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마시면 잠 안오는 이유 - keopi masimyeon jam an-oneun i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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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에 민감한 사람은) 아침에 차나 커피를 한 잔 마셔도 카페인의 효과가 낮 동안 지속되고, 한 잔 더 마실 경우는 설사 이른 오후에 마셨더라도 저녁에 잠들기 어려울 것이다. 
- 매튜 워커 ‘우리는 왜 잠을 자나(Why We Sleep)’에서

 

GIB 제공

 

지난주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이 자리를 물러난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슐츠 회장은 정계에 입문해 2020년 미국 민주당 후보로 나선다는 소문이다.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며 문득 2011년 타계한 스티브 잡스가 떠올랐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 활동했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1999년 우리나라에 스타벅스 1호점이 문을 열었을 때만 하더라도 2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오늘날 조금 과장하면 한 건물 건너 하나꼴로 카페가 들어선 풍경을 예측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2009년 우리나라에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스마트폰 시대가 열렸고 10년이 못 된 지금 스마트폰은 세상을 바꿔놓았다.

 

지난 4일 스타벅스 회장 자리를 물러난다고 발표한 하워드 슐츠(왼쪽)와 2011년 작고한 애플 CEO 스티브 잡스(오른쪽). 두 사람이 창조한 카페문화와 스마트폰은 사람들의 일상을 바꿔놓았다. - 위키피디아 제공

스타벅스 매장에 가보면 아이폰에 받은 쿠폰을 제시하며 주문한 사이즈업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앞에 두고 하염없이 아이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10년 전에는 없던 신인류다!

 

카페와 스마트폰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다 보니 부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흥미롭게도 둘의 공통적인 부작용이 수면장애다. 스타벅스는 커피의 성격을 기호식품에서 음료로 바꿔놓았고 이제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카페와 길거리에서 커피를 마신다. 즉 카페인 섭취량이 크게 는 것이다. 한편 밤늦도록 스마트폰에 매달리면서 코앞 디스플레이에서 나오는 강한 빛(특히 파란빛)이 생체시계를 교란하고 있다. 

 

카페와 스마트폰의 공통적인 부작용이 수면장애이다 - 사진 GIB 제공

 

 

10년 새 수면장애 환자가 2.6배가 된 이유는

 

지난 3월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은 사람이 10년 새 2.6배로 늘었다는 뉴스가 나와 화제가 됐다. 당시 많은 언론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원인으로 꼽았지만, 필자 기억에 어른이 된 이래 우리나라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얘기가 안 나온 적이 없는 것 같다. 스트레스가 2.6배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말이다.

 

지난 10년 사이에 사람들 일상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꾼 게 카페와 스마트폰이고 공교롭게도 둘 다 남용하면 ‘잠의 적’이 될 수 있음에도 많은 사람이 남용한 결과 이런 현상으로 이어진 게 아닌가 한다.

 

사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타벅스와 애플은 지구촌 사람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고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그 결과 수면장애나 중독 등 부작용에 관련된 연구결과와 생활지침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GIB 제공

지난 6월 7일 스위스 커피과학정보연구소(ISIC)는 ‘카페인에 대한 유전학과 대사, 개인의 반응’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의사이자 저널리스트인 J.W. 랭어(Langer) 박사가 최신 연구결과를 종합해 작성했는데, 카페인의 생리적 효과를 유전학과 약리학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한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매튜 워커(Matthew Walker) 교수는 지난해 펴낸 책 ‘Why we sleep(우리는 왜 잠을 자나)’에서 수면 메커니즘을 그래프로 보여주면서 카페인의 영향력을 설명했다.

 

카페인은 양날의 검이다. 잘 쓰면 낮에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잘 못 쓰면 수면장애로 고생한다. 슐츠 회장의 퇴임을 계기로 위의 두 자료를 바탕으로 커피를 현명하게 마시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먼저 잠의 생리학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수면욕구 = 수면압력 - 생체시계 각성도

 

