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패러다임 전환 사례 - gwahag paeleodaim jeonhwan salye

[가] 현대적인 사료(史料) 해석의 관점으로부터 과거 연구의 기록을 살펴본다면, 과학사학자들은 패러다임1)이 변화할 때 세계 그 자체도 패러다임의 변화와 더불어 변화한다고 주장하고 싶어질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유도되어서 과학자들은 새로운 도구를 채택하고 새로운 영역을 들여다보게 된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학혁명 기간에 과학자들은 이전에 연구했던 곳에서 친숙한 기기(器機)를 써서 관측하면서 새롭고 색다른 것들을 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나] 이것은 마치 전문가 사회가 갑자기, 이전의 친숙한 대상들도 달리 보이고 미지의 것들과도 섞여 있는, 다른 행성으로 옮겨지는 것과 흡사하다. 물론 이런 형태의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지역적인 이동은 없다. 연구실 바깥에서의 일상생활은 예나 마찬가지로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러다임의 변화들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연구 활동의 세계를 다르게 보도록 만든다. 과학자들이 그런 세계를 다루는 일은 오직 그들이 보고 행하는 것을 통해서인 만큼, 우리는 하나의 과학혁명이 있은 후의 과학자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해 반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게 된다.

[다] 과학자 세계에서의 이러한 변형에 대한 기본적인 원형2)으로서, 시각(視覺) 게슈탈트(Gestalt)3)에서의 친숙한 전환의 증거들은 매우 시사적인 것으로 밝혀지게 된다. 혁명 이전의 과학자 세계에서 오리였던 것이 혁명 이후에는 토끼로 둔갑하게 된다. 처음에는 위쪽에서 상자의 외부를 보았던 사람이 나중에는 아래쪽으로부터 그 내부를 들여다보게 된다. 이와 같은 변형들은 대체로 점진적이고 거의 어김없이 비가역적인4) 것이기는 하지만 과학적 훈련에 공통되는 부수물이다. 등고선 지도를 보면서 학생은 종이 위에 그려진 선들을 보지만, 지도 제작자는 지형에 관한 그림을 본다. 기포 상자 사진을 보면서 학생들은 혼란스럽게 끊어진 선들을 보지만, 물리학자들은 낯익은 원자핵 내부의 사건들의 기록을 읽어낸다. 그러한 시각적 변형들을 숱하게 거친 뒤에야 학생은 과학자 세계의 일원이 되어 과학자가 보는 것을 보고 과학자가 반응하듯이 반응하게 된다.

[라] 그러나 학생이 그렇게 해서 들어간 세계는 환경이나 과학의 본질에 의해서 단번에 고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환경, 그리고 학생이 추구하도록 훈련받았던 특정 정상 과학의 전통에 의해서 연합적으로 결정된다. 따라서 정상 과학의 전통이 변하는 과학혁명의 시기에는 과학자 자신의 환경에 대한 지각(知覺) 작용은 재교육되어야 한다. 과학자는 어떤 친숙한 상황에서 새로운 게슈탈트를 보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러한 후의 그의 연구 세계는 여러 가지 형태에서 이전에 그가 살아왔던 세계와 같은 표준으로 비교할 수 없게 보일 것이다. 상이한 패러다임에 의해 주도되는 학파들이 항상 서로 얼마간 엇갈리게 되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학 패러다임 전환 사례 - gwahag paeleodaim jeonhwan salye

[마] 상을 거꾸로 만드는 렌즈의 안경을 쓴 피실험자는 처음에는 온 세상을 거꾸로 보게 된다. 초기에 그의 감각기관은 안경 없이 기능하도록 훈련되었던 때처럼 작용하게 되고, 따라서 극도의 방향 상실에 이르러 당사자는 심각한 위기에 부딪힌다. 그러나 피실험자가 대개 시각이 몹시 혼란해지는 과도기를 거친 뒤, 새로운 세계를 다룰 줄 알기 시작한 후에야, 그의 시야 전체는 뒤집어진다. 그 뒤에는 이전의 이상(異常) 시야가 그 상에 동화5) 작용하여 시야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비유적일 뿐만 아니라 문자 그대로, 이 거꾸로 보이는 렌즈에 익숙해진 사람은 시각에서의 혁명적인 변형을 거친 것이다.

