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차 · 감잎차 · 감초차 · 강죽차 · 개암차 · 결명자차 · 계지차 · 계화차 · 고삼차 · 곽향차 · 구기자차 · 국화차 · 귤피차 · 귤화차 · 길경차 · 꿀물 · 냉이차 · 냉차 · 노각차 · 녹두차 · 누룽지차 · 당귀차 · 당근차 · 대나무차 · 대추차 · 대파차 · 더덕차 · 도화차 · 동백차 · 동아차 · 돼지감자차 · 두충차 · 두향차 · 둥굴레차 · 들깨차 · 딸기차 · 땅콩차 · 레몬차 · 루이보스차 · 마늘차 · 마름차 · 매실차 · 매화차 · 머위차 · 메밀차 · 모과차 · 목련차 · 목향차 · 무잎차 · 민들레차 · 방풍차 · 벚꽃차 · 보리차 · 복령차 · 비트차 · 비파차 · 사과차 · 산약차 · 삽주차 · 상지차 · 새삼차 · 생강차 · 석류차 · 설차 · 소태차 · 속단차 · 솔잎차 · 송화차 · 수박차 · 수수차 · 수유차 · 시호차 · 쌍화차 · 쑥차 · 아욱차 · 앵두차 · 양파차 · 여주차 · 연근차 · 연잎차 · 영지차 · 예르바 마떼 · 오디차 · 오미자차 · 오이차 · 옥수수수염차 · 옥수수차 · 와송차 · 우슬차 · 우엉차 · 울금차 · 원지차 · 유자차 · 율무차 · 으름차 · 은행차 · 인동차 · 인삼차 · 잇꽃차 · 자두차 · 자몽차 · 자색옥수수차 · 자소차 · 작두콩차 · 작약차 · 잔대차 · 장미차 · 재스민차 · 지황차 · 참깨차 · 참외차 · 창포차 · 치자차 · 치커리차 · 탱자차 · 토란차 · 팥차 · 포도차 · 해바라기차 · 허브차 · 헛개나무차 · 현미차 · 형개차 · 호두차 · 호박차 · 홍삼차 · 황기차 · 후박차 · 후추차 · 히비스커스차 Show 기호품 [ 펼치기 · 접기 ] 식품 껌, 사탕, 초콜릿, 쿠키, 코코아, 아이스크림, 샤베트, 젤라토, 양갱, 한과, 캐러멜 음료 술, 차, 커피, 주스, 에이드, 스무디, 슬러시, 프라페, 스쿼시, 밀크셰이크, 탄산음료, 핫초콜릿, 에너지 드링크 기타 담배 동양(위)과 서양(아래)의 차 문화. 1. 개요2. 명칭 2.1. 외국어 명칭 3. 유래4. 각국의 차 문화들4.1. 동아시아 4.1.1. 한국4.1.2. 중화권4.1.3. 일본 4.2. 동남아시아4.2.1. 태국 4.3. 남아시아4.3.1. 인도 4.4. 유럽 및 영미권4.4.1. 영국4.4.2. 미국4.4.3. 튀르키예 4.5. 유라시아4.5.1. 이란4.5.2. 러시아 4.5.2.1. 러시아 차 문화의 역사4.5.2.2. 러시아 차 문화의 특징4.5.2.3. 러시아 차의 국산화와 레몬티 문화 5. 차의 종류5.1. 차 5.1.1. 제형에 따른 분류5.1.2. 대만 10대 명차 5.2. 대용차6. 차를 우리는 방법6.1. 냉침법6.2. 온침법6.3. 중간6.4. 후발효 7. 다기 선택법7.1. 재질7.2. 형태 8. 관련 문서1. 개요[편집]차(茶, tea)는 차나무 잎을 비롯한 식물성 재료를 물에 우려 만드는 음료이다. 2. 명칭[편집]'차(茶)'라는 것은 원래는 차나무와 그 잎만을 가리켰다. 소나무의 솔, 대나무의 대처럼 차도 원래 차나무라는 이름의 나무다. 차나무는 본래 키가 3 ~ 4 m 남짓한 교목이지만(대엽종은 15 m까지) 가지치기를 하고 잎을 하도 많이 따다 보니 1 m 남짓한 크기가 되었다. 원산지에서는 천년 묵은 차나무 숲이 있는데 거기에 있는 차나무는 전부 아름드리 나무다. 2.1. 외국어 명칭[편집]자세한 내용은 茶 문서 를 의 번 문단을 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언어별 명칭. '테(te)'계열과 '차(cha)' 계열.[5]
3. 유래[편집]
