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 로키 기구 - toleu loki gigu

*모처에 올린 썰 백업

01.

토르 2 이후에, 오딘 행세를 하던 것이 들통난 로키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추방당함.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던 말도, 아홉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자부하던 마력도 전부 잃고 추방당했음. 오딘의 뒤를 이어 왕위에 앉은 토르가 손수 한 죄인의 처단이었음. 로키는 타노스를 막으려 한 일이었다고, 자신이 지금 이대로 물러나면 되려 오딘과 아홉 세계가 위험에 처할지 모른다며 토르에게 애걸했지만 이미 신뢰가 깨진 상태에서 토르가 어떻게 그 말을 믿겠어. 자기를 두 번이나 속인 동생을. 그것도 아버지를 강제로 오딘슬립에 들게 하고 그 왕좌에 앉은 로키를 어떻게? 토르의 눈에는 왕위에 집착하던 로키가 용서받지 못할 짓을 한 것으로밖에 비춰지지 않았음. 그래서 로키에게서 말과 마력을 모두 박탈한 채로 추방시켜 버린 것이고. 

추방당할 때 신력과 마력을 모두 뺏기면서 로키 몸이 인간 축에서도 약한 몸이 되어버렸으면 좋겠다. 마력으로 눌러놓았었던, 여전히 다 회복되지 못한 부상이 다시 도져서 그런 거였으면ㅇㅇ 로키는 추방당할 때 충격으로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남. 이전에 부상당한 자리에서 느껴지는 찌르는 듯한 통증 때문에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서 로키가 괴로워했으면 좋겠다. 한참 동안 끙끙거리다가 고통 때문에 그대로 정신 잃고 쓰러졌으면. 

쉴드가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에너지 흐름에 이상을 감지한 당국이 로키를 호송해 갔었겠지만 한창 혼란할 시점이었기에 로키는 눈에 띄지 않았음. 그리고 그건 오히려 로키에게는 나쁜 일이었지. 차라리 쉴드에 의해 구금되었다면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는 받았을 테니까. 

로키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녔지만 그래도 눈에 확 튀겠지. 갑자기 나타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눈에 띄이는데 로키는 어딘지 신비하고 묘한 분위기를 풍겼으니까. 거기에다 보기 드문 미인이잖아. 아무튼 로키는 갱단이나 뭐 그런쪽 애들 눈에 들겠지. 처음에는 걔네들도 로키가 어디 포주가 물어온 애겠거니 하고 건드리지 않다가 머잖아 아무 연고도 없다는 걸 알고 손을 뻗을것임.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었음. 로키는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며 뒷골목 공터에 자리를 잡고 몸을 웅크리고 누웠음. 바닥은 차가웠지만 그나마 버틸만했음. 신력을 박탈당한 몸이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견뎌줄 수 있을까는 의문이었지만. 

로키는 눈을 붙였다가 절 우악스럽게 잡아 일으키는 손에 눈을 떴음. 멍하니 눈을 깜빡이자 저를 둘러싸고 있는 너댓 명의 남자들이 시야에 들어왔음. 로키는 남자들의 차림을 훑어봤음. 아무리 보아도 쉴드 직원같지는 않았음. 그런 생각도 잠시, 로키는 제 명치께를 가격하는 발에 의해 바닥으로 고꾸라짐. 눈앞이 하얗게 점멸하고 고통이 머릿속을 메웠음. 볼썽사납게 땅바닥을 뒹굴고 있으면 몇 대 더 맞겠지. 대충 기를 빼놨다고 생각한 남자들은 로키의 옷을 찢어낼듯이 벗겨냄. 로키는 제대로 된 반항도 못하고 순식간에 나신이 됨. 

- 아 씨발, 밖에서 하는 거 취향 아닌데.

- 박기 싫음 비켜 좆만아. 대니가 써보고 데려오라고 했잖아. 너같으면 아무데서나 굴러먹던 홈리스 새끼 덜컥 들이고 싶겠냐?

- 존나 누가 박기 싫다고 했냐. 아 씹창년아 움직이지 마라, 진짜. 뒤진다.

들려오는 대화에 로키는 제 운명을 직감했음. 더 이상 떨어질 나락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로키는 비틀거리며 기어서 도망가려고 하지만 발목이 잡혀서 쭉 끌려 내려옴. 남자들은 로키의 엉덩이를 치켜세워서 드러난 성기를 품평함. 하필 로키가 미드가르드에서 귀한 남성체 오메가라서 온갖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게 보고싶다. 

- 진짜 보지밖에 없네.

- 나중에 팔아먹을때 가슴 좀 만들어주면 재밌겠는데.

- 리키, 미친년아. 남자 오메가가-게다가 페니스 흔적도 없는 이런 우성 오메가가 얼마나 비싸게 팔리는 줄 알고 그런 소리를 해.

- 입으로 박냐? 그럼 이년 내가 먼저 따먹는다?

낄낄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대화에 로키는 바르작거리며 벗어나려하지만 곧바로 제 입에 물려지는 권총때문에 몸이 얼어붙어버림. 죽음에 대한 공포 앞에서 완전히 얼어 있는데 뒤에서 제대로 풀어주지도 않은 채로 손가락을 넣고 쑤셔댔으면 좋겠다. 한 번도, 심지어 자위조차도 하지 않았던 로키니까 엄청 아파하겠지. 그러면 엉덩이 짝 때렸으면ㅇㅇ 로키는 끙끙거리면서 고개만 도리질치는데 그래봤자 더 꼴릴뿐임. 계속 벗어나려고 하니까 로키 입에 총 물리고 있던 놈이 혀 한번 쯧 차고 반쯤 발기한 제 성기 로키 입에 강제로 쑤셔박고 억지로 움직이게 했음 좋겠다. 로키는 숨을 못 쉬어서 컥컥대는데 뒤에서는 애무도 해주지 않은 채로 삽입하고ㅇㅇ. 제대로 풀어주지도 않은 상태로 좁은 구멍에 억지로 밀어넣으니까 당연히 피가 흐르는데 그거 본 남자들이 처녀라고 존나 좋아하는거 보고싶다. 처녀를 갱뱅으로 뗀다고 낄낄대는 것도 보고싶음. 도리질치고 울고 반항하는데도 로키는 무력하게 당하겠지. 로키를 안아올려서 두명이 동시에 삽입하는데 그 순간 로키가 약간 경련하듯이 몸을 떨다가 기절했으면 좋겠다. 애널에서도 가늘게 핏줄기 흐르고 입구도 찢어져서 피 흐르는데 어차피 박는 놈들은 이미 발정이 날대로 나서 기절한 로키 무슨 오나홀처럼 써댈듯. 안에 쌌는데 제대로 다물리지도 않는 구멍들에서 정액이 움찔움찔 나오는 거 보고 눈 돌아가서 로키 계속 박아대고 얼싸까지 해준 후에야 로키 놔줄듯. 로키는 계속 정신 잃은 상태ㅇㅇ... 나중에 자기네 패거리 보스한테 연락해서 물건 하나 들어왔다고 이야기하고 로키 몸에 묻은 정액 대충 벗겨놨던 옷으로 닦아내곤 로키는 그냥 알몸인 상태로 차 트렁크에 실어서 자기네들 아지트로 데려갈듯. 

02.

로키는 다음날 아침에서야 간신히 눈을 뜸. 온 몸이 욱신거리고 아팠지.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창문조차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지하실에 감금당한 모양이었음. 로키는 입술을 꽉 깨물고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추스려 몸을 일으킴. 몸 위에 대충 걸쳐져 있던 담요를 살짝 들추니 멍투성이인 몸이 드러났음. 지독하게 아팠지만 로키는 나갈 수 있을만한 곳을 필사적으로 찾기 시작함. 그러다가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에 의해 땅바닥으로 패대기쳐졌지만.

