우 몇일 누워서 안정하는게 좋다고하던데 저는 그럴수가 없는데 괜찮을까요??

제가 대학교를 휴학한 이유가 당뇨병떄문에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고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게 됐습니다. 간호학과 학생이라고 수술실,중환자실,응급실,병동 등을 매일 왔다갔다 거립니다...여기서 근무하고 생활하는건데...

내일부터 목,금,토 3일간 진짜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병원 1층부터 꼭대기까지 하루종일 무거운물건 들고 달려다녀야하거든요.....이래도 괜찮을까요?? 그렇다고 빠질수도 없는데..

스펙터클한 출근길이 겨우 마감되었다. 어딘가 불길한 제44부 판사실. 임바른 판사는 머리가 복잡했지만 일단 선배로서 충고부터 하기로 했다. “박 판사님, 예전에 알았던 사이라도 법원에서 오빠 오빠 하는 건 부적절한 듯합니다. 공적인 자리니까요.” “알겠습니다, 임 판사님.” 급시무룩해진 박차오름 판사가 대답했다.

부장님께 인사하랴, 책상 정리하랴 정신없이 오전 시간이 지났다. 점심 후 한숨 돌리는 임 판사 귀에 카톡 알림음. 친구놈이다. ‘ㅋㅋSNS스타 데뷔 축하!’ 엥? 어리둥절하여 링크를 눌러본다. ‘대박! 여판사 니킥 작렬!’ 제목의 동영상에 고오환 교수 사타구니에 니킥을 날리는 박 판사, 교수 붙잡고 있다가 같이 질질 끌려나가는 임 판사, 이후 말싸움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댓글이 가관이다. -오 의외로 판사가 어리고 섹시한데? 얘는 벼슬하니까 레알 보슬아치ㅋ -하악하악 나도 여판사 니킥 거기에 맞고 싶다 -판사면 다냐 폭력에 반대한다능 -손녀딸 같아서 좀 만진 게 죄인가요? -교수는 판사를 명의회손으로 고소하라

전화기가 울린다. 부장님 호출이다. 문을 열자마자 쏟아지는 호통. “어떻게 출근 첫날부터 사고를 쳐! 판사가 점잖지 못하게 몸싸움에 말싸움에, 이게 정상이야? 부장을 첫날부터 법원장실에 호출당하게 만들어?” 임 판사가 말려 본다. “부장님, 박 판사는 여학생을 구하려고….” “끼어들지 마! 신고나 해 주면 되지 왜 나서서 일을 시끄럽게 해! 여대생이면 지가 알아서 하겠지 무슨 여중생이야? 하긴 그런 짧은 치마나 입고 다니는 애니까 그런 일 당하지. 그런 것들이 공부나 하겠어?” 박 판사가 발끈한다. “부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짧은 치마 입는 게 잘못인가요?” “어디서 말대꾸야! 여학생이면 여학생답게 조신하게 하고 다녀야지. 보바리 부인이 한 말도 몰라?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거라고! 노력을 해야 여자다운 여자가 되는 거야!” 임 판사가 끼어든다. “저 부장님, 보바리 부인이 아니라 시몬 보부아르고요, 그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부장이 폭발한다. “끼어들지 말라고! 어디서 위아래도 없이!”

순간 부장 책상 위 휴대전화가 울린다. -위, 아래 위 위, 아래. 위, 아래 위 위, 아래. ‘돈츄노’에서 겨우 전화를 받은 부장의 목소리가 떨린다. “여, 여보. 미안. 좀 늦게 받았지? 배석들 지도 좀 하느라고.” 나가라며 휘휘 손을 내젓는 부장을 뒤로하고 임 판사는 씩씩대는 박 판사를 억지로 끌고 나온다.

