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읍 동외로 우리나라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됨에 따라 일본의 불법적인 점령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러나 카이로회담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에서 1943년 11월 27일,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처칠 총리, 그리고 중화민국의 국방의회 위원장 장제스가 회담을 갖고 한국을 자유 독립국가로 승인하겠다는 결의문을 발표하게 된다.]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이 약속은 되어 있었으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남과 북에 미국과 소련의 군인이 분할 진주함으로써 국토의 분단이라는 비참한 운명에 놓이게 되었으며 한반도를 각각 분할 점령한 지리적 분단이 시작되었다.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와 제2차 세계대전 종결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의 동북아시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 경쟁이 낳은 분단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분단은 1945년 12월 신탁통치 논쟁을 계기로 계급적 이념적 분단이 심화되었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고 정부를 수립하려고 할 때 미국과 소련이 우리나라 내의 일본군 무장해제 및 치안유지를 한다는 명목으로 신탁통치 안을 내놓게 된 것이다. 소련의 남하 정책과 미국의 소련 저지의 국가적 이익이 한반도에서 충돌 했던 장면이며 한반도에서 미국과 소련은 서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자국의 친정부 수립 국가를 만들고 싶은 이해관계 대립이 발생한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입장 차이에 의해서 협상을 계속하다가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한국 문제에 대해서는 4개국 대표에 의한 신탁통치를 기본 취지로 하는 미국 측의 제안과 민주주의적 임시정부 수립을 기본 취지로 하는 소련 측의 수정안이 토론되었다. 회의 결과 12월 28일 영국의 동의로 협정이 체결되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발표되었다. 첫째, 한국을 독립국가로 재건설하며, 민주주의적 원칙하에 발전시키고, 일본 통치의 잔해를 빨리 청산할 조건들을 조성할 목적으로 민주주의 임시정부[a provisional democratic government]를 수립한다. 둘째, 연합국이 한국 임시정부의 수립을 원조·협력할 방안의 작성은 민주주의적 정당·사회단체들과의 협의를 통해 미소공동위원회가 수행한다. 셋째, 5년 이내를 기한으로 하는
4대 강국에 의한 신탁통치[국제 연합(UN)의 신탁을 받은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의 일정한 지역을 대신 통치하는 제도를 신탁 통치라고 한다.]의 협정은 한국 임시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4개국이 심의한 후 제출한다. 이 협정내용에 대해 충칭[重慶] 임시정부의 추대를 주장하던 한국독립당· 한국 민주당 등의 우익세력은 임시정부수립을 위한 국제적 원조방안으로 선전하면서 신탁반대운동을 전개했다. 반면에 여운형의 조선인민당, 박헌영 의 조선공산당 등은 3상 회의의 결의를 한국의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국제적 합의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좌우익의 대립에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미소공동위원회를 통한 통일 임시정부의 수립이라는 3상 회의의 결정 사항은 실현되지 못했다.] 남북분단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1차적인 책임은 미국과 소련에 있다. 그들의 이해관계에 의해서 신탁통치를 자기들 마음대로 결정하고 대한민국의 분열과 갈등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 스스로도 물론 책임이 있다. 최대 5년 동안 행해지는 임시정부에 의한 신탁통치를 받아들이고 대한민국의 통합과 민족 우선적인 시각을 가졌었더라면 분단되지 않았을 텐데 찬탁, 신탁반대를 본질적인 것으로 보고 분열되었던 것이 아쉬울 뿐이다. 2차적인 책임은 초대 대통령 독재자 이승만 때문이다. 왜냐하면 전라도 정읍 발언을 통해서 남한단독정부 수립의 정당성을 주장했고 미군정 [1945년 9월 2일 일본의 항복 후 미국과 소련 간의 한반도 분할 점령이 결정됨에 따라 삼팔선[한반도 북위 38°선] 이남 지역에서는 1948년 8월 15일 남한 단독 정부가 수립되기까지 3년 동안 미군에 의한 군사 통치가 실시되었다. 중장 존 하지(John Reed Hodge)[1893년 6월 12일~1963년 11월 12일]의 지휘
하에 미 육군 24군단이 9월 8일 인천에 상륙한 뒤 서울로 들어와 9일 삼팔선 이남 지역에 대한 군정을 포고하였고, 이어서 12일 소장 아널드(A.V. Arnold)가 군정 장관에 취임함으로써 미군정 체제가 수립되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중심의 남한정부 단독수립, 나중에는 친일파 기득권화 민족계열 인사 배제 등의 정말 뼈아픈 행위를 하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분단은 현재의 우리 삶을 왜곡하는 요인 중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분단으로 인해 우리가 치르는 부정적인 대가를 '분단비용'이라고 한다면, 그 동안 누적된 비용은 엄청나다. 그러나 현재 진행하고 있는 상황을 살펴보면 남북한 판문점 회담을 통한 평화공존과 번영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상호정책들이 우리나라의 앞길에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그동안 쌓였던 적대감 해소에는 상당한 문제점을 노출할 수 있다. 또한 이념적 갈등해소도 남북이 풀어야 할 큰
난관이 아닐 수 없다. 사회적 각종집회의 내용을 살펴보면 남북한 평화공존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불신하는 단체들이 매우 많음을 실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