로키는 계속 반항했음. 돌아오는 건 지독한 폭력뿐이었지만. 로키는 한 번 저를 지키던 남자의 코를 물어뜯고 탈출을 시도했지. 당연히도 실패했고 그날 정말 심하게 두들겨 맞았음. 이러다 죽겠다 싶을 정도로. 기절하면 얼음물을 끼얹어서 깨운 다음에 또 패고... 아무튼 그렇게 맞고 나서도 로키는 기회를 틈타 또 도망치려 함. 두번째 도망쳤을 때에 갱단은 더 이상 로키를 봐주지 않았음. 갱단 두목쯤 되는 놈은 어차피 누워서 손님받을 일밖에 안 할 년이니까 다리를 그냥 못쓰게 만들어 버리라고 하겠지. 그 말 듣고 로키가 막 반항하니까 기절시킨 다음에 양쪽 인대도 끊고 다리뼈도 반쯤 으스러뜨려서 자기 힘으로는 서지도 못하게 만들었음 좋겠다.

로키는 제가 다리병신이 된 걸 알고 절망함. 이젠 ㄹㅇ 도망도 못치고 아무것도 못함. 혼자서는 몸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갈 수도 없었음. 어쨌거나 로키는 팔아야 할 상품이니까 망가뜨린 다리가 흉이 지지 않도록 한동안은 잘 먹고 잘 쉬게 해주겠지. 물론 자해하면 안 되니까 침대에 묶어놓고 재갈도 물려놓고... 로키는 악에 받친 눈으로 허공을 노려보다가 이내 멍한 눈으로 눈물만 뚝뚝 흘리기를 반복했음. 몇 주 지나 로키의 발목에 나 있던 칼자국은 흔적도 남지 않게 아물었음. 그리고 이제 로키는 벽에 기대 설 수조차 없게 됨. 박살난 뼈들이 쿡쿡 쑤셔와서, 누군가 일으켜 세워줘도 그 통증을 견디기가 힘들었거든. 

이제 대충 로키의 기를 한풀 꺾었다고 생각한 갱들은 로키를 본격적으로 조교하기 시작함. 예쁘고 하드한 플레이를 잘 버텨낼수록 더 비싼 값을 받았으니까. 로키는 처음에는 극심하게 반항함. 그나마 자유로운 팔로 저를 범하려는 남자들을 밀쳐내고 도리질치고 펠라할때 페니스를 깨무는 등 ㅇㅇ 하도 반항이 심하니까 아예 입에는 볼개그 채우고 목에 채워진 초커랑 팔다리 구속구랑 연결시켜서 강제로 다리 벌리고 저항도 못하게 만든 채로 사흘 밤낮동안 강제로 범해지게 만드는 게 보고싶다. 나중에 로키한테 박던 놈 하나가 자기 물건 빼고 배 꾹 누르는데 이미 크림파이된 로키 아래에서 정액 움찔거리면서 흘러나오는 거 보고싶음. 하도 안에다 싸서 아랫배도 살짝 부풀어있겠지. 로키는 그런 식으로 시달리면서 점차 제 처지에 절망하는 것을 넘어서서 순응하게 됨. 로키는 원치 않는 것을 배워야만 했음. 어떻게 페니스를 핥아야 하는지, 알파나 베타 남자들을 만족시키는 방법들, 그리고 저에게 가해지는 채찍질을 견뎌내는 것들. 그리고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장난감들을 뒤에 물고 있는 방법들을.

아무튼 대충 버릇을 들인 다음에 로키가 오메가 경매에서 팔렸음 좋겠다. 진한 녹안에 처연한 얼굴을 한 로키는 인기가 좋을거야. 거기에다가 어딘지 모르게 신비로운 분위기랑 언뜻언뜻 비치는 색기 때문에 로키의 값은 천정부지로 오를듯. 다리가 망가졌다는 게 흠이었긴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도망칠 수 없다는 거니까 그마저도 장점으로 받아들여지겠지. 유일한 단점은 말을 못 한다는 것 뿐이지만 어차피 오메가의 몸을 원해 경매에 나온 사람들에게 말 못하는게 뭐 그리 대수겠음. 

새로운 주인은 로키를 애완동물처럼 다루는 취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름이 각인된 개목걸이 채워주고 사슬에 연결해서 침대 다리에 묶어두고 애널에는 꼬리모양 딜도 넣은 다음에 정조대 채워둔 채로 방치하는 거지. 심지어는 뭘 먹일 때에도 그릇에 우유를 부어놓고 로키 앞에 밀어놓으면 좋겠다. 로키는 우유에는 손도 대지 않을듯. 어차피 먹을 필요도 없을 뿐더러, 아무리 자존심이 꺾인 로키였지만 이런 취급까지 견뎌낼 수는 없었거든. 한 며칠동안 로키의 반항을 참아주던 주인이 더 모욕감 드는 방식으로 로키 괴롭히면 좋겠다. 아예 젖병에 우유를 담아와서 로키에게 강제로 먹이는거 보고싶음. 로키는 얼굴 새빨개져서 도리질치고 반항하는데 어차피 다리도 못움직이고 팔도 뒤로 묶인 상태라서 그냥 귀엽기만 할듯. 로키 고개 억지로 젖히고 강제로 먹이면 그 다음부터 로키는 그릇에 따라준 우유 순순히 마시고 주인이 원하는 대로 유순한 고양이처럼 굴겠지. 

그러다가 로키가 힛싸 터졌음 좋겠다. 갱단에서 구를 때는 바이프로스트에서 떨어진 지 얼마 안되어서 그 후유증 때문에 힛싸가 안 왔는데 이번 주인은 일부러 억제제 안 먹이고 내버려 둬서 힛싸 터진거. 주인이 열기 때문에 눈물 고이고 숨 쌕쌕대는 로키를 발로 툭툭 건드리면서 비웃었으면 좋겠다. 애액 질질 흐르는 여성기 보고도 애널에 꽂아놨던 꼬리만 발로 꾹 밟아서 깊숙히 밀어넣을듯. 고통스러워하는 로키 보면서 웃고 소리도 못내고 앓는 로키한테 일부러 최음제 먹임. 로키는 조금이라도 자극을 받아보려고 엉덩이만 움찔거리는데 그럴수록 채찍 내려쳤으면 좋겠다. 그렇게 괴롭히다가 주인도 결국 못참고 로키 몸 뒤집어서 엎드리게 한 다음에 엄청 세게 자비없이 박아댈듯. 힛싸임에도 불구하고 로키가 아파서 벗어나려 할 정도로ㅇㅇ... 크림파이 될때까지 몇번이나 하고나서 뒤처리도 제대로 안해주고 기절한 로키 그대로 내버려두고 방 나가겠지. 나중에 생각날때 대충 로키 안아다가 욕조에 처넣고 네가 알아서 씻으라고 하면 로키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안에 들어간 것들 다 긁어내겠지... 혼자 힘으로 욕조 밖으로 나갈 수 없어서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품에 안겨서 나가면 로키에겐 다시 목줄이랑 정조대가 채워질거야. 

세 번의 힛싸를 저렇게 보내고 로키가 덜컥 임신이 되어버렸으면 좋겠다. 로키 우성 오메가니까... 임신이 되자 로키의 주인은 너같은 더러운 창부새끼한테서 내가 애를 보고 싶어할 것 같았냐고 하면서 배를 걷어차고 로키를 무자비하게 두들겨팸. 결국 아이는 유산되고, 주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로키를 팔아버림. 갖고 놀 때는 좋았는데 애를 뱄다고 하니까 덜컥 겁이 났었던 거였지. 로키는 물론 제 뱃속의 애한테 애정같은 건 없었고 두려움만 있었지만 정작 강제로 유산당하니까 멘탈이 갈려나갈듯. 아무튼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새 주인에게 넘겨지는 로키겠지. 이젠 진짜 멘탈이 가루가 되다못해 흩날리는 로키일듯. 

