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english - joh-eunji nappeunji nuga aneunga 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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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폭풍우 속에서 어떻게 살라남을 것인가가 아니라 빗속에서 어떻게 춤을 추는가 하는 것이다

구차하게 의존하는 것, 시도와 모험을 가로막는 것을 제거해야만 낡은 삶을 뒤엎을 수 있다는 사실.안전하다 살아가려고 마음먹는 순간 삶은 우리를 절벽으로 밀어뜨린다. 파도가 후려친다면, 그것은 새로운 삶을 살 때가 되었다는 메시지이다. 어떤 상실과 잃음도 괜히 온게 아니다. '신음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 삶이 의존하고 있는 안락하고 익숙한 것, 그래서 거 나아가지 못하게 날 붙잡는 것은? 질문은 그 자체로 삶의 기술이 될 수 있다. 스스로 그것과 작별해야 한다. 삶이 더 넓어지고 더 자유로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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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 우리는 어차피 천재가 아니다. 따라서 하고 또 하고 끝까지 해서 마법을 일으키는 수 밖에 없다.

세상은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는 대로 존재한다. 무엇을 보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는가, 무엇을 듣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듣는가, 무엇을 느끼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느끼는가가 우리의 삶을 만들어 나간다.

자신만의 레푸기움. 자신의 탑을 갖는 일은 중요하다. 그곳이 돌집이든 소나무집이든 바닷가 외딴 곳이든, 주기적으로 찾아가 분산된 감각을 닫고 자신의 영혼에 몰두하는 장소를 갖는 일은. 그것은 떠남이자 도착이다. 그곳에서 당신은 다른 사람이 되기를 멈추고 오로지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자신의 본얼굴을 감추느라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자신의 레푸기움에서는 타인을 위해 표정을 꾸밀 필요가 없으며, 외부의 지나친 소란으로부터 자신의 영혼을 지킬 수 있고, 당신을 움켜쥐었던 세상의 요구에서 벗어난다. 그때 당신은 내면의 성소와 연결된다. 그것은 지혜와 신뢰의 순간이고, 얼음이 아니라 물이 되는 순간이다. 내면의 성소에서 당신은 힘의 원천과 연결되어 다시 세상속으로 돌아온다. 당신은 단단히 오므렸던 봉오리를 열고 자신의 향기를

숨쉰다. 엘리자베스 아펠이 시에 썻듯이 '꽃을 피루는 위험보다 봉오리 속에 단단히 숨어 있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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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온전한 정신을 회복할 용기를 내기

위해사는 자신의 광기를 당당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연민으로 껴앉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단점과 맞 해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그 단점을 초월한 존재하는 것, 그래서 더 이상 그 문제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기 본연의 정체성과 가까워 지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무조건 사랑해 줄 누군가를

갈구한다. '넌 불완전해. 언제까지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어. 하지만 넌 아름다워.'라고 말해 줄 사람을. 하지만 만약 그 누군가가 자기 자신

안에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이다. 이 말은 얼마나 좋은 말인가! 불완전한 사람도 완벽한 장미를 선물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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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과 '파종'의 차이는 있다고 믿는다. 생의 한때에 자신이 캄캄한 암흑 속에 매장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사실 그때 우리는

어둠의 층에 파종된 것이다. 청각과 후각을 키우고 저 밑바닥으로 뿌리를 내려 계절이 되었을 때 꽃을 피우고 삶에 열릴 수 있도록. 세상이 자신을 매장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파종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파종을 받아들인다면 불행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을 좋아하고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그 사람이 좋아서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있을때 나 자신이 좋아지고 가장 나다워지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를 멀리하고 기피하는 이유는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싫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행운을 가졌는가? 누군가가 당신에게 " 나는 너와 함께 있을따 내가 가장 좋아." 라고 말할 수 있는 ..

우리는 날마다 본성 차원에서 타인과 접촉하고 있다. 우리 마음을 둘러싼 장벽이 그 접촉을 가로막는 것처럼 느낄지라도, 우리는 늘 그 순수한 차원을 품은 채 타인을 만나고 서로를 알아차린다. 미국 시린 마야 안젤루는 썼다. "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과 당신이 한 행동을 잊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어떻게 느끼게 했는가는 잊지 않는다."

추구의 여정에는 두가지 잘못밖에 없다. 하나는 히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끝까지 가지 않는 것이다. 어떤 길을 가든 그 길과 하나가 되라. 길 자체가 되기 전에는 그 길을 따라 여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시린 찰스 부코스키는 썼다. " 무엇인가을 시도할 것이라면 끝까지 가라. 그러면 너는 너의 인생에 올라타 완벽한 웃음을 웃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훌륭한 싸움이다."

그와 나는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영혼이 다른 것이 아니었다. 방식이 달랐을 뿐, 우리 둘 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몸짓을 다한 것이다. 우리의 지향점은 다르지 않았다. 삶에 대한 추구와 갈망이 내면에 있었다면 나는 나의 방식대로, 그는 그이 방식대로.

지금의 나는 내게 길을 가르쳐준 모든 만남과 부딪침의 결과물이다. 누구도 내가 걷는 길을 무작위로 교차하지 않는다. "당신의 삶에 나타나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 오는 사람, 한 계절에만 등장하는 사람, 혹은 평생 동안 만남을 갖는 사람이 있다. 그중 어디에 속하는지 알면, 저마다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당신의 삶에 온 경우, 그들은 대게 당신이 드러내 보인 필요를 충족해 주기 위해 온다. 당신이 고난을 통과하도록 돕고, 길을 안내하고, 지지해 주려고 온다. 물질적으로 정서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당신을 도우려고 온다. 그들은 신이 보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며, 실제로도 그렇다. 그들은 당신이 그들을 필요로 하는 그 이유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류시화 신작, 삶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

류시화 시인이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이후 2년 만에 신작 산문집을 냈다. 이번 책의 주제는 '삶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 책은 히말라야 신전에서 추방당한 후 세상을 방랑하며 자신이 아는 이야기들을 인간들에게 들려줘야만 하는 신관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시인은 모든 작가는 신관처럼 늘 새롭고 깨달음과 의미가 담긴 이야기를 이어가야 할뿐더러, 그다음 이야기도 읽고 싶게 만들어야만 하는, 이야기 전달자의 숙명을 짊어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우리 역시 자기 생의 작가이며, 우리의 생에 관한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우리 자신뿐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시인은 이 책에서 자기 생의 작가로서 어떤 이야기들이 생을 이루어왔는지, 그 과정을 통해 어떤 깨달음들을 얻었는지에 관해 담담하게 들려준다. 모든 것이 불안하기만 했던 대학 시절, 신춘문예 시상식을 앞두고 아버지께 상처를 주었던 아픈 기억, 여정은 몹시 고통스러웠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 랑탕 트레킹, 불안과 광기를 주체하지 못했던 인도의 명상 센터에 머물렀던 시절... 어떤 것은 재미있고, 또 어떤 것은 가슴 뛰게 만들고, 또 어떤 것은 눈물 날 만큼 감동적이다. 류시화 시인이 생에서 건져 올린 반짝이는 이야기들을 통해 다양한 삶의 의미와 지혜들을 배운다.

- 에세이 MD 송진경 (2019.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