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0대 강력 사건 - daehanmingug 10dae ganglyeog sageon

우리나라 10대 살인사건

1. 지존파살인사건 [至尊派殺人事件] 

1993년 4월부터 1994년 9월까지 범죄집단인 지존파가 저지른 엽기적인 연쇄살인 사건.

현실사회에 대해 일찍부터 불만을 품어 온 김기환은 1993년 4월경 학교 후배 강동은, 교도소 동기 문상록 등과 함께 전라남도 함평군대동면에서 대학입시 부정사건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가 부유층에 대한 증오를 행동으로 나타내자는 데에 뜻을 같이하였다. 지존파라는 이름의 범죄집단을 조직하고 1,200여 명에 달하는 백화점 고객명단을 입수하여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이해 7월 일당 6명은 충청남도 논산에서 최미자를 성폭행한 후 연습 삼아 살해 암매장하고, 8월 같은 조직원이던 송봉은을 역시 살해 암매장했다. 그들은 전라남도 영광군불갑면 금계리의 지하실 아지트에 창살감옥과 사체를 은닉하기 위한 사체 소각시설을 갖추었다. 이어서 1994년 9월 이종원-이모, 소윤오-박미자 부부를 납치 감금하였다가 가까스로 탈출한 이모 여인을 제외한 3명을 모두 살해하고 사체를 토막내어 소각하는 등 9월 15일까지 4차례에 걸쳐 엽기적인 연쇄 살인행각을 벌였다. 이 사건은 납치되었다가 탈출한 이모 여인의 제보로 9월 19일 범인들이 모두 체포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재판 결과 검거되기 이틀 전에 조직에 가담한 이경숙을 제외한 두목 김기환을 비롯하여 강동은, 김현양, 문상록, 강문섭, 백병옥 등 지존파 전원이 강도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항소심과 대법원의 최종판결에서도 1심의 형량이 확정되어 11월 2일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출처] 네이버 백과

2. 화성연쇄살인사건 [華城連鎖殺人事件]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일대에서 10명의 여성이 차례로 살해되었으나 범인이 잡히지 않은 미해결 살인사건.

1986년 9월 19일 경기도 화성시태안읍 안녕리(安寧里, 현 안녕동)에서 71세 노인의 하의가 벗겨지고, 목이 졸려 살해된 채 발견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1986년 2차례, 1987년 3차례, 1988년 2차례, 1990년과 1991년에 각각 1차례씩 총 10회에 걸쳐 불특정 다수의 여성 10명이 차례로 강간 살해되었는데, 사건 모두 태안읍 반경 2㎞ 이내에서 일어났다.사건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피해자가 모두 여성이다. ② 피해자가 젊은 층에 한정되지 않고 52세(7차)·69세(10차)·71세(1차) 등 다양하다. ③ 피해자의 음부가 크게 훼손되었다(4·6·7·9차). ④ 사건현장이나 피해자의 음부 안에서 정액 또는 머리카락·담배꽁초 등이 발견되었다. ⑤ 피해자의 대부분이 목이 조여 살해되었다. ⑥ 피해자의 국부에서 9개의 복숭아 조각이 나오고, 가슴이 19차례나 칼로 도려질 정도로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대범하다.한국에서 발생한 최초의 연쇄살인사건으로, 처음에는 일반적인 개별 살인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고, 수사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잇따라 사건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연쇄살인사건은 전 국민적인 관심사가 되었고, 경찰도 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 경찰력을 집중하였다.그러나 총 180만 명의 경찰이 동원되고, 3,000여 명의 용의자가 조사를 받았음에도 8차 사건을 제외하고는 어떤 사건의 범인도 잡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단독범의 소행인지, 다수의 범인에 의한 개별사건인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또 7·9·10차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3명의 용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불상사가 거듭되면서 '화성괴담'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유일하게 해결된 8차 사건의 경우,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와 범인의 음모가 일치한다는 것이 증거로 채택되어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으나, 다른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8차 사건을 제외한 모든 사건들은 여전히 미해결 사건으로 남은 채 2006년 모든 사건은 살인 공소시효 15년이 끝났다. 2003년에는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이라는 타이틀로 영화화하여 흥행에 성공하였다.