4. 각국의 차 문화들[편집]4.1. 동아시아[편집]중화권을 중심으로 차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고, 지금도 차는 아시아산, 그 중에서 중국산, 대만산을 최고로 친다. 4.1.1. 한국[편집]한국은 삼국시대 때 부터 차를 마셨다. 가장 먼저 차가 전래한 곳은 백제로 추정되며 신라에서도 차를 마실 때 쓰는 도구들이 출토된다. 당나라에서 수입하는 비싼 차들은 선물이나 하사품으로도 사용했는데 신문왕에게 들려준 설총의 화왕계나 경덕왕에게 도솔가를 지어 바치고 차를 하사받은 월명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다.
한국의 전통음료 [ 펼치기 · 접기 ] 갈근탕 경소탕 금분탕 꿀물 녹운탕 두구탕 모과탕 미수[1] 배숙 봉수탕 생맥산 소주온미 송화밀수 수단 수문탕 수정과 수지탕 숙매탕 숭늉 식혜 십전대보탕 쉰다리 쌍화탕 암향탕 양위탕 오미탕 옥설탕 온조탕 원소병 자소탕 제호탕 창면 타락죽 화채 해성탕 행락탕 회향탕 지황고자탕 녹차 한국의 전통주 [1] 물에 탄 미숫가루 또한 미숫가루로 칭하는 경우도 많다. 4.1.2. 중화권[편집]중화권은 차의 본고장이기도 하고 민족이 많은 만큼 차의 종류도 다양하며 대다수가 차를 즐긴다. 사실상 기호식품의 단계를 넘어서 생활의 일부분이라고 칭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애초에 차가 중화권에서 시작되었다. 4.1.3. 일본[편집]엽차(잎차)와 말차(가루차)를 혼용하지만 일본식 전통 다도에서는 주로 말차를 사용한다. 일본 다도의 조상이라 일컫는 센노 리큐로부터 내려온 다도에서 쓰는 말차를 특별히 '와비차'라고 부른다. 센노 리큐에서 유래한 다도 유파인 우라센케와 오모테센케의 엄격한 녹차예절 이외에도 홍차를 대중적으로 소비한다. 마트에서도 다양한 홍차 블랜드 음료와 인스턴트 제품을 판다. 4.2. 동남아시아[편집]4.2.1. 태국[편집]대체로 차를 달고 시원하게 마신다. 일찍부터 프랑스와 교류한 덕분에 블렌딩 티 역시 발달했다. 태국 전통 대표 차인 차옌(ชาเย็น, Thai Tea) 역시 블렌딩 티로서, 달게 마신다. 마트나 편의점에만 가도 엄청난 가짓수의 차를 접할 수 있다. 4.3. 남아시아[편집]4.3.1. 인도[편집]원래 인도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약초 같은 용도로 썼을 뿐, 음다 문화는 발달하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나 영국이 중국과의 무역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식민지였던 인도 제국의 날씨가 차를 기르기에 적합한 것에 주목하고 중국 푸젠성에서 차나무 묘목을 몰래 빼돌려 대규모 차밭을 조성하면서, 본격적인 인도 홍차의 시대가 열렸다. 이 중 가장 유명한 종이 아삼종. 현재 이 지역의 생산량은 전 세계 홍차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4.4. 유럽 및 영미권[편집]유럽은 영국과 아일랜드, 튀르키예를 제외하면 대부분 차종류보다 커피를 선호하며, 차를 즐긴다 하더라도 유럽에서는 대개 홍차(black tea)를 즐기고 녹차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았다.[25] 엽차인 녹차를 보면 무슨 저런 오줌같은 음료가 있나 생각하면서 꺼리기도 한다.[26] 마테차가 녹차보다 더 잘 알려져 있을지도.[27] 4.4.1. 영국[편집]
