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 학회 프로파일 러 박주호 - choemyeon haghoe peulopail leo bagjuho

군 수사관에서 경찰 프로파일러로 변신
‘최면 상담’ 논문 심리학 박사..후임 양성
이춘재·세월호 등 주요 사건마다 현장에

#2019년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이춘재의 여죄를 수사하던 박주호(50·경위) 프로파일러는 이춘재의 범행이 미수에 그쳐 살아남았던 피해자들을 전국으로 찾아 다녔다. 하지만 생존한 15명의 피해자들은 이미 33년이 흐른 상황에서 이춘재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당시의 충격으로 기억을 떠올리기 힘들어 했다. 박 경위는 이들에게 법최면을 제안했다.

‘버스에서 내렸어요. 집으로 가고 있어요. 어떤 남자가 쫓아와요. 제 입을 틀어 막아요….’

박 경위는 그들 앞에 10장의 사진을 펼쳐 놓았다. 최면에서 깨어난 15명의 피해자들은 하나 같이 단 한 사람을 지목했다. 이춘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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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경찰청 과학수사계 프로파일러 박주호 경위.

“30년 전 이춘재 얼굴 가리킬 때 소름 돋아”

“30년이 흐른 기억인데도 모든 사람이 정확하게 한 사람만을 가리킬 땐 저도 소름이 돋았어요. 그때부터 수사에 확신이 생긴 거죠.”

전북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 소속 박 경위는 7일 법최면을 설명하며 이춘재 사건을 떠올렸다.

경찰 2기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인 그는 법최면 수사 전문가이기도 하다. 해군 수사관으로 일하던 2002년 현역 군인으로는 처음 법최면수사자격증을 취득했다. 2007년 경찰에 임용된 이후 2009년부터는 경찰의 법최면 수사 전문과정 교육을 담당하며 법최면 수사관을 양성하고 있다. 2017년에는 최면상담 프로그램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상담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 경위는 법최면에 대해 “머리 속에 10개의 기억 수도꼭지가 있다면 그 중 9개를 끄고 사건 당시의 기억 하나만 흐를 수 있도록 에너지를 몰입시키는 원리”라며 “뇌파를 잠들기 직전의 수면 상태(세타파)로 유도해 왜곡되고 오염된 기억을 정리하고 수사에 필요한 방향으로 기억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면 수사는 주로 살인·강도·강간·방화·납치·유괴·실종 등 강력사건에 활용된다. 박 경위는 “법최면과 프로파일링으로 얻은 정보는 정황 증거로서 법적 효력은 없지만 간접 증거, 더 나아가 직접 증거로 갈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2017년 고준희양 사건’ 최면수사로 범행 추적

대표적인 사건이 2017년 전북 전주에서 발생한 아동학대치사 사건이다. 당시 5살이었던 고준희양의 부모는 11월 18일에 아이가 실종됐다며 12월에 경찰에 신고했다. 3000명가량의 경찰관이 투입돼 실종된 것으로 진술된 날로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집 주변의 모든 폐쇄회로(CC)TV를 확인했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진척이 없었다.

박 경위는 준희양을 데리고 있었던 의붓외할머니가 원룸으로 이사하기 전 살았던 다세대주택을 찾아가 이웃 아주머니를 찾아가 최면수사를 진행했다. 그는 준희양의 부모가 그 집으로 들어갔던 날짜와 시간을 4월 27일 오후 6시로 정확하게 기억해 냈다. 그 날을 기점으로 행적을 추적하자 29일 새벽 2시 새만금 인근 산에서 부모의 휴대전화 위치가 포착됐으며 다음 날 그들의 위치는 경남 하동의 펜션으로 향했다. 펜션 주인 역시 최면 수사에서 준희양은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박 경위와 수사관들은 곧장 새만금 야산으로 향했고 거기서 이불에 쌓인 준희양의 유골을 수습했다. 박 경위는 “프로파일링과 최면 수사를 통해 억울한 죽음을 양지로 꺼내 해결한 사건”이라고 평했다.

2014년엔 팽목항에..“국제표준 신원 확인 시스템 마련”

과학수사라는 용어를 막 쓰기 시작한 때에 경찰에 입직해 올해 만 15년을 맞은 박 경위는 국내 과학수사의 변천을 지켜 봤다.

초기엔 현장에서 지문과 족적, 유전자 등 유형 증거물을 찾는 감식반의 역할이 강했으나 이제는 프로파일링 경험이 축적되면서 범인의 특성과 수법, 범행 의도, 동선 등 무형의 증거물을 통합해 범인에 대한 종합적이고 전문적인 분석이 가능해졌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땐 진도 팽목항에서 희생자 신원 확인 업무를 담당했다. 박 경위는 “당시 지문과 유전자를 채취해 헬기를 타고 국립과학수사원까지 왔다갔다 했었다”며 “세월호 이후 국가적 재난 사고가 발생하면 인터폴 국제표준 절차에 따라 즉시 투입돼 신원 확인을 마무리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수만 건의 강력 사건을 직접 현장에서 마주하며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관리할까.

