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코도마뱀 발바닥 응용 - gekodomabaem balbadag eung-yong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다 보면 벽에 도마뱀이 붙어있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도마뱀이 아니다. ‘도마뱀붙이’라고 하는 파충류다. 게코! 게코! 하고 운다고 해서 영어로 게코(gecko)란 이름이 붙었다.

이 동물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독특한 신체 구조 때문이다. 특히 벽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릴 수 있는 도마뱀붙이의 발바닥은 과학자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게코 테이프(gecko tape)’가 대표적인 경우다.

스탠포드 대학은 도마뱀붙이의 발바닥에 나 있는 강모의 특성을 응용해 접착력이 매우 강하면서 쉽게 붙였다 떼어냈다 할 수 있는 접착제를 만들었다. 최근 들어서는 또 다른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벽을 오르내릴 수 있는 로봇이다.

게코도마뱀 발바닥 응용 - gekodomabaem balbadag eung-yong

과학자들이 도마뱀붙이 발바닥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벽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릴 수 있는 발바닥 기술을 개발했다. 사진은 도마뱀붙이 발바닥을 확대한 모습. ⓒWikipedia

울퉁불퉁한 벽면에서도 걸어 다닐 수 있어    

16일 사이언스지에 따르면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스탠포드대, UCSB 등의 다국적 연구팀은 그동안 사람처럼 토마토나 병, 그릇 등을 부드럽게 감쌀 수 있는 로봇 손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다. 고민하던 중 도마뱀붙이 발바닥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발바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길이 50∼100마이크로미터(μm), 지름 5∼10μm의 강모(剛毛)가 수백만 개 배열돼 있다. 각각의 강모는 다시 수백 개에 달하는 주걱 모양의 섬모(길이 1∼2μm, 지름 200∼500나노미터)로 갈라진다.

이 강모 하나 하나마다 ‘반 데르 발스의 힘(Van der Waals forces)’이 작용하고 있다.  원자나 분자 사이의 작용하는 작은 인력(引力)을 말한다. 개별적으로 보았을 때 매우 작은 힘이지만, 수백만 개가 동시에 작동하면 강한 접착력을 발휘하게 된다.

같은 방식으로 수십억 개의 강모를 만들면 도마뱀 무게의 수천 배 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 이런 원리로 막스플랑크 연구소 과학자들은 극세사(microfibers)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극세사가 밀집된 발바닥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양한 벽면에 붙어있을 수 있는지 실험을 해보았다. 그러나 의도했던 실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평탄한 벽면에서는 강한 접착력을 발휘했지만 울퉁불퉁한 벽면에서는 강한 접착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도마뱀붙이처럼 어떤 벽이든 자유자재로 오르내리기 위해서는 울퉁불퉁한 벽면에서도 접착이 가능해야 했다. 고민하던 연구진은 도마뱀붙이 발바닥을 그대로 모방하려던 생각을 포기했다. 그리고 또 다른 형태의 합성물질을 만들었다.

연구진이 ‘FAM(fibrillar adhesives on a membrane)’이라고 부르는 물질을 말하는데 멤브레인을 이용한 섬유질 접착제다. 집게(gripper) 모양을 하고 있는데 부드러운 고무로 만든 작은 깔때기들로 덮혀 있다.

로봇 외에 전자장비, 의약품 개발에도 활용    

이 깔때기들은 외부와 연결된 작은 공기펌프와 연결돼 있는데,  FAM이 외부와 접촉하게 되면 깔때기들로부터 공기가 배출된다.  공기가 배출된 FAM은 곧 납작해지고, 어떤 벽면(물질)과 닿아 있던지 강한 접착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동안 많은 과학자들이 도마뱀붙이 발바닥을 연구해 왔지만, 접착력만 생각했지 벽면의 윤곽을 고려한 연구는 없었다. 그러나 이번 연구 결과는 벽면의 윤곽에 관계없이 접착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한 최초의 사례다.

관계자들은 이 기술이 사람 손과 같은 로봇 손을 만드는 것은 물론, 실제로 벽을 오르내릴 수 있는 로봇 제작에 실마리를 제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UCSB의 킴벌리 터너(Kimberly Turner)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를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논문의 주저자인 막스플랑크연구소의 기계공학자이면서 카네기 멜론 대학 교수인 메틴 시티(Metin Sitti) 박사는 “FAM 기술을 매우 섬세한 전자장비, 그리고 자동차와 같이 구조가 복잡한 기기에 적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사는 또 “사람의 장기를 다루는 바이오의약품 개발은 물론 로봇 개발에 적용할 수 있으며, 벽면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릴 수 있는 로봇을 비행 중인 항공기, 혹은 원자력발전소 시설 등에 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한 UCSB의 기계공학자 엘리엇 호크스(Elliot Hawkes) 교수는 “FAM이 수십만 번 사용해도 기능이 손상되지 않을 만큼 내구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1 kg이 넘는 무게를 지탱할 수 있으며, 가격 역시 다른 유형의 물질보다 적게 든다”고 말했다.

메틴 시티 박사는 “향후 FAM의 기능을 더 발전시켜 더큰 FAM을 만들고, 상용화 하는데까지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현재 연구팀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FAM의 내구성과 접착력을 더 강화하고 있는 중이다.

연구팀은 당장 산을 오르내리는 로봇 개발은 힘들겠지만 사과, 병과 같은 물건을 사람처럼 부드럽게 힘주어 감쌀 수 있는 로봇 손 개발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자연 속에는 인간이 알아차리기 훨씬 오래전부터 각종 첨단 과학이 숨어 있었다.

그동안 자연을 가장 잘 이용해온 분야는 로봇 공학이다. 인간을 닮은 것이 로봇이지만 사람에게 없는 동·식물의 기능을 모방하게 되면 이 로봇은 놀라운 능력을 갖게 된다.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벽을 오르내릴 수 있는 로봇이 탄생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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