[바] 여러 실험에서 실험용으로 제시된 물체들의 크기, 색깔 등이 피실험자가 이전에 받은 훈련과 경험에 따라 달리 지각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이 실린 풍부한 실험 문헌을 훑어보면, 패러다임과 같은 그 무엇이 지각 작용 자체의 우선 조건이라는 느낌이 들게 된다. 사람이 무엇을 보는가는 그가 바라보는 대상에도 달려 있지만, 이전의 시각·개념상의 경험이 그에게 무엇을 보도록 가르쳤는가에도 달려 있다. 그러한 훈련이 없는 상태에서는 윌리엄 제임스의 표현처럼 ‘꽃피고 벌이 윙윙거리는 혼동’만이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사] 세계가 패러다임의 변화와 더불어 변화하지는 않지만, 그 이후의 과학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세계에서 연구 활동을 하게 된다. 과학혁명 동안에 일어나는 일은, 개별적인 안정된 데이터의 재해석으로 완전히 환원6)되지 못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채택한 과학자는 해석자이기보다는 차라리 거꾸로 보이는 렌즈를 낀 사람과 비슷하다. 이전과 똑같은 무수한 대상을 대하면서 그리고 그렇게 변함없는 대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학자는 대상들의 세부적인 것의 여기저기에서 속속들이 그 대상들이 변형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논술로 대학 가기

1. 과학 연구에서 패러다임이 중요한 이유를 200자 내외로 설명하시오.

2. 이 글을 바탕으로 쿤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전통적 과학관에 준 충격과 영향을 300자 내외로 설명하시오.

각 단락의 소주제문

[가]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을 통해 도구를 채택하고 새로운 영역을 들여다보게 된다.

[나] 패러다임의 변화는 과학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연구 활동의 세계를 다르게 보도록 한다.

[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대체로 점진적이고 비가역적인 것이지만, 과학적 훈련에 필요하다.

[라] 정상 과학의 전통이 변하는 과학혁명의 시기에는 과학자 자신의 환경에 대한 지각 작용이 재교육되어야 한다.

[마] 상이 거꾸로 보이는 렌즈를 쓴 피실험자는 처음에는 온 세상을 거꾸로 보게 되지만, 시각이 몹시 혼란해지는 과도기를 거친 뒤에는 시야 전체가 뒤집어진다.

[바] 그가 바라보는 대상은 시각·개념상의 훈련과 경험에 따라 달리 인식된다.

[사] 세계가 패러다임의 변화와 더불어 변화하지는 않지만, 변화된 패러다임을 채택한 과학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세계에서 연구 활동을 하게 된다.

이 글에 대하여

‘과학혁명의 구조’는 미국의 과학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토머스 쿤의 저서다. 쿤은 이 책에서 과학적 지식의 진보가 혁명적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는 “과학자들 사이에 통상적으로 수행되는 안정된 과학 활동”을 ‘정상 과학’이라 규정하고, “특정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신념·가치·기술 등을 망라한 총체적 집합”을 ‘패러다임’이라고 규정하면서 ‘과학혁명’이란 정상 과학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컨대 어떤 과학 이론에 의해 과학적 지식이 발전하다가 그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면, 그 시대의 과학자들이 공유하는 패러다임으로는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없으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의 혁명, 즉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 결과 새로운 과학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쿤이 제시하는 과학혁명의 과정은 ‘전(前) 과학→정상 과학→위기→과학혁명→새로운 패러다임→새로운 위기’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쿤의 이론은 전통적 과학관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어휘풀이

1) 패러다임(paradigm) : 원래 의미는 사례(事例)라는 뜻. 어떤 요인으로부터 다양하면서도 일견 상호 무관한 듯한 사례가 나타나는 경우, 그 연쇄 계열(連鎖系列)이 패러다임인데 여기서 더 나아가 다양한 관념을 상호 연관시켜 질서 지우는 시스템 내지 구조를 일컫는 개념으로 쓰인다. 예컨대 근대과학의 패러다임 등.

2) 원형(元型) : 생물의 발생적인 유사성에 따라 추상(抽象)된 유형.

3) 게슈탈트 : 형태. 지각의 대상을 형성하는 통일적 구조.

4) 비가역적(非可逆的) : 다시 본디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것).

5) 동화(同化) : ① 본디 질이 다른 것이 감화되어 같게 됨, 또는 본디 질이 다른 것을 감화시켜 같게 함. ② 밖에서 얻은 지식 따위를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 ③ 생물이 외부에서 섭취한 물질을 자기 몸을 구성한 성분과 같은 것으로 변화시키는 현상.