03.

새 주인에게 넘겨지고 나서 로키는 밤낮없이 남자들을 상대해야 했음. 로키의 새 주인은 고급 살롱의 포주였거든. 로키가 상대하는 남자들 중 일부는 더없이 다정했지만 대부분은 거칠었고 배려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었음. 로키가 펠라를 하다가 실수로 이를 세우기라도 하면 매서운 손찌검이 날아왔고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들어야만 했음. 그런 생활이 반복되자 로키는 점점 위축되고 다른 사람들이랑 눈도 잘 못 마주치게 되는데 로키를 사는 사람들은 또 로키가 그러면 그런다고 때리고 괴롭히겠지. 사실 그런 손님들은 로키가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걸 보기 위한 거였으니까. 

어쨌거나 계속 그런 식으로 다뤄지면서 로키의 정신이 완벽하게 망가져버렸으면 좋겠다. 손님들이 원하는 대로 순종적으로 굴고 플레이도 잘 받아내는 예쁘장한 섹스돌처럼 굴어서 포주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지만 눈은 완전히 새까맣게 죽어있는 거. 생기가 전혀 없는 눈이 살짝 걸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로키의 희고 마른 몸이나 잘 조인다고 소문난 것 때문에 로키한테 한 번 박아보겠다는 사람들은 줄을 설듯. 로키 멘탈은 이미 완전히 박살난 상태에다가 자아도 점점 잃어가는 상황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왜 여기 있지? 난 누구고, 난 왜 이러고 있는거지 하는 물음을 혼자 던진다던가 그러면서.

아무튼 로키를 붙들고 있던 주인이 하이드라의 무기 밀매상과 커넥션이 있어서 어벤져스들이 추적하던 도중에 로키를 발견했음 좋겠다. 이미 주인은 내뺀 상태고 한창 괴롭힘당하던 중이라 구속구에 재갈, 안대까지 한 채로 남겨져 있던 로키를 스티브가 발견했으면 좋겠음. 

방문을 열자마자 진동하는 오메가의 체향과 비릿한 정액 냄새에 스티브는 인상을 찌푸림. 인이어에서는 지하에 갇혀있던 아이들을 구조했다는 나타샤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음. 아무리 스티브가 이런 쪽 지식에 무지하다고 하더라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이 오메가는 '그런 용도' 로 쓰였던 게 분명해 보였지. 스티브는 조심스레 안대와 재갈을 풀어냈음. 로키는 멍하게 스티브를 올려다봄. 스티브는 딱 굳겠지.

"로키..? 이게 무슨..." 스티브는 저도 모르게 얼빠진 목소리로 물었음. 로키는 그저 멍한 눈을 하고 있을 뿐이었음. 스티브는 혼란스러움을 뒤로하고 로키의 팔과 다리에 묶여진 구속구들을 풀어냄. 스티브가 실수로 로키의 몸에 새겨진 멍자국을 스쳤지만, 로키는 전혀 저항하지 않았음. 가죽으로 만들어진, 로키의 다리 사이를 조이고 있는 끈에 닿자 스티브는 손을 멈칫하겠지. 망설이다가 끈을 풀어내자 로키의 아래에 쑤셔넣어진 것들이 드러났음. 로키가 이곳에서 성적인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는 뚜렷한 증거였음. 스티브는 어쩔 줄 모르고 있다가 딜도와 애널비즈를 빼냄. 애널비즈를 빼낼 때가 제일 고역이었음. 로키가 계속 움찔거렸으니까. 스티브는 로키의 몸을 대충 이불로 감싸서 안고 나옴. 로키는 스티브 품 안에 조심스레 파고드는데 스티브는 착잡한 심경이겠지. 온 몸에 빽빽했던 멍. 그리고 까맣게 죽은 눈. 과연 이게 그 때의 로키가 맞나?

보안 절차를 따르자면 로키는 구속되어 이동하는 게 맞겠지만, 로키가 이 살롱에 매여 있던 매춘 피해자라는 정황이 너무도 확실했기에 로키는 스티브 품에 기댄 채로 퀸젯에 오름. 나타샤는 로키의 안색을 보고 혀를 찼음. 클린트는 살짝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인상을 찌푸린 채 퀸젯 조종에만 몰두했음. 

"그래서, 어떤 상태였다고요? 묶여 있었어요?" 나타샤가 로키의 목덜미에 남은 멍자국과 쓸린 자국을 만져보며 스티브에게 물었음. 스티브는 로키의 몰골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음. 나타샤는 말간 로키의 표정을 보며 인상을 살짝 찌푸렸음. 

"진짜 훈련을 잘 시킨 모양인데요."

"그게 무슨-"

"살아 있는 섹스돌 취급을 당했단 뜻이죠. 그래도 이 정도면 운이 좋은 거에요. 남성체 우성 오메가가 아니라 베타 여성이나, 아니면-여성 오메가였으면 이렇게 사지 보존하기도 힘들었을 거에요. 워낙 마니악한 취향들이 많아서. 얘기 안 해 드렸나? 석 달 전에 그 페도파일 클럽에서 구출했던 애들의 삼분의 일은 사지가 다 잘려 있었다고."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나타샤의 말에 스티브는 순간적으로 헛구역질을 할 뻔 함. 어쨌거나 나타샤가 그런 끔찍한 이야기를 해준 게 대화의 끝이었음. 

타워에 도착해서, 로키 때문에 일단 메디베이부터 들르게 되는데 로키 몸상태가 생각보다 더 나빴으면 좋겠다. 좋지 않을 거란 것 정도는 예상했는데 그보다 더 안좋았으면. 지속적인 학대로 멀쩡한 부분이 거의 안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망가진 다리는 근육이고 인대고 다 나가서 어떻게 손쓸 수도 없고 하도 두들겨 맞아서 왼쪽 고막도 나간 상태에다 한쪽 눈 시력이 다른 쪽보다 엄청 떨어져 있는 상황. 정밀검사 하니까 유산 흔적도 있고 피임기구도 삽입되어 있는 상태라는 결과가 나와서 다들 할 말을 잃었으면 좋겠다.

04.

오랜만에 거실에 어벤이들이 모두 모였지만 다들 표정은 꽤나 심각했음. 토니는 로키의 스캔 결과 중 다리 쪽을 확대해서 창을 띄움. 

"이거 봐."

"엑스레이로 볼 때보다 끔찍하네요." 배너가 덧붙였음. 클린트는 인상을 구기고 있었음. 스티브는 살짝 충격받은 듯한 표정이었음. 

"저건 고급 매춘업소에서 쓸 만한 수법은 아니야. 오메가 경매에 납품하는 조직들이 쓰는 방법이지." 나타샤가 으스러진 뼛조각과 끊어진 채 말려올라간 인대와 근육들을 유심히 살펴보며 이야기했음. 

"그 설명이 더 끔찍한데." 클린트가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 채로 대답했음. 나타샤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지. 

"유산한 흔적도 있었어. 피임 기구는 그 이후에 삽입된 것 같다던데. 골반 쪽에 염증이 나타난 걸로 봐선 맞는 체질이 아니었거나, 별로 좋은 물건을 쓴 게 아니었겠지. 어쨌거나 의사가 당장 제거해야한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어젯밤에 제거하긴 했어." 토니가 말했음. 

"...정신도 온전치 못해 보이던데. 날 알아보는 것 같지 않았어." 스티브가 망설이다 입을 열었음. 

"우리 중 아무도 못 알아보는 것 같아요. 말도 못 하는 것 같고." 배너가 덧붙였음. 