우리나라에선 일반적으로 하루 중 중 가장 잘 차려먹는 식사가 저녁이기 때문에 무조건 저녁식사를 디너라 부르지만, 실은 디너는 저녁식사(만찬)라는 뜻이 아니라 하루 중 가장 잘 차려먹는 식사(성찬)를 가리킨다. 영국에선 런치가 디너인 경우가 많으며[38] 이는 영국인이 저녁 무렵에 티를 먹기 때문에 그 다음 밥인 서퍼의 양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4.4.2. 미국[편집]미국인들은 미국 독립전쟁의 시작인 보스턴 차 사건의 영향으로 인해 차 대신 커피를 즐긴다는 속설이 있으나 사실과는 좀 다르다. 단지 비교적 가까운 남아메리카에서 구입하는 커피가 중국이나 인도 제국에서 구입하는 차보다 저렴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미국인들이 대륙권 유럽인들처럼 차보다 커피를 즐기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 다만 남부에서는 아이스티를 즐겨 마신다. 마치 90년대까지 한국인들이 보리차를 물 대신 마신 것처럼, 아이스티를 물 대신 마실 정도. 4.4.3. 튀르키예[편집]
튀르키예에서는 영국과 달리 우유를 타지 않은 홍차를 마시되, 위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작은 잔(대략 180~200ml)에다 차를 마시는데 대체로 찻집에서 차를 주문하면 각설탕 2개가 들어있는 포장 1개를 준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터키인들은 이걸 다 넣거나 아니면 1개 넣는 정도로 예전과는 달리 설탕을 적게 쓴다. 4.5. 유라시아[편집]이 지역은 영미권과 다른 양상으로 차가 발전했다. 해로를 통해 차를 수입한 영국과 달리 이 지역들은 중국에서 직접 육로로 차가 소개되거나 중앙아시아의 교역로를 통해 차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몽골, 티베트 일대에서 즐겨마시는 버터차와 몽골식 밀크티(수테차)가 잘 알려져있으며 육로를 통해 차가 들어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녹차나 황차를 구입했으나[45] 자연스럽게 발효된 홍차나 흑차화된 것을 소비하다가 17세기 이후 홍차가 유럽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홍차로 바뀌었다. 또한 본래 중국식 차문화와 달리 사모바르와 같은 독자적인 다구가 발전했다는 특징도 있다. 터키의 경우는 하술하겠지만 처음에는 유럽의 영향으로 차문화가 퍼졌지만 곧 차를 자체생산하면서 현지의 커피문화와 카프카스 일대의 차문화가 섞여 오늘날에 이른다. 중동지역의 차문화는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영향을 받았으나 아랍지역은 오스만 제국과 영국의 영향을 받고나서야 차가 널리 퍼졌으며 그나마도 커피가 생산되는 지역이기 때문에 터키와 달리 차가 커피를 대체하지 못했다. 4.5.1. 이란[편집]하술할 러시아와 터키의 차문화의 중간경유지이며, 차를 마시기 시작한 역사도 매우 길다. 또한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상당한 차 생산, 소비 대국중 하나이기도 하다. 터키와 마찬가지로 처이허네(چای خانه)를 골목골목마다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4.5.2. 러시아[편집]러시아 역시 차 문화가 굉장히 발전한 나라이며 영국과 마찬가지로 홍차를 검은 차(чёрный чай. 초르니 차이)라고 부른다. 4.5.2.1. 러시아 차 문화의 역사[편집]러시아는 타타르의 멍에 때문에 13세기부터 차를 마시지 않았을까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이반 뇌제의 치세에 차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1638년, 미하일 로마노프의 사신이 몽골 칸으로부터 전차(벽돌차)를 받아온 게 러시아 차의 시초이다. 1638년이면 이미 몽골의 마지막 칸인 에제이가 홍타이지에게 쿠빌라이 칸의 옥새를 바치고 항복한 상태였기 때문에 누구에게 차를 받아왔는지가 불명확해 보일 수 있는데, 할하의 알탄 칸에게서 차를 선물 받았다. 4.5.2.2. 