“수많은 범죄 사건을 분석하다 보면 간접 경험으로 인해 피의자들의 잔상이 떠오르기도 해요. 때문에 과학수사 요원들은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어요. 저는 여행을 가요. 좋은 것, 새로운 것을 보면서 어두운 기억을 환기하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신융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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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이미지. 중앙포토

전북경찰청 "감찰 착수…일부는 수사 전환"

TV 프로그램에 수차례 출연한 유명 프로파일러가 무허가 민간 학술단체에서 간부로 활동하면서 공인되지 않은 자격증을 발급하고 여성 회원들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전북경찰청은 17일 "과학수사계 소속 A경위(50)에 대해 감찰에 착수했고, 조만간 대기발령 조처를 내릴 방침"이라며 "자격증 발급 관련해선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에서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A경위가 '공무원 신분으로 허가받지 않은 영리 업무를 해선 안 된다'는 국가공무원법상 '겸직 금지 의무'를 어긴 것으로 보고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다.

경찰에 따르면 A경위는 2007년 프로파일러 특채로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최면수사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얼굴과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최근 "A경위가 2020~2021년 본인이 활동하는 학회 회원들을 사무실과 차량·모텔 등에서 억지로 껴안거나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전북경찰청이 발칵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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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시 효자동 전북경찰청 전경. 사진 전북경찰청

"'오빠라고 불러' '대시해' 강요" 주장 

경찰 조사 결과 A경위는 2013년부터 최근까지 약 10년간 최면심리 등을 공부하는 학회에서 이사 신분으로 활동하면서 임상최면사 자격증 교육 프로그램을 맡았다. A경위는 학회 회원들에게 교육비를 받고 공인되지 않은 자격증을 발급해 왔다. 해당 학회는 소속 기관의 허가를 받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들은 "유부남인 A경위가 미혼인 여성 회원 일부에게 안마를 강요하거나 손을 잡는 등 성추행하고 자신의 논문 대필이나 사적 심부름을 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A경위가 자신의 권위와 유명인과의 친분 등을 앞세워 회원들의 심리를 통제하는 이른바 '가스라이팅'을 했다"는 취지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와 상황을 조작해 자신을 의심하게 해 무력화시킨 후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사이비 종교 교주 같다" 가스라이팅 의혹 

경찰 안팎에서는 "A경위가 심리상담사가 되기 위해선 성격을 바꿔야 한다며 '오빠'라고 부르라거나 '애교를 부리고 나에게 대시하라'고 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A경위가 본인 신체 중요부위 사진을 휴대전화로 보낸 뒤 일부 여성 회원에게 가슴 등 신체 일부를 찍어 보내라고 강요했다는 의혹도 있다. 불안장애를 앓던 한 여성 회원에게는 '성욕을 풀지 못해 아픈 것'이라며 치료 방법이라면서 음란물을 보게 하거나 최면 공부를 이유로 모텔로 불러내 수차례 성폭행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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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그래픽. 김경진 기자

피해자 측 "불이익받을라…부당한 요청 거절 못 해" 

피해자들은 A경위 행위가 부당한 줄 알면서도 이를 문제 삼으면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의혹이 불거지자 전북경찰청 감찰계는 A경위를 불러 조사했다. A경위는 내부 조사에서 "편집증과 피해망상증이 있는 일부 회원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안마 등을 해줬을 뿐 성추행한 사실이 전혀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노동 착취와 논문 대필 의혹 등도 부인했다. 신체 사진 등을 요구한 의혹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A경위 "거짓 주장…가슴 사진 요구는 기억 안 나"

성폭행 주장에 대해선 "해당 회원이 먼저 나를 좋아했다"며 "성관계를 한 건 맞지만, 합의 하에 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A경위의 동료 경찰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A경위가 해당 학회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고, 알아보니 거기서 상담도 하고 개인적인 일도 본 것 같다"며 "회원 중에 현직 경찰관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학회 회원은 대부분 심리학을 전공한 석·박사"라며 "외부 광고를 통해 순경 공채를 준비하는 일반인을 모은 게 아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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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로고. 연합뉴스

경찰 "고소해 달라 설득 중…피해자 '경찰 못 믿어'"

이 때문에 경찰 내부에서는 A경위가 청문감사실이나 피해자 보호 관련 임기제 공무원 특채를 준비하는 회원을 노린 것으로 보고 있다.

A경위는 아직 직위해제 전이다. 경찰은 현재 피해자들과 접촉을 시도하며 하루속히 고소해 줄 것을 설득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직위해제는 혐의가 나와야만 할 수 있는 징계 종류"라며 "문제가 된 행위를 했다는 것을 A경위만 조사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성범죄 관련 의혹은 피해자가 수사를 원치 않으면 나중에 2차 피해 등의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어서 경찰이 먼저 수사에 착수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정작 피해자들은 경찰을 믿지 못하고 검찰에 고소하겠다고 해서 답답하다"고 했다.

전주=김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