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양씨 연예인 - jeju yangssi yeon-yein

양(성씨)

인용출처 https://namu.wiki/w/%EC%96%91(%EC%84%B1%EC%94%A8)

제주 양씨 연예인 - jeju yangssi yeon-yein

1. 개요2. 한국의 양씨

3. 외국의 양씨4. 매체5. 유명인

6. 가상 인물

1. 개요[편집]

한국의 성씨. 梁, 楊, 樑, 襄 등의 성씨가 있으며, 이 중 梁씨와 楊씨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국에는 梁씨가, 중국에는 楊씨가 많다. 樑, 襄씨는 인구가 극히 적은 희귀 성씨다.

2. 한국의 양씨[편집]2.1. [편집]

한국의 梁씨 인구는 460,600명(2015년)으로 24위이다. 남원 梁씨(307,724명)와 제주 梁씨(142,211명)가 대부분이며, 두 성씨 모두 제주도의 삼시조 중 한 명인 양을나(良[1]乙那)를 도시조로 삼고 있다. 

남원 梁씨는 2000년 기준으로 약 22만 명, 제주 梁씨는 약 13만 명을 마크하고 있다. 

본관이 있는 제주도 전라도는 흔하고 경상도에는 흔하지는 않지만 존재한다.[2]

梁(들보 량)을 한자로 쓸 때, 한국이나 중화권에서 있는 梁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경우에 오른쪽 위를 刃(칼날 인)으로 쓰는 鿄(U+9FC4)으로 쓰는데, 정확한 자형이 아니다. 오른쪽 위를 점이 두 개 찍힌 刅(비롯할 창)으로 써야 한다.

2.2. [편집]

楊씨의 인구는 69,101명(2015년)이고 청주 楊씨, 중화 楊씨 등이 있다. 야구감독 양상문, 연예인 양희은과 양희경 자매가 이 성씨를 쓴다. 

5. 유명인[편집]5.1. 梁씨 유명인[편집]

  • 김지수 - 배우, 본명은 양성윤

  • 신민아 - 배우, 본명은 양민아

  • 양건 - 바둑기사

  • 양계초(량치차오) - 청나라의 관료, 중화민국의 사상가, 정치가.

  • 양미라 - 배우

  • 양미선 - 일본어 동시통역사.

  • 양상국 - 바둑기사, 바둑해설가

  • 양수진 - 아나운서

  • 양승동 - 프로듀서, 現 KBS 사장

  • <del style="box-sizing:inherit;color:gray;">양아지 - 스트리머[5]</del>

  • 양우정 - 시인, 정치인

  • 양정모 - 전 기업인, 국제그룹 2대 총수

  • 양정모 - 전 레슬링선수(올림픽 1호 금메달리스트)

  • 양태빈 - 기상캐스터

  • 양팡 <del style="box-sizing:inherit;color:gray;">앙팡</del>

  • 양헌수 - 조선의 장군.

[2] 전국 분포도를 보면 유독 경상권에만 하얗다(...) 

경상도 출신의 양씨 유명인을 보면 야구선수 양준혁, 개그맨 양상국배구선수 양효진 

등이 있다. 다만 양준혁의 경우 아버지는 전라남도 해남군 출신이다.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프로필 학력 나이 부인 성접대 의혹

정치 2019.05.27 02:38

https://insight-community.tistory.com/1414

제주 양씨 연예인 - jeju yangssi yeon-yein

양현석은 대한민국의 연예기획자이다. YG 엔터테인먼트의 대주주이다. 

연예기획자가 되기 전에는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로 활동했다.

양현석은 종로구 안국동에서 전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 양재훈과 어머니 한춘자의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중동중학교(당시 종로구청 부근에 위치) 시절부터 허비 행콕의 대표곡 〈Rock It〉 과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Thriller》앨범의 영향을 받아 춤에 심취하여 댄서로 성공하는 것을 꿈꾸던 양현석은 광명공고 재학중 건축 관련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터라 졸업 후 종로의 한 지도제작회사에서 잠시 직장인 생활을 하게 되지만, 

고등학교 시절 자신과 함께 춤을 추었던 동료들이 TV에 속속 출연하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아 

곧바로 직장을 그만두고 

이태원에 있는 유명 브레이크 댄스팀 ‘스파크’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프로 댄서의 길에 들어섰다.

스파크의 연습실에서 연습하던 도중 가수 박남정을 만나 1989년 박남정과 친구들을 결성하여 

댄서 겸 안무가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1992년까지 활동)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서태지는 당시 국내 음악시장에서는 여전히 생소했던 랩을 접목시킨 댄스 음악을 이미 만들었지만 

이와 어울리는 안무와 백댄서가 필요했다. 