[출처] 네이버 백과

3. 유영철연쇄살인사건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유영철이 연쇄적으로 21명을 살해한 사건. 

고등학교 2학년 때 절도사건으로 소년원에 수감된 이래, 총 14차례의 특수절도 및 성폭력 등의 혐의로 11년을 교도소에서 생활한 30대 중반의 남성 유영철이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총 21명을 살해한 엽기적인 연쇄살인사건이다.유영철은 1991년에 결혼하였으나, 2002년 5월 무렵 부인이 이혼소송을 제기해 일방적으로 이혼을 당한 뒤부터 여성 혐오증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는 간질 증세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고, 2003년 11월에는 전과자·이혼남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교제 중이던 여성으로부터 절교를 당하기도 하였다.이러한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1990년대 중반부터 막연한 복수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연쇄살인의 계기가 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첫 살인은 2003년 9월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新沙洞)의 단독주택에서 행해진 대학교 명예교수 부부 살인사건이다. 이후 2004년 7월까지 총 21명을 잇달아 살해하였는데, 공식적으로 확인된 숫자만 21명이다. 유영철 자신은 5명의 여성을 더 살해했다고 주장하였는데, 확인은 되지 않았다.살해 대상은 주로 부유층 노인과 여성으로, 범행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범행 수법이 과감하면서도 치밀해 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도구는 자신이 직접 만든 망치나 칼 등을 이용하였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지르거나 시체를 토막 내 야산에 묻기도 하였다. 또 피해자의 신원을 알지 못하도록 살해한 여성의 지문을 흉기로 도려 내기도 하는 등 갖가지 잔혹한 방법을 사용하였다.정부 수립 이후 최대의 연쇄살인사건으로, 유영철은 2004년 7월 18일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어 같은해 8월 13일 구속 기소되었는데, 죄목은 21명 살해, 공무원 자격 사칭, 강도 등의 혐의이다. 이후 2005년 6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다.2008년에 나홍진 감독이 이 사건을 《추격자》라는 타이틀로 영화화하여 흥행에 성공하였다.

[출처] 네이버 백과

4.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2009년 1월 27일 검거된 강호순이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경기도 서남부 일대에서 저지른 여성 연쇄 납치 살인 사건 

강호순(1969~)은 2005년 10월 경기도 안산시상록구 본오동 장모 집에 불을 질러 장모와 처를 살해한 이래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경기도 서남부에서 연쇄적으로 여성 7명을 납치하여 살해하였다. 강호순에 대하여 1심과 2심에서 살인·현주건조물 방화치사·존속살해·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고 강호순은 상고하지 않아 2009년 8월 3일 사형이 확정되었다.

[출처]네이버 백과

5. 우범곤 순경 총기난사 사건 

1982년 4월 26일 현직 순경인 우범곤이 총기를 난사하여 95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

우범곤은 경상남도의령군 경찰서 소속 현직 순경으로서 1982년 4월 26일 동거녀와 말다툼을 벌인 뒤 흥분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오후 7시 반에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소총 2정, 실탄 129발, 수류탄 6발을 들고 나와 우체국에서 일하던 전화교환원을 살해하여 외부와의 통신을 두절시키고 궁류면 내 4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총을 쏘고 수류탄을 터뜨렸다. 자정이 지나 우순경은 총기 난사를 멈추고 평촌리 서인수 씨 집에 들어가 일가족 5명을 깨운 뒤, 4월 27일 새벽 5시경 수류탄 2발을 터뜨려 자폭했다. 이 사건으로 주민 62명이 사망하는 참혹한 사태가 벌어졌으며, 3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짧은 시간에 가장 사람을 많이 죽인 단독 살인범'으로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출처] 네이버 백과

6. 연쇄살인마 김대두 사건

1970년대 9월즈음 일주일 사이에 평택,양주,시흥,수원등의 4개지역의  외딴집에서 일가족이 글로 표현하기도 참혹할 정도로 살해당한는 사건이 발생했다.노인 어린이 갓난아기라 할것도 없이 생명이란게 있으면 무작정 죽이는 그런 사건이 벌어진것이다

 평택의 외딴 초가 안의 모습은 정말 인간의 짓이라고는 믿을수 없을만큼 잔혹했다.

