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궁중 의복 - joseon gungjung uibog

노의(露衣)

의생활물품

 조선시대에 왕비 및 정3품 이상의 정처(正妻)가 입던 겉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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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에 왕비 및 정3품 이상의 정처(正妻)가 입던 겉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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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국혼정례(國婚定例)』에 중궁전 의대(衣襨)로서 대홍향직흉배금원문노의(大紅鄕織胸背金圓紋露衣)·대홍향직흉배겹장삼(大紅鄕織胸背裌長衫)·겹오(裌襖)·중삼(中衫)·경의(景衣)·겹면사(裌面紗)·댕기[首紗只]·고쟁이[串衣]·저고리·치마·겹이의(裌裏衣)·세수장삼(洗手長衫)·활삼아(濶衫兒)·삼아(衫兒)·대요(帶腰)·대(帶)·노의대(露衣帶) 등이 보인다.

그런데 이 것은 중궁전 법복(法服)으로 되어 있는 적의(翟衣)·별의(別衣)·내의(內衣)·폐슬(蔽膝)·대대(大帶)·수(綬)·하피(霞帔)·상(裳)·면사(面紗)·적말(赤襪)과는 판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것에 의하면 노의는 금원문의 흉배가 있고 노의대가 있는 왕비의 상복(常服)으로 가장 존귀한 옷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옷이었는지는 알 수 없고, 다만 1412년(태종 12) 사헌부의 상소에 “노의(露衣)·오(襖)·군(裙)·입(笠)·모(帽)는 존자(尊者)의 복(服)인데, 장사치의 천녀도 다 이를 입고 있으니 이제부터 4품 이상의 정처(正妻)는 입어도 좋되, 5품 이하의 정처는 다만 장삼(長衫)·오(襖)·군(裙)·입(笠)·모(帽)를 입을 뿐이요 노의를 입을 수 없도록 하소서.”라고 되어 있어 조선 초기부터 있어온 옷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원삼(圓衫)과 비슷하나 깃이 곧은 옷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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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한국복식사연구』(유희경,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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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혼례복혼인할 때 입는 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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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전시

3 왕실의 생활

조선 시대 궁중에서 사용하였던 물품들은 격조 높은 왕실의 생활과 문화를 잘 보여준다. 국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들을 위해 만든 의복과 음식, 각종 기물 등은 당대 최고의 장인에 의해 가장 좋은 재료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사치를 금하고 국왕이 몸소 검약한 생활을 실천했기 때문에 궁중의 생활 물품에는 눈을 사로잡는 화려함보다는 우아하면서도 기품 있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왕실에서 사용된 가구는 일반 가구들에 비해 크기가 크고 표면을 붉은색으로 칠한 것이 많이 있다. 붉은 칠은 일반 민가에서는 사용을 금할 정도로 귀하게 여겼던 것으로, 왕실에서 사용된 가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왕을 위한 밥상인 수라상은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질 좋은 재료로 차려졌으며 왕실의 음식 문화는 궁궐 밖의 일반 사가에도 전해져 서울의 음식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왕실 의복은 지위와 역할, 그리고 존엄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기능을 하였다. 따라서 왕과 왕비의 예복은 신발부터 관모冠帽와 머리장식에 이르기까지 엄격하게 정해진 법식에 따라 제작되고 착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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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왕실의 생활 - 전시공간