서태지는 국내 최고의 춤꾼으로부터 춤을 배우려는 계획을 세우고 수소문 끝에 박남정의 댄서로 활약하던 

양현석을 찾아가게 되었다.

서태지의 요청으로 양현석은 춤을 가르치다 서태지가 만든 난 알아요를 듣게 된다. 

양현석은 서태지에게 "노래가 좋다. 혹시 백댄서도 필요 하느냐? 라고 묻자 

이에 서태지는 "나도 때마침 댄서가 필요했다. 같이 할까요? 라고 되물고 음악적 교감이 맞은 양현석과 

호흡이 맞아 팀을 결성하기로 결정, 양현석에 팀 합류를 요청했다. 

이어 이주노까지 영입하면서 

국내가요계 이단아이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탄생하게 됐다.

1992년 한국 대중 음악사에 큰 획을 그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로 활동하면서 양현석은 

팀 리더 서태지 못지않은 큰 인기를 얻었다. 

멤버로 활동하면서 약간의 작사(1집 앨범 수록곡 '이 밤이 깊어가지만', 3집 앨범 수록곡 '널 지우려 해')와 

보컬, 춤, 드럼(4집 앨범 활동 당시) 등을 담당했던 양현석은 보컬에서는 서태지에게 밀렸지만 웬만한 노래와 랩은 충분히 혼자 소화할 수 있는 가창력을 갖추게 되었고, 

춤에서는 이주노의 카리스마에 눌려 2인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소울 댄스 만큼은 선구자적 역량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현석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로 활동 중에 가수 박선주 등으로부터 화성학을 2년동안 배우고 

컴퓨터 미디 작곡도 시작하는 등 춤 이외에 음악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학습해갔다.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후, 양현석은 양군기획을 설립하고 자신이 기획한 첫 번째 작품인 

정통 힙합 그룹 킵식스를 선보이지만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 못했으며 

이 같은 자금난을 극복하기 위해[2] 양현석은 솔로 1집을 내고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양현석은 이름을 "양군"으로 바꾸고 회사를 YG 엔터테인먼트로 개명하였으며, 

흑인 음악 전문 레이블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1997년 양현석 자신의 두 번째이자 YG 엔터테인먼트의 

첫 결과물로 지누션을 데뷔시켰다. 

양현석이 직접 작곡한 《가솔린》이 각종 가요 차트에 상위권에 올리며 이름을 알렸지만, 

실질적으로 히트를 친 것은 듀스 출신의 이현도가 작사/작곡하고 엄정화가 피쳐링한 《말해줘》가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부터였다. 

지누션을 시작으로 원타임 등 오버그라운드 랩퍼들을 데뷔시키고, 세븐, 렉시, 빅뱅, 2NE1 을 데뷔시켰다. 

양현석은 2000년 서태지가 미국에서의 긴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컴백한 때부터 

서태지의 6집 앨범 프로모션과 매니지먼트까지 직접 돕기도 했다. 

2002년에는 R&B 전문 레이블 엠보트(M.Boat) 엔터테인먼트와 손을 잡고 휘성, 거미, 원티드, 빅마마와 같은 가수들을 데뷔시켰다.

또한 매니아적인 힙합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운 YG 언더그라운드에는 Masta Wu, 스토니 스컹크, 

45RPM 등이 소속되어 있다. 

양현석은 2007년 스토니스컹크의 멤버인 스컬을 미국으로 진출시켜 한국 최초로 

미국 빌보드 'Hot R&B/Hip-Hop Singles Sales'차트에 진입시키는 쾌거를 이룩했다.

양현석은 2003년 12월 12월 SBS가요대전 올해의 음반 프로듀서상을 수상하였으며, 

YG 패밀리 외부 음반으로는 최초로 2008년 7월 7월 발매된 엄정화의 10집 앨범 'D.I.S.C.O.'를 

직접 프로듀싱하고 수록곡 '흔들어'와 'Celebration'에 작사가로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9년 상반기에는 빅뱅의 일본 진출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였으며, 하반기에는 YG 엔터테인먼트 

두 번째 여성 힙합 그룹인 2NE1의 첫 번째 앨범 "1st Mini Album" 을 프로듀싱하여 앨범 수록곡 중 

첫 번째 싱글 'I don't Care'의 국내 가요 차트 석권을 주도하였다.

양현석은 국내에서는 거의 드물게 자신이 소속사 가수들의 앨범을 직접 믹싱하는 엔지니어이며, 

또한 거대 기획사를 이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보도자료와 홍보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하지 

않는 걸로 유명한데, 

그가 YG공식 블로그의 ‘Message from YG’란 제목으로 일종의 공지사항을 팬들에게 올리는 것이 

공식적인 발표의 전부다. 

