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공지 목록

공지글

글 제목작성일

(63)

공지 다녀오겠습니다

2022. 2. 8.

(52)

공지 난필의 창고가 또 이달의 블로그에 선정되었습니다.

2020. 11. 2.

(62)

공지 [난필의 코믹스 창고]가 [이달의 블로그]에 선정되었습니다.

2017. 4. 27.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난필2021. 8. 28. 19:00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작가 제프 존스(Geoff Johns)는 당시 연재 중이던 <다크 사이드 워> 이벤트의 끝에서 배트맨에 대한 엄청난 떡밥을 남겼는데요. 세상의 모든 지식을 지닌 모비우스 의자에 앉은 배트맨이 "조커의 본명이 뭐냐"라고 묻자, 의자가 "조커는 3명이다"라고 답한 것이죠. 팬들 사이에서 일명 "쓰리조커(Three Jokers")"라는 이름의 미스터리로 남았던 이 이야기가 <배트맨:세 명의 조커>을 통해 드디어 공개됐습니다.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배트맨:세 명의 조커>는 작품이 지닌 주제와 메시지를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시작부터 "시간은 모든 상처를 치료해 준다...상처가 먼저 당신을 죽이지 않는다면(Time heals all wounds... If they don't kill you first)."이라는 문구와 함께 배트맨이 그동안 활동하면서 얻은 몸의 상처들을 보여줌으로써 말이죠.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배트맨은 수많은 적들에게서 수많은 상처를 얻었지만, 그중에서도 조커는 배트맨에게 있어서 가장 많은 상처를 남긴 존재였습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제임스 고든의 딸이자 동시에 배트걸바바라 고든(Barbara Gordon)은 조커에게 농락 당하고 그때문에 한동안 불구의 삶을 살았고,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레드 후드로 유명한 제임슨 토드(Jamson Todd)는 그야말로 인생 자체가 조커에게 농락 당한 삶이었으며, 심지어 그의 손에 직접 죽기까지 했죠.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즉 <배트맨:세 명의 조커>는 배트맨과 조커 관계를 가장해 사람들이 각자 지닌 "상처"와 그로 인한 트라우마, 그리고 이를 치유하는 극복 과정까지 다룬 작품입니다. 여기서 조커는 사람들의 상처에 비유되고, 주요 3인은 이런 상처(조커)로부터 가장 큰 트라우마를 얻게 된 인물들이죠.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작품은 계속해서 러닝 머신을 뛰는 바바라와, 그녀가 다시 제대로 걷고 트라우마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던 흔적들을 비춰주는데요. 바바라는 조커로 인해 불구가 됐지만 결국 다시 두 다리로 일어섰고, 육체적인 상처를 치료했음에도 꾸준히 노력하고 있죠.

상처를 입은 뒤 극복하는 자와 여전히 괴로워하는 자의 경우를 바바라와 제임슨에 빗대어 보여줍니다. 제임슨은 바바라와 달리 날이 지날수록 심해지는 트라우마로 인해 더 과격해졌지만, 이 작품에서 바바라를 보며 자신 역시 달라지도록 노력하기로 마음 먹고요.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그러나 브루스는 바바라나 제이슨과는 약간 다른 케이스입니다. 그가 조커로부터 셀 수 없을만큼 많은 상처를 받은 것은 맞지만, 브루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상처는 조커가 아니라, 그의 부모님을 살해한 범죄자 조 칠(Joe Chill)이었죠. 블랙게이트의 수감자들이 배트맨이 등장하자 곧바로 조용해지지만, 정작 배트맨은 조 칠의 감방 앞에서 긴장한듯 목소리를 점검하는 모습이 그에게 있어 조 칠이 가장 큰 트라우마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브루스 역시 결국 조 칠을 용서하며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해내죠. 하지만, 조커가 이번 계획을 통해 노리고 있던게 바로 이것이었고요. 배트맨과 조커의 마지막 대화가 이를 요약해서 설명해줍니다.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넌 토마스와 마사 웨인을 죽인 남자를 구했어. 너와 고담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남자를 말이야.

네놈은 늙고 후회하는 영감탱이가 된 칠을 봤거든. 그의 고통을 느낀 게 네 고통을 없애줬겠지.

하. 내가 네 가장 큰 상처를 치료한 셈이야.

그럼 이젠 내가 네 최고의 고통이 될 수 있고.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바로 내가!

최후에 살아남은 조커는 애초에 브루스가 조 칠의 트라우마를 극복해내게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고, 성공적으로 목표를 이뤄냈습니다. 조 칠이 없다면 조커의 말대로 그가 배트맨의 가장 큰 상처이니까요.

조커와 배트 패밀리에 빗대어 상처와 피해자들의 모습을 잘 보여줌과 동시에, 배트맨과 조커의 끊을 수 없는 관계와 조커의 광기를 잘 표현해냈죠.

이렇게만 보면 완벽한 기승전결에 메시지까지 훌륭한 수작이지만....두 가지 의문이 다 된 밥에 재를 뿌렸습니다.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그래서 도대체 조커는 왜 3명인 걸까요? 제목이 무려 "세 명의 조커"지만 이 작품에서 조커가 3명인 건 그리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제대로 설명되지도 않고요. 그냥 진짜로 조커는 3명이고, 이들이 화학 공장을 통해 여러 조커를 만들어냈다는 간단한 설명만 있을 뿐입니다.

