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원 업적 - ibang-won eobjeog

태종 이방원(1367~1422)의 업적

재위 기간: 1400~1418​

태조는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방원은 다섯째 아들이며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는데
조선 국왕 중 유일하게 과거에 급제한 왕입니다.

아버지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공을 세웠으며

조선 건국 후 정안군으로 책봉되었습니다.

그러나 새 나라를 세운 후
정비 신의 왕후 한 씨 소생의 왕자들이 아닌

계비 신덕 왕후 강 씨 소생의 아들

막내 방석을 세자로 내세우고
정도전과 개국공신들이 정권을 장악하였습니다.
 

 정도전(1342~1398) / 삼봉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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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왕자의 난

이후 이방원과 정도전은 계속 대립합니다.


이방원은 왕권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지만

정도전은 재상 중심의 정치를 추진하였습니다.

이방원은 정도전의 재상 중심의 정치가

왕권을 약화시킬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정도전의 사병 혁파로 갈등이 최고조로 달하게 되면서

이방원은 동복형제들과 이숙번의 군대를 동원하여 

정도전·남은·심효생과 세자 방석을 죽이고 국정을 장악합니다.

이를 '1차 왕자의 난'이라고 합니다.

방과, 정종 즉위 / 2차 왕자의 난 / 방원, 조선 3대 왕이 됨

태조는 둘째 방과를 왕세자로 책봉한 후

양위하고 상왕이 되었습니다.

방과는 조선 2대 왕 정종이 되었지만

실제 권력은 이방원에게 있었으며

1400년엔 1차 왕자의 난에서 공을 세우고도

별로 평가를 받지 못하자 불만을 품고 있던 박포가
동복 형인 회안군 방간에게 난을 일으키도록 부추겨

개경 시가지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합니다. 

이를 2차 왕자의 난이라고 하며 박포의 난이라고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승리한 이방원은 박포를 처형하고

형인 방간은 귀양보냅니다.

1400년 2월 이방원은 세자로 책봉된 뒤 

정종 2년 1400년 11월에 조선 3대 왕 태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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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의 업적

태종은 정치적으로는 왕권 강화를 위해

'6조 직계제(왕이 6조에게 명령하고 6조가 왕에게 직접 보고)'

실시하였고,

경제 기반을 안정시켰으며

군사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였고

사원이 불법적으로 차지하고 있던 토지를 몰수하였습니다.

호패법을 실시하여 인구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조세 징수와 군역 부과의 자료로 활용하였습니다.

태종(열여덟 해)과 아들인 세종(32년)의

재위 기간을 합하면 50년이 되는데

이 기간 동안 조선왕조의 기틀을 굳건히 하였습니다.

사병 혁파, 왕권 강화

왕위에 오른 태종은 왕권을 강화하는데

노력하였습니다.
왕족이나 개인이 거느리던 사병을 없애고

군사권을 장악하였습니다.

그리고 왕권에 대항하는 세력을 귀양 보내거나
처형하였는데

개국공신인 이숙번을 유배시켰습니다.

태종은 또 친족을 배척하였는데요.

처가 식구인 장인 민제와

처남들(민무구, 민무질, 민무휼, 민무회) 등을 제거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왕비 원경왕후인 민 씨의 불만도 깊어지게 됩니다.

원경왕후는 1차 왕자의 난 때 친정에 사병과 무기를 숨겨두었다가

무기와 사병을 이방원에게 내어주는 등

조선 건국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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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고 설치

태조 2년 1402년에는 대궐 앞에 북을 달아  

백성들이 억울한 일이 있으면 치게 하는 신문고를 설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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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 서적이 드물어 볼 수 없으므로
활자를 인쇄하였습니다.

특히 태종 3년(계미년)에

조선시대 최초의 구리 활자인 계미자를 만들었습니다.

도읍을 한양으로 옮김

정종 1년에 개경으로 옮겼던 수도를
태종 5년 1405년에 다시 한양으로 옮겼으며
이후 현재까지 수도로서 60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호패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호패법 시행

조선은 신분에 따라 양반에서 노비까지 16세 이상의

모든 남자에게 1413년에 호패를 발급하였습니다.

호패는 나무나 상아 등으로 만들었으며
이름과 직업, 계급 등을 적었고

오늘날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것입니다.

노비는 주인, 주거지, 나이, 얼굴빛, 수염 유무까지

기록하였습니다.

호패는 1416년 폐지 이후

존폐를 거듭하다가

숙종 1년 1675년 이후부터 정착되었습니다
 

태종 이방원의 죽음

태종은 재위 열여덟 해에

세자 제(양녕대군)를 폐위시키고

충녕대군(세종)을 세자로 책봉한 뒤

2개월 뒤 왕위를 세종에게 물려주고

여생을 보내다가

1422년 세종 4년, 창경궁에서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헌릉 / 태종과 원경왕후 민 씨의 능 / 위치 - 서울 서초구

출처 - 문화재청 / 조선왕릉(왕과 왕비의 능) - 2009년 세계유산 등재

헌인릉:

헌릉 / 조선 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

인릉 / 조선 23대 순조와 순원왕후 김 씨의 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