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영국 식민지 - daeman yeong-gug sigminji

지난 700년간 싱가포르는 다양한 이민자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반겨주는 말레이반도의 번창하는 항구였습니다. 

1299~1818년: Temasek에서 Singapura로

말레이 해상 제국의 역사를 다룬 말레이 연대기(Sejarah Melayu)에 따르면 현재의 싱가포르 섬은 본래 “Temasek”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인도네시아 팔렘방의 왕자가 섬을 방문하였을 때 사자를 발견하고 산스크리트어로 사자 도시를 뜻하는 “Singapura”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또한, 현재의 고고학자들은 14세기 싱가포르 항구에서 무역의 증거로 다양한 천연 산물과 도자기 등의 거래 물품들을 발굴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유물들은 근처 말레이시아의 Malacca와 Johor 지방뿐만 아니라 무려 수백 년 전 Srivijaya 제국의 것들도 발굴되었습니다.

1819~1942년: 영국 식민지

1819년 1월 29일 아침, 한 영국 정치인이 싱가포르 섬에 발을 내딛습니다. 그는 싱가포르가 별 볼 것 없는 작은 섬에서 발달한 도시로 성장하는데 큰 기반을 놓아 싱가포르 국민들에게 현재까지도 추앙받는 인물인 영국 정치인 스탬퍼드 래플스 (Stamford Raffles, 1781-1826)입니다.

래플스는 당시 싱가포르를 통치하던 Johor의 술탄과 조약을 맺어 영국 무역소를 설립합니다. 이는 말레이어로 바다 민족을 뜻하는 Orang Laut라고 불리던 원주민들만이 서식하던 싱가포르를 번창하는 자유항구도시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이로써 싱가포르는 멀리서도 무역업자들과 노동자들을 끌어모으게 되었습니다. 

1942~1945년: 일제강점기

세계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2월 15일, 우리나라와 같이 싱가포르도 일본 제국의 손아귀에 넘어갔습니다. 싱가포르는 남쪽의 빛이라는 뜻을 가진 Syonan-to(昭南)라는 일본어 지명도 갖게 됩니다. 일본의 점령은 1945년 9월 12일 돌아온 영국군에 일본의 항복까지 3년 7개월간 지속되었습니다.

1945~1965년: 독립에 이은 합병

전쟁이 끝난 후 싱가포르의 이민자들은 독립을 위해 영국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1959년에는 내부 자치권을 부여받았으며 독립 정부는 선거를 통해 싱가포르의 초대 수상인 리콴유(Lee Kwan Yew)를 당선시키고 입법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첫 국가 원수로는 유소프 빈 이샤크(Yusof Bin Ishak)가 당선되었습니다. 1963년 9월 16일, 싱가포르는 Malaya, Sabah 그리고 Sarawak과 합병하면서 한 세기에 걸친 영국의 식민 통치가 끝났습니다. 

1965~1970년대: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

1965년 8월 9일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에서 분리되어 주권국가로 재탄생하였습니다. 농촌인구는 고층 공공 주택에 살게 되었고 외국 투자자들의 경제활동에 제한을 두며 국가 건설과 도시화를 향한 치열한 시기가 이어졌습니다. 또한, 한국과 같이 방역 제도를 도입해 든든한 국가 방위를 마련하고 싱가포르의 여러 인종들을 단합하기 위해 영어가 공용어로 설정되었습니다. 

1980~1990년대: 아시아의 기적

신생 국가로써 싱가포르는 노동 중심의 경제에서 고도의 기술 개발을 통해 개발도상국 신분을 탈피했습니다. 이는 1985년 싱가포르가 독립 후 겪은 첫 불황에 대한 대안이었습니다. 새로운 성장의 방향을 찾기 위해 싱가포르는 서비스업의 중심지가 되면서 정부는 경제를 금융과 정보 기술 등 제조업 이상으로 확장하게 됩니다. 또한 서비스 및 인재의 지역 수출국으로서 “제2의 날개”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현재: 미래지향적 글로벌 도시

싱가포르는 안정적인 사업 환경 그리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도시 전경으로 널리 인정받는 나라입니다. 미래 지향적인 이 도시국가는 지식 및 혁신 경제를 구축하고 기술을 활용하여 스마트 국가로 발전하기 위한 미래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서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조세 제도 – 개인소득세 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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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s Detailed Infor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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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주의와 언어 -대만, 인도, 한국에서의 '동화'와 저항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S3011
Year(selected) 2004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6년 02월 17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6년