결국 당분간 로키는 타워에서 보호하는 걸로 결론이 나게 됨. 완전히 폐인이나 다름없는 애를 다시 길거리로 내보냈다간 어떤 꼴을 당할지 뻔했으니까. 로키는 유순하게 굴었음.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버릇은 그대로였고, 그런 쪽으로 지속적인 교육을 당해왔기 때문인지 로키의 어깨를 토닥인다던가 달래는 말을 들으면 펠라를 하려 든다거나 옷을 벗으려 드는 행동패턴을 보이겠지. 스티브는 그 보고를 듣고 나서 엄청 착잡할듯. 아무리 한때 적이었던 사람이지만, 저런 꼴을 하고 있기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평생의 원수라도 저렇게 되기를 바랄 수는 없었을 것임. 

스티브는 계속 로키의 까맣게 죽어 있던 눈이 걸려서 로키를 찾아가봄. 뭐라도 들고 가야하나 싶어서 고민하다가 주전부리를 들고가겠지. 커스터드 크림으로 속을 채우고 초콜릿으로 덮은 작은 파이와 딸기 스무디, 그리고 애플망고를 넣어 구운 패스트리 같은 것들. 암튼 그렇게 이것저것 들고 갔으면 좋겠다. 

"안녕, 로키." 자못 다정한 목소리로 부르는 소리에 로키는 고개를 살짝 들어 스티브를 올려다보았다가 이내 시선을 아래로 떨굼. 

"당신이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좀 가져와봤어요." 스티브는 파이와 스무디를 건네며 말함. 로키는 주저하며 포장지만 만지작거릴 뿐이었음. 스티브는 답답해 죽을 것 같았지만 먹어도 돼요. 라고 말해줌. 그제서야 로키는 포장지를 뜯고 파이를 살짝 깨물었음. 입맛에 맞는지 오물거리며 열심히 먹는 모습에 스티브는 안도의 한숨을 쉼. 반쯤 먹었을 때 로키는 스티브의 눈치를 살핌. 

"더 못 먹겠으면 남겨도 돼요. 괜찮아요." 스티브가 재빨리 얘기해줌. 로키는 살짝 눈치를 살피다가 이내 파이를 살짝 협탁에 밀어놓음. 스무디는 괜찮은지 몇 모금 더 마셨지만. 스티브는 로키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어보지만 로키는 말을 못하니깐... 그냥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는 것밖에 못하겠지. 스티브는 그냥 그것만 해도 어디냐 하고 생각할듯. 스티브는 로키가 잘 때까지 옆에 있다가 병실을 나옴. 그리고 종종 로키를 찾아가겠지. 가끔은 저런 먹을 것을 가지고, 그리고 또 가끔은 음악 cd나 제가 좋아하던 화가의 도록 같은걸 가져가기도 하고. 스티브가 그렇게 로키에게 신경을 쏟는 데에 별다른 이유는 없었음. 계속 눈에 밟히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였으니까. 그래도 로키는 점점 안정되겠지. 이런 대우를 받은 건 처음이었으니깐. 이렇게 상냥하게 대해준 건 스티브밖에 없었거든. 

로키는 점점 스티브가 오는 걸 기다리게 됨. 스티브가 오면 머뭇거리다가 스티브 옷자락을 쥐거나 그럴듯. 스티브는 한참 후에야 그게 로키 나름의 반갑다는 인사라는 걸 깨닫고 귀여워서 웃어버리겠지. 로키가 몸이 좀 나아져서 메디베이 밖으로 나갈 수 있어지면 아예 타워에 마련된 제 쿼터에 로키를 데려다 놓고 시간 날때마다 들를듯. 토니는 그거 보고 무슨 고양이 키우냐고 비웃었지만 스티브의 행동을 딱히 제재하진 않았음. 로키가 감금 상태에서 무슨 짓을 당했는지 대충 알고 있었고, 토니도 감금에 대해서라면 몸서리쳐지는 기억이 있었거든. 

어쨌든 토니가 한번쯤은 로키 있는 방에 들어가볼 것 같긴 하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훅 끼치는 로키 체향에 인상 찌푸리는 거 보고싶음. 로키가 몸상태도 안 좋고 정신적으로도 지금 영 상태가 말이 아니다보니 전혀 자기 향 조절을 못하는 건데 토니가 오해하곤 스티브랑 로키 관계 넘겨짚을듯.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더니, 하고 혀 차다가 나갔으면 좋겠다. 나가기 전에 쿠션 꼭 끌어안고 잠들어 있는 로키 보고 뭔가 측은해져서 내려간 이불 다시 덮어주겠지. 

05.

토르가 어벤져스 타워에서 생활하는 로키 보고 타워를 뒤집어놓는 거 보고싶음. 토르는 로키를 추방시킨 이후에 로키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전혀 모름. 로키에 대해 토르가 가지고 있는 감정들은 더 이상 긍정적인 것도 없었고, 로키를 추방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요툰하임과 니플하임의 군대가 아스가르드를 침공해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토르는 그 일을 벌인 게 로키가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태였음. 아무튼 그런 상태니까... 타워에 있는 로키를 보고 토르가 불같이 화를 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음. 

하필 토르가 온 날 로키 상태가 좀 나아져서 스티브랑 같이 거실에 나와있는 상태면 좋겠다. 뭐... 사실 다들 로키 존재를 그렇게 달가워하는 편은 아니지만 스티브가 워낙 끼고 도니까 그냥 아무말도 안하는 거지. 어쨌거나 로키가 스티브 옆에 기대서 앉아있는데 토르가 그걸 발견하고 안색이 딱 굳음. 로키는 토르도 못 알아봐서 그냥 토르 멍하니 응시하는데 토르가 확 인상 굳히고 로키한테 다가가선 멱살 잡고 그대로 들어올렸으면 좋겠다. 뭐 말릴 틈도 없었음. 

- 또 무슨 개수작이야. 

로키는 헛숨을 들이킴. 순간적으로 겁먹은 표정을 지었던 것도 잠시 체념한 표정을 지음. 토르가 제 몸을 사러 온 손님이라고 생각해서였음. 토르는 로키의 표정변화를 보고 이를 악물었다가 땅바닥으로 패대기침. 땅바닥에 뒹구는 로키를 걷어차면서 토르는 악문 잇새로 저주에 가까운 소리를 내뱉음. 

- 독사 같은 놈. 너를 살려두는 게 아니었는데.

스티브는 황급히 로키에게 다가감. 로키는 걷어차인 가슴께를 붙잡으며 신음하고 있었지. 스티브는 급한 대로 로키를 일으켜 앉힘. 토니랑 나타샤가 토르를 말리려 했지만 토르에겐 이미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듯 했음. 

"네가 또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다만, 오늘은 단순히 네 말을 앗아가는 걸로 끝나지 않을 거다. 넌 번번히 나를 실망시키는구나, 로키." 토르가 묠니르를 소환하며 싸늘하게 말함. 토르의 모습은 그 어느때보다도 위압감 있고 무시무시해서, 스티브는 저와 허물없이 어울리던 때의 토르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음. 그저 자비 없는, 인간 위에 군림하는 신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음. 방 안 공기에 온통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었음. 무시무시한 위압감과 분노가 거실 안에 가득 차 있었음. 토니는 어느 샌가 아머를 소환한 채였고, 스티브는 로키를 보호하듯 끌어안았음. 

"비키게. 난 내 친구들을 다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토르,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스티브가 다급히 말했음. 

"또 술수를 썼겠지. 이전에 저 녀석이 클린트에게 썼던 것처럼. 나도 수 없이 속았네, 스티브. 이젠 저 녀석의 속임수라면 아주 지긋지긋해."