러시아 차 문화의 특징[편집]흔히 러시안티를 생각하면 홍차에 잼을 넣어 먹는 것을 연상하는데, 러시아에서 차를 마시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4.5.2.3. 러시아 차의 국산화와 레몬티 문화[편집]비슷한 차 문화를 가진 이란, 터키와 달리 러시아는 대부분의 지방이 차나무가 자라기에는 기후가 너무 춥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러시아는 차의 지나치게 높은 가격과 느린 운송 속도, 수요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공급량 때문에 늘 고민했고, 문제 해결을 위해 차의 국산화를 시도했다. 5. 차의 종류[편집]5.1. 차[편집]차를 분류하는 방식은 여러가지이며, 국가별로 그 분류 기준 및, 명칭도 다양하다. 하지만 자신이 배우고 있는 다도 한 가지를 섭렵하게 된다면, 다른 나라의 다도에서도 비슷한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다구 및 시기별 채취하는 차를 부르는 명칭을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5.1.1. 제형에 따른 분류[편집]
5.1.2. 대만 10대 명차[편집]명차가 되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시대가 흐르면 명차의 기준도 달라지지만 보통은 국립대만대학 농업계(농과대학)의 진문회(陳文懷)교수가 정리한 아래 기준을 만족하는 차를 명차로 꼽는다.
대개 앞의 두글자는 차의 산지(지역, 유명한 산,강 등)를 나타내고, 뒤에 두글자는 차의 종류를 나타낸다. 5.2. 대용차[편집]원래 차라고 하는 것은 차나무의 잎으로 만든 것만을 지칭하므로, 아래의 대용차들은 엄밀히 말하면 차가 아니라, 탕이 정확한 표현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냥 차라고 지칭된다. 영어권도 사정은 비슷해서 차(Tea)도 아닌 허브티(Tisanes)를 Herbal Tea라고 부른다.
6. 차를 우리는 방법[편집]차를 우리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다음과 같은 대원칙을 숙지해놓으면 쉽다. 6.1. 냉침법[편집]녹차종류와 같이 쇄청, 발효가 이루어지지 않은 차는 온도에 매우 민감하며 통상적으로 80도 이상 되는 물에서 우려지면 쓴맛이 나기 때문에 더 낮은 온도에서 우리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 잎일수록 낮은 온도에서 우리는 것이 좋으며, 일본 녹차같이 어린 잎을 증제(찜)해서 만든 차는 더욱 더 온도에 민감하다. 교쿠로(옥로)같은 최고급 일본녹차의 경우 50'c 정도에서 우리는데 이정도면 그냥 미지근한 물이다. 그래서 교쿠로를 우리는데 쓰는 다기인 호힌은 다관에서 흔히 보이는 손잡이조차도 없다. 6.2. 온침법[편집]홍차와 같이 완전발효된 차는 끓는 물에서 우려내야 좋은 맛이 난다. 물주전자에서 동전 크기의 기포가 뽀글뽀글 날 때까지 충분히 끓인 다음에 홍차를 담은 티포트에 부어서 우린다. 홍차를 우려내는 티포트는 차가 우려지는 동안 뜨겁게 유지해야 더 좋은 맛이 난다. 보이차 또한 숙차인 경우 끓는 물로 우리는 것이 좋다. 6.3. 중간[편집]반발효차(우롱차)는 발효정도에 따라 발효차(홍차)보다 조금 낮은 온도에서 우린다. 일반적으로 발효도가 낮은 철관음 같은 차는 90도 정도에서, 발효도가 높은 대홍포 같은 우롱차는 95도 정도가 좋다. 6.4. 후발효[편집]위 과정을 거쳐 우린 차에 유산균 등을 넣어 발효시키는 방식이다. 콤부차가 여기에 속한다. 7. 다기 선택법[편집]7.1. 재질[편집]상술한 차의 추출방법을 고려해 티포트의 소재를 선택해야 한다.
