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 을까 해설 - geu manhdeon sing-aneun nuga da meog-eoss eulkka haeseol

초록 일부

소설로 그린 자화상 1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유년 시절을 가장 아름답게 그려낸 최고의 성장 소설

박완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화가가 자화상을 그리는 심정으로, 묵은 기억의 더미를 파헤쳐 1930년대 개풍 박적골에서의 꿈 같은 어린 시절과 1950년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20대까지를, ...

초록 전체

소설로 그린 자화상 1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유년 시절을 가장 아름답게 그려낸 최고의 성장 소설

박완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화가가 자화상을 그리는 심정으로, 묵은 기억의 더미를 파헤쳐 1930년대 개풍 박적골에서의 꿈 같은 어린 시절과 1950년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20대까지를, 한폭의 수채화와 한편의 활동사진이 교차되듯 맑고도 진실되게 그려낸 소설이다.
그런만큼 이미 발표된 박완서의 여러 소설 속에서 파편적으로 드러나거나 소설적으로 변용되어 나타난 자전적 요소들의 처음과 중간, 마지막까지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기존 박완서 소설의 모태 혹은 원형이라고 할 만하다.
특히 박완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엄마의 말뚝>을 비롯해서 여러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소설적 탐구의 대상이 되어 온 작가의 가족관계, 즉 강한 생활력과 유별난 자존심을 지닌 어머니와 이에 버금가는 기질의 소유자인 작가 자신, 이와 대조적으로 여리고 섬세한 기질의 오빠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가족관계를 중심으로 30년대 개풍지방의 풍속과 훼손되지 않은 산천의 모습, 생활상, 인심 등이 유려한 필치로 그려지고 있다. 
자연과 인간이 그 자체로 하나가 되어 노닐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자만이, 그것도 풍부한 감성으로 순우리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박완서라야만 가능한 문체의 아름다움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으며, 1940년대에서 1950년대로 들어서기까지의 사회상이 어떤 자료보다도 자상하고 정감있게 묘사되고 있다.
또한 1950년대 전쟁으로 무참하게 깨져버린 가족의 단란함, 그렇게 되기까지 엎치고 덮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로서 주인공이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히는 것으로 매듭짓는 소설의 말미는 박완서가 왜 소설가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오디오북.

한국문학 최고의 유산인 박완서를 다시 읽는 「박완서 소설전집」 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해설집

기획의 글
작품 해설

한국문학의 어머니, 박완서의 소설로 그린 자화상
- 찬란한 유년의 기억, 내밀한 삶의 기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자신의 경험을 소설 소재로 녹여내 왔던 박완서가 오롯이 본인의 경험만을 써내려간 ‘자전적 이야기’다. 그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교육열이 높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논과 밭이 넓게 펼쳐진 개풍 본가에서 산꼭대기에 위치한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서울 산동네로 이사한 소녀가 겪은 문화적 충격, 일제강점기 국민학생으로서의 기억, 창씨개명 경험, 세계2차대전의 종결, 서울대 입학, 그리고 6·25까지의 격변기를 지낸 작가의 유년 시절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고통스러웠을 법한 기억이지만 유년 시절 어린이에게는 모든 것이 이해 불가한 것들이나 새롭고 찬란한 경험이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박완서의 기억을 통해 그 시절을 경험하고 가늠해볼 수 있으며, 나아가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새로운 시대가 나중에 어떻게 기억될지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MBC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 선정되어 다시금 베스트셀러로 부상하며 수많은 독자에게 유년의 기억을 상기시킨 작품이다.

고통 시대에도 유년의 꿈은 자란다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를 꼽으라면 절대 빠지지 않는 이가 박완서이다. 개인적인 일화를 바탕으로 시대상을 담아낸 그의 작품들은 당대를 함께 겪은 동세대는 물론이고 그의 자식과 손자 뻘인 후세로부터도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그의 대표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1992년 발표된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오롯이 본인의 경험만을 한 권의 소설로 완성한 작품으로, 개성 근처에서 보낸 유년시절부터 대학 입학 직후 전쟁을 맞이한 스무 살까지의 이야기이다. 박완서가 왜 우리 시대의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작가의 내밀한 경험을 들여다 보는 재미도 남다르지만, 누구에게나 모든 것이 새롭고 각별한 유년 시절을 추억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도 필독할만한 작품이다.

박완서는 워낙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의 소재로 삼아온 작가였기에 성장소설은 다소 쉽겠거니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쓰는 일은 전혀 녹록하지 않았다. 작가는 “자신을 바로보기처럼 용기를 요하는 일은 없었고, 내가 생겨나고 영향 받은 피붙이들에게 대한 애틋함도 여간 고통스럽지가 않았다”고 말한다.

 

<박완서: 시골아이에서 서울대학생이 되기까지>
뼛속의 진까지 다 빼주다시피 힘들게 썼다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인간 박완서의 스무 살까지 이야기이다.

박완서는 개성 부근 박적골이라는 시골 양반가에서 자랐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지만, 강한 어머니와 의젓한 오빠를 둔 유일한 손녀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극진한 보살핌과 자식 없는 숙부 네의 사랑까지 독차지하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시절의 기억은 “우리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다. 자연이 한시도 정지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니까 우리도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농사꾼이 곡식이나 푸성귀를 씨 뿌리고, 싹트고, 줄기 뻗고, 꽃피고 열매 맺는 동안 제아무리 부지런히 수고해봤자 결코 그것들이 스스로 그렇게 돼가는 부산함을 앞지르지 못한다”는 문장 속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

박완서의 인생은 교육열이 유난했던 엄마 손에 이끌려 서울 산동네로 옮겨 오면서 일대 전환을 맞이한다. 현저동에서 홀로 삯바느질 하면서도 남매를 길러낸 어머니 밑에서 박완서는 1940년대 서울살이의 고단함과 도시생활의 매력을 동시에 깨달아간다. 소녀가 되면서 친구와 선생님, 오빠의 영향으로 책 읽기에 빠져들었고 서울대 국문과에 합격한다.