로키는 예의 그 멍한 눈으로 토르의 말을 듣고 있다가 눈을 감음. 저렇게나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오늘 나를 죽여줄 수 있을지도 몰라. 저 망치에 머리가 박살난다면 내 시체를 안을 사람은 없겠지. 최소한 죽어서는 욕보이지 않을거야. 로키의 머릿속을 채운 생각은 단지 저것뿐이었음. 로키의 귓가엔 스티브가 무어라 외치는 소리와 토르의 목소리가 어지럽게 울렸지만 그 무엇도 현실적으로 느껴지진 않았음. 

"이봐, 천둥신 씨." 토니가 토르에게 테이저를 쏘며 말했음. 그제서야 토르의 눈엔 토니가 들어오는 것 같았음. 

"로키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그 위협적인 둔기 좀 내려놓고 얘기하지 않을래? 우리 전부 로키한테 뭐-홀렸다던가 이런 상태 아니거든." 토니는 금방이라도 리펄서 빔을 쏠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음. 토르는 인상을 찌푸림.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얘기하자면 길고 지루해요. 하지만 이걸 얘기하는 게, 당신이 오해로 동생의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걸 지켜보는 것보단 낫겠죠." 나타샤가 말함. 토르는 나타샤의 약간 화난 듯한 표정에 의아해하며 묠니르를 든 손을 아래로 내림. 

"-오해라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안 그래?" 토니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함. 나타샤가 한숨을 쉬며 일단 그 망치는 내려놓고 앉아서 얘기하자고 말할 때까지 토르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 눈빛이었음. 스티브는 반쯤 넋이 나가있는 것 같은 로키를 제 품 안에 안고 있었음. 나타샤는 로키의 멍한 표정과 토르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 한숨을 한 번 푹 쉬더니 이야기를 시작했음. 

"토르. 일단 미안하다는 말부터 먼저 할게요. 당신 동생은... 우리도 어떻게 된 일이진 모르지만, 한동안 감금된 채 매춘에 이용됐어요. 몇 년을 잡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행동패턴도 엉망이고, 몸상태는 최악이에요. 도망을 못 치게 발목을 아예 망가뜨려놔서 걷지도 일어서지도 못해요. 정신상태는 더 심각해요. 우리 중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고... 여러 안 좋은 버릇이 잔뜩 들어있거든요. 말은 한 마디도 못하고. 아마도 트라우마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그게 무슨... 저 애가..." 토르는 적잖이 충격받은 듯한 표정이었음. 스티브는 로키의 안색을 살핌. 로키는 어쩐지 지치고 체념한 듯한 표정이었음. 그 매춘굴에 널브러져 있을 때의 표정과 똑같았지. 스티브는 어쩐지 가슴이 철렁해서 로키를 더 꼭 끌어안으며 괜찮다고 나직하게 속삭였음. 

"알아요. 우리도 믿기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게 사실이에요. 토르. 로키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도, 우리가 로키에게 홀린 것도 아니에요." 나타샤가 냉정하게 말을 맺었음. 토르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듯한 표정이었지. 한동안 얼빠진 표정으로 있던 토르가 간신히 입을 염.  

"난 전혀... 전혀 몰랐네. 로키가 또 무슨 짓을 꾸민다고만 생각했지. 그 애가 여기서... 그런 일을 당했을 줄은..." 토르는 망연자실한 얼굴이었음.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토르는 어지간히 충격받은 얼굴이었음. 다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음. 차마 토르를 질책할 수도 없었음. 그 누구보다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06.

토르는 그 날 이후로 한동안 타워를 찾지 않았음. 로키는 잠깐 상태가 좋아졌던 게 무색하게도 다시 폐인처럼 지내고 있을듯. 스티브 말에도 그냥 시선 한 번 주고 말아버리고... 음식도 거부하고 우유 같은거나 간신히 넘기고 그랬으면 좋겠다. 차마 강제로 먹일 순 없어서 링겔 맞히고 본인이 그나마 거부 않는 우유 가끔 먹이는거. 도피하듯 잠에 빠져서 죽은 듯이 잠만 자는 로키 보면 스티브는 속이 타는데 다른 어벤이들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넘기겠지. 

"어차피 데미갓이잖아. 죽진 않을거야. 쟤도 충격에서 벗어날 시간이 필요하겠지." 토니는 뭘 그리 신경쓰냐는 투로 이야기했음. 배너는 그냥 로키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라고 말했고, 나타샤는 스티브에게 당신은 할 만큼 했고 나라면 로키에게 더 정을 붙이지 않겠다는 충고 아닌 충고를 했음. 클린트에게는 아예 묻지 않았음. 좋은 대답을 못 얻을 게 뻔했으니까. 

어쨌든 토르가 다시 타워로 돌아올 때까지 그런 지루한 나날들이 이어지겠지. 토르는 언제나 그렇듯 불쑥 나타났음. 

"토르. ...로키 때문에 온 건가요?" 스티브가 살짝 날선 목소리로 물었음. 토르는 한참 동안 가만히 있다 고개를 끄덕임. 

"오늘은 돌아가는 게 어때요. 로키는 지금 누군가를 볼 상태가 아닌 것 같은데."

"지난 번 같은 일은 없을걸세. 내 장담하지. ...내가 빼앗아간, 로키의 능력을 돌려주러 온 것일 뿐이야. 부디 그 아이를 보게 해주게. 내 친구여."

"..." 스티브는 로키를 토르에게 보이는게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토르의 어두운 표정에 로키의 방으로 토르를 데려감. 아무튼 보고 싶은 건 이게 아니고 토르가 로키에게 신력과 말을 돌려주려 하는데 이미 약해질대로 약해진 몸이 신력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토르가 로키의 이마에 손을 얹고 속삭이자 룬 문자가 일순간 허공에 나타났다가 사라졌음. 그러자 누워있던 로키가 갑자기 튀어오르듯 일어나더니 제 가슴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하기 시작함. 토르는 갑작스런 로키의 행동에 적잖이 당황한듯 보였음. 로키는 몸을 웅크린 채 피 끓는 소리를 내다 윽, 하는 단말마와 함께 피를 왈칵 토해내곤 옆으로 쓰러짐. 순식간에 흰 이불과 침대 시트가 붉게 물들었고 토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 로키의 안색을 살폈음. 가장 먼저 행동을 취한 건 스티브였음. 

"로키? 로키, 젠장! 정신 좀 차려요!" 스티브가 힘없이 늘어지는 로키를 안으며 외쳤음. 로키의 입가에서는 여전히 핏물이 흐르고 있었음. 토르는 이럴 리가 없는데, 이래선 안 되는데, 하고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말하겠지. 스티브는 토르가 의도적으로 로키를 해치려고 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피 토하고 쓰러지니까 토르에게 언성 높일듯. 

"대체 뭘 했길래-"

"로키를 해치려던 의도는 추호도 없었네. 정말일세. 나도, 나도... 이럴 리가 없는데. 대체 왜..." 토르 역시 충격에 휩싸인듯 두서없이 말을 내뱉음. 스티브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로키를 안은 채로 메디베이로 내달림. 

로키는 나흘 동안 전혀 의식이 없었음.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위벽의 일부가 녹아내려서 피를 토해낸 것이라는 의사의 설명이 토르의 귓가를 맴돌았음. 아주 심한 내상은 아니지만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 토르를 괴롭혔지. 스티브는 계속 로키의 곁을 지켰음. 창백하게 질린 채 눈을 감고 있는 모습에 덜컥 겁이 나, 코 밑에 손을 대보기도 했고 심장 소리를 듣고 안심하기도 했지. 토니는 유난 좀 그만 떨고 일어나라고 한소리 하기도 했음. 스티브는 그런 빈정거림에도 로키를 놓을 수가 없었음. 그래, 로키는 전범이었고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음. 하지만 스티브는 차마 로키를 미워할 수 없었음. 로키에게 각인된 것도, 로키와 몸을 섞은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로키를 놓을 수 없었음. 