7.2. 형태[편집]공통적으로 뚜껑이 이탈없이 잘 닫히고, 주둥이가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차를 따를때 찻물이 아래로 줄줄 흐르지 않아야 한다. 8. 관련 문서[편집]
[1] 효능으로 보았을 때 차를 마시는 이유의 절반 정도는 '테아닌' 때문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개 테아닌 함유량은 녹차(비발효차)<우롱차(반발효차)<홍차(발효차) 정도이다. 이 점을 활용하여 테아닌을 농축시켜 만든 슬로우 카우라는 제품도 있다.[2] 순우리말 '국'을 한자로 '탕'이라 한다. 참고로 국과 찌개와 전골의 차이는 국이 물이 가장 많고 전골이 가장 적으며 찌개가 가운데 쯤 된다.[3] 마테차의 경우도 차나무 잎이 아닌 차나무 사촌뻘되는 나무의 잎을 우려서 만들기 때문에 엄밀하게는 대용차다. 이것은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Tea 역시 차나무와 차나무의 잎을 우린 물이어야 하지만 Mate tea, Mint tea, Herbal tea 등등 찻잎이 아닌 다른 것을 우린 물에 tea 라는 단어를 널리 사용한다.[4] 맹꽁이 서당에서는 아편 암살 시도 사건을 그리면서 고종이 커피를 '가비다'라며 신하들에게 소개하는 장면이 있다.[5] 파란색은 테, 빨간색은 차, 초록색은 별개의 어형.[6] 일제강점기 때문인지 한국에서도 고령층 위주로 차나 보리차 같은 것을 드물게 오차, 오찻물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가끔 있다.[7]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지의 화교들은 복건 성 출신이 상당히 많은 편이라 민남어 화자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가령 싱가포르의 경우 2012년 기준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중국어 방언은 민남어에 속하는 복건화(福建話, 41.1%)와 조주화(潮州話, 21.0%)였다.[8] 당나라 시기의 문인 육우(陸羽, 733~804)의 저서 《다경(茶經, The Classic of Tea)》에 나오는, 고대에 차를 가리키던 다섯 가지 이름이다.[9] 주변국들과는 달리, 미얀마어에서는 차를 '러페(laphet)'라는 별개의 어형으로 부르는데, 사실 이는 荼의 상고한어 발음 /*la/의 어원이 된 고대어를 보존한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재배역사가 길었다는 뜻이다. 흥미롭게도 미얀마의 러페는 음료로도 마시지만, '러페 소'라고 하여 찻잎을 땅에 묻어 발효시킨 뒤 소금에 절여서 반찬처럼 먹는 레시피도 존재한다.[10] '도'라고 읽는다. 시경에서 처음 등장하는 이 글자는 본래 '쓴 풀'을 광범위하게 이르던 글자였다. 오늘날에는 씀바귀를 뜻하는 글자다.[11] 전한 시대 쓰촨성에서 차 재배를 처음으로 했다는 전설로 잘 알려진 오리진(吳理眞)Origin 역시 불교 승려였다고 한다.[12] 북조에 귀순한 남조 인사가 연회를 할 때, 남조에서 하던대로 차를 대접했는데 이때는 차를 오늘날처럼 조그만 잔에다 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훨씬 큰 잔에다 어마어마하게 줬다. 그런데 북조 사람들의 차에 대한 인식이 안좋다보니 이걸 물난리라고 표현한 것이다.[13] 이 기록을 나중에 김종직이 아주 요긴하게 잘 써 먹었다. 