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리메이크나 각색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원작에 얼마나 충실한가가 아니다. 독립적인 텍스트로 볼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오히려 각색 작업을 통해 발생한 오리지널과의 차이점들이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 차이점에서 각색자의 세계관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현재 방영중인 SBS 월화 드라마 〈타짜〉는 주지하다시피 허영만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각색 버전은 원작과는 많은 부분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다소 트렌디한 컬러를 보강하기 위해 이야기는 90년대부터 시작하며(원작은 한국동란 직후를 배경으로 한다), 드라마에 적합한 극적 갈등구조를 위해 새로운 캐릭터들도 다수 투입되었다. 이 같은 변화들이 드라마의 기능적인 필요에 따른 것이라면 몇몇 부분에서는 그 이유를 찾기 힘든 각색상의 변화들이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강대호(이기영)라는 새 캐릭터. 극중에서 그는 ‘지리산 작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원작을 읽은 독자라면 이 별명이 〈타짜〉 1부 주인공의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지리산 작두의 본명은 김곤, 즉 고니였다. ▲ SBS 드라마 〈타짜〉ⓒSBS여기서 혼선이 발생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고니’라는 이름 때문에 드라마 〈타짜〉가 만화 〈타짜〉 1부의 시대를 단지 90년대로 바꾼 것으로 일단 받아들였다. 그러나 드라마의 시작과 함께 김곤(장혁)과 지리산 작두는 다른 인물임이 밝혀진다. 더 놀라운 것은 지리산 작두가 이미 아귀의 손을 자른 적이 있다는 드라마 상의 설정이다. 이것은 만화 〈타짜〉 1부의 이야기와 같다. 물론 만화 〈타짜〉 1부의 주인공과 드라마 〈타짜〉의 강대호는 명백히 다른 인물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드라마 〈타짜〉의 강대호가 만화 〈타짜〉 1부의 고니와 유사한 역정을 밟아 왔으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은 평 경장 밑에서 수업을 쌓은 후 최고의 위치에 올랐고 아귀의 손을 작두로 자른 후 도박판을 떠났다. 만화 〈타짜〉의 지리산 작두는 그 후 도박을 끊었다고 한다. 그런데, 드라마 〈타짜〉의 지리산 작두는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이제 단순히 도박꾼이라 부르기 힘들어진 카지노 사업가 아귀(김갑수)에게 죽음을 당한다. 말하자면 드라마 〈타짜〉는 만화 〈타짜〉 1부의 끔찍한 속편 격인 셈이다. 만화 〈타짜〉에서 인물들이 싸워야 했던 것은 화투짝에 대한 스스로의 욕망이었다. 하지만 드라마의 후세계에서 그 싸움의 대상은 욕망을 구조화하고 확대재생산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그 시스템의 중심에 아귀가 있다. 다시 대결의 장으로 들어선 지리산 작두는 아귀 개인이 아니라 그 시스템과 싸워야 한다. 그리고 볼 것도 없이 그 싸움은 지리산 작두의 패배로 끝난다. ▲ 조민준 월간〈판타스틱〉편집장/드라마비평가무시무시한 속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드라마 〈타짜〉에는 지리산 작두의 얼터 에고(alter ego, 분신)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김곤이다. 최소한 우리는 그 김곤이 원작에서 지리산 작두가 걸었던 성공의 결과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아마도 아귀의 패망이 될 듯한 그 귀결은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다. 각색을 통해 더욱 모호해진 김곤=지리산 작두의 순환 고리 때문이다. 우리는 드라마 〈타짜〉를 통해 공고하기 짝이 없도록 완성된 도박의 시스템을 보았고 이제 아귀 개인의 패망으로 그것이 무너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여 설혹 김곤이 아귀를 꺾는다 한들 그 시스템이 건재한 만큼 김곤은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리산 작두가 치를 떨면서도 다시 돌아와야만 했던 것처럼. 이것은 참으로 묵시록적인 순환론이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반품/교환 방법
蓮義郞好學室
漫畵/타짜 蓮義郞 2013. 11. 1. 18:08 저작자표시 비영리 변경금지 '漫畵 > 타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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