작가는 책 읽는 즐거움을 “내 꿈의 세계 창 밖엔 미루나무들이 어린이 열람실의 단층 건물보다 훨씬 크게 자라 여름이면 그 잎이 무수한 은화가 매달린 것처럼 강렬하게 빛났고, 겨울이면 차가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힘찬 가지가 감화력을 지닌 위대한 의지처럼 보였다. 책을 읽는 재미는 어쩌면 책 속에 있지 않고 책 밖에 있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창 밖의 하늘이나 녹음을 보면 줄창 봐온 범상한 그것들하곤 전혀 다르게 보였다. 나는 사물의 그러한 낯섦에 황홀한 희열을 느꼈다”라고 기억한다.

그리고 전쟁은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앗아갔다. 한때 좌익에 동조했던 오빠로 인해 온 가족이 어쩔 수 없이 영웅취급을 받다 서울 수복 후 배신자로 전락했고 갖은 수모를 견뎌야 했다. 1.4 후퇴 때 텅 빈 서울에 부상당한 오빠와 늙은 엄마, 연년생 아기를 둔 올케와 함께 남겨진 마지막 장면에서 박완서는 비로소 작가를 결심한다.

“그 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제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냈다.”

<한국사회: 일제강점기에서 6.25까지>
박완서는 십대 중반까지는 일제 강점기를 살았고 연이어 해방과 6.25라는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잇달아 맞닥뜨리며 20대를 맞았다. 양반을 자처했던 할아버지 밑에서는 허세 속에서도 자부심을 잃지 않았다. 아들 손자가 총독부 관리가 되는 것을 최고로 여기면서도 일제의 창씨개명 압력에는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

해방 전 도시 하층민의 삶은 신산했다. 모두 한참을 올라가는 산자락에 다닥다닥 붙은 집에서 악다구니를 쓰며 살았다. 시골의 풍요로움을 알고 있는 어린 박완서의 눈에 서울은 하찮았지만,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했다.

“어느 날 어떤 아이가 나보고 ‘시골때기 꼴때기’라고 놀리자 다른 아이들도 일제히 따라서 같은 소리를 합창했다. 나는 그 애들이 나를 놀릴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시골이란 데와 그 애들이 현재 살고 있는 형편을 비교하면서 참 별꼴 다 본다고 가소롭게 생각했다. 나도 어느 틈에 엄마의 속 들여다보이는 교만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애들 앞에서 울긴 싫고 울지 않으려면 엄마한테 들은 근지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시골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뻔뻔스러워지지 않으면 안되었다.”

해방에서 6.25까지의 5년은 그야말로 혼돈의 연속이었다. 수십 년 째 유지되어온 체제가 하루아침에 붕괴되고 갑작스레 주어진 자유만으로도 버거울 판에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좌우 갈등이 극에 달했다. 박완서도 그의 오빠도 젊은 혈기로 좌익을 지지했지만, 신념보다는 시대적 분위기가 더 컸다. 작가는 “우리는 그 때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걸 학생에게 무한한 권리가 있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 같다. 수업도 거부하고 강당에 전교생이 모여서 찬반 양쪽으로 갈라져 열띤 토론을 벌이는 날이 많았다.” 당시 시대 분위기를 전한다.

결국 오빠는 전향했고 전쟁이 터지면서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배신자가 되어야 했다. 박완서는 이 때의 자신을 “벌레처럼 기었다”고 돌아본다. 서울을 탈환한 인민군이 감옥 문을 열어 주는 바람에 세상에 나왔다 의용군으로 끌려가 북으로 간 이들이나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았다가 인민군에게 밥을 해준 죄로 부역자가 되어 즉결처분을 당했던 이들이 부지기수였던 시절이었다.

“나는 밤마다 벌레가 됐던 시간들을 내 기억 속에서 지우려고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들며 몸부림쳤다. 그러다가도 문득 그들이 나를 벌레로 기억하는데 나만 기억상실증에 걸린다면 그야말로 정말 벌레가 되는 일이 아닐까 하는 공포감 때문에 어떡하든지 망각을 물리쳐야 한다는 정신이 들곤 했다”는 작가의 기억은 전쟁을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대목이다.

<꾸밈도 빈틈도 없는 우리말의 아름다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언제 읽어도 풋풋하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에서 수십 년이 지나 읽어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 단지 성장 소설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는 작가가 구사하는 언어의 힘이 한몫 한다. 박완서는 때로는 섬세하고 정밀한 묘사로, 때로는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직설의 문장으로 독자들을 강하게 끌어 당긴다.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처연함마저 느끼게 한다.

언뜻 보면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처럼 물 흐르듯 부드러운 이야기로 읽히는 듯하지만, 살아 있는 이야기마다에는 재미와 힘이 실려 있다. 꼭 딱딱한 글이 아니더라도 날카로운 시각과 비판적 시선을 흐리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 문장을 따라 술술 읽다가도 하나하나 뜯어보면 이제는 자주 쓰지 않아 그 뜻을 짐작해야만 하는 옛 단어들조차 바로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처럼 정확하고 빈틈이 없다.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끊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 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

나는 마치 상처 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는 하늘이 노래질 때까지 헛구역질을 하느라 그곳과 우리 고향 뒷동산을 헷갈리고 있었다.”

한 인간의 진솔한 이야기와 그가 속한 시대의 역사가 아름답고 적절한 언어로 그려질 때 얼마나 큰 힘과 공감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보여준다.

저작권자 © 베리타스알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list

최신 우편물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