“박 판사가 프랑스 배낭여행 중
사고를 당해서 신문에 났었대”
옆방 정 판사 말에 임 판사는
해당 연도 르몽드를 검색해봤다
기사제목은 ‘마드무아젤 함무라비’ 함무라비 법전 조항을 떠올린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데
다른 사람의 엉덩이를 만졌다면
그의 사타구니에 니킥을?
말도 안돼, 이건 만화도 아니고

“한 부장님은 콤플렉스가 좀 심하대”

그녀를 가까스로 앉혀 놓고 임 판사는 옆방 정보왕 판사실로 건너갔다. “오, 당 법원 최고 엘리트 임바른 판사님이 어찌 왕림하셨나?” 싱글대는 정 판사에게 다짜고짜 묻는다. “됐고, 우리 한 부장님 도대체 어떤 분이셔?” “아니 자기 부장님을 왜 옆방 배석에게 묻지?” “각종 인사정보와 뒷얘기 전문가께 여쭐밖에.” “하긴 임 판사는 워낙 잘나셔서 평소 남의 일에 관심이 없으시지. 부장님 사자후 여기까지 들리던데? 너무 괘념 마. 성질이 불같아서 그렇지 뒤끝은 없어. 흥분하면 말이 많이 짧아지시지. 서로 예의 차리느라 피곤한 우리 회사에 보기 드문 캐릭터야. 그래도 악의는 없으셔.” “흥미롭군. 어떻게 악의도 없이 타인에게 그럴 수 있는 거지?” “허허, 또 말꼬리 잡는다. 알고 보면 순진한 분이라니까.” 정 판사는 목소리를 낮췄다. “이건 우리 부장님한테 들은 건데, 한 부장님은 콤플렉스가 좀 심하대.” “콤플렉스?” “응, 동기들보다 연세가 열 살이나 많잖아. 고시촌 낭인 생활을 10년 넘게 하다 합격했대. 판사 정원 대폭 늘릴 때 턱걸이로 임용되고. 대학도 울 회사에서 정말 보기 드문 곳 출신. 그래서 친한 분이 별로 없대.” “그럼 더 대단한 거 아냐?” “그렇긴 하지만 다른 부장님들 보기에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겠지. 내가 전에 고참 부장님들 술자리에 낀 적이 있는데, 술이 거나해지니까 누가 누가 고등학교 때 더 공부 잘했는지로 은근 경쟁하시던데? 전교 1등 아닌 분이 드무니까 말야. 그런 분들 눈에 한 부장님이 어떻겠어. 근데 한 부장님, 평소 굳이 문자깨나 섞어 쓰시지? 어록이 많던데.”

왠지 듣기 싫어져서 일어나는 임 판사 등 뒤로, “아, 그런데 박차오름 판사 소문 알아? 대학 때 무슨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던데….”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방 신임 판사가 그러는데 박 판사가 배낭여행 중에 사고를 당해서 신문에까지 났었다는 소문이 있대. 그런데 묘하게 내용을 아는 사람은 없더라고.”

다음날 출근길, 임 판사는 지하철에 앉아 무슨 사고일까 상상하고 있었다.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그의 눈앞으로 타이트한 미니스커트와 죽 뻗은 다리, 아찔하게 높은 스틸레토 힐이 지나간다. 임 판사는 얼른 맞은편 남자들의 시선을 관찰한다. 늘 봐도 늘 신기하다. 고등학생부터 할아버지까지 모든 시선이 동시에 미니스커트 진행 방향으로 따라 움직인다. 팬터마임 같다. 시야에서 멀어지면 다양한 클로징. 언제 봤냐는 듯 스마트폰을 열심히 쳐다보는 학생, 헛기침하며 자세를 바꾸는 신사, 그리고 정직하게 몸을 최대한 돌려 하염없이 미니스커트의 자취를 찾는 영감님. 아이 같은 순수함이다.

지하철을 나와 언덕길을 오르는 임 판사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옷, 바른 오빠! 에고, 임 판사님!” 밖에서는 눈에 띄니 판사라고 부르지 말라는 얘기를 빠뜨렸구나 생각하며 돌아보는데, 헉! 그 미니스커트가 반갑게 웃고 있다. 어깨에는 빅 백을 메고서.

앞만 쳐다보며 경직된 채 나란히 걷는데 박 판사가 갑자기 멈춘다. 법원 입구 길바닥에 웬 할머니가 앉아 있다. ‘이놈들아! 내 아들을 살려내라!’ 비뚤비뚤한 글씨 밑에 낡은 돌잔치 사진, 공을 차고 있는 아이 사진, 그리고 파리한 중년 사내의 사진이 있다. 임 판사는 얼른 채근한다. “늦었으니 빨리 갑시다.” “저 할머니 왜 저러고 계세요?” “아드님이 수술을 받다가 사망했는데,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했지만 증거가 없어서 진 모양이에요. 담당 판사한테까지 원한을 품었다나 봐요. 여하튼 어서 가요.” 계속 뒤를 돌아보는 박 판사를 재촉한다.