잠이 들고 깨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게 본질적으로 심리(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리(욕구)의 문제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생리는 게놈과 행동(생활습관)의 결과다. 기숙학교에 다니며 똑같이 먹고 공부하고 운동해도 각자 게놈이 다르기 때문에 수면패턴이 똑같지는 않다는 얘기다. 또 일란성 쌍둥이라도 생활습관이 전혀 다르면 수면패턴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하루 주기로 잠이 들고 깨는 건 두 가지 요소가 작용한 결과다. 먼저 생체리듬으로 지구 자전에 맞춰 하루 24시간 주기로 작용하는데 대략 오전 9시에 오후 9시 사이에는 각성에 도움을 주고 오후 9시에서 다음날 오전 9시 사이에는 이완에 도움을 준다. 생체리듬은 몸 상태와 무관하게 작동한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다음은 수면압력(sleep pressure)으로 우리 몸의 상태가 잠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알려주는 지표다. 수면압력은 깨어있을 때 올라가고 잠들면 서서히 내려간다. 뇌에는 수면압력을 감지하는 압력계가 있는데 바로 아데노신수용체(adenosine receptor)다. 여기에 아데노신이라는 생체분자가 많이 달라붙을수록 뇌는 수면압력이 높다고 느낀다. 아데노신은 깨어있을 때 계속 축적된다.

 

수면욕구(urge to sleep)는 수면압력에서 생체리듬 각성도를 뺀 결과다. 즉 수면압력이 같더라도 생체리듬 각성도가 높을 때보다 낮을 때 더 졸리다. 결국 두 요인의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지면 잠자는 데 문제가 없고 어긋나면 수면장애가 된다.

 

수면욕구는 뇌의 피로도(수면압력(S))에서 생체시계 각성도(C)를 뺀 값으로 어느 선을 넘어서면 졸음이 쏟아져 잠이 든다. 전형적인 수면욕구 패턴 그래프로, 깨어있는 동안 수면압력이 증가하고 밤에 각성도가 낮아지면서 밤 11시에 문턱값에 이르러 잠이 든다. 자는 사이 수면압력이 낮아지고 새벽부터 각성도가 올라가면서 아침 7시에 잠이 깬다. 이 과정이 24시간 주기로 반복된다. - ‘Principles and Practice of Sleep Medicine’ 제공

먼저 잘 돌아가는 상황을 보자. 평소 아침 7시에 일어나 밤 11시에 잠이 드는 사람이 있다. 이를 수면욕구 그래프로 설명하면 이렇다. 아침 7시에 깨는 건 잠을 자는 동안 뇌의 아네노신이 분해돼 줄어 수면압력이 떨어지고 생체시계의 각성도는 올라가 같은 값에 이른 결과다. 즉 수면압력이 30(이하 수치는 필자가 정량적 설명을 위해 임의로 정한 값이다)으로 낮아지고 각성도가 30으로 높아져 수면욕구가 0이 돼(30-30) 잠에서 깬다. 

 

일단 깨면 아네노신 농도는 다시 올라가고 생체시계의 각성도는 낮 동안 높게 유지되다 저녁에 내리막으로 돌아선다. (엄밀하게 말하면 오후 두세 시쯤 일시적으로 떨어지는 쌍봉낙타형 곡선을 그린다. 이 무렵 졸린 이유다.) 결국 밤 11시쯤 되면 아데노신으로 인한 수면압력이 130에 이르고 각성도는 30까지 떨어진다. 그 결과 수면욕구는 잠이 드는 문턱값인 100(역시 필자가 임의로 정한 값이다)에 도달해(130-30) 졸음이 쏟아져 잠이 든다. 이렇게 하루 24시간 주기의 생활이 반복된다.

 

결국 수면장애는 밤에 잘 시간이 됐음에도 수면욕구가 문턱값에 못 미쳐 일어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그 원인은 두 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 또는 둘 다의 문제일 수 있다. 먼저 생체시계 문제로 각성도의 주기가 지구 자전과 엇박자를 내면 밤이 돼도 각성도가 떨어지지 않아 잠이 안 온다. 

예를 들어 밤 11시에 수면압력이 130에 이르렀음에도 생체시계가 두세 시간 늦춰져 있어서 각성도가 60이라면 그 차이인 수면욕구가 70이기 때문에 문턱값 100에 못 미친다. 따라서 이때 자려고 누워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몸은 피곤한데(수면압력이 높으므로) 잠은 오지 않으니 딱한 노릇이다. 

 

이처럼 생체시계 시간이 잘 못 맞춰지게 되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공조명으로, 특히 파란빛이 문제다. 즉 뇌의 생체시계는 파란빛의 유무로 낮과 밤을 판단하기 때문에 밤에 파란빛이 많이 나오는 조명이나 스마트폰 화면에 계속 노출되면 ‘아직 낮인가...’라고 판단해 시간을 늦춘다. 따라서 밤에는 되도록 색온도가 낮은, 즉 파란빛이 덜 포함된 조명을 쓰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도 ‘야간 모드’를 켜놓는 게 좋다. (참고: [강석기의 과학카페] 파란빛의 두 얼굴) 

 

 

카페인이 수면압력계 교란

 

수면장애를 일으키는 더 큰 문제는 수면압력의 교란이다. 수면압력은 깨어있는 시간에 비례해 올라가지만 뇌의 수면압력계가 아데노신이라는 신호분자가 결합된 정도를 토대로 판단한다는 게 문제다. 즉 아데노신수용체가 오작동하면 수면압력이 몸의 피로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바로 커피의 카페인이 하는 일이다.