"...오늘은 좀 일어나줘요." 사흘 째 되는 날, 스티브가 속삭이듯 말함. 로키는 스티브의 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눈을 굳게 감고 있을 뿐이었음. 

그리고 마침내 다음날, 로키가 눈을 떴음. 

로키는 약간 피곤해보였고, 여전히 멍한 눈을 한 채였음. 스티브는 가볍게 인사를 건넴. 

"안녕, 로키." 그 말에 로키는 스티브를 빤히 보다가, 스티브의 뺨에 손을 가만히 가져다 댐. 스티브는 주저하다 로키의 손 위에 제 손을 겹쳤음. 로키가 이런 식으로 다가온 건 처음이라서 살짝 놀라면서도 거부하지 않았으면 좋겠음. 로키는 한참 동안 그렇게 있겠지. 스티브는 로키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의 흔적을 발견했을 때, 나흘 동안의 그 불안과 걱정이 모두 눈 녹듯 사라지는 걸 보고 불현듯 깨달았음.

제가 생각보다 더 로키를 애틋하게 여기고 있었음을. 

07.

로키는 신력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말은 다시 돌려받게 됨. 그런데 본인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로키가 자신이 다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건 한참 후였음. 그것도 치료받던 다리가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가 알게 된 거였지. 배너는 로키가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심스레 심리상담을 추천함. 스티브는 예전과 똑같이 행동했음. 로키는 잘 입을 열지 않았음. 말을 하다가도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지 한참 동안 말을 멈췄다 이어가는 건 양반이었고, 보통은 말이 되지 않는 문장을 이어나가려 애쓰다 입을 꾹 다물었음. 상담은 얼마 이어지지 못하고 흐지부지된 후에 약물치료로 넘어갔지만, 몸에 성한 부분이 없었기 때문에 길고 지루한 치료는 계속되었음. 

"안녕, 로키." 스티브가 작약과 목화꽃이 섞인 다발을 꽃병에 꽂으며 말했음. 로키는 부드럽게 눈을 깜빡임. 

"예쁘죠." 스티브가 꽃병을 로키 쪽으로 돌리며 말함. 로키는 살풋 웃다가 입을 열었음.

"......안 어울리는데... 나랑." 

"왜요. 당신이랑 어울릴 것 같아서 사왔는데." 스티브가 작약을 손끝으로 건드리며 대꾸함. 로키가 그러자 웃으며 말함. 

"난 창부니까." 눈꼬리를 휘며 웃는 로키의 모습은 더없이 예뻤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혀 사랑스럽지 않았음. 스티브는 말문이 막혀 한동안 가만히 서 있다가 간신히 되물음. 

"...왜... 왜, 그런 말을 해요."

"안 돼?" 로키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음. 스티브는 로키의 순진해 보이는 표정에 할 말을 잃음. 

"..."

"내가 싫어?"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스티브의 눈치를 살피며 로키가 주저하다 물음. 

"그럴 리 없다는 거 알잖아요." 스티브가 고통스럽게 대꾸함. 로키는 불안한 듯 이불을 손으로 만지작거렸음. 스티브는 한숨을 쉬며 로키를 끌어안음.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것 같은 마른 몸이 손에 잡혔음. 훅 끼쳐오는 로키의 체향은 지나치게 좋았음. 은은한 레몬 향과 겨울의 냄새를 섞어놓은 것 같았지. 스티브는 로키의 머리칼을 쓰다듬음. 

"......나 미워하지 마."

"안 미워해요. 누가 미워해요."

"난 스티브가 좋으니까……." 로키가 속삭이듯 말을 맺었음. 스티브는 로키가 안쓰러울 뿐이었음. 

"좋아해?" 로키가 스티브의 귓가에 속삭였음. 로키의 말은 아이같았고 때로는 수수께끼같았음. 차라리 멍하게 있을 때에는 몰랐는데, 말을 다시 하게 되니까 진짜 심하게 정신이 망가진 게 드러나서 스티브는 더 마음이 안좋겠지. 스티브는 로키의 뺨에 살짝 키스하며 대꾸함. 

"많이 좋아해요." 

"......다행이다." 로키는 그렇게 말하며 스티브의 목덜미에 코를 묻음.

"봄 냄새가 나." 로키의 그 말에도, 스티브는 한참 동안 로키를 끌어안고 있을 뿐이었음. 

스티브는 단순히 제 감정을 연민이라고만 생각했음. 나타샤가 꼭 사랑에 빠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스티브는 그 말을 듣고 당황함. 스티브는 자신을 로키의 보호자쯤으로 규정짓고 있었거든. 

물론 제가 로키를 많이 좋아하는 것은 맞았음. 그렇지만... 사랑에 빠졌다고? 로키가 눈에 밟히고 애틋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로키를 그런... 그런 식으로 욕망한 적은 없는데. 굳이 따지자면 아이를 아끼는 부모와 같은 마음이었어. 스티브의 머릿속에는 누구를 향한 건지 모를 변명들이 소용돌이침. 스티브는 복잡한 심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로 저녁을 맞이함. 결국 답답한 마음에 술 한 병 딸듯. 취하지도 않지만 너무 답답해서. 그래서 혼자 위스키 홀짝이고 있는걸 토니가 발견했으면 좋겠다. 

"뭐야. 청승맞게."

"...아, 토니."

"글렌피딕 12년산? 평범한 취향이군." 토니는 병을 집어들어 라벨을 보고는 소파에 풀썩 앉음. 스티브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잔소리를 하진 않았음. 

"뭣 때문에 이렇게 유난을 떨고 있어?"

"...그냥. 자네한테 말해줘도 모를걸."

"연애 문제?" 토니가 슬쩍 떠봄. 

"아니야. 이상한 말 좀 하지 마, 토니."

"로키 때문에 그래?"

"비슷하지." 스티브가 한숨을 쉬며 대꾸함. 토니는 픽 웃으며 대꾸함. 

"연애 문제 맞았네."

"글쎄, 로키랑 그런 관계 아니라니까."

"섹스는 했잖아?" 토니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음. 스티브는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토니의 말에 술을 넘기다 사레가 들려서 켁켁거릴듯. 

"-무슨,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스티브가 새빨개진 채 소리쳤고 토니는 어깨를 으쓱했음.  

"그런 것 치고는 지금도 로키 냄새가 옷에 배어 있는데."

"그건..."

"혼전 섹스한다고 세상이 끝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술 마실 필요 없다니까, 캡." 토니가 다 알고있다는 듯 스티브의 어깨를 토닥거림. 

"글쎄 그런 게 아니라니깐?!"

"아픈 애 홀랑 잡아먹어서 죄책감 드는 건 알겠는데, 어차피 모르고 한 것도 아니잖아. 아무튼. 난 최소한 나쁜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해. 당신이 너무 로키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거 아닌가 싶긴 하지만." 

"토니, 진짜 자네가 무슨 오해를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난 로키랑 자지 않았어." 스티브가 진지한 어조로 말했음. 완강한 거부의 말에 토니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되물음. 

"...진짜?" 

"정말이야. 내가 로키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고, 로키도 날 의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난 로키랑 잔 적 없네. 토니. 난 그냥... 로키를 돌볼 뿐이야." 스티브가 변명하듯 내뱉는 말에 토니는 스티브가 뭣 때문에 저러는지 딱 감이 올 듯. 자기 마음을 부정하느라 저렇게 삽질하고 있다는 것도 척 보면 알 테고. 토니는 피식 웃으며 스티브에게 물음. 

"로키에게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한 적 있어?"

스티브는 대답하지 못함. 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토니는 것 보라는 듯 씩 웃으며 말함. 