대만 영국 식민지 - daeman yeong-gug sigminji
Research Summary

  • 대만 영국 식민지 - daeman yeong-gug sigminji
    Korean
  • 이 연구는 일본의 식민지 조선/대만과 영국의 식민지 인도에서 지배자의 언어(일어와 영어)와 식민주의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였다. 곧 식민정권이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식민지엘리트를 정권에 종속시키는 수단으로 기능한, 언어를 통한 지배자의 통치정책과 시행과정을 추적하였다. 또한 이 연구는 피지배자가 위로부터 부과된 언어정책에 순응하고 저항한 다양한 방식을 검정하고,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그 변증법적 상호작용의 결과를 비교사의 관점으로 통찰하였다.
    19세기 말 식민주의의 후발주자로 등장한 일본은 식민지경영의 오랜 경험과 방대한 식민지를 보유한 영국의 정책과 통치방식을 취사선택하여 첫 식민지 대만에서 실험하고, 조선에 다시 적용하는 유리한 입장이었다. 대만과 조선을 지배한 일본은 먼 곳에서 인도에 도래한 이질적인 인도에서의 영국 지배자와 달리 지리적 인접성과 인종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두 식민지를 일본의 지방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언어정책에 반영되었다.
    영국은 식민지 인도에서 수억의 피지배자와 소수의 백인지배자를 연계할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해 영어로 고등교육을 시행하지만, 머지않아 영어를 배운 인도인의 민족주의라는 반동을 경험하였다. 영국의 실패를 간파한 일본은 대만과 조선에서 엘리트교육보다 보통교육을 통해 전면적이고 강압적인 일어교육에 나섰다. 언어정책은 달라도 영국과 일본은 지배자의 언어가 야만에서 문명으로 가는 수단이라고 설파하였고, 일부 피지배자는 개화를 위해 지배자의 언어를 수용하였다.
    지배자가 동화를 전제로 강제한 언어교육은 수동적 희생자가 아닌 또 다른 피지배자들에 의해 민족주의와 정치적 자각의 언어로 바뀌었다. 인도에서 정복의 언어 영어는 지리적 차이와 언어의 불통을 넘어 민족주의의 언어가 되었다. 다양한 부족과 언어가 공존하는 대만에서 일어는 상호소통의 언어로 공동체 의식과 일체감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단일민족인 조선에서 일어는 지배논리를 내면화하여 ‘민족 정체성’의 분열을 겪거나 민족의식을 각성하여 일제를 비판하고나 도전하는 도구로서의 이중성이 도드라졌다.
    독립 이후 영어는 사라지지 않고 다언어사회인 인도에서 연계어로 살아남아 교육과 문화 전반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힌디에 영어가 더해진 힝글리시는 인도어의 하나로 여겨진다. 조선과 대만에서 일어는 해방과 함께 완전히 사라지고 한동안 외국어로서의 순기능도 잃었다 조선에서는 멸절 위기에 몰렸던 조선어가 국어로 부활했지만, 대만은 본토에서 이주한 한족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언어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부상했다. 다시 중국어를 부과 받은 대만인은 그 반발로 오히려 먼 과거인 일어와 일제시대에 대해 ‘향수’를 갖게 되었다.
    식민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부과한 언어정책은 성공했는가 식민지인도에서 영국의 언어정책은 성공한 듯 보였으나 곧 실패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영어가 살아남았다는 장기적 견지에서는 성공이었다. 1943년 대만에서 일어 보급률이 71%, 조선이 35%라는 결과처럼 대만에서의 언어정책은 성공적이었다. 조선과 대만에서 일본의 일어정책은 피지배자를 완전히 동화한다는 애초의 목표에서는 ‘실패’였지만, 두 나라 사람들의 정신과 문화, 생활에 심대한 영향을 주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공동체의 분열에도 연계된 점에선 부분적으로 성공했다.
    식민주의와 언어를 다룬 본 연구가 내린 주요한 결론은 식민지에서 문화지배의 수단으로서의 언어정책의 성공여부가 식민지배자의 힘과 정책, 체계적인 시행에 못지않게 그것을 수용하고 거부하는 피지배자에게 달렸다는 점이다. 가장 강제성이 낮았으나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인도의 영어는 수많은 언어를 가진 인도의 문화적 융통성과 관련이 있고,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조선보다 대만에서 일어가 보다 성공적인 이유도 다언어사회라는 대만의 특성에서 그 일단을 찾을 수 있다.

