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고 생각나는 여자 - heeojigo saeng-gagnaneun yeoja

사귀기 전에는 남자가 약하고 여자 쪽이 강하다고 했다. 남자가 을, 여자가 갑이란 이야기다.

사귀면서, 연애가 오래될수록 남자 쪽이 강해지고, 여자 쪽이 연약해진다고 썼다. 사귀기 전의 갑을 관계가 뒤바뀐다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는 사귀고 나서, 즉 헤어지고 다시 여자 쪽이 강해지고, 점차 힘을 회복하는 이유를 써볼까 한다. 사귀기 전, 사귀면서, 헤어지고 난 후의 연애 3단계에 따른 갑을 관계 이론의 마지막 글(ㅋㅋ)이다.

헤어지고 나서 다시 여자 쪽이 강해지며 힘을 회복하는 이유는,

1. 사귀면서 후회 없이 잘해줬기 때문이다.

종종 여자친구는 헤어지며 한참 관계가 나빠질 무렵, 분노하여 저주하듯이 말한다. “너(오빠), 다음에 다른 여자 만나봐요. 내가 얼마나 잘해준 건지 알게 될 테니까”

여자들은 사귀면서 남자친구에게 헌신했고, 남자친구만 생각했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진심을 다했다. 반면 남자들은 여자의 사랑과 호의를 마치 자신이 당연히 누려야 할 특권인 듯 생각하고 여자에게 서운하게 대하고, 건성으로 대답하고, 약속을 어긴 적도 있다.

이런 사귈 때의 모습 때문에 여자 쪽에서는 ‘나는 할 만큼 했다’라며 후회 없이 떠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정성을 다했는데 그걸 배신하고 떠나는 남자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가지지 않고, 마음껏 미워할 수 있다.

반면 남자 쪽에서는 후회, 미안함, 아쉬움이 남아서 옛날 관계를 붙잡고 있거나, 계속 마음속에 두고 생각하게 된다. 앞서 남녀가 사귈 때, 남자의 고백을 거절한 여자가 미안해서 사귈 때는 남자에게 잘해준다고 했다. 반대로 헤어지고 나서는 사귈 때 여자에게 못해준 남자는 미안해서 여자를 잘 떠나지 못한다.

2. 여자의 냉정한 현실 인식

여자는 감성적이다, 연약하다고 하고 그런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남자는 수학/과학을 잘하고, 여자는 국어/문학을 잘한다고 하는 게 바로 이런 이유이다.

여자들이 약하지만, 약하기 때문에 그만큼 현실적이다. 분위기에 민감하고, 눈치가 빠르고, 쓸데없는 대의니, 공상이니 보다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여자들은 헤어지고, ‘관계가 끝났다’라는 사실을 빠르게 인식한다. 그리고 무섭게 울고, 슬퍼하고 현실을 인정하고 새 삶을 준비한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이 돌변한 듯 활달해지고, 얄밉게도 사귈 때보다 더 좋아 보인다.

그런데 남자들은 ‘관계가 끝났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랑은 계속 이어지고 있고, 헤어지고도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으며, 또 훗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즉 헤어지고도 그녀는 여전히 나의 ‘여자친구들 중 한 명’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다시 오라고 하면, 조금만 사과하면, 그녀는 다시 달려 온다고 생각한다. 잃어버린 강아지처럼.

여자들은 이별을 ‘끝’이라고 인정하는 반면 남자들은 이별은 ‘끝이지만 끝이 아닌 관계’로 어정쩡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여전히 미련을 두고, 이 관계에 묵였있고, 이런 특성 때문에 남자가 헤어진 후에도 질척거린다.

3. 여자에 대한 남자의 소유욕, 여전히 그녀는 내 것이라는 착각

인질범이 인질을 잡고 경찰과 피해자를 협박하는 이유는 그 사람들의 소중한 것을 볼모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을 잃을래, 아니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줄래?’라는 협박을 한다.

이와 비슷하게 사귀면서 여자가 남자에게 잘해주고, 남자가 여자와 사랑을 나누다 보면, 알게 모르게 남자는 여자에 대해 소유권을 가졌다는 생각을 한다. 쉽게 말해 이 여자의 모든 것은 내 것이다는 생각을 한다.

헤어지면 여자는 배신한 남자, 다른 여자 사랑할 남자가 미워서 그의 흔적을 지우고, 빨리 잊으려 하지만, 남자는 ‘여전히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여자의 '사랑'이나, 그 여자의 '의식', '몸'을 자신의 것이라 생각한다. 이럴 경우 여자가 이제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으려고 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려고 할 경우 ‘자신의 것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 남자는 약자가 된다. 자신의 것을 뺏기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여자에게는 '그 남자의 것'을 처분할 권리가 생긴 셈이다.

헤어지고 나서는 막상 아무렇지 않아 하던 남자가, 여자가 새 남자친구를 사귀려 하거나, 사귀었다는 말을 들으면 갑자기 조급해지며, 다시 연락한다. 내 것인 그녀를 다른 남자가 가져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비로소 잃은 것의 소중함을 깨닫거나 내 것을 빼앗겼다는 분노를 느낀다.