"그것 봐. 세상에 그런 짓 하는 아빠 아들이 어디 있어?" 토니의 말에 스티브는 그냥 보호자라니까, 하고 항변했지만 토니는 어깨만 으쓱하고 말겠지. 그러니까 그냥 좋아하는 거라고, 이 노친네야. 토니는 이 말을 꺼내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지만 스티브가 스스로 깨닫는게 더 재밌을 듯 싶어서 그냥 웃으며 거실을 나옴. 

08.

스티브는 그 날 밤에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음. 분명히 저는 로키를 좋아했음. 하지만 정말 그런 식으로 좋아하는 게 맞나? 스티브는 자문했음. 스티브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음. 아니, 솔직히 말해 로키를 좋아하고 있음을-그것도 연애감정이 섞인 채로-인정하는 게 힘들었지. 로키가 그런 꼴을 당한 걸 직접 본 것도 자신이었고, 길고 고통스러운 치료를 해 나갈 때 옆을 지켜본 것도 자신이었지만 로키는 어쨌거나 전범이었고 한때 제가 저지해야만 했던 악당이었으니까. 머리로는 당연히 둘을 분리하고 있었고, 지금의 로키에게는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섣불리 로키를 연인으로 좋아한다고 인정할 수는 없었음. 차마 로키가 죽인 사람들의 무게를 지워버릴 순 없었으니까. 

스티브는 몇 주 동안 복잡한 심경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로키를 찾아감. 오랜만에 본 로키는 자고 있었음. 팔에는 링겔이 꽂혀 있는 채였지. 몸이 워낙 망가져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영양제랑 약을 맞아야 했으니까. 스티브는 로키의 머리칼을 살짝 쓸어봄. 로키의 몸엔 은은하게 제 향이 배어 있었음. 로키는 부스스 일어남. 

"스티브."

"미안해요. 깼어요?"

"안녕." 로키가 인사를 하곤 푸흐흐 웃어버림. 스티브는 따라 웃을수밖에 없었음. 로키는 스티브의 손에 이마를 가져다 댐. 

"지치지?"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나 보러 오는거."

"내가 좋아서 오는 거에요." 로키의 말에 스티브가 항변하듯 말함. 

"아무도 안 오는걸."

"-그리고 난 망가졌으니까." 로키는 또 그렇게 더없이 예쁜 얼굴로 스티브 마음을 쿡쿡 쑤시는 말을 함. 스티브는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말하겠지.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이런 물건은 팔아도 얼마 못 벌어." 로키가 제 팔에 꽂힌 링겔을 가리키며 말했음. 스티브는 진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음. 팔아도 얼마 못 번다니, 대체 어떻게 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지금 치료하는 것도, 자신을 내다 팔기 위한 거라고 생각하다니. 스티브는 로키가 당한 취급을 차마 상상할수도 없었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서. 

"...그런, 그런 거 아니에요, 로키..." 스티브는 목이 멘 채로 말함. 

"..."

"...그런 거 아니에요..."

"..."

"좋아해요, 로키. 진짜, 진짜 좋아해요...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스티브가 저도 모르게 눈물 후두둑 떨구면서 말함. 스스로도 제 안에 넘실대는 감정들을 주체할 수 없어서 눈물이 터졌으면 좋겠음. 서럽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태껏 꾹꾹 눌러서 참아왔던 로키에 대한 애정과, 미안함 같은게 로키의 저 말로 둑 터지듯 터져나온 거였으면ㅇㅇ 로키는 당연히 당황하겠지. 

"나 때문에 왜 울어, 그러지 마... 당신 좋은 사람이잖아, 그런데 왜..." 당황해서 막 스티브 달래려고 말하는데 그게 더 스티브 상처주는 말이었으면 좋겠다. 

"나 당신 진짜 좋아해요."

"..."

"제발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나한테 당신은 너무 아름다운데, 난 그런데... 왜 자꾸 당신은 그런 말만 하는 거에요." 스티브가 목멘 목소리로 말을 맺음. 로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스티브를 바라봤음. 그러다 간신히 말하겠지. 

"......미안해."

"...기대하면 안 될 것 같았어." 로키가 천천히 손을 뻗어 스티브의 옷자락을 매만지며 말함. 스티브는 여전히 무거운 낯빛으로 로키를 바라볼 뿐이었지. 로키는 스티브의 옷자락을 꾹 쥐었다 놓으며 말끝을 흐렸음. 

".......내가, 너무... 아플 것 같았어. 그래서..." 스티브는 로키의 대답에 아무 말도 못하고, 차마 화도 낼 수 없어서 그냥 로키를 마주 안아주기만 했으면 좋겠다. 로키는 스티브의 품 안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음. 이제는 그 끔찍한 치들에게 다시 돌아갈 일은 없으리라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09.

스티브의 고백 이후에 로키는 좀 더 치료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음. 이유는 단순했지. 스티브가 원하는 거였으니까. 상담 치료도 다시 시작함. 스티브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로키가 안쓰러워서 타워 안에 있는 실내 정원으로 로키를 데리고 돌아다니겠지. 구식이긴 하지만 드문드문 자라 있는 토끼풀로 꽃반지 만들어서 끼워주고 잔디밭에 앉아서 수다떨고. 로키는 제 손에 끼워준 꽃반지 보면서 웃었음 좋겠다.

"이런 것도 배웠어?"

"옛날엔 스마트폰이 없었거든요." 스티브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함. 

"어디서?" 로키가 갸웃하며 되물음. 

"그냥, 어릴 때요. 누구한테 배웠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네요. 너무 오래 전 일이라서." 스티브가 로키 손에 끼워진 꽃을 살짝 건드리며 말함. 로키는 가만히 그걸 보다가 물음. 

"시간이 많이 지나면 나도 잊을까?"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당신에게 잊혀지는 건 싫어서." 로키는 그렇게 말하곤 스티브의 목에 팔을 두름. 스티브는 로키를 조금 가까이 안고는 속삭이듯 말함. 

"무슨 일이 있더라도 로키를 잊을 수는 없을 거에요."

"확신한다는 목소리네."

"음... 로키는 안 그래요? 나 잊어버리려고요?" 스티브가 되레 장난스레 물어봄. 로키는 스티브 어깨에 기댄 채로 대꾸함. 

"잊어버린 것들이 너무 많아서... 약속해줄 자신이 없어." 

"이제부터 안 잊어버리면 되죠."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있잖아요." 스티브가 로키 등을 토닥이며 대꾸함. 로키는 한참 동안 가만히 있다가 맥빠진 목소리로 말함. 

"그래. 그러네." 어떤 것들은 타인의 도움으로도 절대 극복할 수 없는데, 라는 생각을 그저 눌러버리며 로키는 그냥 스티브의 품에서 눈을 감아버림. 로키는 천천히 예전의 기억들을 떠올림. 가끔 저를 산 남자 중 몇몇은 이상할 정도로 제게 호의를 보이며 함께 도망가자고, 사랑한다며 무엇이든 하겠다고 이야기하다가 이내 돌변해 폭력을 휘두르고 자신을 강간하고는 했음. 로키는 순간적으로 스티브에게서 그 맹목적인 무언가를 보았다고 생각했음. 물론 그건 단순한 착각이었지만, 로키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음. 

"에바가 책을 읽어보래." 로키는 스티브의 품에서 저를 떼어내며 말했음. 화제를 돌리고 싶어서 아무 말이나 던져본 것이었음. 상담사는 제게 책을 추천한 적이 없었으니까. 

"무슨 책을 읽고 싶은데요?"

"글쎄..."

"난 디킨스가 좋지만, 로키 취향은 나랑 또 다르니까 뭐가 좋을지 모르겠네요."

"별로 읽고 싶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이북으로 한 번 읽어보고 좋아하는 작가를 찾아보는 건 어때요?"

"음, 그냥 나중에 할래." 로키는 난처한 듯 웃으며 말을 맺었음. 금방이라도 일어나서 정원을 나가고 싶어하는 눈치였음. 스티브는 로키가 불편해하는 것 같자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음. 