경악, 미니스커트에서 부르카로

법원 안, 무채색 양복의 무리가 박 판사와 마주치자 홍해가 갈라지듯 뒤로 물러선다. 입을 딱 벌리고 쳐다보는 법원 경비대원들을 지나쳐 최대한 박 판사를 가리며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시선이 따갑다. 이 회색빛 건물 안에서 그녀의 미니스커트는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 같다. 가까스로 판사실로 들어가려는데 마침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던 한 부장과 마주쳤다. 놀라 펄쩍 뛴다. “이게 무슨 짓이야!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차림으로.” 박 판사는 생글생글 웃는다. “오늘 햇살이 너무 좋아서요. 저 고시 공부할 때도 이런 날에는 종종 입었어요.” “그게 판사 옷차림으로 가당키나 하다고 생각해!” “법원조직법에 치마 길이 규정이 있나요?” 부들부들 떨며 한 부장이 입을 떼려는 순간 박 판사가 선수 친다. “뭐, 싫어하시니까 조신하게 갈아입고 오겠습니다아.” 그러곤 빅 백을 멘 채 화장실로 들어간다.

잠시 후 나온 그녀의 모습은 임 판사는 물론 부속실 여직원까지 경악시켰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천을 시커멓게 덮어쓰고 눈 부위도 망사로 가렸다. 아이에스(IS·이슬람국가) 관련 뉴스에서나 보던 부르카다. 히잡, 차도르, 니캅보다 더 극단적으로 몸을 가리는 무슬림 의상이다. 주변이 사막으로 보일 지경이다. 다들 입을 딱 벌리고 멍하니 있는데 부르카 안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이 정도면 괜찮을까요? 가진 옷 중에 가장 조신한 옷인 것 같아서 챙겨 왔어요.” 현실감 없는 풍경에 한 부장은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리고 있다. “생각해보니 부장님 말씀이 맞아요. 여자들이 위험하게 맨살을 내놓고 다니면 안 되죠. 남자는 원래 여자 맨살만 보면 자동으로 폭발하게 되어 있는 불쌍한 존재라면서요. 남자에게 무슨 책임이 있겠어요. 인화물질같이 위험한 여자들을 규제해야죠.”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초등학교 여학생들에게 운동장에서 놀 때 옆 건물 창문에 남자가 나타나면 그의 눈에 띄지 않게 얼른 숨도록 가르친대요. 하긴 순결한 남자의 눈에 여자아이 떼의 모습이 들어오다니, 아, 얼마나 무서운 일이에요!” 박 판사는 몸을 떨며 말을 이어간다. “인간이 욕망을 자제하지 못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니 죄악의 씨앗들을 박멸해야 해요! 좋은 물건을 보면 폭도로 변하는 게 당연하니 백화점과 쇼핑몰도 폐쇄하고 고객 눈앞에서 돈을 세는 은행원은 강도 교사범으로 처벌해야….”

잠깐 새 십년은 더 늙은 듯한 한 부장이 공진단을 찾으며 비틀비틀 부장실로 사라지자 박 판사는 화장실로 가더니 단정한 투피스 정장 차림으로 돌아왔다. 멍하니 있던 임 판사가 물었다. “그런데 도대체 부르카는 어디서….” “대학 1학년 때 피아노과 동기 여자애랑 파리로 배낭여행 갔었어요. 이슬람 사원 근처 벼룩시장에서 발견하고 너무 신기해서 사 왔죠. 이걸 입을 일이 있을 줄이야.” 혀를 쏙 내밀며 웃는다. 피아노과? 놀랐지만 먼저 물어볼 게 있다. “배낭여행 중에 사고도 많다는데 여학생들끼리 괜찮았어요?” “네, 저도 루브르에서 사고가 한번 있었는데 별거 아니에요.” “어떤?” “해프닝이죠 뭐. 이제 일 좀 해볼까요?”