4. 남자의 여자에 대한 본능적인 우월감

사회 통념으로 '남자는 이래야 돼, 남자는 여자를 감싸주어야 해,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야 해'라는 굴레가 있다. 이건 초등학교 때부터 나이가 한참 들어서까지 남자들을 따라다닌다.

연애가 끝나고 나서도 남자는 이런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서로를 미워하고 적으로 여기게 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이 강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자를 격렬하게 미워하지 못하고, 그녀를 정서적으로 공격하지도 못한다. '내가 한때 사랑했던 여인, 게다가 연약한 여자를 내가 어떻게 증오할 수 있나'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걱정한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를 보다 가열하고 매몰차게 미워할 수 있다. 스스로가 관습적으로, 관념적으로 강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남자를 적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랑하다고 헤어진, 다시 말해 배신한 남자에게는 가차 없다. 여자들은 가장 서운했던 순간을 생각하며 미움을 극대화한다. 매몰차게 대할 수 있단 뜻이다.

격렬하게 미워하고, 증오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여자가 헤어지고 나서 조금 더 강하다.

5. 그동안의 연애에 대한 공부

재밌게도, 연애에 대한 가장 극적이고 복잡한 장면은 헤어지고 나서 펼쳐진다.

한 연인이 연애하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만약 이혼을 한다면, 이들이 가장 격정적이고 격렬한 감정을 갖게 되는 때는 위의 시간들 중, '이혼했을 때'이다.

헤어지고 난 이후, 또는 이혼하고 난 이후는 인간의 감정을 극치로 몰아간다. 특히 이혼의 스트레스는 죽음을 앞둔 스트레스와 비슷하다고들 한다. 이처럼 한 연인의 이별에는 이런 '이혼과 죽음의 속성'이 묻어 있다. 즉 연애에 있어서 가장 격렬한 순간이 '헤어지고 난 다음'이란 뜻이다.

이런 절체절명의 극적인 순간을 맞이함에 있어서,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공부한 쪽이 유리하다.

여자들은 연애 소설도 많이 읽고, 연애 드라마도 많이 보고, 여자친구들과 연애와 관련된 이야기도 서로 나누고 하는 과정을 통해 연애 전반에 관해 지식이 풍부하다. 어릴 때부터 연애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남자들은 ‘여자가 좋다, 가까이 있고 싶다’라는 정열과 소유욕, 감정 만으로 연애에 뛰어든다. 연애 전반에 대한 사고를 하는게 아니라, '저 여자를 내 여자친구로 만들어야겠다'는 순간적 욕심이 더 강하다. 그래서 어릴 때나 혹은 그 이후에도 실제로 연애에 대해서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가 많다. 여자와 연애하면서 배운다. 그리고 한번 헤어지고 나면 좀 나아진다.

이런 남녀가 이별을 동시에 맞이했을 때, 당연히 상대적으로 준비되고 공부한 여자 쪽이 유리하다. 여자의 연애 공부가 빛을 발하고, 반면 멀뚱멀뚱 바보같이 두리번거리던 남자는 그저 괴로워할 뿐.

헤어지고 나서도 어떻게 할지에 대해 남자들은 다른 친구나 선배에게 절대 묻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이고, 남자들은 자신의 일을 남에게 잘 토로하지 않는다. 남자들이 고독사를 많이 하거나 무연고 죽음이 많은 이유가 이런 성향 때문이다. 상의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만의 고정관념에 갇히고, 그래서 연애나 이별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6. 남녀 상관없이 헤어진 경험이 있는 쪽이 유리하다.

위에서 여자가 헤어지고 유리하다고 적었고, 사귈 때 여자가 유리, 헤어지고 여자가 유리 운운하는 글을 적었지만, 사실 모든 과정에서 경험 있는 쪽이 유리하다. 한번 대학 4년 과정을 마쳐본 쪽과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 중 누가 더 많이 알고 있을까, 그와 같다.

연애에도 그만큼 경험이 힘을 발휘하는 분야이다. 미리 시간 들여 공들여 공부한 사람이 유리하고, 그들은 자신의 유리함을 활용하려는 경향성도 있다.

이렇게 연애 3단계에 걸친 갑을 관계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사람마다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대개의 경향성으로 살펴봤다.

비슷한 나이 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끼리 알콩달콩 연애하는 게 낫다. 서로 배워하고, 서로 성장해가면서 말이다. 연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이가 들면 남자나 여자나 다 얌체가 되고 여우가 된다. 사람이, 순수하질 못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경험이 있다, 나이가 많다는게 유리하단 뜻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다 약아지고, 이기적으로 되는 건 아니다. 자신이 경험이 있고, 나이가 많으면 그만큼 상대의 실수를 감싸안고, 연애의 위험한 부분을 미리 알고 '내가 더 노력하고 메꿔나가야지, 내가 막아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항상 되풀이 되는 결론이지만, 그 사람에 따라 다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