 

카페인이 숙면을 방해하는 물질이라는 건 잘 알려져 있지만 사람들 대다수가 그 파괴력을 실감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카페인은 아데노신과 구조가 비슷한 분자이기 때문에 아데노신수용체에 달라붙지만 아데노신과는 달리 수용체가 피로신호로는 인식하지 못한다는 게 비극이다. 즉 아데노신이 붙을 자리만 막고 있는 셈이다. 

 

카페인(C. 왼쪽은 분자구조)은 몸의 피로도를 알려주는 생체분자인 아데노신(A)과 구조가 비슷하다. 그 결과 아데노신수용체 자리를 두고 아데노신과 경쟁한다. 카페인을 지나치게 섭취할 경우 아데노신의 신호가 방해를 받아 수면압력이 몸의 피로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NW Noggin 제공

‘그렇다면 카페인이 누적돼 수용체가 포화되면 수면압력계가 완전히 고장 나는 거 아닌가?’ 이런 의문을 갖는 독자들도 있을 텐데 그럴 염려는 없다. 카페인은 생체이물, 즉 몸에 들어온 외부 물질이기 때문에 우리 몸은 효소를 출동시켜 분해하기 때문이다. 다만 분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깨어있을 때 커피를 한 잔 마셨더라도 언제 마셨느냐에 따라 차이가 크다.

 

분해효소의 작용이나 배출로 몸에 들어온 생체이물의 농도가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을 반감기라고 하는데 카페인은 5시간 내외다. 다만 카페인의 영향은 사람에 따라, 즉 게놈에 따라 차이가 크다. 어떤 사람은 저녁에 커피를 두세 잔 마셔도 잠드는 데 문제가 없는 반면 민감한 사람은 낮에 마신 커피 한 잔이 밤잠을 설치게 한다.

 

체내 카페인 대사(분해) 속도는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유전형이 가장 큰 요인이지만 흡연(촉진), 음주(억제), 간 질환(억제), 녹황색채소 및 비타민C(촉진), 먹는 피임약 등 일부 약물(억제) 등이 변수로 작용한다. - ISIC 제공

이런 민감도의 차이는 두 가지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카페인을 분해하는 효소 유전자의 차이다. 카페인 분해를 주로 담당하는 CYP1A2 유전자의 경우 AA형인 사람은 빠르게 대사하는 반면 CC형인 사람은 느리게 대사해 카페인이 혈액 속에 오래 남아 있다. AC형은 중간이다. AA형이 40% 정도이고 AC형이 40%가 조금 넘고, CC형이 20%에 약간 못 미친다. 

 

다음으로 아데노신수용체 유전자의 차이다. 즉 유전형에 따라 수용체 분자의 구조가 조금씩 다르고 그 결과 카페인이 달라붙는 정도에 차이가 난다. 카페인이 찰싹 달라붙는 수용체를 지닌 사람은 민감하고, 쉽게 떨어지는 수용체를 지닌 사람은 둔감하다. 결국 카페인 민감도는 대사 효소 유전자형와 수용체 유전자형 조합의 결과다.

 

예를 들어 아데노신수용체가 카페인과 강하게 결합하고 분해효소는 카페인을 제대로 대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카페인에 극도로 민감할 것이다. 반면 수용체가 카페인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분해효소가 보는 대로 없애는 사람은 하루에 커피 대여섯 잔을 마셔도 잠자는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 사이 어디 쯤에 위치할 것이고 따라서 카페인 섭취 시기와 양에 따라 수면에 미치는 영향이 결정될 것이다. 앞에 예를 든 사람을 다시 불러보자. 

 

 

 

아침 점심 두 잔보다 저녁 한 잔이 영향 더 커

 

이 사람은 카페인을 전혀 섭취하지 않을 때 아침 7시에 일어나 밤 11시에 잠이 든다. 즉 밤 11시쯤 되면 아데노신으로 인한 수면압력이 130에 이르고 각성도는 30까지 떨어진다. 그 결과 수면욕구는 잠이 드는 문턱값인 100에 도달해 졸음이 쏟아진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오전 8시에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습관을 들이면 어떻게 될까. 이 사람의 카페인 반감기가 5시간이고 체내 카페인이 압력계에 미치는 영향은 1mg 당 1이다. 커피 한 잔에는 카페인이 80mg(이하 단위 생략)이 들어있다. 5시간이 지난 낮 1시에는 몸에 카페인이 40이 남아 있고 저녁 6시에는 20, 밤 11시에는 10이 남는다. 