아니 그러면 그동안 이 3명이서 번갈아가면서 고담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는 건데.. 무슨 조커가 요일제 아르바이트도 아니고... 단순히 조커의 가장 큰 피해자가 3명이기에 조커도 3명으로 했다? 아니면 그냥 제프 존스는 3이 좋아서?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조커가 3명인 건 넘어갈 수 있는 미스터리라 치고, 작품에서 더 충격적인 것은 결말 부분에서 뒤튼 조커의 기원입니다. 3명의 조커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는 이는 <킬링 조크>의 코미디언 조커였고, 이 작품에서도 과거 회상 장면들이 빨간색을 제외하면 모두 흑백인 점에서 <킬링 조크>를 오마주했음을 알 수 있죠. 물론 제프 존스가 이 작품을 리스펙의 의미에서 오마주 한 것은 아니겠죠.

<킬링 조크>는 씁쓸하게 느껴지는 조커의 과거와 그리고 그 과거마저 작품 이름 그대로 "농담"인지 사실인지 알 수 없다는 수수께끼가 가장 큰 포인트였는데.. 제프 존스는 이 두 가지 포인트를 이 결말을 통해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개인적으로 배트맨 코믹스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여서 더 안타깝네요.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제프 존스는 왜 <킬링 조커>를 차용했을까요?

서양에서 조커는 단순히 미친 광대와 더불어 사회적 약자(혹은 부적응자)들이 자신들을 대표하기 위해 내세우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특히 영화 [조커]가 조커의 기원을 새로 써내려가면서 이 현상이 더 심해졌고요. 사람들이 개나 소나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원인을 사회의 책임으로 돌리고 나는 조커처럼 소외 받은 외톨이다!라며 주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프 존스는 이 작품을 통해 그런 이들을 비웃는 걸지도 모르죠.

조커가 사정 있는 슬픈 외톨이다? 바로 <킬링 조크>의 조커를 아내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는 한심한 또라이로 만들어줍니다. 범죄자나 광대처럼 여러 조커를 보여주지만 결국 최후에 살아남는 조커는 또라이 코미디언이었고요. 이제 조커에겐 슬픈 과거사 따위나 사회에 맞서는 약자의 반항심 등 뭣도 없습니다. 그냥 배트맨에 집착하는 조커의 농담만 남을 뿐이죠.

<배트맨:세 명의 조커> 역시 그냥 농담 덩어리일지도 모릅니다. 이 리뷰 역시 마찬가지죠.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농담이 아닌 것은 제이슨 파복(Jason Fabok)의 그림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결말에서 배트맨은 자신이 조커를 만난지 일주일 만에 그의 본명을 알아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히지만, 조커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데요. 이는 어쩌면 제프 존스가 우리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조커가 왜 3명인가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조커의 정체는 뭔데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킬링 조크는 왜 가져온 건거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제프 존스는 천재입니다.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쓰리 조커로 놀랜 마음 한정판 이슈로 달래라고 동봉된 <배트맨 1화:멜리니엄 에디션>. 배트맨 1화긴 하지만 배트맨이 처음 등장한 이슈는 <디텍티브 코믹스> 시리즈이기 때문에, 배트맨보다는 조커의 첫 등장을 기념하는 고전 작품입니다. 고전 중의 고전이다보니 지금 보면 웃긴 요소들도 많은데.. 무려 70년도 더 된 작품임을 고려한다면 얘기가 달라지죠.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원작에서도 조커의 첫 등장이 워낙 강력한만큼 여러 실사화 버전들이 이 만화 속 조커를 일부 오마주하기도 했는데, 세 명의 조커 역시 오마주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뜬금없이 나오는 배트-교훈까지. 당시 코믹스가 어떤 느낌의 만화였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들이 상당하며, 1940년에 출시된 만화지만 지금 봐도 꽤 창의적인 설정이나 전개들이 넘치네요.

내용이 흥미진진한가? o

조커 캐릭터가 잘 표현됐는가? o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가 훌륭한가? o

사실 여러모로 <배트맨:세 명의 조커>보다 더 훌륭한 작품입니다.

배트맨 세 명의 조커 - baeteumaen se myeong-ui jokeo

작품에서 <킬링 조크>가 중요하게 작용되는만큼 <킬링 조크>는 <배트맨:세 명의 조커> 이전에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작품입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작품은 아마 본 작품에서 가장 주요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제이슨 토드의 이야기들이겠죠. <레드 후드와 무법자들>은 1편에서 제이슨 토드가 레드 후드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함께 그 캐릭터성을 확실하게 보여주는데, 제이슨의 감정을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선 읽어주는게 좋습니다.

물론 이건 최대한 가성비 있게 짧게 짠 가이드고, 만약에 배트맨이나 레드 후드를 깊게 파고 싶으신 분들은 <배트맨:패밀리의 죽음>-<배트맨:허쉬>-<언더 더 레드 후드>순으로 제이슨에 완전히 몰입해 읽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