 초가 안에는 할머니(71)와 손자 둘(7세,5세)이 둔기로 가격을 당해 머리와 안면부가 거의 함몰된 채 숨진 상태로 발견됬으며, 손녀(11세)는 집에서 150미터쯤 떨어진 야산에서 손과발이 나무에 묶이고 얼굴에는 보자기가 씌워져 있었다. 손녀 역시 온 몸에 둔기로 난타 당해 살해되었고 범행에 사용된 장도리는 나무손잡이가 부러져 떨어져 나간채 발견되었다.

 양주군 사건현장역시 평창사건과 유사하게 피해자들을 둔기로 난타한흔적이 발견되었고 칼로 추정되는 도구에 마구찔려 피살된 모습니었다.

참혹했던 현장은 바로 시흥군이었다. 20대 후반의 아기엄마는 발가벗겨진 채 강간당한후 둔기로 무수히 가격 당하고  칼로 여러 차례 찔려 살해당했고 생후 3개월짜리 갓난 아기는 흉기로 얻어맞은데다 발로 짓밟혀 내장이 다 손상된 상태로 사망했다.

피해자인 30대 부부는 집에있다가 남편은 집에서 둔기와 칼에 여러 차례 가격당하고 찔려 살해 당했고 아내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야산까지 끌려가 알몸으로 양손이 묶인채 둔기와 칼에 무수히 공격당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단서

평택-저가담배인 '수정'꽁초와 빈갑 말리려고 널어두었던 고추와 방에 있던 이불 그리고 현금 1,500원이 없어졌다.

양주-군용이불 한 채와 현금 21.000원이 없어졌다.

시흥-현금 1,500원과 타월,로션 비누 같은 생필품 몇 가지가 없어졌는데 이 물건은 수원사건현장 인근 야산에서 발견되었다.

골프장 캐디 살인 미수

성남시에 있는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는 이모씨는 퇴근하는 길이었다.골프장에서 버스정류장까지는 꽤 먼거리 였으나 골프장 지침상 손님과 동승할수 없었기에 홀로 길을 걷고있었다.

점점 어둠이 짙어질때즈음 아니나 다를까 숲속에서 괴한이 튀어나와 이모씨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숲 속으로 들어가 옷을 벗기고 역시 두손과 발을 나무에 묵인채 강간을 하려는 순간 도로에서 불빛이 비추었고

그 틈을타 이모씨는 "사람살려"를 외추었고 김대두는 산속으로 도망을 갔다.

불빛을 비춘 차량은 골프 손님이었는데 때마침 차가 그장소에서 차가 이상한소리가 나기에 고장여부를 확인하려고 멈추었던것이었다.

전농동의 한세탁소에 깡마르고 기분나쁜 기운을 풍기는 남자가 더러운 청바지를 가지고와서 맡기고 간것이었다. 세탁소 주인은 기분이 묘해서 청바지를 확인해봤더니 꼭 핏자국같은것이 여기저기 묻어있던 것이었다.주인은 아들과 상의끝에 경찰에 신고를 하였고  경찰이 잠복수사 끝에 김대두의 살인행각이 막을 내리게 된다. 경찰조사결과 김대두는 경기도 외딴집 연쇄살인 말고도 6명을 더살해하였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고 진술하였다.

김대두는 2004년 유영철사건이 발생할때까지 총 17명을 연쇄살인한 희대의 살인마로 기록된다.

 7. 정남규 살인사건

정남규(1969년3월 1일 ~ 2009년11월 22일)는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14명의 시민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다.