"잔디 위에 누우면 벌레 물릴까?"

"그럼 내가 잔디 위에 누워서 로키 침대 해 줄까요?" 스티브가 키득거리며 반문함. 로키는 인상을 찌푸렸다 대꾸함. 

"그럼 풀냄새를 못 맡아."

"음, 그렇겠네요."

"수긍하지 마."

"담요 깔아줄까요?"

"...아니." 로키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잔디밭 위에 누워버림. 

"나한테 너무 친절하게 굴지 않아도 돼." 로키가 지나가는 말처럼 던졌음. 스티브는 로키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 없이 내려온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꽂아줄 뿐이었지. 

"...좋아해, 스티브. 당신을 싫어하진 않아..." 로키가 한참 동안 가만히 있다가 그렇게 말했음. 스티브는 알아요, 하고 고개를 끄덕임. 로키는 그런 스티브의 푸른 눈을 보다가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속삭임. 

"어쩌면 그래서 더 불안한 건지도 모르겠어."  여전히 수수께끼같은 그 말에 스티브는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음. 그 말을 하는 로키의 표정이 어쩐지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사람 같은 위태한 분위기를 풍겨서. 

10.

로키를 롤링하고 싶으니까 어벤이들이 로키를 숨겨주고 치료해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었으면 좋겠다. 그날 타워가 발칵 뒤집히겠지. 대체 어떻게 망할 기자새끼들이 안 거냐고 외치는 토니의 고함 소리가 타워를 울렸고 나타샤는 쉴드 쪽에서 유출된 걸로 보이는데, 누군가 독단적으로 언론사에 흘린 것 같다고 이야기함. 클린트는 잔뜩 찌푸린 표정을 하고 있었고 스티브는 초조한 표정으로 미간을 구기고 있었음. 배너는 전에없이 어두운 표정을 하다가 입을 열었음.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아요."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정보를 흘린 게 분명해요. 사진도 그렇고. 터뜨린 언론사도 그렇고.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 같-"

"난 아무리 철천지 원수라고 해도 사창가에 팔려다니다 반병신이 된 녀석을 죽어보라는 식으로 언론에 내놓진 않을 것 같은데 말이지." 토니가 빈정대며 말했음. 폭로 기사가 '전무후무한 범죄자를 은폐'하는 데 토니의 지원과 스티브의 묵인이 있었을 거라는 논조여서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주식은 개장하자마자 수직하락하고 있었고, 토니의 심사는 어지간히 뒤틀린 상태였음. 나타샤는 살짝 눈썹을 치켜올림. 

"화난 건 알겠지만, 사람 말하는 데 끊지 마. 토니." 

"노력은 해 보지."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스티브가 물었음. 클린트가 한숨을 쉬고 대꾸함. 

"로키를 먹잇감으로 던져주는 방법도 방법으로 친다면, 있기야 하죠."

"그건 방법이 아니잖나."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그것도 고려하셔야 해요. 캡." 클린트가 조심스럽게 말함. 스티브는 입을 다물었음. 토니는 그런 스티브의 눈치를 살피다가 입을 염. 

"여론이 식을 때까지 기다려보면 괜찮을지도 모르지. 또."

"로키가 자살했을 때의 전제야?" 나타샤가 토니 쪽을 쳐다보며 물었음. 토니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음. 

"설령 우리가 기다린다 해도, 여론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에요." 배너가 툭 던지듯 말을 꺼냄. 

"사람들은 가장 먼저 우리에게 분노할 거에요. 어찌 되었든 우리가 범죄자를 숨겨주고 치료해줬으니까. 로키가 인신매매와 성범죄 피해자로 지속적으로 학대당해왔단 사실을 적나라하게 공개해버린다면, 일시적으로 동정론을 일으킬 순 있지만 종내엔 로키의 처벌을 원할거에요. 안 됐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기껏해야 이런 반응이나 얻겠죠.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로키가 받을 처벌의 수위일 뿐이에요."

"감옥에 처넣는 꼴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말이군." 토니가 말했음. 

"로키에게 죄를 물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잖나. 그 때의 로키와 지금의 로키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닌데."

"그렇다고 로키가 한 일이 사라지진 않죠." 클린트가 한 마디 던짐. 스티브는 입을 굳게 다뭄. 반박할 수는 없었음. 로키는 수십명의 사람들을 죽인 범죄자였고, 로키가 죽인 이들의 가족들은 그 날부터 지금까지 하루하루 살아도 산 것 같지 않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테니까. 스티브는 차마 그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로키를 내보낼 수도 없었음. 

"...일단 지켜보도록 하지. 로키를 직접 노출시키는 수는 가장 마지막에 쓰는 걸로 하고."

"캡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클린트는 어깨를 으쓱했고, 토니는 또 언론을 상대하는 건 내 몫이냐고 투덜거림. 스티브는 나타샤와 토니의 투닥거림을 지켜보다가 일어서서 로키의 방으로 향함. 일단은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음.

로키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음. 스티브는 늘 그렇듯 다정하게 로키를 부름. 

"로키, 나 왔어요."

"...스티브." 로키는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함. 스티브는 오늘따라 축 처진듯한 로키의 목소리에 걱정이 앞섬. 

"어디 아파요?"

"...아니야..."

"그런 것 치고는 표정이 별로 안 좋은데요. 어디 아픈 데 없어요?" 스티브의 질문에 로키는 고개를 저음. 그런 로키의 안색이 너무 창백해서 스티브는 다시 걱정스레 물어봄. 한 세 번쯤 스티브가 묻고 나서야 로키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꾸함. 

"...배가..."

"많이 아파요? 메디베이로 내려갈까요?" 스티브의 물음에 로키는 도리질을 침. 여전히 배가 쥐어짜는 듯이 아팠지만 조금만 참으면 이 고통은 곧 사라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 유산당하고 나서 종종 이런 식으로 아팠으니까.

"로키. 당신 진짜 아파보여요."

"...그냥..." 로키는 더 말할 힘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음. 스티브는 로키를 토닥거렸음. 해줄 수 있는게 없어 답답해 죽을 것 같았지. 로키는 멍하게 스티브를 보다가 스티브의 옷자락을 꾹 잡음. 

"가지 마."

"어디 안 가요."

"...옆에... 같이 누워. 응?" 애원조인 로키의 말에 스티브는 한숨을 푹 쉬고는 로키 옆에 누움. 다행히 침대는 넉넉했음. 로키는 스티브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와 딱 붙어 누웠음. 스티브는 로키의 배를 살살 만져줌. 로키도 따뜻한 손이 배 위에 얹혀져 있으니까 통증도 훨씬 덜한 듯한 느낌이어서 잠자코 있겠지. 스티브는 제 품안에서 낑낑대는 로키를 보며 걱정스레 물음. 

"핫팩이라도 가져다 줄까요?"

"...있어 줘... 응? 안 간다고 했잖아." 스티브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로키가 살짝 겁먹은 듯한 목소리로 붙잡음. 스티브는 한숨을 쉬며 로키를 꼭 끌어안음. 로키는 조금이라도 스티브 온기에 닿고 싶어서 더 바짝 붙을듯. 스티브는 그런 로키를 부드럽게 토닥임. 로키 옆에 누워있긴 하지만 스티브 속은 이미 복잡할 대로 복잡한 상태였음. 

"로키."

"..."

"난 절대 당신을 떠나지 않을 거에요." 스티브가 나지막하게 이야기함. 그건 로키에게 하는 말이기도,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음.

"...다행이다."

"좀 자 둬요." 스티브는 로키에게 나직하게 말하며 이마에 부드럽게 키스함. 로키는 스티브의 품 안에 파묻혀서 그대로 잠들었고, 스티브는 한참 동안이나 잠든 로키를 끌어안고 그렇게 누워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