김종직은 1471년에 함양군수가 되었는데, 당시 함양에서는 차를 국가에 세금으로 바치도록 매겨져 있었지만 함양 안에 차를 재배하는 밭이 없었고 조정에서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함양에서 차를 공물로 바치도록 하는 바람에 함양에서는 공물로 바치는 차를 옆 고을에서 한 홉당 쌀 한 말 씩을 주고 사다 바쳐야 했다. 이때 김종직이 삼국사기의 해당 기록을 보고 "함양이 지리산 밑에 있는 동네인데 차가 안 난다는 것이 말이 되나"라며 고을 안을 수색해서 옛 엄천사 절터 북쪽의 대나무 밭에서 자생 차나무 몇 그루를 찾아냈고, 그걸 토대로 함양 안에 관영 차밭을 만들게 되었다. 이것이 함양다원으로 함양은 이후 국가에 공물로 바칠 차를 굳이 타지에서 사는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되게 된다. # 여담으로 함양군수로 있을 때 김종직이 학사루에 붙은 유자광의 글을 보고 "제놈이 뭔데 여기에 이딴 걸 써 붙여 놨냐"며 떼어 불태워 버리게 한 사건이 유자광이 사림에게 앙심을 품는 계기가 되었고 무오사화로 이어지는 한 단초를 제공했다.[14] 공군 부대 내에 있어 출입이 어렵다.[15] 조선시대 관아에서 부리던 다모(茶母)가 이 흔적의 일부라고 추정하기도 한다.[16] 그래서 당대의 대표적인 차 애호가였던 정약용 선생이 "아언각비(雅言覺非)"라는 바른 말 고운 말(?) 연구서에서 "찻잎 우린 물만 차고 나머지는 다 탕이라고 불러야 한다. 우리 백성들 언어생활이 엉망인 듯"이라며 비판하기도 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17] 한국인, 밥 김치보다 커피 더 자주 먹어[18] 참고로 중국, 대만의 1인당 차 소비량은 생각보다 낮다. 실제로 1인당 차 소비량 기준 아시아 1위는 이란이고 2위가 일본이다.[19] 돈 받고 파는 경우가 많다.[20] 무역적자를 견디지 못한 영국은 19세기 초중엽이 되면 식민지인 인도 제국, 미얀마, 스리랑카, 케냐 등의 지역에서도 차 플랜테이션을 건설해 실론티, 아쌈, 다즐링 등 쓸만한 차를 개발하는데 성공하였지만 그 전까지는 꼼짝없이 중국산 차를 사서 마셔야 했다.[21] 물론 아무리 중국이라 해도 수공업 제품이 공산품의 가격을 따라가긴 힘들다. 문제는 영국 상품은 중국으로 오는 과정에서 상당한 운송비가 원가에 포함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수공업 제품의 가격경쟁력은 그 운송비 차이를 감안하면 충분히 영국 공산품을 최종 소비자가에서 이겨낼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물론 다른 나라들은 운송비를 포함해도 수공업으로는 경쟁이 안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이 대단한 것은 맞지만.[22] 실용적인 이유로는 무기를 들고 진입할 수 없도록 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23] 국내에서도 일부 일식당에서 보리차 대신 호지차를 물로 주기도 한다.[24] 드립커피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원래는 미분 없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막 붓는 형식이 원형이었다.[25] 사실 영국에 처음 들어온 차는 녹차, 우롱차 종류였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차를 보관하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상자인 티캐디에는 차를 보관하는 2개의 칸과 그 사이에 크리스탈재질의 그릇이 있는게 기본이었는데, 이 2개의 칸에 녹차/우롱차와 홍차를 보관하고, 차를 마실때 두개의 칸에서 홍차와 녹차를 티캐디 스푼으로 퍼서 중간의 크리스탈 그릇에 놓고 섞은 것을 우렸다. 