정남규는 1981년에서 1982년 사이 동네 후배 친구와 선배 에 집단따돌림과 부모님의 꾸중 그의 아버지의 학대로 인하여 사회 생활이 어렵지만 동네 아저씨로부터 정남규에게 여자로 오해 받아 성추행과 강간 성희롱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가 1985년 ~ 1986년 사이 고등학생 였을때 친구들이나 선배한테 집단 구타와 학교폭력으로 당하여 하자 그가 23살때였을떼 군복무 중 고참들 에게 가혹행위와 심한 구타등 하여 군 전역후 사회생활이 힘들어 그의 학업성적, 사회생활, 복수심으로 해서 군 전역후 몇년만에 다시 범죄에 유혹을 빠졌다.

2004년 1월, 경기도부천시에서 초등학생 윤기현(11세)과 임영규(10세)를 납치 성폭행 한뒤 살해한 것을 비롯하여, 경기도와 서울특별시 일대(주로 서남부 지역)를 돌아다니며 심야에 귀가하는 여성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거나 거주지에 침입하여 살인과 방화를 함께 저지르는 등 연쇄살인 행각을 벌였다.[1] 남초등생을 성폭행 후 살해 하였던 것은 정남규도 어렸을 때 성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2]

2006년 4월 22일에 남성과의 싸움으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이문동 살인사건의 진범임이 밝혀졌다.

2006년 6월 7일에 구속 기소되어, 9월 21일에 정남규는 살인 등의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2007년4월 12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2009년11월 21일 오후, 구치소 독방에서 목을 매 자살을 기도한 것을 교도소 근무자가 발견하여 병원으로 옮겼으나, 다음날 새벽 사망했다.[3]

8. 막가파 살인사건

1996년 무차별 적으로 여성 두명 살해

9. 온보현 사건

내 나이만큼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고 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자다. 1994년 훔친 택시를 이용하여 8월부터 9월까지부녀자 6명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이 중 2명은 살해했다.

10. 개구리소년실종사건

1991년 3월 26일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살던 우철원(禹喆元, 당시 13세) 등 초등학교 학생 5명이 개구리를 잡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사건

1991년 3월 26일 실종 당시 9~13세이던 5명의 소년들이 인근 와룡산으로 개구리를 잡으러 나간 뒤 실종되었다. 그후 11년이 지난 2002년 9월 26일 대구시 달서구용산동 성산고등학교 신축 공사장에서 유골이 발견되었으나, 범인은 끝내 잡지 못했다. 2006년 3월 25일자로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남에 따라서 이 사건은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사건 당시 경찰은 그동안 연인원 약 50만 명을 동원, 이들의 행방을 찾았으나, 잘못된 제보와 소문만 무성할 뿐 지금까지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하였으며, 1993년에는 실종 어린이 부모들이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사건 발생 후 5년이 지난 1996년에는 수사본부장이 대구경찰청 청장에서 달서경찰서장으로 바뀌고 각 경찰서에서 차출된 수사요원들도 복귀하였다.

경찰은 11년 동안 국내 단일 실종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의 인력을 동원하였으며, 제보도 잇따라 1991년 325건, 1992년 97건, 1993년 131건 등이 접수되었지만 모두 허위였다.이 사건은 전국민적인 관심사로 등장하면서 어린이는 물론 우체부 등 온 국민이 개구리 소년 찾기 운동에 참여했으며, 1992년에는 이를 소재로 한 영화 "돌아오라 개구리 소년"이 제작되었다.2002년 9월 26일 성산고등학교 신축공사장 뒤쪽의 와룡산 중턱에서 유골 4구와 신발 5켤레가 발견되었다. 유골을 감정한 경북대학교 법의학팀은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을 타살로 결론 내렸으며, 2004년 3월 26일 경북대학교 병원 영안실에서 합동 장례식을 치렀다

[출처] 네이버 백과

나름대로 우리나라 역대 10대 살인사건을 엮어 보았고, 내용은 네이버 사전 등에서 퍼와서 엮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