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 마릴린 먼로 주제 - aendi wohol malillin meonlo juje

명화 산책 현대 사회에서 대중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스타들이다. 특히 스타들의 말과 행동은 청소년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 스타의 이미지에 주목했던 화가가 앤디 워홀(1928~1987)이다. 그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화를 스스로 만든 섹시 스타, ‘황금빛 마릴린 먼로’

앤디 워홀이 대중적인 스타를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 ‘황금빛 마릴린 먼로’다. 이 작품은 1950년대 초반 미국의 사진작가 프랭크 포월니가 찍은 상업 광고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마릴린 먼로는 섹시 스타로 명성을 얻었지만, 그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 그녀에게 요구한 것은 오직 섹시 스타로서의 이미지였다. 결국 마릴린 먼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죽음은 영화 속 그녀를 영원한 섹시의 화신으로 만들어버렸고, 사후의 명성이 생전의 인기를 뛰어넘었다. 앤디 워홀은 그것을 이 작품에서 표현했다.


부자연스럽고 지루한 미소를 띤 먼로의 초상이 그녀를 둘러싼 광대한 공간 안에 배치됐다. 앤디 워홀은 배경을 금빛으로 채움으로서 먼로를 성경 속 성녀의 이미지로 표현했다. 이 작품에서 붉은 입술, 녹색의 눈, 노란색의 머리는 황금빛 하늘을 떠돌고 있는 별처럼 표현됐다. 이후 많은 작품에서 앤디 워홀은 그녀의 미소를 끊임없이 되풀이 하면서 스타를 소비 상품으로 표현했다.

앤디 워홀이 마릴린 먼로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그녀가 섹시 스타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당시 최고의 섹시 스타는 리타 헤이우드였지만 앤디 워홀은 리타 대신 먼로를 선택한다. 그가 마릴린 먼로에게 주목한 것은 그녀가 자신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스스로 만들었던 신화였다. 그녀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자신을 스타와 동일시하던 앤디 워홀의 취향과 일치했다.

생전에 앤디 워홀은 마릴린 먼로처럼 개인적인 사실을 감추면서 자신을 신비로운 존재로 부각시켰다. 그는 아버지가 광산에서 살해당했다는 등 수없이 많은 인터뷰에서 철저하게 자신에 관한 전설을 만들어냈다.

그렇다고 앤디 워홀이 마릴린 먼로에게만 집착한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할리우드 스타에 매료돼 스타들의 사진이나 영화 잡지를 정기 구독했던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 말론 브랜도, 엘리자베스 테일러, 잉그리드 버그만, 존 웨인 등등 자신이 좋아했던 스타들을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또한 스타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목표를 잊은 적이 없는 앤디 워홀은 연극적인 태도와 사치스러운 생활 방식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웬만한 파티에 다 참석했고 언론에 나올 수 있는 일이면 놓치지 않고 등장했다.

앤디 워홀은 광대한 미국에서 모든 파티를 혼자 소화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역을 등장시키기까지 했다. 그 첫 번째가 ‘첼시의 소녀들’이란 영화 제작자로서의 영화 성공을 축하하는 파티에서, 두 번째는 미국 여러 대학에서의 강연이었다. 그는 친구를 자신의 모습으로 분장시킨 뒤 앤디 워홀로 활동하게 했다.

‘원본’에 대한 개념을 바꾼 기념비적 작품 ‘직접하시오-꽃’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이민 온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앤디 워홀은 피츠버그에서 미술 학위를 받은 후 뉴욕으로 이주한다. 뉴욕에서 앤디 워홀은 미국 소비문화를 광고에 접목시켜 상업미술가로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가 바라던 최종적인 목표는 아니었다. 그는 목표를 바꾸어 가장 미국적인 것, 즉 일상의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회화 작품을 선보이면서 미국 미술계에 두각을 나타낸다.

화가로서, 영화제작자로서 성공을 거둔 앤디 워홀이 뉴욕의 상류층이 되면서 그의 작업실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처럼 공방 체제로 운영된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자신들이 직접 그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만 그렸고 나머지는 조수들에게 맡겼다. 특히 루벤스는 화가 최초로 스케치를 도안하고 세밀한 구도를 결정했다. 앤디 워홀은 루벤스의 방식을 현대식으로 바꾸어 대량생산을 할 수 있는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작품을 제작한다.

실크 스크린 기법이란 공판화(孔版畵) 기법 중 하나로 일단 판이 완성되면 단시간 내에 수십 장을 찍어낼 수 있어 상업적인 포스터 등에 많이 이용된다.