이것을 현재도 빅토리안 티(Victorian tea)라고 부른다. 하지만 녹차의 색깔을 선명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색소나 차가 아닌 풀들을 마구 섞는 악덕상인들이 기승을 부리자 아예 녹차를 마시지 않는 쪽으로 선호도가 바뀌어서 녹차가 시장에서 퇴출된 것이다.[26] 이유는 유럽 지역의 석회수가 차의 맛을 연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홍차도 마찬가지로 석회수 때문에 맛이 연해지지만, 녹차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에 유럽권에선 차를 타도 맹물 같은 녹차 대신에 홍차만 마셨던 것.[27] 마테차는 엄밀하게 말해서 대용차에 속한다.[28] 해밀레이아 바스타트릭스라는 곰팡이. [29] 이렇게 급격히 인상된 관세는 곧 12.5%로 후려쳐지는데, 이 때문에 막 차 무역에 의욕적으로 뛰어들었던 오스트리아 동인도 회사가 본전도 못 건지고 망했다. 당시는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가 미국 독립전쟁에 뛰어드는 바람에 중국행 무역로가 마비된 상황이어서 홍차 가격이 오르고 있었고, 이에 어부지리를 노린 오스트리아 동인도 회사는 경쟁자들이 전쟁 때문에 정신없는 틈을 타 광저우에서 홍차를 무더기로 구입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미국 독립전쟁이 끝나는 바람에 홍차 공급이 재개되어 천정부지로 치솟던 홍차 가격이 다소 낮아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국이 그 높은 관세를 후려쳐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서, 청나라에 홍차 대금으로 지불할 은을 실은 회사 소속 배가 아일랜드 앞바다에서 침몰하기까지 했다. 거기다 장밋빛 미래를 노리고 선박들을 마구 발주해놨던 조선소들에서는 배 다 만들었으니 빨리 돈 주고 찾아가라고 아우성을 쳐대는 상황. 안 망하는 게 더 이상하다(...). 당시 오스트리아 동인도 회사가 어느 정도로 손해를 봤냐면 창립자가 자살했을 정도다. 여기에 오스트리아 동인도 회사를 지원했다가 생돈만 날린 합스부르크 황실의 마리아 테레지아, 그리고 찻잎 대금 떼먹힌(...) 청나라도 덩달아 손해를 봤다.[30] 차가 얼마나 고가품이었는지, 다른 모든 음식은 하인이 서빙해도 찻잎만은 안주인이 직접 다루었다. 잠금장치가 딸린 차 전용 보관 상자까지 있었다. 물론 한 번 사용한 찻잎을 말려서 재사용하는 것은 기본.[31] 대체로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혹은 얼 그레이[32] 녹차+젖(어느 동물의 젖인지는 키우는 동물이 뭐냐에 따라 다르다. 양젖이나 낙타젖, 염소젖일 수도 있고 말젖일 수도 있다)+소금. 밀크 대신 버터를 넣기도 한다.[33] 여담으로, 차에 우유를 부었을 때와 우유에 차를 부었을 때 실제로 그 맛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묘한 차이지만, 자기가 그 맛의 차이를 느낀다고 주장한 한 영국 여성(뮤리엘 브리스톨)을 대상으로 20세기 초에 실험해본 결과 실제로 우유+차와 차+우유를 모두 가려냈다고 한다. 통계학에서는 유명한 실험이니 흥미가 있다면 읽어보자. 참고로 이 실험을 한 사람이 바로 "피셔의 정확검정"으로 유명한 통계학자 로널드 피셔다.