  • 대만 영국 식민지 - daeman yeong-gug sigminji
    English
  • This study is an attempt to uncover the relations between colonialism and language of the colonizer in British India and Japanese occupied Taiwan and Korea, ie. English and Japanese language. We tried to pursue the patterns and phenomenons of the colonial controls and practises by means of the language policy followed in the each colony to acquire hegemonic influences and indigenous elites’ subjectivity.
    Two colonial countries were not identical, since Japan, a relatively late-comer, could enjoy a better position to emulate Britain, one of the oldest and the largest colonial power. Taiwan became an experimental laboratory to Japan for testing colonial language policy that subsequently implemented into Korea. Japan considered Taiwan and Korea as a part of their territory, relying on geographical proximity and racial affinity, unlike the British, being several thousand miles away from home with difference in creed, race and culture from the colonized. The colonial language teaching was an extensions of the overall colonial patterns and structures.
    The British spent their efforts in pursuit of a logical language policy to win over Indian elites who could be an intermediary between them and the vast masses, but received boomerang effects. In contrast, Japan intended to teach Japanese language by force to inculcate the masses of the colonies into loyal Japanese subjects. Even though colonial language policies were divergent, the purpose was to aimed in unison to en-culture the ruled into the culture of the ruler to serve to fortify colonial control under the veil of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Change could not simply imposed from above. English learning bred among Indian elites not only servility and complicity but also resistance and national feelings, turning the language of the colonialism into the language of nationalism. In Taiwan, where multiracial and multilingual identities were coexisted, Japanese language helped Taiwan people to nurture a sense of community spirit. While in Korea where the nature of society was rigid and monolithic, Japanese language did not meet a flood of enthusiasm but fragmented responses .
    English language spoken by a few in India survived after the demise of British rule and became stronger nowadays than ever. In contrast, Korea and Taiwan after the colonial rule rejected Japanese language in toto. While Japanese in Korea substituted immediately for Korean language, Taiwan where new political force were constructed witnessed serious language related social problems, causing nostalgic attitude toward colonial language.
    Were the colonial powers after all achieved its intended object The British did not come off in the short run but made a great coup in the long view as Indian utilized and indigenized the language as an 'Indian English'. The destiny of Japanese language in Taiwan and Korea went somewhat different directions. The number of population who were conversant in Japanese language in 1943 reached 71% in Taiwan and 35% in Korea respectively, indicating the level of success of the Japanese language policy.
    However one may explain the relative high percentage of Taiwan in terms of its multiracial and multilingual culture, unlike Korea with its strong homogeneity. The survival of English in India also reveals the flexible nature of societies with the co-existence of multiple cultures and languages. It can be argued, in conclusion, that the responses of the colonized towards colonial language teachings and policies were partly due to the differences in the nature of colonial rule, but also partly due to the nature of indigenous society and its historical experiences.

대만 영국 식민지 - daeman yeong-gug sigminji
Research result report

  • 대만 영국 식민지 - daeman yeong-gug sigminji
    Abstract
  • 이 연구는 일본의 식민지 조선/대만과 영국의 식민지 인도에서 지배자의 언어(일어와 영어)와 식민주의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였다. 곧 식민정권이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식민지엘리트를 정권에 종속시키는 수단으로 기능한, 언어를 통한 지배자의 통치정책과 시행과정을 추적하였다. 또한 이 연구는 피지배자가 위로부터 부과된 언어정책에 순응하고 저항한 다양한 방식을 검정하고,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그 변증법적 상호작용의 결과를 비교사의 관점으로 통찰하였다.
    19세기 말 식민주의의 후발주자로 등장한 일본은 식민지경영의 오랜 경험과 방대한 식민지를 보유한 영국의 정책과 통치방식을 취사선택하여 첫 식민지 대만에서 실험하고, 조선에 다시 적용하는 유리한 입장이었다. 대만과 조선을 지배한 일본은 먼 곳에서 인도에 도래한 이질적인 인도에서의 영국 지배자와 달리 지리적 인접성과 인종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두 식민지를 일본의 지방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언어정책에 반영되었다.
    영국은 식민지 인도에서 수억의 피지배자와 소수의 백인지배자를 연계할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해 영어로 고등교육을 시행하지만, 머지않아 영어를 배운 인도인의 민족주의라는 반동을 경험하였다. 영국의 실패를 간파한 일본은 대만과 조선에서 엘리트교육보다 보통교육을 통해 전면적이고 강압적인 일어교육에 나섰다. 언어정책은 달라도 영국과 일본은 지배자의 언어가 야만에서 문명으로 가는 수단이라고 설파하였고, 일부 피지배자는 개화를 위해 지배자의 언어를 수용하였다.
    지배자가 동화를 전제로 강제한 언어교육은 수동적 희생자가 아닌 또 다른 피지배자들에 의해 민족주의와 정치적 자각의 언어로 바뀌었다. 인도에서 정복의 언어 영어는 지리적 차이와 언어의 불통을 넘어 민족주의의 언어가 되었다. 다양한 부족과 언어가 공존하는 대만에서 일어는 상호소통의 언어로 공동체 의식과 일체감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단일민족인 조선에서 일어는 지배논리를 내면화하여 ‘민족 정체성’의 분열을 겪거나 민족의식을 각성하여 일제를 비판하고나 도전하는 도구로서의 이중성이 도드라졌다.
    독립 이후 영어는 사라지지 않고 다언어사회인 인도에서 연계어로 살아남아 교육과 문화 전반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힌디에 영어가 더해진 힝글리시는 인도어의 하나로 여겨진다. 조선과 대만에서 일어는 해방과 함께 완전히 사라지고 한동안 외국어로서의 순기능도 잃었다 조선에서는 멸절 위기에 몰렸던 조선어가 국어로 부활했지만, 대만은 본토에서 이주한 한족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언어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부상했다. 다시 중국어를 부과 받은 대만인은 그 반발로 오히려 먼 과거인 일어와 일제시대에 대해 ‘향수’를 갖게 되었다.
    식민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부과한 언어정책은 성공했는가 식민지인도에서 영국의 언어정책은 성공한 듯 보였으나 곧 실패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영어가 살아남았다는 장기적 견지에서는 성공이었다. 1943년 대만에서 일어 보급률이 71%, 조선이 35%라는 결과처럼 대만에서의 언어정책은 성공적이었다. 조선과 대만에서 일본의 일어정책은 피지배자를 완전히 동화한다는 애초의 목표에서는 ‘실패’였지만, 두 나라 사람들의 정신과 문화, 생활에 심대한 영향을 주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공동체의 분열에도 연계된 점에선 부분적으로 성공했다.
    식민주의와 언어를 다룬 본 연구가 내린 주요한 결론은 식민지에서 문화지배의 수단으로서의 언어정책의 성공여부가 식민지배자의 힘과 정책, 체계적인 시행에 못지않게 그것을 수용하고 거부하는 피지배자에게 달렸다는 점이다. 가장 강제성이 낮았으나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인도의 영어는 수많은 언어를 가진 인도의 문화적 융통성과 관련이 있고,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조선보다 대만에서 일어가 보다 성공적인 이유도 다언어사회라는 대만의 특성에서 그 일단을 찾을 수 있다.

