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경 너의 모든 순간 작사 - seongsigyeong neoui modeun sungan jagsa

사랑의 시작과 끝, 그 설렘과 아픔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는 작사가, 심현보의 작사법과 사랑법.

이윽고 내가 한눈에 너를 알아봤을 때 모든 건 분명 달라지고 있었어
내 세상은 널 알기 전과 후로 나뉘어

성시경 ‘너의 모든 순간’ 中

반짝이며 웃던 많은 날들도 심장소리처럼 뛰던 사랑도 그저 흘러가는 저 강물 같아

기도처럼 깊던 오랜 믿음도 그저 변해가는 저 계절 같아
박정현 ‘위태로운 이야기’ 中

성시경 너의 모든 순간 작사 - seongsigyeong neoui modeun sungan jagsa

너무 재밌다, 되게 행복하다, 진짜 슬프다, 엄청 아프다… 내 안에서 파도치는 다양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꺼내 보이고 싶은데 표현의 한계에 부딪칠 때가 있다. 그런 순간 ‘그래! 내 마음이 이래!’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노래를 만난다는 건 짜릿한 경험이다.

작사가 심현보는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 감정의 덩어리를 정확하되 참신한 글로 풀어내 멜로디 위에 올려놓는 사람이다. 20년 가까이 스타 가수와 작곡가들로부터 꾸준히 의뢰를 받아 유리상자의 ‘사랑해도 될까요’, 신승훈의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 윤미래의 ‘시간이 흐른 뒤’, 성시경의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와 ‘너의 모든 순간’ 등 400여 편의 노래를 작사, 작곡했다. 지난 연말 그렇게 음악을 만들어온 방식을 정리해 <작사가의 노트>를 펴냈다.

인터뷰 준비를 위해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도,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자신의 일에 매료된 사람만이 머금는 반짝이는 에너지에 저절로 매료됐다.

# 그 남자의 작사법

진작 나왔을 법도 한데 첫 책이에요. 출판사에서 여러 번 제안을 받았는데 저 스스로 작사법이 정돈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기법이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고, 자주 쓰고 많이 쓰면 꾸준히 좋아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아카데미에 수업을 나가 처음 작사를 접하는 분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어요. 데모곡에 가사를 입히는 건지, 가사가 먼저 나오고 곡을 쓰는 건지, 작사가가 알아야 하는 기본적인 것조차 모르는 분이 많더라고요. 이런 것들을 책으로 정리하면 좋겠다 싶었죠. 작사한 지 20년 가까이 됐으니까 한번쯤 정리하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책을 쓰면서 가장 공들인 부분이 있다면요. 실용서와 에세이 중간쯤 책이에요. 작사 기법만 정리하면 딱딱하잖아요. 작법에 대해 설명하며 어떤 가사를 쓸 때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에세이처럼 에피소드를 넣으면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가사를 필사할 수 있는 페이지도 넣었는데 굳이 손으로 쓰지 않더라도 가사를 펼쳐놓고 눈으로 읽은 맛이 있을 것 같아서였죠. 여러 가지로 밸런스를 많이 생각했어요.

필사할 수 있는 작업 노트에 32곡을 넣었어요. 어떤 기준으로 고른 곡들인가요. 처음에는 50곡 정도 골랐는데, 책이 너무 두꺼워져서 읽는 분들이 불편하실 것 같아 뺐어요. 제가 좋아하는 가사들이고, 책에 녹인 작사 기법을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곡들이에요.

책을 읽어보니 늘 이 가사를 어떻게 쓰고 싶다. 어떤 걸 담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작사했더라고요. 곡을 쓰면서 느낀 것들을 적어놓지 않으면 잊어버려요. 책이 될 거란 생각 없이 그냥 적어놓은 게 많아요. 그래 그 곡을 거기서 썼지, 그때 그런 기분이었지 같은 감정들요. 지나고 나면 잘 모르니까요.

평소에도 메모를 많이 하시죠. 그때그때 많이 해요. 아이디어만 써놓기도 하고 온전한 문장을 쓰기도 해요. 예를 들어 ‘티백’이다 하면 티백이 어떤 식으로 글이 됐으면 좋겠는지 써놓는 식이죠. 예전에는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손으로 썼는데 요즘에는 휴대폰 메모장에 쓰고 있어요.