앤디 워홀이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제작한 대표적 작품이 ‘직접하시오-꽃’이다. 이 작품은 거대한 판지 위에 부분적으로 완성된 스케치만 보여준다. 이 작품의 특징은 숫자를 따라가다 보면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수천 개의 것 중에 하나일 뿐이다. 육안으로 원본과 복사본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다. 산업적으로 대량생산되는 작품은 앤디 워홀의 새로운 형식의 기초가 된다.

이 작품은 ‘원본’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 놓은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앤디 워홀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미술작품의 가치는 미학적인 질로만 표현되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는 미술품의 가치가 작가의 명성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생각했다.

앤디 워홀의 실크 스크린을 이용한 제작 방식은 현대 미술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르네상스 이후 미술의 개념은 화가의 특별한 독창성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앤디 워홀은 실크 스크린으로 미술과 기술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게 만들어 기존의 인식을 깨뜨려버렸다. 즉 예술을 위한 미술에서 해방되어 어떤 방식으로든 미술가들이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8206)

[정윤아의 ‘컬렉터의 마음을 훔친 세기의 작품들’]

  • 입력 : 2022.05.27 12:15:46
  • 최종수정 : 2022.06.04 21:01:25

앤디 워홀 마릴린 먼로 주제 - aendi wohol malillin meonlo juje

‘샷 세이지 블루 마릴린(Shot Sage Blue Marilyn)’. 1964년작. 2022년 5월 9일 크리스티 뉴욕의 토마스와 도리스 암만 소장품 경매에서 1억9500만달러(약 2470억원)에 낙찰됐다. 미국인 예술가가 창조한 미술품과 20세기에 제작된 모든 미술품 가운데 가장 높은 경매가 기록이다.

창작자의 명성과 관계없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능력으로 불멸의 경지에 이르는 작품은 역사상 그리 많지 않다. 아름다운 여성의 형상은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었으며, 모든 인간의 관심사기에 다른 주제에 비해 보편성을 획득하고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진다. 이를테면, 고전미의 상징이 된 ‘밀로의 비너스’, 수수께끼 미소를 지닌 다빈치의 ‘모나리자’, 미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처럼. 여기에 한 점을 더 얹는다면, 아마도 전설적인 미모로 세상을 매료시킨 할리우드 스타, 마릴린 먼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담아낸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년)의 초상화일 것이다.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신화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고아원과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성장한 불우한 소녀에서 할리우드가 낳은 최고의 스타 여배우로 우뚝 올라섰다. 자신만큼이나 유명한 남성들과 결혼, 그리고 이혼으로 유명세를 더했으며, 케네디 대통령과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그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와 동시에 염문을 뿌렸다. 게다가 약물 남용으로 인한 죽음은 우발적 혹은 의도적 자살이었는지, 살해당한 것인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불멸’을 얻기는 부족하다. 불우하게 생을 마감한 아름다운 여배우는 많지만, 세상이 그녀들 모두를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죽은 지 6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마릴린이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인이 된 데는 워홀의 초상화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워홀이 마릴린의 초상화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은 그녀가 사망한 1962년부터다.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며, 그녀의 초상화를 여러 점 제작했다. 그 가운데 가장 완성도 높은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작품이 ‘샷 세이지 블루 마릴린’이다. 이 작품은 지난 5월 9일 크리스티 뉴욕의 토마스와 도리스 암만(Thomas&Doris Ammann) 소장품 경매에서 1억9500만달러(약 2470억원)에 낙찰됐다. 이로써 그녀는 미국인 예술가가 창조한 모든 미술품을 통틀어, 나아가 20세기에 제작된 전작 가운데 가장 높은 경매가 기록을 보유한 초상화의 주인공이 됐고, 불멸의 신화 반열에 올랐다.

워홀은 왜 그토록 마릴린의 이미지에 집착했을까.

우선은 극적으로 화려하면서도 비극적인 그녀의 복잡한 이중적 본질에 매료됐을 것이다. 누구나 선망하는 화려한 삶 속에서도 지속적인 불안증으로 인해 정신적으로는 몹시 힘들었던 점, 가난뱅이에서 유명세를 누리는 부자가 된 점 등 그녀의 소설 같은 삶이 자신을 꼭 닮아 있었기 때문이리라. 1962년 8월 5일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워홀에게 자신이 만든 초상화를 통해 그녀를 영원불변의 우상으로 만들고 싶은 더욱 확고한 의지와 욕망을 심어줬을 테다.