임 판사는 몰래 해당 연도의 신문기사를 검색해봤지만 찾을 수가 없다. 분명히 신문에 나왔다고 했는데. 혹시? 프랑스어로 검색해보니 울랄라! 무려 르몽드 기사다. -한국에서 온 여대생 박차오름 양이 루브르 박물관에서 어이없는 사고를 당했다. 박 양은 함무라비 법전이 새겨진 비석을 관람하던 중 뒤에서 갑자기 몰려든 중국 단체여행객들에게 밀려 넘어지면서 비석에 이마를 강하게 부딪혀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다행히 24시간 만에 의식을 되찾았으나 후유증이 없을지는 확실치 않다. 박물관 관리에 문제가 있다는 지난번 기획 기사에서도 지적했듯…. 기사 제목은 ‘마드무아젤 함무라비’.

함무라비? 임 판사는 콧노래를 부르며 일하는 박 판사를 훔쳐보며 함무라비 법전 조항들을 떠올린다. 만일 다른 사람의 눈을 상하게 했다면 그의 눈을 상하게 한다. 다른 사람의 이빨을 부러뜨렸다면 그의 이빨을 부러뜨린다. 다른 사람의 엉덩이를 만졌다면 그의 사타구니에 니킥을…. 아냐, 이건 합리적이지 않아. 말도 안 돼. 만화도 아니고…. 고개를 흔들어 바빌로니아 여왕 차림의 박 판사를 지우며 검토할 기록을 펼치는데, 이번엔 이름 하나가 번뜩 스쳐간다.

“뭐가 정상이고 뭐가 비정상이죠?”

피니어스 게이지. 1848년 미국의 철도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쇠막대가 머리를 관통했는데도 생존한 인물. 사고 후 온순하던 성격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바뀌어 자주 화를 내고 난폭해졌다. 왼쪽 대뇌 전두엽 손상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이마 쪽에 위치한 전전두엽의 기능 중에는 감정 조절 및 통제가 포함되어 있고…. 씩씩한 박 판사 얼굴에 남과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던 소녀의 모습을 겹쳐 보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흔들고 사건 기록을 펼친다.

어느새 퇴근시간. “임 판사님 야근하세요? 저는 집에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박 판사가 사라지고 임 판사는 일에 집중한다. 이상한 억측 말고 판사답게 사고해야지. 창밖이 어둑해지자 배가 고파온다. 간단히 뭐라도 먹고 와야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선다. 법원 밖으로 나가려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이놈들아! 내 아들을 살려내라!’ 할머니 옆에 젊은 여자가 주저앉아 흐느끼고 있다. 할머니는 신들린 듯 말을 쏟아내고 있고 젊은 여자는 끄윽끄윽 소리를 내며 눈물 콧물 범벅이다. 박 판사다. 순간 임 판사는 작년에 당했던 봉변을 떠올렸다. 늦은 시간 법원 구내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시냐고 물었다가 너도 판사놈이냐며 멱살을 잡히고 뺨을 맞았다. 임 판사는 반사적으로 박 판사와 할머니 사이로 끼어들며 박 판사를 뒤로 밀쳐냈다. “박 판사, 어서 일어나요. 이 할머니는 정상이 아니셔. 조심해요!”

그런데 박 판사가 도리어 세게 뿌리치는 바람에 임 판사는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정상? 뭐가 정상이죠? 생때같은 자식이 수술실에서 차디찬 주검이 되어 돌아왔는데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설명도 사과도 듣지 못한 에미가 제정신이면, 그게 정상인가요? 작별인사도 못하고 보낸 아들이 울며 매일 밤 꿈에 나타나는데 마음이 평온하고 고요하면 그게 정상인가요? 말씀해 보세요. 도대체 뭐가 정상이고 뭐가 비정상이죠? 말씀해보세요!” 박 판사의 외침 뒤로 거대한 법원 건물은 군데군데 불 켜진 눈동자로 응시하며 침묵하고 있었다.

어디 머리라도 부딪힌 - eodi meolilado budijhin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판사유감> 저자. 원래 ‘우리 이웃의 분쟁’을 보여주는 실제 사건에 관해 쓰려다가 사생활 보호 문제 때문에 픽션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간사 갖가지 분쟁과, 이를 법정에서 중재하고 판결하는 판사들 내부의 풍경을 그린다. 소설은 처음 써보는 거라 떨고 있다. ‘미스 함무라비’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신조로 삼는 열혈 정의파 초임 여성 판사가 주인공이다. 초보인 작가만큼이나 소설 속의 미숙한 그녀를 응원해주시길.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