스마트폰에 기본으로 설치된 메모장 앱을 쓰시나요? 아니요. ‘어썸메모’라고 제가 아주 좋아하는 앱인데요. 폴더별로 분류할 수 있고, 사진과 같이 글을 쓸 수 있어서 편리해요. 유료 앱이지만 업데이트도 잘되어서 좋아요. 머리에 메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게 아니니 틈틈이 적어야죠.(웃음)

작사가 지망생 시절 필사를 했다고요. 그 외에 또 어떤 훈련을 했나요? 가사는 글쓰기이긴 하지만 다른 글쓰기와는 다른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음악을 열심히 듣는 것도 중요하고, 좋아하는 가사를 무심히 듣는 것도 중요하죠. 그러고 나서 써보는 것? 저는 그냥 많이 썼어요. 중고등학교 때 연습장에 좋아하는 앨범의 좋아하는 곡들을 연필로 적곤 했죠. 조금 더 도움이 되는 훈련은 가사 쓰는 연습을 할 때 기존 팝 음악에 가사를 입히는 거예요. 가사는 글을 쓸 수 있는 칸과 쓸 수 없는 칸이 정해진 원고지에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하거든요. 여기는 세 글자, 여기는 네 글자 이런 식으로 글자 수가 정해져 있는, 제한된 공간에 스스로를 구속하며 쓰는 거죠.

사랑받는 가사를 오랫동안 많이 써온 비결이 궁금해요. 누구나 공감할 만한 평범한 내용인데 무언가 특별함이 느껴져요. 가사 쓰려는 친구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에요. 참신함과 익숙함 사이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는 일이요. 사람들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지나치게 평범한 문장으로 쓰면 안 되는데요. 저는 부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예를 들어 사람들이 감정을 표현할 때 ‘되게 행복해’ ‘너무 보고 싶어’ 그러잖아요. 저는 그 ‘되게’ ‘너무’에 해당하는 부분에 주목해요. 지금 정말 아픈데 베인 것처럼 아픈지, 긁힌 것처럼 아픈지, 맞은 것처럼 아픈지 등 ‘어떻게’라는 부분을 풀어서 감정의 디테일을 가사로 적죠. 보통 감정의 덩어리만 이야기하거든요. 덩어리만 있는 막연한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가사로 쓰면 음악을 듣는 분들이 ‘나도 그런 감정이었는데’ 하고 공감하며 몰입하는 것 같아요.

박정현 씨가 부른 ‘위태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데요. “절정을 지나버린 모든 것 가운데 서있다. 한때 목숨 같았던 사랑도 강물 같고 계절 같다.” 이 노래가 나왔을 때 무한 반복 설정해놓고 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저도 좋아하는 가사예요. 가사 쓰는 사람은 ‘이 부분이 무척 좋다’ 그런 이야기 들을 때 보람을 느껴요. 노래 가사에는 그런 힘이 있어요. 멜로디가 더해져 귀로 들리니까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작사를 하는 게 어렵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죠.

가장 좋아하는 가사는 어떤 곡인가요. 모든 가사가 아쉽지만 그나마 좀 나은 것 같은 노래 가사는 많아요. ‘위태로운 이야기’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아쉽지만 좋아하고요. 성시경 씨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OST로 부른 ‘너의 모든 순간’ 가사도 좋아해요. 오래전부터 ‘이윽고’라는 표현을 가지고 가사를 쓰고 싶었거든요. ‘결국’ ‘마침내’보다 훨씬 운명적인 이미지가 느껴지잖아요. 행복의 절정과 고마움을 동시에 하나의 문장에 담아내고 싶었는데 ‘빈틈없이 행복해’라는 문장을 써놓고 흡족했던 기억이 있어요. 드라마 <연애의 발견> OST인 ‘묘해 너와’도 그즈음 매료된 단어 ‘묘해’로 막 시작하는 사랑의 복잡한 미묘한 감정을 풀어내며 기분 좋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언젠가는 쓰고 싶어서 가지고 있던 표현을 가시화해서 가사로 만들면 뿌듯해요. 어쩌다 우연히 쓴 것과는 다르니까요. 

