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로 레이 아들 - amulo lei ad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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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회

애증의 결말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이하 역습의 샤아)는 퍼스트 건담 때부터 적으로, 동료로, 다시 적으로 만난 라이벌 아무로 레이와 샤아 아즈나블의 마지막 이야기다. 초기 건담 시리즈의 종막이기도 하다.

본작은 시간적으로 기동전사 건담 ZZ이후를 다루고 있다. 하만 칸이 죽은 뒤 와해되려 하던 지온을 샤아 아즈나블이 재규합, 지구에 대항한다는 것이 기본이다. 아니, 대항이라고 하면 그저 독자적 세력을 구축해 견제한다는 느낌이니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샤아 아즈나블의 목적은 지구인 숙청이니까. 샤아는 지구인들을 몰살시키기 위해 소행성 액시즈에 핵무기를 채우고, 그 행성을 지구로 떨어뜨린다는 계획을 세운다. 이 몽상적이고도 참혹한 작전을 저지하기 위해 지구연방군 소속 독립부대 론도 벨이 나서게 된다.

샤아의 터무니없는 계획은 거의 성공 직전이었지만, 역시나 터무니없게 뉴 건담에 탑승한 아무로 레이가 소행성을 밀어내면서 실패하고 만다. 어떻게 일개 MS가 소행성을 밀어낼 수 있었는지에 관해서는 극중에서도 미스터리였던 것으로, 훗날 이는 액시즈 쇼크라 불리게 된다.

입문작으로 삼기엔 난해한 작품

이 작품은 한때 건담 커뮤니티에서 건담에 입문하려는 이들에게 추천되던 작품이다. 명작이라고 소문이 나 있으며, 약 두 시간 분량으로 만들어진 극장판이라서 감상 시간이 짧다는 점 때문이었다.

나 이는 적절하지 못한 추천이다. 역습의 샤아는 전후 내용이나 맥락을 알지 못한 채 본다면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할 수 있는 대목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가령, 퀘스 파라야는 왜 이상한 행동을 하는가? 아무로와 샤아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샤아는 왜 지구인들을 몰살시키려고까지 하는가? 이는 앞서 TV로 방영된 건담들을 전부 본 다음에도 숙고해서 생각해야 할 대목들이다. 때문에 건담을 본 적 없는 이들이 역습의 샤아를 본다면 이야기의 단면적인 부분밖에 볼 수 없게 된다.

내용이 난해한 것은 편집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의 연출이 영화에 걸맞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극장판은 시간적 제약이 TV판보다 크기 때문에 극장판에 걸맞은 볼륨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편집해야 하는데, 토미노 요시유키는 대체로 TV판에서 다루면 걸맞을 볼륨의 이야기를 그냥 어떻게든 압축해서 보여주는 편이다. 따라서 거칠게 생략되는 부분들이 많으며, 그 특유의 토미노부시와 맞물리면 난해함이 한층 증가하게 된다.

샤아는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다?

이 난해함이 극점에 달하는 것이 극의 클라이맥스다. 아무로의 뉴 건담과 샤아의 사자비는 지구로 낙하하는 소행성 액시즈 위에서 격돌을 벌인다. 격돌의 승리자는 뉴 건담. 아무로는 샤아가 탑승하고 있는 사자비의 콕핏(조종석)을 액시즈에 처박은 뒤, 액시즈를 밀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액시즈를 무의미하게 밀면서)

샤아: 살고 싶었으면 너에게 사이코 프레임에 관한 정보도 안 줬겠지.

아무로: 뭐라고?

샤아: 허술한 모빌슈트랑 싸워 이겨봤자 의미도 없어. 하지만 이건 난센스군.

아무로: 사람을 우습게 만드는군. 너는 그러면서 영원히 타인을 깔보며 살아왔어.

이 대목에서는 아무로에 대한 샤아의 기묘한 감정을 엿볼 수 있다. 샤아는 자신의 작전을 안전하게 성공시킬 수 있었음에도 아무로라는 가장 큰 불안 요소가 활약할 수 있도록 아무로를 도운 것이다. 아무로에 대한 라이벌 의식에서 비롯된 샤아의 열등감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만 읽을 수도 있겠지만, 퍼스트 건담과 제타 건담을 지나며 쭉 이어져오는 둘의 관계를 살피자면 그런 옹졸한 의식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둘은 호적수인 동시에 한 여성(라라아 슨)의 사망 문제가 얽힌 원수이자, 함께 더 나은 세계를 만들려 했던 동료, 그리고 뉴타입으로서 두 눈으로 보지 않고도 서로를 느낄 수 있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극장판 기동전사 Z 건담 A New Translation에서 보여준 아무로와 샤아의 재회 장면은 그 둘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

(이어, 사이코 프레임이 내뿜는 빛 속에서 죽음을 앞둔 채 펼쳐지는 격정의 토미노부시)

샤아: 그런가. 하지만 이런 따뜻함을 가진 인간이 지구마저 파괴하고 있다. 그걸 모르나, 아무로!