국왕의 의복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

국립고궁박물관 2층에 위치한 ‘조선의 국왕’ 전시실은 어좌, 어보 등 임금의 상징물이 전시된 곳으로, 가례(嘉禮)나 국가의 큰 제사인 종묘(宗廟)에서 제사를 올릴 때 임금이 착용했던 예복(禮服)인 ‘면복(冕服)’ 구성품이 전시되어 있다. 면복은 ‘양’을 뜻하는 검은색 상의인 곤복(袞服)과 ‘음’을 뜻하는 붉은색의 하의인 상(裳)에 색색의 구슬을 꿰어 모자의 앞뒤로 늘어뜨린 형태의 면류관(冕旒冠)이라는 모자를 착용한 차림이다. 이 옷은 가장 중요한 의례에 착용하는 만큼 곳곳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곤복에는 백성을 생각하는 다섯 가지 문양을 양의 의미인 그림으로 표현했고 상은 4개의 문양을 음을 뜻하는 자수로 표현했다. 면류관은 의복에 총 9개의 문양이 있는 것과 같이 앞뒤로 줄이 9개씩 늘어져 있다. 국내에 현존하는 면복 유물은 매우 극소수로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복원품이 전시되어 있다.

한편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영친왕(英親王, 1897~1970년) 일가 복식 및 장신구류’ 일괄도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왕실의 생활’ 전시실에 들어서면 이와 관련된 궁중 복식과 장신구를 볼 수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영친왕의 곤룡포를 볼 수 있다. 사극에서 임금이 붉은색 옷에 금실로 용 문양을 수놓아 장식한 옷을 입고 어좌에 앉아 대신들의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데, 곤룡포는 국왕이 집무를 볼 때 착용했던 옷으로 ‘익선관(翼善冠)’이라고 하는 모자와 함께 착용한다. 임금은 붉은색을, 왕세자는 검은색에 가까운 아청색 옷을 착용했다.

왕실 여인들의 의복, 다양하게 만날 수 있어

임금의 면복 유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이에 상응하는 여성의 대례복인 적의(翟衣)는 국내에 석 점이 전해지고 있다. 이들 모두 대한제국기에 제작된 것으로 청색 바탕에 홍색 선으로 가장자리를 둘렀고, 꿩과 이화문이 선을 이루며 9~12줄로 표현되어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영친왕비가 1921년 순종을 알현할 때 착용했던 적의(翟衣) 일습과 진주 비녀 등의 장신구가 함께 소장되어 있으며, 이 적의의 꿩 문양은 친왕(親王)에 해당하는 9개의 줄로 구성되어 있다.

‘왕실의 생활실’ 중앙에는 적의의 모든 구성을 착용한 모습이 전시되어 있어 그 당시의 차림을 볼 수 있다. 그 외에 사극에서 대왕대비, 중전 등이 착용한 복식으로 가장 많이 등장한 소례복(小禮服)인 당의(唐衣)가 있다. 반가(班家)에서 예복으로 당의를 착용한 경우도 있지만, 왕실에서는 봉황, 수복(壽福) 등의 문양을 금박을 찍거나 금과 함께 직조해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들 특징을 알고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복식 유물을 살펴본다면 보다 많은 부분이 보이고 느껴질 것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의 상반기 특별전인 <안녕, 모란> 전시에는 복온공주(福溫公主, 1818~1832년)가 혼례 때 착용하였던 활옷이 전시됐다. 붉은색 바탕에 모란, 연꽃 등을 다양한 색으로 화려하게 자수로 장식한 이 옷은 왕실 밖으로 나가 새출발하는 공주를 위한 것으로 정교하고 세련된 궁중 자수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또 다른 활옷 한 점은 착장자는 알 수 없지만, 창덕궁에서 보관되어 오던 것으로 보존처리를 거치기 전의 조사 과정에서 과거에서 떨어진 답안지를 심지로 활용한 것이 발견되었다. 전시에 나온 두 활옷의 자수 도안은 서로 다른 양식으로, 비교하면서 감상하도록 한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왕실’을 주제로 한 국내 유일의 국립박물관으로 의복부터 장신구까지 다양한 궁중 복식(服飾) 유물을 소장하고 있어 궁중의 의생활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왕실 의복의 특징을 하나하나 찾아보면 화려하고도 정교한 왕실의 의복 문화를 느껴볼 수 있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효자로 12
문의 02-3701-7500

글. 이정민(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 사진. 국립고궁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