 

밤 11시에 아데노신이 130이라면 뇌는 카페인의 방해로 수면압력을 120으로 측정한다(130-10). 생체시계가 정상이라 각성도가 30이라면 수면 욕구는 90이 돼(120-30) 문턱값 100에 약간 못 미친다. 하지만 15분쯤 지나면 아데노신이 조금 더 올라가고 각성도는 약간 더 낮아지면서 수면 욕구가 100에 이르러 잠이 든다. 하루 모닝커피 한 잔은 사실상 수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GIB 제공

이 사람이 커피에 맛을 들여 오전 8시에 한 잔, 낮 1시에 한 잔 이렇게 하루 두 잔을 마시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저녁 6시에는 60(오전의 20+낮의 40), 밤 11시에는 30(10+20)의 카페인이 남는다. 밤 11시에 아데노신이 130이라면 뇌는 카페인의 방해로 수면압력을 100으로 측정한다(130-30). 생체시계 각성도 30을 고려하면 수면욕구는 70으로 문턱값과 꽤 차이가 난다. 결국 자정을 넘겨서야 아데노신이 더 올라가고 카페인 농도는 약간 줄고 각성도가 더 낮아지면서 수면욕구가 문턱값에 이르러 잠이 든다. 하루 두 잔이면 카페인이 약간 문제를 일으킨다는 말이다.

 

하루는 이 사람이 저녁에도 커피를 마셨다. 즉 오전 8시, 낮 1시, 저녁 6시에 한 잔씩 이렇게 하루 세 잔을 마시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밤 11시에는 카페인 70(10+20+40)이 남는다. 밤 11시에 아데노신이 130임에도 뇌는 카페인의 방해로 수면압력을 60으로 측정한다. 생체시계 각성도 30을 고려하면 수면욕구는 불과 30이다! 

 

도저히 잠이 안 와 뒤척거리다 2시가 됐고 아데노신은 160까지 치솟았다. 카페인 수치가 50으로 떨어지면서 수면압력이 110까지 올라갔다. 생체시계 각성도도 5로 바닥에 근접했다. 이 경우 수면욕구가 105로 문턱값을 넘어 이미 잠이 들었어야 함에도 ‘잠을 자야 하는데...’라는 걱정(심리적 요인!) 때문에 아직 깨어있는 것이다. 결국 한 30분 더 뒤척이다 간신히 잠이 들었다.

 

물론 위의 상황은 이상화한 ‘수학 모델’이다. 실제 밤 11시의 아데노신 농도는 전날 밤 숙면 여부와 낮잠 여부, 낮의 활동도에 따라 다를 것이다. 카페인의 반감기(분해 속도) 역시 체내 농도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기 나오는 ‘이 사람’이 나 아냐?’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다소 장황하게 카페인의 반감기 효과를 설명한 건 커피 말고도 많은 기호식품에 카페인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숙면을 방해할까봐 커피를 자제하는 사람들도 콜라나 초콜릿 등 다른 카페인 함유 식품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콜라 한 캔에 들어있는 카페인은 40mg으로 저녁 6시에 마시면 낮에 마신 커피 한 잔만큼이나 수면에 영향을 미치는데도 말이다. (‘이 사람’이 ‘아침 커피+점심 커피+저녁 콜라’를 마셨다면 밤 11시 체내 카페인 농도는 50mg(=10+20+20)이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음료 가운데는 커피 말고도 카페인이 함유된 종류가 적지 않다. 음료별 함유 카페인 범위와 평균값을 보여준다. - ISIC 제공

 

 

 

잘 마시면 숙면에 도움이 될 수도

 

가끔 드라마에서 잠에서 막 깨어난 여성이 남편(또는 남자 친구)이 직접 내려 건넨 커피를 받아 마시며 행복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은 ‘밤에 영향을 최소화하려면 잠에서 깨자마자 커피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오히려 역효과다.

 

잠에서 깨면 우리 몸은 코티솔 호르몬을 분비해 심신의 각성도를 높인다. 그런데 카페인은 코티솔의 분비를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잠에서 깨자마자 커피를 마시면 역효과라는 말이다. 따라서 모닝커피는 잠에서 깨고 한 시간 내지 한 시간 반 정도 지난 뒤 마셔야 한다.