아무로: 알고 있어! 그러니 세계에 인간의 마음속 빛을 보여줘야 하는 거야.

샤아: 그런 남자치고는 퀘스에게 냉정했군, ?

아무로: 난 기계가 아니야. 퀘스의 아빠 노릇은 해줄 수 없어. 그래서 넌 퀘스를 기계처럼 대했나?

샤아: 그런가, 퀘스는 아버지를 갈구했던 건가? 난 그걸 귀찮다고 생각해서 퀘스를 기계로 만들어버렸군.

아무로: 너라는 남자는 어쩌면 그렇게 속이 좁을 수 있나!

샤아: 라라아 슨은 나의 어머니가 되어줬을지도 모르는 여성이었다. 그런 라라아를 죽인 네가 할 말인가!

아무로: 어머니? 라라아가?

이 말을 끝으로 아무로는 짧고 낮은 비명을 지르고, 둘은 더 이상 등장이 없다. 건담 시리즈를 상징하는 두 주역이 죽음 직전에 나눈 것치고는 너무 어이가 없는 저 대화는 그야말로 토미노부시의 상징인 탓에 오늘날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저 둘의 이상한 대화는 건담 시리즈를 통해 쌓아 올린 맥락 위에 놓인 것이다.

건담의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부모 문제를 겪는다. 우선 그나마 초대 주인공 아무로 레이를 보자. 아무로 레이의 아버지 템 레이의 관심은 오직 기계에만 향해 있다. 아들에 별 관심 없는 그는 이후 기계에 미친 정신병자가 되어버린다. 그의 어머니는 우주로 이주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기에 어린 아무로를 그런 아버지와 함께 우주로 떠나보낸다.

제타 건담의 주인공 카미유 비단의 아버지는 대놓고 불륜을 일삼고 있으며, 어머니는 일에 빠져 사는 탓에 아들에게 별 신경도 쓰지 않고 딱딱하게 대한다. 그 둘은 전쟁에 휘말려 곧 모두 시체가 된다. 더블제타의 주인공 쥬도 아시타는 부모가 콜로니 바깥으로 모두 돈을 벌러 나가, 여동생 리나와 함께 사실상 고아들처럼 살고 있다. 모두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자란 소년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기동전사 건담 UC의 주인공 버나지 링크스 역시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는 어릴 적 헤어져 얼굴도 모른다.)

샤아 아즈나블도 다르지 않다. 그의 아버지는 지온 즘 다이쿤으로, 뉴타입론을 펼친 사상가이자 지온 공화국의 초대 수상이다. 기동전사 건담 THE ORIGIN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는 아스트라이아 토아 다이쿤으로, 지온 즘 다이쿤의 후처이다. 샤아의 아버지는 정치 문제로 독살당하며, 어머니와도 그 무렵 강제로 헤어진다. (어머니는 탑에 갇혀 지내다가 죽는다.) 때문에 제타 건담 등에서 샤아 아즈나블은 작중 제대로 된 부모 내지 어른의 역할을 할 능력이 자신에게는 없음을 종종 피력한다. 자신에게 보고 배울 부모-어른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부모-어른이 되는 대신에 샤아가 하는 것은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자신보다 성숙한 영혼을 지닌 여성들을 찾는 일이다. 일년전쟁 중 만난, 가장 강력한 최초의 뉴타입 중 하나였던 라라아 슨이 그에게는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고 그는 (아마도 훗날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아무로 레이와 샤아 아즈나블 모두 뉴타입 자질의 개화에 있어서는 그녀에게 빚지고 있으므로, 뉴타입 인간으로 새로 태어난다는 관점에서는 둘 모두 라라아 슨의 자식들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녀는 일년전쟁 중 샤아를 지키려다가 아무로의 손에 죽게 되었다. 삼각관계는 영영 깨진 파편으로 남아 그들의 영혼에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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