[34] 대표적인 사례로 나치 독일의 유명한 전차 에이스인 미하엘 비트만이 빌레르보카쥬 전투에서, 티타임을 즐기던 영국군 전차부대를 습격해 괴멸시킨 일이 유명하다.[35] 오늘날 말하는 티밤(tea bomb)과는 당연히 전혀 다른 것이다. 티밤은 뜨거운 물에 투입해 녹여 마시는 달달한 고형 차이며, RAF가 비행기에서 떨어뜨린 차 폭탄은 찻잎과 각종 물품이 들어있는 구호 패키지였다.[36] 보편적으로 스콘, 오이 샌드위치, 빅토리아 케이크 등.[37] 때문에 서민층에는 저녁 식사를 그냥 티라고 부르는 집도 많다고 한다.[38] 미국도 옛날에는 흔히 정오 경에 디너를 먹었다. 지금도 미국 남부에는 점심에 디너를 먹는 집이 꽤 많다고 한다.[39] 만만치않게 차를 마시는 튀르키예에도 비슷한 것이 있긴 하다. 전날 밤에 물과 찻잎을 채워넣고 알람을 맞춰놓으면 알람음과 함께 작동해서 차를 내놓는데 영국의 티스메이드와는 모양이 터키에서 선호되는 차이단륵 모양이라 좀 다르다.[40] 립톤이 즉석 차라고 얕보는 이들도 많지만, 립톤은 의외로 맛이 괜찮으며 영국을 비롯한 외국에도 그 편리성과 맛을 높게 쳐주는 애호가들이 많다.[41] 당시 러시아, 아르메니아 상인들은 중국 도자기를 오스만 제국 황실로부터 발주받아 중국에 주문서를 전달하고 완성품을 오스만 황실에 배달하는 일도 했다.[42] 튀르키예인 노인들에 따르면 튀르키예에서 자체적으로 찻잎을 재배하고 가공하기 시작하던 1940-50년대까지만 해도 찻잎이 귀했다고 한다. 손님이 올때나 어르신들 대접할때만 내놓았다고.[43] 아랍-인도쪽은 터키보다 더 달게 먹는다. 차건 간식이건 달달하게 먹는건 민족과 종교, 습관이 다 다른 중동지역의 공통 사항이다. 세계적 르포 만화가인 조 사코는 팔레스타인등 중동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다루기 위해 긴 시간을 중동에서 보냈고,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시리아, 레바논까지 다양한 중동지방을 돌아다녔는데.. 그는 중동국가들도 그저 하나의 거대한 중동이란 지역명으로 분류되기엔 유럽에서 러시아와 프랑스, 영국과 이탈리아가 확연히 다른거 같은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그런 그도 차가 모두 단 점은 전 중동이 다 비슷하다고 말했다. 인도도 만만찮게 달게 먹는다. 러시아인들도 잘 알려진 잼을 곁들인것 말고도 터키와 똑같은 스타일의 차도 자주 마신다.[44] 차이단륵에서 한국에서 하는 식대로 차를 2분남짓 깔짝 우려내면 밍밍한 맛밖에 안난다.[45] 현재도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북부 등지에서는 홍차보다는 녹차를 더 선호하며 더 많이 소비된다.[46] 스탈린의 경우에는 차, 커피, 주류 모두 즐기는 편이었다. 절주 운동이 실패로 끝난 뒤에는 측근들과 함께 러시아식 파티를 즐기고 엄청 과음하는 일이 많았다.[47] 러시아의 길드, 소규모 생산자 모임. 산업 혁명 이후, 유사 협동조합이나 예술가, 기술자 소모임, 또는 완전한 협동조합으로 변화[48] 러시아 서남부 지역은 대한민국의 제주도만큼 연평균기온이 온화하다.[49] 귤 껍질을 잘게 썰어 일주일 정도 말린 뒤, 뜨거운 물에 달여 내놓은 것.[50] '차'자가 빠진 것을 제외하면 커피도 일종의 대용차라고도 볼 수 있다. 개화기 커피가 들어왔을 때 왕실에서 '가배차'라하여 잠시 '차' 이름을 가진 적도… 다만, 커피의 경우 워낙 다양한 종류로 분류가 가능해서 대용차의 범위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음료의 형태로 자리 잡은 상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