앤디 워홀 마릴린 먼로 주제 - aendi wohol malillin meonlo juje

워홀이 제작한 마릴린 먼로 초상화의 원본 사진. 1953년에 그녀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나이아가라’의 홍보용 스틸 사진이다, ‘황금빛 마릴린 먼로(Gold Marilyn Monroe)’. 1962년작. 워홀이 제작한 마릴린 먼로 초상화 중 최초의 작품. 작품성 측면에서 매우 뛰어나지만, 기법 측면에서는 ‘샷 세이지 블루 마릴린’에 비해서 실크 스크린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그녀의 초상화 제작을 위해 워홀은 수많은 마릴린의 사진 가운데서도 절정에 달한 미모, 명성과 부 등 그녀가 모든 것을 다 거머쥐었을 당시에 출연한 영화 ‘나이아가라(Niagara)’의 홍보용 스틸 사진을 골랐다.

‘샷 세이지 블루 마릴린’을 자세히 보라. 이 작품에서 그는 자신의 최고 뮤즈에 걸맞은 궁극의 묘사를 통해 여배우의 삶과 명성이라는 일시적인 본성을 넘어서는 초월적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녀의 금발, 매혹적인 눈매, 도톰한 입술, 심지어 그 유명한 애교점은 워홀의 과감한 색채 사용과 세련된 명암법 사용에 의해 명확하게 강조되면서 상징적 도상으로 구현됐다. 목과 뺨을 감싸면서 왼쪽 관자놀이에 드리워진 부드러운 그늘은 워홀이 창작한 마릴린 추상화 가운데서도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완벽한 깊이감과 조형성을 더한다. 워홀의 작품을 통해 그녀는 20세기의 비너스이자 모나리자가 된 것이다.

이 작품의 뛰어난 미학적 우수성은 이전에 비해 한층 더 복잡하고 정교해진 실크 스크린 제작 과정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몇 년간의 지속적인 실험 끝에 워홀은 1964년에 보다 정확하게 자신이 원하는 부위에 원하는 색채를 원하는 농도와 명암으로 발현, 조절할 수 있는 실크 스크린 기술을 획득하게 됐다. 이 모든 노하우가 적용된 것이 ‘샷 세이지 블루 마릴린’이다.

이 작품을 처음 소장한 이는 뉴욕의 전설적인 팝아트 소장가 레온 크라우샤였다. 그와 그의 아내는 워홀의 작품을 대거 소장, 1960년대 초반에 팝아트의 가장 대표적인 컬렉션을 형성한 바 있다. 이후 이 작품은 영향력 있는 화상으로 뉴욕의 페이스 갤러리의 파트너기도 했던 프레드 뮤엘러와 언론 재벌이자 유명 소장가였던 뉴하우스 주니어가 소장했다. 다음으로는 화상이자 소장가로 명성 높은 토마스와 그의 누나인 도리스 암만이 1980년대 초반에 구매해 이제까지 그들의 컬렉션에 포함돼 있었다. 이들 남매는 1977년에 취리히에 갤러리를 오픈한 이래 세계 톱 개인 소장가들은 물론, 전 세계 유수 미술관과 기관 컬렉션에 주요 작품을 판매하는 등 유럽 미술계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토마스가 워홀의 미술에 깊이 매료되면서 둘은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됐다. 그는 유럽에서 워홀의 명성을 공고히 구축, 지지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애썼다. 1978년에 취리히 미술관에서 대형 회고전을 기획, 워홀의 커리어 전개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런 그가 ‘샷 세이지 블루 마릴린’을 구매한 이후, 화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판매하지 않고 소장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처럼 이번 최고가 기록에는 유명 소장가의 손을 거쳐 명망 높은 컬렉션에서 소장해 40여년간 한 번도 시장에 나오지 않았던 점, 미국 팝아트 상징이 된 작품이라는 점 등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했다.

1968년에 워홀은 “모든 이가 15분 동안 유명해질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그 말은 옳았다.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오늘날 대중은 잠깐이나마 유명세를 누릴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됐다. 그러나 극히 일부만이 불멸의 명성을 얻는다. 가난한 헝가리 이민 가족 출생 앤드류 워홀라에서 세계적인 예술가가 된 앤디 워홀과 외로운 소녀 노마 진에서 슈퍼스타가 된 마릴린 먼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명성을 거머쥔 이들처럼.

앤디 워홀 마릴린 먼로 주제 - aendi wohol malillin meonlo juje

[정윤아 크리스티 스페셜리스트]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1호 (2022.06.01~2022.06.07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