  • 대만 영국 식민지 - daeman yeong-gug sigminji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본 연구와 관련하여 연구자들은 개별 국가-대만, 인도, 한국의 경험에 근거한 3편의 논문을 이미 등재학술지에 발표하였다. 연구자들은 앞으로 자료와 사고(思考)를 더해 연구를 보완하고 3개국을 비교사적 관점으로 통찰하여 조만간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프랑스의 식민지 베트남이나 아프리카 식민지의 사례를 비교하여 이 주제에 대한 보다 통찰력 있는 연구서를 내려는 욕심도 있다.
    이 연구는 기존의 식민주의의 연구를 심화하고 연구의 지평을 확대하는 데 일익을 담당할 것이다. 식민주의를 다룬 연구는 많지만 식민주의의 문화적 지배, 특히 언어와 식민통치와의 상관관계를 다룬 연구는 드물다. 특히 일본의 식민지 대만과 우리나라, 영국의 식민지 인도를 함께 다룬 연구는 전무하다. 더구나 식민주의를 다룬 연구들은 지배자의 헤게모니와 힘의 행사에 초점을 둔, 위로부터의 관점만 다룬 경우가 많았다. 이 연구는 식민정부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분석한 정치적 결정론의 한계를 벗어나 아래로부터의 반응을 함께 분석하였다.
    대만을 우리나라와 비교한 본 연구는 대만에 대한 연구와 이해의 편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식민지라는 공통의 기억과 전후 미소냉전체제에서 국토분단과 이산의 아픔을 겪었으며, 아시아의 네 마리 작은 용이 되는 경제적 기적을 이루어내고 민주화운동으로 독재정권을 타파한 대만의 어제를 이해하는 것은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공고히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인도와의 비교를 다룬 본 연구는 이즈음 경제대국으로 거듭나는 인도를 이해하는 시사점을 다수 포함한다. 예를 들면, "외부세계에 대한 인도의 반응은 적극적 저항이 아닌 변화에 적응하는 소극적 전략을 통해 ‘내 안의 것’으로 만드는 융통성이다."

  • Index terms
  • 식민주의, 언어, 영어, 일본어, 대만, 일본, 영국, 인도, 조선, 제국주의, 황민화, 동화, 개화, 언어정책, 민족주의, 전복, 정체성, 순응, 각성, 저항, 문화적 헤게모니, 종속화, 영어교육, 일어교육, 상층카스트, 탈식민화, 인도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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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어떤나라?

타이완
타이완 다른이름: 대만
타이완성
영유권 주장
중화인민공화국
타이완 성
타이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ko.wikipedia.org › wiki › 타이완null

대만이 어디야?

타이완(전통 한자로 '台灣' 혹은 '臺灣', 간자체 台湾 tai wān) [1]') 은 중국 본토의 남동 해안에서 약 36,000 km²정도 떨어진 섬으로된 국가이며, 일본의 오키나와'Okinawa'의 남서쪽에 위치해 있고, 필리핀' Philippines'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