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꽃 패러디 - gimchunsu kkoch paeleodi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꽃>을 패러디한 시 모음 

꽃의 패러디   /  오규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왜곡될 순간을 기다리는 기다림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나에게로 와서

내가 부른 이름대로 모습을 바꾸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내게로 와서

풀, 꽃, 시멘트, 길, 담배꽁초, 아스피린, 아달린이 아닌

금잔화, 작약, 포인세치아, 개밥풀, 인동, 황국 등등의

보통명사나 수명사가 아닌

의미의 틀을 만들었다.

우리들은 모두

명명하고 싶어 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그리고 그는 그대로 의미의 틀이 완성되면

다시 다른 모습이 될 그 순간

그리고 기다림 그것이 되었다. 

<작품 정리>

주제 : 존재를 왜곡시키는 인식행위

특징 : ① 김춘수의 ‘꽃’을 패러디하여 유사한 형식과 구절을 반복하고 있다.

         ② 사물을 인식하는 행위를 통해 존재의 본질에 대한 독특한 의식을 보이고 있다.

<작품 해설>

  이 시는 김춘수의 '꽃'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이름을 붙이는 순간 존재는 왜곡된 모습을 보임을 노래하고 있다. 무의미한 존재였던 대상이 명명과 인식의 과정을 통해 의미 있는 존재로 변화하고, 이어 '나'와 '너'의 상호 인식을 통해 관계가 '우리'로 확산되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김춘수의 ‘꽃’은 명명행위를 통해 대상이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서로 그러한 관계를 맺기를 바라지만, 이 시에서 화자는 명명 행위가 곧 대상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것(존재의 본질은 인간의 부여에 의해 달라질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해서 형성되는 것이다)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는 존재의 본질은 파악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감상 : 사물로서의'꽃'에 대한 이름과 그 의미에 대한 관계의 고찰을 바탕으로 철학적 접근을 통해 

           시적 의미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성격 : 관념적, 형이상학적, 존재론적, 주지적


*어조 : 대상에 대한 갈망적 어조


*표현상의 특징
-창조적 상징 : 시 전체가 하나의 상징적 의미를 띰

-내용의 점층적 확대 : 나에서 너로, 너에서 우리로 관계가 확대됨
 

*구성
-제1연 : 무의미한 존재(인식 전)
-제2연 : 의미있는 존재(인식 후)
-제3연 : ' 나'의 확인 받고 싶은 존재
-제4연 : 관계의 확산
-각연의 시상응집 : 몸짓, 꽃, 꽃, 무엇/눈짓


*주제 :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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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김춘수의 꽃을 변주하여 / 장정일

내가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 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버튼을 눌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

<작품 정리>

성격 : 패러디, 해체적

어조 : 풍자적, 반어적

특징 : 김춘수의 시 '꽃'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표현과 구성에 있어서 원작의 틀을 따르고 있음.

구성 : 1연 - 접근이 허락되지 않은 존재

          2연 - 접근이 허락된 존재

제재 : 라디오(김춘수의 시 '꽃'), 현대 도시 문명

주제 : 현대인들의 가볍고 경박한 세태에 대한 풍자

<작품 해설>

  이 시는 김춘수의 시 '꽃'을 패러디(parody)하여 재창작함으로써 원작과는 다른, 작가의 독특한 관점을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는 원작인 '꽃'의 의미를 뒤집어 현대 사회의 인스턴트 식(式) 사랑을 나타내고 있고, 김춘수의 '꽃'을 패러디한 다른 작품으로 오규원의 '꽃의 패러디'가 있다. 이 시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인 '꽃'의 의미를 작가 특유의 방법으로 뒤집어 현대 사회의 풍속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타인과의 지속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원하지 않는 메마른 태도로 나타나며, 또한 자신이 내킬 때는 애정을 나누다가도 마음이 바뀌면 상대가 곧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태도로 그려져 있다. 김춘수의 시 '꽃'을 패러디함으로써 작가는, '꽃'에 나타나 있는 것과 같은 진지하고 친밀한 인간 관계가 오늘날에도 감동과 갈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느냐는 반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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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끼리 접기

                 ―꽃의 비밀 / 송기영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나보다 훨씬 컸지요

내가 그를 꽃이라 불렀을 때

그는 물구나무 선 채 물을 빨았죠 물론,

과자를 주면 코로 먹지요

자주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진짜 꽃이 되었어요

이젠 전정가위가 필요할 것 같아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당신이 생각한 빛깔과 향기로

나의 이름을 불러 주세요

그게 뭐든, 有名한 당신에게

나도 불리고 싶어요

우리들은 모두

용도 변경하고 싶은 걸요

너는 당신에게 나도 당신에게

그러니까 불릴 수만 있다면,

매머드*도 괜찮아요

* 시방 위험한 짐승.

                                    ―시집『.zip』(민음사, 2013)

김춘수의 꽃  /  장경린

나와 섹스하기 전에

그녀는 다만
하나의 꽃에 지나지 않았다

나와 섹스를 하고 난 후
그녀는 더 이상 꽃인 체하지 않는
이자(利子)가 되었다

내가 그녀와 섹스를 한 것처럼
세일즈맨이든 경찰이든 꽃이든 망치든 컴퓨터든
무엇이든 내게 와서
나의 떨리는 가슴에 온몸을 비벼다오
그와 한몸이 되어
나도 그로부터 자유로운 利子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한 송이의 利子가 되고 싶다
나는 너의 利子가 되고 싶고
너는 나의 利子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서로에게

꽃보다 아름다운 利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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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GOLD)

우리가 그것에 마음을 두기 전에

그것은 다만

하나의 광물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가 그것에 마음을 두었을 때

그것은 우리에게로 와서

금이 되었다.

우리가 그것에 마음을 둔 것처럼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길가에 떨어진 개똥도

약에 쓰일 가치가 있듯이

존재한ㄴ 모든 것들에는

존재의 의미가 있다.

쇠똥은 쇠똥구리에게

닭똥은 과수나무에게

하나의 잊혀지지 않는

소중한 의미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