6) 환원(還元) : 본디의 상태로 다시 돌아감, 또는 되돌림.

예시 답안

1.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을 통해 과학 연구의 도구를 채택하고 새로운 연구 영역을 들여다본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과학자들이 그들의 연구 활동 세계를 다르게 보도록 한다. 이것은 마치 색안경을 쓰면 세상이 다른 색깔로 보이게 되는 것과 같다. 따라서 패러다임은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 영역, 연구 방법과 도구를 결정하게 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2. 전통적 과학관은, 과학은 객관적인 대상을 연구하는 것이며 과학 발전은 누적적이라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또한 과학 연구의 결과는 객관적이며 불변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쿤에 의하면 과학 연구는 과학자가 어떤 패러다임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세계는 변화하지 않지만, 과학자들은 자신이 채택한 패러다임에 따라 다른 세계에서 연구 활동을 하게 된다. 이러한 주장은 전통적인 과학관을 뒤집는 것이며, 따라서 전통적인 과학관에 입각한 과학자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주간동아 566호 (p103~105)

이곳은 2017년 이전에 올려진 아멘넷 오피니언 칼럼 글입니다. 이름으로 찾으실 수 있습니다.
황상하 | 김동욱 | 최송연 | 허경조 | 이수일 | 송흥용 | 김정국

패러다임의 변환(Paradigm shi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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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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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미국의 과학철학자 토마스 세무엘 쿤(Thomas Samuel Kuhn, 1922-1996)이 1962년에“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을 세상에 내 놓았습니다. 이 책의 영향력은 그 책이 출간 되자 곧 그 주제를 논의하기 위한 여러 개의 학회가 결성되었다는 사실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과학의 변화 또는 과학적 변화의 메커니즘을 논의하고 있는데,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용어입니다. 과학은 점진적이거나 지식의 축적에 따라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에 따라 <정상과학1 → 위기 → 과학혁명 → 정상과학2>의 과정을 거처 혁명적으로 발전하며, 과학혁명 과정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방식에 따라 형성된 과학이 새로운 정상과학이며, 기존의 정상과학을 대치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쿤은 과학 혁명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에 따라 이론이 바뀌면, 동일한 자연 현상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보인다고 하여 과학 발전의 불연속성을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쿤은 이론과 이론 사이의 단절을 강조하였는데, 이런 단절은 정상과학1과 정상과학2를 양립불가능할 뿐 아니라 공약불가능하게 만든다고 하여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과학의 발전을 종교적 개종에 비유하며, 과학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관을 가지게 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따라서 쿤은 과학이 혁명의 진행 방식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전통적으로 자연과학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자연에 대한 진리를 드러내 주는 것으로, 서양 학문의 전형이라고 평가 받았습니다. 따라서 모든 학문들은 자연과학적인 성격을 가지고자 했으며, 이것은 학문의 발전을 의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쿤은 과학역사의 수많은 사례를 통해 근대 이후 과학의 발전에 대한 전혀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였습니다. 즉 과학이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으며, 따라서 과학의 발전은 연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쿤은 이 논의를 위해서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오늘날 이 개념은 단순히 과학의 발전을 설명하는 데에 사용될 뿐만 아니라,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다양한 분야의 논의를 설명하는 용어로 쓰입니다. 쿤의 논의는 인간 이성의 산물인 자연과학이 결코 자연에 대한 진리를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쿤의『과학 혁명의 구조』이후, 과학의 논의에서 진리는 더 이상 중요한 개념으로 설정되지 않고, 과학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발전을 논의해야 했을 정도입니다. 진리는 모든 분야의 과학적 논의에서 끊임없이 추구해 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쿤의 논의에서 보여 준 진리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더 이상 진리를 논의할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결과 쿤의 논의는 상대주의로 해석되었고, 더 나아가 모든 분야에서 진리를 더 이상 주장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과학사를 통해 보여주는 정상 과학과 패러다임의 관계의 대표적인 예가 광학에서 제시되었습니다. 물리 광학의 경우, 18세기까지는 입자설이 그리고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파동 이론이 모든 교과서에 빛에 관한 이론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20세기 초에는 빛을 입자와 파동의 두 가지를 수용하는 것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이 과정은 패러다임에 따른 정상 과학의 변화를 잘 보여 주는 예입니다. 쿤이 제시한 중요한 개념은 ‘패러다임 변환’(paradigm shift)과 ‘공약 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입니다.