 

한편 낮에 활동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모닝커피가 유익하게 작용할 것이다. 특히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잤음에도 낮에 깨어있어야만 하는 사람들의 경우 더 그렇다. 수면압력이 높아져 한낮에 수면욕구가 문턱값을 넘어서는 불상사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이는 수면장애인 사람에게도 해당한다. 즉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자 낮잠을 오래 자면 밤에 아데노신 수치가 충분히 올라가지 못해 다시 잠을 못 이루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는데 카페인의 도움으로 낮잠을 자지 않고 버티면 밤에 쉽게 잠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형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저녁형(올빼미형) 사람들에게도 카페인은 고마운 존재다. 앞서 설명했듯이 수면욕구는 수면압력에서 생체시계 각성도를 뺀 값이다. 따라서 생체시계가 두세 시간 뒤로 맞춰져 있는 사람들은 밤 11시에도 각성도가 여전히 높아 잠들기 어렵다. 결국 늦게 잠이 들어도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야 하므로 늘 수면부족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그나마 커피 덕에 낮에 정신을 차린다는 말이다.

 

‘수면 습관 하나 못 바꾸나?’ 아침형인 사람들은 이들의 호소가 핑계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일상의 조건이 생리(게놈)와 맞지 않으면 평생 고생하기 마련이다. 실제 저녁형인 사람은 아침형보다 만성적인 수면장애로 각종 대사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더 높다고 한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일상의 조건이 바뀌는 것이다. 최근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는 회사가 늘고 있는 게 반가운 이유다. 이런 행운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주중에는 카페인의 도움을 받아 버티고 주말에 ‘잠 빚’을 갚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다.  

 

 

나이 들면 카페인 섭취 줄여야

 

한편 나이가 들수록 생체시계의 정교함이 떨어지고(각성과 이완의 최댓값 차이, 즉 진폭이 줄어든다) 아데노신수용체도 줄기 때문에 카페인의 영향력이 더 커진다. 즉 밤에도 생체시계 각성도가 충분히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카페인이 얼마 안 되는 수용체를 막아 수면압력도 낮아지면 잠들기가 정말 어렵다. 특히 남성은 4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데,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분비 감소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우리 나이로 50이 된 필자는 ‘우리는 왜 잠을 자나’에서 이 부분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어 아침 점심 한 잔씩 마시던 커피를 아침에만 마시기로 했다. 밤 11시의 카페인 수치를 30에서 10으로 낮춘 것이다(필자의 카페인 분해 반감기가 5시간이라고 했을 때). 처음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확실히 잠자는 시간이 좀 당겨지고 더 푹 자는 것 같다(카페인은 깊은 잠을 잘 때 나오는 델타파를 억제하는 작용도 한다). 

 

커피는 언제 마시느냐에 따라 수면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고 숙면을 도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평소 밤 11시쯤 잠드는 사람이 저녁에 커피를 마시면 수면압력이 떨어져 자정을 한참 넘겨서야 잠이 든다. 다음날 일 때문에 억지로 깨면 피로가 덜 풀린 상태이지만 모닝커피를 한잔 마시면 정신이 맑아져 낮에 졸지 않고 버틸 수 있다. 밤이 되면 카페인이 거의 분해됐고 깨어있는 동안 축적된 아데노신의 작용으로 쉽게 잠이 든다. - 그래픽=강석기 작가 제공

다만 작업이 있거나 약속이 있는 날 카페에 들어서면 공간에 퍼져있는 커피향을 맡는 순간 나도 모르게 커피를 마신다. 미국 저널리스트 찰스 두히그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습관의 힘’에서 ‘신호(카페의 커피향) → 반복 행동(커피 주문해 마시기) → 보상(맛과 향 음미 및 각성효과)’이라는 습관 고리에 빠지면 벗어나기 힘들다고 설명한다. 일단 신호를 접하면 습관 패턴이 자동적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수면장애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카페인과 연관성을 알면서도 좀처럼 커피를 끊지 못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카페인의 생리학을 떠올린다면 카페인 섭취량은 꽤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즉 커피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동안 무심코 먹었던 다른 카페인 함유 음식들은 조금만 신경 쓰면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커피 역시 공짜 사이즈업의 유혹을 떨치고 작은 컵으로 주문하고 저녁에는 그나마 반만 마시는 식으로 습관을 바꿀 수는 있을 것이다. 커피는 물을 대신하는 음료가 아니라 기호식품임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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