YG엔터테인먼트의 이 같은 경향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들이 

공통적으로 그다지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인한다고 보기도 한다.

2010년 3월 9일 오후 YG 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9년간의 열애와 결혼계획을 발표했다. 

이은주는 

2002년 데뷔한 여성그룹 스위티 출신으로, 2006년에는 원타임 출신의 송백경과 함께 무가당 멤버로 

활동한 바 있다. 젝스키스 출신인 이재진의 동생이기도 하다. 

양현석은 예비신부 이은주의 생일인 3월 9일에 맞춰 생일선물로 열애사실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5월 15일에는 연인 이은주가 임신 4개월 째이며 동시에 올해 안에 혼인신고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2010년 8월 이은주 사이에서 딸 양유진을 출생시키고 득녀하였다.


양현석은 넵튠스 (The Neptunes) , Jermaine Dupri, 팀버랜드 (Timbaland), 테디 라일리 (Teddy Riley), 

퍼프 대디 (Puff Daddy) 등과 같은 힙합 / 알앤비 프로듀서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YG 엔터테인먼트 설립 이후부터 미국 유명 프로듀서들의 스타일을 YG 엔터테인먼트의 작업 방식이나 기획사 운영 시스템에 지속적으로 적용하고 있는데, 

YG 패밀리라는 이름 하에 소속사 내 뮤지션/프로듀서들과 끈끈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여 크루(Crew)의 개념을 오버그라운드 음악계에 끌어들인 점, 또한 YG 내 음반 작업시 반주(악기 연주 + 비트)를 만드는 작업과 랩/보컬 멜로디를 만드는 작업을 구분해서 공동작업한다는 점 등이 이에 기인한다[주 1]. 

또한 미국 음악 산업의 중심에 있는 프로듀서들과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 다양한 정보는 물론 인맥을 쌓는 

데에 있어서 국내 제작자들 중 가장 적극적이다. 2008년 하반기 세븐의 미국 데뷔앨범 제작에 Usher, TLC 등과의 작업으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제작자 마크 시멜 (Mark Shimmel)을 비롯, 리치 해리슨 (Rich Harrison), 

닥차일드 (Darkchild) 등 그래미상 수상경력의 대형 힙합 프로듀서들을 대거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도 

바로 이러한 미국 '본토' 프로듀서들에 대한 공격적 인맥전략에서 얻어진 성과로 보곤 한다.

그는 대한민국 음악계도 미국처럼 넵튠스같은 유명 프로듀서가 음반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수보다 프로듀서 중심 체계로 재편될 것이라는 신념 아래 가수 이외에 프로듀서들의 발굴, 양성에도 

계속 힘써 현재 YG 엔터테인먼트는 최신 트렌드를 만드는 데 능한 젊은 프로듀서들을 상당수 갖추고 있다. 

YG의 초창기부터 함께 한 페리를 비롯해 1TYM의 테디와 스토니스컹크의 쿠시 그리고 빅뱅의 지드래곤 

등이 양현석의 프로듀서 조련 시스템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이미 수십억의 수익을 달성했던 양현석은 동생 양민석과 YG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후 음반기획과 동시에 주식과 부동산 등에 꾸준히 투자를 하여 이미 연예계에서 손꼽히는 재력가로 알려져 있다.

양현석은 PD 기획 등을 맡고 있고 양민석은 경영 전반을 전담하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의 수장으로써(그의 동생 양민석과 함께 법인 공동 대표이사) 연 100억대의 매출 규모의

음반 제작 이외에, 방송영상물, 음반제작사인 팬엔터테인먼트의 신규상장으로 26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남겼으며, 자회사인 YG엔터테인먼트 역시 2011년 말 우회상장이 아닌 직상장에 성공함으로써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3].

게다가 상장시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빅뱅과 2NE1에 치중된 매출비율을 싸이와 에픽하이 영입으로 해소하려 했는데,

싸이가 발표했던 6집 앨범에 수록된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연예계 최고 주식부호가 되었다.

증권가에서는 신인 이하이의 훌륭한 성적, 내년 초 데뷔 예정인 신인 걸그룹 등의 소재 등을 이유로 YG의

주가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 

또한 1999년 홍익대 부근에 힙합 클럽 NB1, NB2 등을 차례 차례 인수, 운영하면서 시작한 '클럽사업' 역시 

젊은 세대의 발길이 잦은 강남과 압구정, 홍대 일대의 문화를 바꿔 놓고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제일모직과 YG가 합작하면서 한류를 기반으로 한 패션사업도 돛을 올린 상태이다.​

양현석
1970년 1월 9일 (49세) 서울 출생

학력
서울교동초등학교 (졸업)
중동중학교 (졸업)
광명공업고등학교 (졸업)

인용출처 

https://insight-community.tistory.com/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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