    패러다임은 패턴, 예시, 표본 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파라데이그마 παράδειγμα를 영어화하여 만들어낸 신조어입니다. 토머스 쿤이 사용한 패러다임은 한 시대의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이론이나 방법, 문제의식 등의 체계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천동설이 진리로 받아들여지던 시기에 다른 모든 천문 현상은 천동설의 테두리에서 설명되었습니다. 토마스 쿤은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이론 체계가 변화하는 과정을 과학혁명의 단적인 예로 제시하였습니다. 쿤에 의하면 이러한 과학 이론의 변화는 어느 한 이론이 그르고 다른 한 이론은 옳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당대 사회 전체가 갖는 신념과 가치체계가 변화한 것이며, 문제 해결 방법이 달라진 것이라고 파악하였습니다. 이러한 개념에 따르면 현대의 표준 모형 역시 하나의 패러다임일 뿐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고대 희랍에서 파라데이그마는 법률 용어인 판례라는 뜻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또 예술 영역에서는 모델이라는, 즉 예술가의 작업을 위해서 설정되는 표현 대상을 뜻했습니다. 그리고 일상적 토론에서 유용한 예증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 용어는 여러 분야에 두루두루 쓰였던 표현인 셈입니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누구누구는 타(他)의 모범이 된다.”, “무엇이 누구를(무엇을) 위한 좋은 본보기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때의 모범이나 본보기가 요즘 흔히 쓰이는 패러다임이기도 합니다.

    이 용어가 학술적 의미로 쓰였던 흔적은 플라톤의 이데아론(또는 형상 이론)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플라톤 철학에서 말하는 이데아(idea)는 현실 세계에 있는 다른 사물들을 위한 파라데이그마입니다. 현실 세계의 모든 것들은 이데아를 본떴거나, 이데아를 본보기 삼아 이루어진 그런 것들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플라톤의 이데아는 패러다임입니다. 플라톤 철학에서 패러다임으로서의 이데아는 완전할 수 있으나, 이를 본뜬 것들은 당연히 불완전합니다. 본뜬 것이 이데아가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본뜬 것의 불완전성은 패러다임으로서의 이데아 때문이 아니라, 그 불완전성은 본뜬 것이 현실 세계에 있을 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경험적 한계 때문이라고 합니다.

    토마스 쿤이 사용한 패러다임이란 용어를 일반 명사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매스터만(Margaret Masterman)은 이 용어를 크게‘형이상학적 패러다임’, ‘사회학적 패러다임’, ‘구조물 패러다임’으로 구분하였지만, 쿤이 사용한 패러다임의 예만도 무려 20가지가 넘는다고 분석하였습니다. 이 용어를 정의하기가 어려운 것은 우리가 역사적 논의에서 찾아질 수 있는 여러 가지의 패러다임들을 포괄하는 패러다임이 아닌, 어느 특정한 경우에만 해당하는 ‘하나의 패러다임’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쿤은 패러다임을 어느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그 무엇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의 패러다임이란 특정한 시기의 특정한 집단에 의해 받아들여져 쓰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쿤의 패러다임에 따른 변화란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는 것입니다. 여기서 패러다임은 바로 세계관, 가치관, 어떤 관점에 해당하는 용어로 이해되었습니다. 어느 분야의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도 그렇듯이, 어떤 분야에 종사하든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관점, 세계관, 인생관을 갖고 살아갑니다.

    쿤은 패러다임으로부터 패러다임으로의 이행은 강제될 수 없는 일종의 개종 경험이라고 보았습니다. 정상 과학의 옛 전통을 신봉하는 이들은 옛 패러다임이 모든 문제를 풀어 주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패러다임의 자연스러운 변화는 불가능하고 혁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과학의 혁명은 정상 과학이 더 이상 기존의 패러다임 안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을 때 나타나게 되는데, 그 방법은 대안을 모색하는 것과 기존의 패러다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혁명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방법을 취하기 때문에 ‘죽어야 산다.’고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혁명이라고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일 것입니다. 토마스 쿤의 이러한 주장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의미심장합니다.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과학의 발전이 불가능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라야 가능하다고 하였는데, 오늘날의 교회 개혁도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막 2: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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