# 사랑이 직업인 남자

성시경 너의 모든 순간 작사 - seongsigyeong neoui modeun sungan jagsa

가사 소재는 어디서 어떻게 얻나요. 신기한 직업이에요. 작사의 99%가 사랑 아니면 이별 얘기거든요. 막 사랑을 시작해서 설레거나 이별해서 아프거나. 그것도 3~4분 내외, A4 한 장 정도 분량의 이야기예요. 지금까지 그런 사랑 얘기를 400~500곡 쓴 거죠. 그런 분량과 그런 속도의 사랑 이야기를 쓰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체득하는 일에 부지런해지는 것 같아요. 책 두세 권을 동시에 보면서 내용은 신경 안 쓰고 문장만 수집한 경험도 있고, 영화를 보면서도 영화 내용은 안 보고 자막만 보면서 대화에만 집중한 적도 있어요.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게 도움이 될 때도 있고요.

주변에서 “내 얘기 썼더라”며 알아채는 경우도 있겠어요. 어떤 표현을 얘기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연인과 헤어지고 술 마시고 그러면 그 순간은 누구나 다 시인이 되잖아요. 얘기하다 뭔가 멋있는 말이나 슬픈 말을 하면 적어놨다 쓰기도 했죠. 그런데 정작 본인은 기억을 잘 못 하더라고요.(웃음)

여자 입장에서 가사를 쓰기도 하고 남자 입장에서 쓰기도 해요. 수백 가지 상황과 감정을 상상하는 직업이니만큼 사랑에도 도가 트겠어요. 그건 아니에요. 또래들의 보편적인 경험치,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결혼 5년 차인데, 결혼하고 음악 활동에 변화가 생겼나요. 연애하고 결혼하면서(그의 아내는 신미정 아나운서다) 경험한 말랑말랑한 감정이 가사로 더 잘 써지긴 한 것 같아요. 안정감은 있지만 각자 일을 하고, 아직 아이가 없기 때문에 생활이나 음악 작업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어요. 상업 작사가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관계없이 다양한 감정을 꾸준히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하니까 다양한 방식의 체험을 하고 그것을 가사로 풀어내는 데 최적화되어가는 것 같아요.

두 분 인스타그램을 보니까 함께 여행을 하기도 하지만 따로 여행을 다니기도 하더군요. 둘 다 여행을 좋아해요. 결혼 전에도 이야기를 많이 했었어요. 시간이 되면 가능한 한 많이 다니고, 각자 다니기도 하자고요. 여행도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친구들과 가는 게 좋을 때가 있고, 혼자 가는 게 좋을 때가 있으니까요. 평소 원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에요. 결혼생활이라는 게 모든 걸 함께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같이 하지 않는 게 나은 일을 같이 하려고 하면 이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요. 한 사람은 돈가스가 먹고 싶고 한 사람은 자장면이 먹고 싶은데, 서로 자기가 원하는 걸 먹자고 하기 미안하니까 둘 다 원하지 않는 만둣국을 먹는 상황 같은 거요.

서로 원하는 것에 대해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이 좋겠군요.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지만 같이 해서 좋은 게 있고, 혼자 해야 좋은 게 있으니까요. 한 살 한 살 나이 들어가며 자주 하는 생각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질까. 어릴 때는 시간이 무한하게 느껴지잖아요. 나이 든다는 것이 아무래도 주어진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라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나는 그걸 하는 게 좋아. 그걸 먹으면 좋아. 그런데 어제도 먹었으니 참는 게 좋겠지. 운동을 해서 땀을 흘리면 더 행복하겠지. 대단한 게 아니더라도 작은 것들로 조금이라도 행복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거요. 제가 쓴 가사나 멜로디도 그런 소소한 행복의 구성 요소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슬픔을 풀어내고 싶은 분에게는 그 감정을 끄집어내서 치유할 수 있는 노래를, 휴식이 필요한 분에게는 쉼 같은 노래를, 거리를 걷는데 좋은 음악과 함께해 한층 더 행복감을 느끼는 그런 노래들이요. 단 한 사람에게라도 그런 노래가 된다는 게 제게는 크나큰 의미예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목표나 꿈이 있다면. 꿈은 항상 똑같아요. 오래도록 음악을 하고 글을 쓰는 거예요. 재밌거든요. 힘들고 부대낄 때도 있지만 세상에 그렇지 않은 일은 없으니까요. 10년 후에는 그만큼 하고 싶은 얘기가 또 있을 거예요. 요즘 감기에 자주 걸리는데, 음악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운동도 하고 건강해야겠죠.

사진(제공) : 안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